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에 연재됐던 황석영의 소설 <바리데기>가 대단원의 막을 내린 모양이다. 작가는 연재를 마치고 난 소감을 이메일 인터뷰에 응하여 답하고 있다. 연재소설을 읽어본 바 없지만(책은 7월초에 나온다고 한다) 마침 그의 <오래된 정원>에 대한 강의를 다음주에 맡아놓고 있어서 이 인터뷰도 자료삼아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07. 06. 21) “한반도의 삶 세계인과 공유하고 싶었다”

- 우선 6개월 가까운 연재를 끝내신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 작품을 한편 끝낼 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뭔가 내장의 주요부분이 빠져나가 버린 것 같은 허탈감이 남지요. 그런 기분은 아마 한 일주일쯤 지속될 거예요. 전에는 한달쯤 갔는데 요새는 일상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좀 빨라졌다고나 할까. 아기를 낳은 산부들을 위한 산후조리원도 있는 모양인데 우리는 뭐 그런 거 없나.(^^) 그동안 동참해주신 <한겨레> 독자 여러분께도 감사드리고 무엇보다도 줄거리를 열심히 따라오며 장면들을 구체화하려 노력해오신 노원희 화백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노 선생의 바깥양반이 저하고는 죽마고우인데 장면에 나오는 인물 대신 여러 가지 포즈도 취해 주었다고 합니다. 만나면 제게 한바탕 할 것 같아서 은근히 걱정이지요.

- <바리데기>는 처음 구상하셨던 대로 연재가 진행되었는지요?

= 거의 구상대로 되었습니다. 사실은 이번 작품으로 감옥에서 큰 선으로 그려 놓았던 집필 계획은 절반쯤 마무리가 된 셈입니다. 아직 두어 가지가 더 남아 있습니다만. <오래된 정원>은 저의 우여곡절 많던 인생에 대한 자기 치유의 과정이자 지난 세기를 되돌아보고 정리하는, 이를테면 작가로 되돌아오려는 ‘손풀기’였다면 <손님> <심청>, 그리고 <바리데기>로 이어지는 작품들은 여러번 밝혔던 대로 일관된 기획이었지요. 현실적 내용을 우리 형식에 담아 풀어내겠다는 포부였는데요, 이제 그 윤곽이 대충 드러났다고 봅니다. 앞으로 더욱 심화시킬 작정입니다.

- 7월초에 책이 나온다고 들었습니다. 책으로 내시면서 연재분과 달리 수정하거나 보완하시는 부분이 있습니까?

= 진작에 종결원고를 신문사에 넘기고 나서 연이어 교정 작업에 들어갔는데요, 별로 손본 것은 없습니다. 다만 문장 몇 줄 대화 몇 마디 첨삭이 있었지요. 오랫동안 가지고 주무르던 주제와 소재라서 디테일까지 모두가 저에게는 낯익은 것들이었지요. 공들여서 구성하고 집필했다는 느낌입니다. 특히 북의 기근과 산불이라든가 밀항 부분과 서천 끝 세상에서 세계를 향한 공수를 내리는 부분은 오래 지니고 있었던 장면들이지요.

- 북쪽 동포들의 대규모 탈북 행렬은 안타깝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방북 산문집을 통해 남북 동포 사이의 이질성을 극복하고 민족 화해를 염원하셨던 선생님이 <바리데기>에서 탈북의 현실을 정면으로 다룬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탈북자들을 다룬 소설은 다른 작가들에게서도 조금씩 나오고 있는 중이지요. 남북간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는가 하면 북쪽 사회 내부의 불안이 이어지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작가들이 취해야 할 문학적 대응은 어떤 방식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1989년 당시에는 우선 북에 대한 우리의 냉전의식을 깨는 것이 급선무였지요. 그래야 사상 표현의 자유도 앞당겨질 것이니까. 개인적으로는 희생이 컸다고 하겠습니다. 저는 국가보안법 때문에 사회 전반 또는 국가 자체로부터 왕따를 당했지요. 연재를 시작하면서 밝힌 바와 같이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동구권의 변화 이후 시작된 새로운 세계체제에 적응하지 못한 주변부 나라들은 국제적인 양극화 속에서 새로운 분쟁과 굶주림에 빠져들었고 북한은 그들 중의 하나입니다.

