어제 읽은 기사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스크랩해둘 만했던 건 우리에겐 아주 먼 북유럽의 작은 나라 아이슬란드의 작은 수도 레이캬비크에 관한 것이다. 얼음땅(아이슬란드) 인구의 3/5인 12만명이 산다는 도시인데(이 나라의 전체인구가 20만쯤이란 얘기다), 인구 규모로 치자며 우리의 지방 소도시 수준이다. 고등학교 시절에 많이 읽었던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한번은 아이슬란드를 특집으로 다루었었는데, 내게 남아있는 아이슬란드의 인상은 그게 거의 전부이다. 작고 춥고 조용한 나라(TV도 8시 이후에는 안 나온다고 했던가). 이번에 사진으로 보니 레이캬비크는 기대에 잘 부응하는 도시이다(아담하고 깨끗하지만 별로 볼 건 없는 도시). 그곳의 사람들도 대부분은 과묵하지 않을까 싶고, 날씨가 잘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좀 지내보고 싶은 도시이다(어느 정도 규모의 도서관과 서점만 있다면 금상첨화이겠다). 그런 욕심도 일단은 '창고'에 넣어둔다.

경향신문(07. 06. 21) [세계의 컬트여행지](23)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

‘레이캬비크, 아이슬란드’면 됐다. ‘나라 이름 대기’도, ‘수도 이름 대기’에서도 ‘레이캬비크, 아이슬란드’를 들이대면 어린이들은 입술을 깨물며 두 손을 들었다. 나스카 땅 그림과 이스터섬의 모하이가 나오는 ‘소년중앙’에도 레이캬비크는 나오지 않았다. 레이캬비크는 사회과부도에만 나왔다. 빨고 있던 사탕 국물을 지도에 떨어뜨리며 레이캬비크, 레이캬비크, 라고 발음하면 입 속의 혀가 복잡하게 꼬였다. 세상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수도. 그것은 세상의 끝처럼 보였다. 지구가 아무리 둥글다 해도, 레이캬비크를 넘어 전진하는 배들은 수직의 절벽으로 추락할 것 같았다.

그 때처럼 코가 빨갛게 짓무르도록 내려다본 비행기 유리창 너머의 아이슬란드는, 황당했다. 땅은 화산재로 때묻은 것처럼 얼룩덜룩했고, 산은 마법사의 모자처럼 끝이 휘어져 있었다. 케플라빅 국제공항에서 레이캬비크 시내까지 가는 동안 단 한 그루의 나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어항 바닥에서 건져올린 것처럼 초록색 이끼로 덮인 땅에서는 이따금 김이 솟았다. 아이슬란드 도로교통의 허브, 레이캬비크 버스터미널엔 매표소와 피자를 파는 카페테리아만 있었다. 딱 가평 시외버스터미널만 했다. 여기가 아이슬란드 인구의 5분의 3, 12만명이 살을 붙이고 사는, 세상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수도, 레이캬비크다. 시내까지는 걸어서 20분. 물론 시내 전역을 걸어서 돌아볼 수 있다.

맥도널드와 스타벅스가 없다는 것을 빼면 시내는 평범했다. 집들은 레고 모형에서 집어와 꽂아놓은 것 같았다. 시청이 있고, ‘호수(트요른)’라는 이름의 호수가 있고, 시골 역사 같은 총리 공관이 있었다. 바이킹의 서사시가 ‘사가’ 자료를 모아놓은 박물관, 1940년대에 지은 현대식 교회도 있었다. 표백이라도 한 듯 유난히 밝은 금발의 사람들은 유모차를 끌거나 팔짱을 끼고 거리를 누볐다. 8월인데도 쌀쌀했다. 공항에서 꺼내 입은 점퍼를 결국 아이슬란드를 떠날 때까지 벗지 못했다. 급기야 기념품 가게에서 점퍼 하나를 더 사서 껴입어야 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엔 아이슬란드의 첫 개척자, 잉골퍼 아날순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874년. 그 까마득한 시대에 얼음 바다를 건너 올 사람은 바이킹밖에 없었다. 뭍이 나타나자 아날순은 바이킹 풍습대로 의자 손잡이를 집어 던졌고, 의자가 닿은 곳에 형제와 가족, 10여명의 노예가 정착했다. 거기가 바로 ‘김나는 만(Smoky Bay)’, 레이캬비크였다. 아날순의 동상은 여전히 의자 손잡이에 몸을 기대고 있다.

