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슈킨(1799-1837)의 시 한편이 생각나서 옮겨놓는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제목이 따로 붙어 있는 시가 아니어서 그냥 첫행을 제목으로 쓴다. 그리고 이 시는 아마도 국내 독자들에겐 가장 잘 알려진 시일 것이다(나는 '이발소 그림'에 대응하여 '이발소 시'라고 부른다). 시가 씌어진 건 1825년, 그러니까 시인의 나이 26살 때이고, 정치적인 이유로 남방(카프카즈 지역) 유배중이었다.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지내야만 했던 생활이 5년차였는지라 자신의 처지에 대해 슬픔과 노여움을 품음 직했다. 그런 스스로를 달래고 다독이는 시인 셈.  

 

Если жизнь тебя обманет,
Не печалься, не сердись!
В день уныния смирись:
День веселья, верь, настанет.

Сердце в будущем живет;
Настоящее уныло:
Все мгновенно, все пройдет;
Что пройдет, то будет мило.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픈 날을 참고 견디면
머지않아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언제나 우울한 것
모든 것은 순간이고 지나가며
지나간 것은 또 그리워지나니.

 

 

 

 

Should this life sometime deceive you,
Don't be sad or mad at it!
On a gloomy day, submit:
Trust -- fair day will come, why grieve you?

Heart lives in the future, so
What if gloom pervades the present?
All is fleeting, all will go;
What is gone will then be pleasant.

갑자기 이 시를 떠올리게 된 건 '현재는 언제나 우울한 것'에서 나 또한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침 어제는 (구력으로 치자면) 푸슈킨의 생일이었고, 오늘은 절친했던 친구의 4주기가 되는 기일이다. 해서, 이러구러 답답하고 우울하다(우울함의 어처구니 없는 이유 중의 하나는 요즘 마음놓고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이라는 위안마저 없다면 어찌 견디겠는가.

Night View on Tverskaya Street , Moscow, 2003-09 (C) Seiji Yoshimoto

모스크바의 밤거리를 거닐어본 지도 오래되었군...

07. 0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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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le 2007-05-28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그대는 영영 모르리라.

술을 마시다가 이미 넉 달 전에 지구상에서 사라져버린 제 개가 생각나서 말이죠. 사람도 아니고 개가요. 언제부턴가 이상하게 이유없이 조증과 울증이 반복되어 나름대로 열심히 근거를 잘 대어갔는데 친구가 그러더군요. 그러고보니 너의 조울증은 그러니까 개가 떠나고 난 다음부터인 것 같다고. 물론, 예의상 버럭 해줬습지요. 예의상.

로쟈 2007-05-28 08: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울증도 다 관리대상이지요. 그 경우엔 떠나는 게 아니라 덮치는 게 문제이지만...

비로그인 2007-05-28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 조울증 환자 한명 더 대령했습니다. :)
저만 조울증 환자인줄 알았더니 ㅎㅎ 뭐야뭐야, 요상한 안도감을 느끼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