내가 2003년 영국 체류 시기에 <바리데기> 얘기를 했더니 런던대학의 이집트 교수 한 분이 어느 사진작가 얘기를 하더군요. 나는 당장에 그의 작품집들을 샀습니다. 브라질 출신으로 망명하여 프랑스에 체류 중인 사진 작가 세바스티앙 살가도의 사진집이었어요. 예를 들어 ‘이주’와 같은 사진집은 세계적으로 충격을 준 작품집입니다. 그 속에 동구와 동남아와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지의 현실과 형편들이 생생하게 찍혀 있었지만 북한만 빠져 있었어요. 누군가 세계를 향해서 발언을 해야 한다는 강한 충동을 느꼈습니다. 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를 정점으로 북한은 동구 붕괴 이후 십여년 이상 오랜 기근 속에서, 유엔의 지적에 의하면 삼백여만이 굶주림과 영양실조 후유증으로 죽어 갔습니다. 우리들 풍요의 대한민국 지척에서였지요.

저는 북한 통치권의 책임과 함께 남북의 분단체제를 경영해온 강대국들의 위선적인 인권 논리를 여러 차례 비판해 왔습니다. 이런 사실은 비현실적인 ‘북한붕괴 유도’라는 이념적 전술적인 논지들에 묻혀서 세계적으로 잊혀지거나 북한 정권의 반인도주의적 정체성을 선전하는 데만 활용된 점이 많습니다. 저는 북한 난민을 세계화체제의 그늘로 보고 있으며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주변부는 비슷한 참상을 겪고 있지요. 실제로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아프리카는 도처에서 동식물이 멸종하듯이 종족 전체가 사라져가고 있어요.

내가 늘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는 마치 한쪽 창문으로만 경치를 바라보고 그쪽으로만 바람을 소통하는 듯한 생각이 드는군요. 세계는 더욱 이행기의 혼란 속에 있는데 우리는 언제나 서구 세계의 표피만 보면서 심지어는 그 잣대로 자신을 재고 맞추려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계가 공유하는 ‘문예사조’ 따위는 없습니다. 자신과 한반도의 현재의 삶을 세계 사람들과 공유하려는 것이 작가가 국경이나 국적 따위에 구애받지 않는 ‘세계시민’이 되는 길입니다. 세계문단이 한국문학에 바라는 것은 바로 그 점입니다. 자기와 비슷하게 흉내낸 것을 그 누구도 원하지 않겠지요.

- 바리가 중국을 떠나 유럽으로 향하는 화물선 콘테이너 안의 지옥 같은 상황을 환상적 필치로 묘사한 대목이 특히 감동적이었습니다. 판소리로 치면 눈대목에 해당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부분을 어떻게 구상하셨는지요?

= 세계의 어느 민담에 보든지 현실에서 초현실로 ‘이동’하는 줄거리가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가 겪는 초현실이란, 꿈도 마찬가지지만, 현실을 근거로 한 메타포거나 자기 왜곡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무턱댄 환상과 환영은 마땅히 경계해야 합니다. 현실의 그림자로서의 환상은 예술적 기법으로뿐만 아니라 논리적인 것보다 더욱 깊이있게 현실을 포착하게 해줍니다. 소설에는 부분적으로 저의 꿈도 써먹었는데요, 무격의 원조인 ‘바리할미’가 나타나는 장면은 제가 파리에서 집필하던 어느 날 직접 꿈에 보았던 형상을 그린 것입니다. 특히 뒷부분에 서천 끝으로 가면서 피바다 불바다 모래바다를 지나는 것과 공수 장면은 ‘황천무가’에 나오는 대목들입니다.

런던에서 저에게 자료를 모아주고 이주민들과의 인터뷰를 주선해 주는 등 도움을 준 한국근대사 전공의 박사과정을 공부하는 영국인 청년이 있었어요. 그가 가져온 자료들을 섭렵하면서, 특히 <가디언>에 소개된 런던 시내 이주민들의 분포도는 내게 깊은 감명을 주었습니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종교와 인종과 문화가 런던을 표범 무늬처럼 잠식하고 포위하고 있더군요. 그들은 거의가 구식민지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직접 개개인을 만나는 중에 특히 나이지리아 사람의 어린 시절 체험이나 남아프리카 사람의 무속 얘기는 이러한 인간 심층의 환상들을 구성해내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당시에 런던에서는 행방불명 되었던 영국 국적의 파키스탄인 2세 청년들이 미군 관할인 관타나모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되돌아온 사건으로 떠들썩했고 나는 그것을 소설의 한 대목으로 넣으려 했지요. 나중에 영국 감독이 다큐 형식의 영화를 만들어 베를린 영화제에서 발표를 해버렸기 때문에 나는 이것을 바리의 ‘서천’ 장면으로 환상적인 처리를 하게 되지요. 

- 바리는 옛 제국의 수도인 런던 변두리에서 다양한 인종 집단과 섞여 생활하며 파키스탄인 남자와 결혼까지 합니다. 그리고 9·11 테러와 영국 지하철 테러, 미국 주도의 대테러 전쟁 같은 것이 바리의 삶에 끼어듭니다. 탈북자라는 바리의 신분이 상징하는 한반도의 현실과 지금의 세계적 혼란은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겠습니까?