뭍을 만나면 배를 머리에 쓰고 전진했다는 바이킹의 후예들은 용감했다. ‘사가’에는 붉은 머리 에릭슨이 대서양을 건너 ‘빈랜드’에 도착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학자들은 빈랜드를 아메리카 대륙이라고 보고 있다. 기록이 불충분해 ‘우길’ 수는 없지만, 콜럼버스보다 500여년 먼저 아메리카를 발견한 것이다. 용감한 에릭슨은 지금도 홀그림 교회 앞에 동상으로 서 있다. ‘빈랜드’로 추정되는 미국에서 만들어 보낸 동상이다. 홀그림 교회의 종탑에 오르면 에릭슨이 항해한 대서양이 보인다.

홀그림 교회 광장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레이캬비크는 아이슬란드 여행의 관문이다. 관광객들은 레이캬비크를 기점으로 ‘골든서클’ 투어를 한다. 갑자기 물줄기를 뿜어내는 간헐천 게이시르, 폭포 굴포스, 아이슬란드 의회가 태동한 싱비르를 둘러본다. 4륜구동 차량을 빌려 여름에만 길이 열리는 내륙을 가로지르고, 배낭을 짊어지고 일주일씩 하이킹을 하기도 한다. 공항으로 돌아가는 길엔 ‘블루라군’에 들러 몸을 푼다. 빙하 녹은 물과 바닷물을 근처 지열발전소의 지열로 데운 일종의 온천이다. 지열 처리 과정에서 나오는 실리카가 노천온천 곳곳에 비치돼 있다. 공상과학영화에 나올 법한 파이프와 공장을 배경으로 한가롭게 온천욕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아무래도 낯설다.

‘블루라군’이란 이름 그대로 물 빛깔은 형광색에 가까운 하늘색이었다. 블루라군 홈페이지엔 블루라군을 너무 좋아해 여기서 결혼식까지 올렸다는 커플의 이야기가 소개돼 있었다. 이 초현실적인 물빛은 사진가도 매료시켰다. 하늘에서 본 지구를 찍는 프랑스 사진가 얀 베르트랑도 블루라군을 내려다보고 셔터를 눌렀다. 블루라군 주변 땅에선 계속 김이 올라왔다. 정말 ‘김나는 땅’이다.

레이캬비크의 ‘명동’, 아달스트래티 거리에 세워진 파이프에서도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손을 갖다대니 따뜻했다. 사람들이 돌아간 광장에 주저앉았다. 여기가 레이캬비크에서 가장 오래된 거리다. 1752년 지어진 포게틴은 가장 오래된 건물로 가이드북에도 나왔다. 당시만 해도 레이캬비크엔 겨우 300여명이 살았다. 다른 유럽 도시처럼 르네상스 양식도, 고딕 양식이랄 건물도 없었다.



땅에선 김이 올라오고, 이따금 화산이 폭발하고, 뿔 달린 고래가 해안가로 밀려오는 곳. 훗날 톨킨은 아이슬란드를 다녀와 ‘반지의 제왕’을 썼다. 지옥의 땅, 모르도르의 무대가 바로 아이슬란드다. 이 험악한 땅에 고립돼 살아온 아이슬란드 사람들의 언어는 12세기 이후로 거의 변하지 않았다. 아이슬란드 가수 비요크도 그 중세의 언어로 노래부르는 것일까. CD플레이어에선 빗자루로 눈을 쓸 때처럼 사각거리는 비요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눈발을 뿌리며 몽환의 세계로 인도하는 듯한 나른한 목소리. 고개를 흔들고 CD를 꺼냈다. 태양이 분홍빛으로 내려앉는 지금은 밤 11시다.



