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대학원신문에 게재된 리뷰 하나를 담비에서 옮겨온다(http://www.dambee.net/news/read.php?idxno=1604&rsec=MAIN§ion=MAIN). <일본 근대 독자의 성립>(이룸, 2003)의 저자인 일본의 근대문학 연구자 마에다 아이의 연구논문들이 지난 2004년에 <텍스트와 도시: 일본의 근대성에 대한 에세이(Text and the City: Essays on Japanese Modernity>(듀크대출판부)로 영역되었다고 하는바 이 책에 대한 소개이다. 리뷰의 내용이 흥미로워서 옮겨놓는 것인데 이왕이면 번역/소개되었으면 싶다. 근대성(모더니티)과 관련하여 이정표가 될 만한 도시를 넷만 꼽자면 파리, 페테부르크, 뉴욕, 그리고 도쿄 정도가 아닐까 싶고(물론 더 많은 도시들이 거기에 덧붙여질 수 있을 것이다), 이 도시들에 관한 연구서들은 좀더 많이 소개되면 좋지 않을까 한다(발터 벤야민, 데이비드 하비, 마샬 버먼 등의 책들을 떠올릴 수 있겠다). 서울, 부산, 인천 등에 관한 연구서들도 좀 나와주고. 마에다 아이의 책이 자극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동국대 대학원신문(141호) 마에다 아이의『텍스트와 도시』

'근대독자의 성립'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마에다 아이(前田愛)는 '도시 공간 속의 문학', '히구치 이치요의 세계', '마에다 아이 저작집' 등을 통해 일본 문학과 문화에 관한 주목할 만한 비평과 연구를 남겼다. 안타깝게도 지난 1987년 55세의 나이에 요절한 그는 메이지 시대 출판문화와 근대 문학의 성립을 살핀 메이지 근대 문학 연구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일본 근대 문화에 대한 탁월하고 개성적인 관점의 비평을 수행한 문화비평가로서도 유명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제임스 후지에 의해 편집, 해설되고 해리 하루투니언의 서문이 실린 '텍스트와 도시(Text and the City)'는 메이지 시기 일본 문학 뿐 아니라 근대성과 도시의 관련성에 주목하는 문학, 문화 연구자들에게는 유용한 책이 아닐 수 없다. ‘일본 근대성에 관한 소론’이라는 부제를 단 '텍스트와 도시'는 마에다 아이의 여러 저작 중 '도시 공간 속의 문학'을 중심으로 도시 공간에 대한 연구물들을 모은 앤솔러지 형식의 저서이다.

이 책은 크게 4개의 장, 11편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감옥의 유토피아’, ‘개화의 파노라마’, ‘폐원의 정령’으로 이루어진 1장은 〈빛의 도시, 암흑의 도시〉라는 테마 아래 도시의 명암을 다루고 있으며 ‘아이들의 시간’, ‘극장으로서의 아사쿠사’, ‘다이쇼 후기 통속소설의 전개’로 구성된 2장은 〈놀이, 공간, 그리고 대중문화〉라는 테마 아래 요시와라와 아사쿠사의 어두운 활력을 다룬다. ‘음독에서 묵독으로’, ‘근대 문학과 출판의 세계’로 이루어진 3장 〈텍스트, 공간, 시각성〉은 근대 독자의 성립과 출판에 관한 문제를, ‘파리의 류호쿠’, ‘베를린 1888’, ‘야마노테의 오지’를 담은 4장은 〈도시공간의 경계를 가로지르기〉라는 테마 아래 도쿄를 비롯하여 파리와 베를린 등의 도시를 해석한다.

경계를 설정하고 고립된 구역을 상정하는 중세 유럽의 도시상은 “격리와 징벌의 장치로서의 감옥”과 “인간의 자유와 해방을 약속하는 유토피아의 환상”을 만들어낸다는 흥미로운 발상으로 시작되는 마에다 아이의 논의는 ‘개화의 파노라마’에서 도쿄라는 도시가 어떻게 변모되고 있는가를 4개의 텍스트를 통해 주의 깊게 탐색한다.