= 베를린 장벽 이후 부시 이전까지의 세계가 세계화체제 재편성 기간이었다면 9·11은 그것이 본격화되는 막이 열리는 분기점이 됩니다. 미국의 일방주의가 세계에 노골적으로 강행되는 근거가 되었지요. 지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는 개인과 사회를 넘어서서 국가간에도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중입니다. 9·11은 21세기 이행기의 가장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계기로 ‘악의 축’으로 지명된 나라들을 보면 그 당사자들 보다도 중동이니 중국이니 하는 지역이 강대국의 이해관계와 더불어 주목되는 점을 눈치챌 수가 있지요.

우리가 베트남 전쟁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미국이 일으킨 전쟁에 ‘부끄럽게’ 참여하고 있습니다. 나는 금강산 관광이나 6·15 이후 오히려 ‘분단’을 낡은 것으로 치부해버리고 의식 속에서 지워 버리려고 하는 세태를 우려합니다. 세계로 나가 보세요. 택시 운전사나 웨이터들, 그러니까면 시정 사람들도 모두 사우스, 노스 하고 되묻지요. 심지어는 서구권에서 우편물을 보낼 때 ‘사우스’를 명기하지 않으면 분명해지지 않는다는 점을 현지 교포들이 먼저 알려줍니다. 한반도의 분단이 세계 현실과 연결되어 있다는 이 운명적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반국적 시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인식에 대하여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현재 사용하지 않는 뒷마당도 우리 집이니 집 수리할 때를 염두에 꼭 두어야 합니다. 사실 바리를 뉴욕으로 보내지 왜 런던으로 보냈느냐고 이의를 제기한 친구도 있었는데요. 제가 19세기를 배경으로 <심청>을 먼저 쓰고 난 다음에 <바리데기>를 쓴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 두 작품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요. 19세기의 제국주의와 21세기의 신자유주의가 서로 연결되는 것처럼 말이지요. 나는 미국 문명의 이를테면 ‘안동 김씨’ 본가인 영국이 현재 서구권의 모습을 잘 드러내 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옛날의 업보가 많고 축소되어 있으므로 훨씬 더 자세히 보이지요.

- 우리 설화에서 바리는 약수를 구해 죽은 부모를 살립니다. 소설 <바리데기>에서 바리가 구한 생명수는 어떤 것일까요? 분열과 증오와 죽임의 21세기 지구촌에서 생명의 길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 숨은 그림 찾기입니다. 글쎄요, 이 작품에서 생명수는 과연 무엇일까요? 그리고 바리는 그것을 찾기라도 했을까요?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이 될 것입니다. 

- <바리데기>의 해외 번역 출간 계획이 잡혀 있는지요?

= 현재 <심청>이 번역 진행 중이므로 프랑스쪽의 에이전트는 당분간 그 일에 전념할 모양입니다. 작년에 뉴욕과 런던쪽의 출판 에이전트 측에서 제의가 들어와 어쩌면 그들에게 맡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영독불 언어 중에 하나가 잘 된 프린트본이 있다면 거기서 막바로 다른 서구어로 번역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라고 보고 있는데, 현재의 우리 번역 시스템은 너무 원칙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하지요. 가령 밀란 쿤데라의 경우에는 체코어를 프랑스어로 번역한 뒤에 그것을 작가가 정본으로 정하여 프랑스어에서 다른 나라 말로 번역하게 하지요. 주변 소수 언어 출신들 중에 이런 예는 많이 있습니다. 일본은 현재의 위치까지 오는 데 백년이 걸렸구요, 현재도 자기네 문화를 세계화하는 사업에는 기업과 정부가 용의주도하게 힘을 들여서 계속 중에 있습니다. 아마 우리가 하는 노력에 비하면 거의 수십배는 될 겁니다.

- 다음 소설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언제 완전 귀국하시는지요?

= 집필 계획이 분명히 있지만 어느 걸 먼저 하게 될지 모르니 현재는 대답을 못하겠네요. 책이 나올 때쯤 잠깐 귀국했다가 오는 10월에는 완전히 보따리를 싸서 들어올 생각입니다. 지난 4년 가까이 런던대학과 파리대학 초청으로 있었는데, 늙마에 너무 오래 체류했다는 느낌입니다. 귀국해서는 시골에 칩거할 생각입니다. 앞으로 책이 나올 때에만 해외 행사에 참가하고 되도록이면 나다니지 않을 생각이구요. 이제 다시 집필실에서 자기와 대면하는 일만 남아있는 셈이지요.

- 문학과는 관련이 없는 질문이지만,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아서 여쭙습니다. 손학규 전 지사가 탈당한 뒤에도 여권은 여전히 대통합을 이루지 못한 상태입니다. 앞으로 손 전 지사를 위해서든 민주 세력의 대통합을 위해서든 선생님께서 추가로 하실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요? 