▲여행정보

아일랜드와 아이슬란드를 혼동하는 사람이 많다. 아일랜드는 영국 옆, 아이슬란드는 덴마크 위에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 영국 런던 스텐스테드 공항에서 아이슬란드 케플라빅 공항행 비행기가 출발한다. 코펜하겐·런던에서 약 3시간 걸린다. 저가항공인 아이슬란드 익스프레스(www.icelandexpress.com)가 가장 저렴하다. 일찍 예약할수록 할인 폭이 커진다.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려면 버스 패스인 링로드 패스를 구입하거나 렌터카를 이용해야 한다. 가이드북엔 ‘아이슬란드 렌터카는 브루나이의 술탄도 빌리기 힘들 정도로 비싸다’고 나와 있지만, 최저 사양으로 고르면 1일 8만원 정도에 빌릴 수 있다. 레이캬비크 시내만 둘러보려면 걷기만 해도 된다.

숙소는 유스호스텔 홈페이지(www.hostel.is)를 통해 예약하거나, 여행자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소개받으면 된다. 대학 기숙사나 호스텔급 숙소가 1박 8만~12만원이다. 관광객이 몰리는 6~9월에만 운영하는 숙소도 많다. 한끼 식사가 2만~3만원으로 물가가 높다. 체감하기로는 노르웨이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비싼 나라인 것 같다.



가이드북은 론리플래닛사의 ‘아이슬란드, 그린란드&패로 제도(Iceland, Greenland & Faroe Islands)’와 디스커버리의 ‘아이슬란드(Iceland)’가 나와 있다. 홈페이지나 여행 블로그를 통해 얻는 정보가 더 알차다. 아이슬란드 여행(www.visit.is), 레이캬비크 여행 홈페이지(www.tourinfo.is), 데스티네이션 아이슬란드(www.destination-iceland.com), 블루라군(www.bluelagoon.com) 등이 추천할 만하다.(글·사진 최명애기자)

07. 06. 22.

P.S. 아이슬란드 관련서를 찾아보니 현재 구할 수 있는 책은 한권도 없는 듯하다. 단, 픽션쪽에서 뜻밖으로 눈에 띄는 책은 아이슬란드 작가 아날두르 인드리다손(1961- )의 <저주받은 피>(영림카디널, 2007). 너무도 조용할 것만 같은 도시 레이캬비크와는 전혀 어울려보이지 않는 제목이다! 소개에 따르면,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상처를 다시 끄집어내야 하는 피해자와 가족들, 그리고 그것을 파헤쳐야 하는 수사팀.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슬픔을 다룬 추리소설이다. 아이슬란드 작가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을 일약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한 작품으로, 2000년 발표되어 스칸디나비아 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다." 관련기사를 이참에 읽어둔다. 올여름에 예정에 없이 추리소설을 한편 읽게 된다면 제일 먼저 고려해 볼 책이다. 찾아보니 작품은 작년에 아이슬란드에서 영화화됐다.

동아일보(07. 04. 07) [한혜원의 펄프픽션]아이슬란드서 온 ‘저주받은 피’"

사람이 죽고 사는 이야기인 범죄수사 드라마는 늘 흥미진진하다. 범죄수사 드라마의 주인공은 크게 세 유형으로 나뉜다. 먼저 파이로 번스, 브라운 신부, 엘러리 퀸처럼 순전히 취미로 수사에 뛰어드는 유형이 있는가 하면, 홈즈, 뤼팽, 포와로처럼 아예 사무실을 내고 사립탐정 행세를 하는 유형이 있다. 마지막으로 그리섬, 스타페카, 콜롬보처럼 제도권 내에서 본업 삼아 범죄를 해결하는 유형이 있는데, 이를 흔히 ‘경찰소설(police procedural)’로 분류한다. 이때 경찰소설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개성과 카리스마 넘치는 수사 반장의 캐릭터 설정에 있다.



빙하와 온천의 나라, 아이슬란드식 수사 반장인 ‘저주받은 피’(영림카디널)가 국내에 소개됐다.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저주받은 피’의 작가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은 스칸디나비아 일대에서는 ‘흥행 보증수표’로 알려진 추리소설 작가이다. 그는 ‘저주받은 피’(2002년), ‘무덤의 침묵’(2003년) 등 ‘에를렌두르 반장 시리즈’로 북유럽 최고의 추리소설상인 ‘글라스 키(glass key)’를 최초로 연속 수상한 바 있다.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전형적인 아이슬란드식 살인사건, 즉 우발적이고 무의미하고 어설픈 노인 살해사건이 발생한다. 단 한 가지, 살인 현장에 남아 있는 ‘내가 바로 그다’라는 메시지만이 유일하게 이것이 계획된 범죄임을 암시한다. 수사반장 에를렌두르는 이 단서를 토대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범죄의 씨앗을 찾아 올라간다.

실제로 연쇄살인이 끊이질 않는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아이슬란드는 추리소설의 배경으로 적합하지 못하다고 지레짐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터넷 보급률 세계 최고, 한국과 비슷한 크기의 국토면적, 단일민족 구성 등 의외로 우리와 닮은 면이 많기 때문일까. 지명과 이름이 낯선데도 불구하고 사건과 인물의 실체가 생생하고 절실하게 다가온다(*국역본은 아마도 영역본에서 중역을 했을 듯한데, 아래는 아이슬란드어본이다).



‘저주받은 피’는 범죄수사라는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를 가장 아이슬란드적으로 풀어내 성공한 작품이다. 특히 동물적인 감각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하드보일드파 에를렌두르 반장은, 할리우드의 명탐정 부럽지 않게 장수할 수 있는 캐릭터이다. 21세기 한국형 수사반장과 경찰소설은 언제쯤 등장하게 될는지. 가장 아이슬란드적인 수사반장으로 세계 추리소설계에 도전장을 낸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에게 질투가 날 따름이다.(한혜원 계원조형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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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이슬란드
    from 2007-06-27 10:29 
 
 
딸기야놀러가자 2007-06-22 0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길에 비행기 옆좌석에 아주 젠틀한 중년신사가 앉아 있었어요.
가방 넣고 꺼내는데 친절히 도와준 덕에, 이야기를 하게 됐죠. 아이슬란드에서 왔대요.
"아이슬란드 사람과 만나는 건 처음이다"라고 했더니
"아이슬란드에는 사람이 많지 않거든요"라고 농담을 하더군요.
아이슬란드에 대한, '유일한' 기억이고 또 좋은 기억입니다. :)

드팀전 2007-06-22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이슬란드다...ㅜㅜ
30대 초반 우울모드에 접어들때 궁시렁 궁시렁 "아이슬란드에 가서 살고 싶어" 라고 했습니다.옆에 있는 사람들이 '왜?' 냐고 물었지요.
글쓴이도 썼듯이..왠지 제가 아이슬란드는 세상의 끝처럼 여겨졌습니다.왕가위의 영화<해피투게더>의 마지막 등대장면 처럼.
최소한 우리나라에서는 뉴스를 봐도 신문을 봐다 아이슬란드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미국도 나오고 프랑스도 나오고 가끔 남아프리카 공화국도 나오는데..
아이슬란드는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아마 알라딘의 페이퍼 중에서도 아이슬란드에 관련된 기사는 오늘 처음 보는 듯 합니다.아이슬란드는 어떤 말을 쓰는지 어떤 역사가 있는지..한국 사람들은 몇 명이나 사는지... 아이슬란드는 제게 사라진 아틀란티스 같은 상징이었습니다...^^ 왜 그곳에 가고 싶었을까요.제가 스스로를 수증기라고 착각해서 그랫나봅니다.죽지 않고 소멸할 수 있는 장소로 그곳이 낭만적으로 보였겠지요...청춘 나 참...

죽기 전에 꼭 갈 수 있겠지요.

비연 2007-06-22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여기 가고 싶어요...

로쟈 2007-06-22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기님/ 20만 중의 한 사람이었군요.^^
드팀전님/ '가정 먼 나라'이면서 '가장 조용할 것만 같은 나라'죠. 그린란드는 너무 땅이 크고...
비연님/ 물가가 의외로 비싸다니까 실행은 쉽지 않을 거 같습니다.^^;

수유 2007-06-22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이슬란드 하면 제겐 Sigur Ros가 떠오르죠..북구적인 사운드. 제 얼음집에 소리 있습니다만.:)

로쟈 2007-06-22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음집은 아이슬란드와 가깝겠군요.^^

수유 2007-06-22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맨 위의 도시 사진. 보니까 s시 같기도 하고..^^ 일자로 뻗은 도로하며, 바다도 보이고. 참 좋은 곳이었죠.

2008-02-25 2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8-02-26 01:10   좋아요 0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