= 문학과의 관련이 없다고 단정하고 묻는 질문은 또 무엇입니까? 그게 바로 형식적 민주화 시기 이후 우리의 자가당착이지요. 앞으로 책 나올 일에 흙탕이라도 튈까 하여 탈탈 털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살아온 대로 말하렵니다. 작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많아서 늘 설명해야 하는데요. 저는 문단에 나온 이후 동료 문인들과 함께 시대와 정치적 현실에 대한 일관된 비판적 관여를 해온 셈입니다. 작가도 시민의 한 사람이고 유권자의 한 사람이라는 걸 알아 두었으면 합니다. 내가 막말로 현실정치에 개입해서 무슨 국회의원이나 높은 사람 해먹겠다고 하는 것도 아닌데, 작가는 오로지 ‘글이나 써라’는 말은 문학에 대한 관점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보면 그런 분들이 오히려 현실정치의 덕을 보고 살더군요. 

앞서도 얘기했지만 저는 때가 되면 그 당대마다 발언을 할 것입니다. 작년 가을부터 발언을 시작했는데 현재 상황을 보면 대개 다 맞아떨어진 것 같군요. 내가 점쟁이라서 그렇게 되었겠어요? 상황이 그랬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이겠지요. 나는 김근태 의원의 최근 결단에 대해서 ‘그러면 그렇지’ 하고 무릎을 친 사람입니다. 나는 그를 늘 존경하고 사랑해온 오랜 벗인데, 그이는 행동이 좀 굼뜬 대신에 사려가 깊은 분입니다. 화려하지 않아서 그렇지 그는 매우 정직하고 언제나 정도를 걷는 중요한 지도자의 한 사람이지요. 

그가 얼마 전 6월항쟁을 돌이켜보며 양김의 분열과 삼당합당을 회고할 적에 나는 다시 가슴이 아파오더군요. 사실 84년 광주 홍남순변호사의 고희 때에 있었던 그 모임을 아쉬워하고 그때로 돌아가야 한다고 늘 얘기하던 사람이 바로 김근태씨였습니다. 그가 이제 자기를 버리고 총대를 멨으니 나는 누구도 아닌 그의 편입니다. 그를 도와줘야겠지요. 그가 나섰으니 통합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현재의 상황을 보면 우리 사회가 새로운 체제 교체의 전환점에 서 있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이는군요. 역사적 상상력은 이 시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 단 한마디만 덧붙이고 싶습니다. 휴전선을 등지고 반도의 아래쪽만 보고 있을 게 아니라 제발 한번만 지도를 돌려서 제주도 서귀포쯤에 눈을 대고 위를 보라구요. 저 너머에 무한한 신대륙이 펼쳐지고 있지 않나요? 만주를 넘어 흥안령 산맥 지나 바이칼, 시베리아까지 보이는군요.(최재봉 문학전문기자)

07. 06. 21.

P.S. 세바스티앙 살가도의 사진집에 관심을 갖게 된다. 유감스럽지만 국내에는 아직 소개돼 있지 않다. 다만 <클라시커50 사진가>(해냄, 2005)와 최민식의 <사진이란 무엇인가>(현실문화연구, 2005) 등에서 살가도 항목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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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프랑스에서 만난 황석영..
    from 기인 책 읽다 2007-06-21 03:22 
    파리가서 느낀 것인데, 황석영의 번역서가 꽤 눈에 뜨였어요. 무라카미 하루키 영문판을 찾으려고 그랬던 것인데, 정작 하루키는 안보이고 황석영은 보이더라고요 ^^ ㅎㅎ
 
 
로쟈 2007-06-21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마 프랑스쪽으로는 많이 알려진 모양이군요. '하루키'가 안보였다고 하신 건 의외인데요.^^

프레이야 2007-06-21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가도의 저 사진집, 아마존에서 구입했어요. 옆지기가..
충격적인 사진들이었어요. 바리데기, 기대됩니다.
로쟈님, 서재 스킨이 저랑 같아요. 놀랐어요. 클릭하는데 제 서재가 도로 뜨는 줄
알았거든요. ^^

지나다 2007-06-22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재작년 여름 서울 놀러왔다 프레스센터 1층에서 전시회를 봤던 기억이 나네요.
작가도 잘 모르면서 흑백 사진의 깊은 울림 땜에 엽서, 포스터도 사고, 뜻밖의 수확이었죠.
괜히 지나다 아는 척~ㅎㅎ 로그인 하기 귀찮아 그냥 갑니당.

로쟈 2007-06-22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장마철 동안엔 같은 스킨을 사용할 것 같네요.^^
지나가다님/ 사진들이 왠지 낯에 익다 싶었는데, 전시회가 있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