그는 우선 메이지 시기 유명한 작품인 고바야시 키요치카의 ‘도쿄명소도’(1876)에 묘사된 국립제일은행의 모습을 통해 키요치카의 문명개화에 대한 감정을 읽어낸다. 에도의 구도시에서 태어난 키요치카로서는 메이지 초기의 문명개화라는 격변은 무조건적으로 긍정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가 자신의 작품에서 담아내고 있는 것은 과거의 공간, ‘물의 도시’ 에도에 대한 풍부한 기억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에 비해 비슷한 시기의 베스트셀러였던 핫토리 부쇼의 '도쿄신번창기'(1874)는 ‘물의 도시’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육지의 도시’를 표방하고 있다. 이들의 작품은 ‘물의 도시’ 에도가 점차 해체되며 ‘육지의 도시’ 도쿄가 구축되는 변화를 알려준다.

사이토 게신의 에도 관광 책자인 '에도명소도회'는 에도라는 도시를 사당, 신전, 그리고 역사적 자리와 같은 상징적인 장소들로 구성한다. '에도명소도회'에서 에도는 성스러운 것이 전면에 등장하는 “신화의 공간”으로 해독되는 것이다. 반면 테라카도 세이칸의 '에도번창기'는 스모, 요시와라, 극장과 같은 비일상적인 것들에 주목함으로써 일상의 세계와 비일상의 세계가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려준다.

마에다의 이러한 공간 성찰은 비단 도쿄에 한정되지 않는다. ‘베를린 1888’에서 그는 모리 오가이의 '무희'를 통해 베를린의 도시 공간을 탐사한다. '무희'의 주인공 도요타로에게서 가장 먼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베를린에 도착한 동양의 한 젊은이가 유럽 문명의 정화를 조국에 전달하겠다는 강렬한 사명감이다. 더불어 그는 이 대도시가 지닌 장관에 압도되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매력적인 외부의 경관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거듭 다짐을 하게 만드는 것이 운데르 덴 린덴의 대로라면 엘리스의 다락방이 있는 크로스텔가는 베를린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얼굴이다. 이 크로스텔 거리는 옛 베를린의 암울한 이미지를 상징하며 운데르 덴 린덴에 대치하는 장소가 된다. 이것은 메이지 후기의 개인이 자각하게 된 내면의 어둠, 즉 개인의 고독에 관한 공간의 아날로지이다.

'텍스트와 도시'의 특징적인 점은 오가이의 '무희' 소세키의 '문'과 같은 일본의 대표적인 문학 작품 뿐 아니라 키요치카의 판화 ‘동경명소도’를 비롯, 메이지 시기 사절단의 공식기록물이던 '미구회람실기'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텍스트들을 해석의 자리에 동참시킨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텍스트들 사이를 종횡무진하며 메이지 시기 전후의 ‘오래된’ 텍스트들을 현대적 맥락에서 재구성한다.

마에다의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대립항의 계열로 이루어진 도시의 속성이다. ‘개화의 파노라마’에서 이루어지는 물의 도시/육지의 도시, 신성의 공간/놀이의 공간으로서의 도쿄 읽기, ‘폐원의 정령’에 나타나는 아버지의 세계/어머니의 세계, ‘베를린 1888’에 나타난 운데르 덴 린덴/크로스텔 거리라는 구분들은 이를 잘 나타낸다. 그가 설정하고 있는 이러한 대립항은 결과적으로 성과 속의 연관, 정과 부의 교호, 근대와 반근대의 친연성에 대한 반증이다. 이러한 대립항은 메이지 시대의 역사적, 사회적 격변과 조우한 개인들의 착잡한 내면의 풍경을 다양하게 읽어내려는 마에다의 개성적이고도 효과적인 방법론인 것이다.

마에다 아이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 도시가 지닌 빛과 암흑을 다양한 각도로 조명하면서 근대의 새로운 풍경에 당면한 다양한 개인의 활력과 좌절을 함께 포착해내고 있다. 출간된 지 20여년이 된 그의 저서가 지난 2004년 해리 하루투니언, 미요시 마사오와 같은 미국 내 대표적인 일본 연구가들에 의해 영문판으로 출간되었다는 사실은 '텍스트와 도시'가 지닌 다양한 장점이 미국 내 동아시아 문화연구에 있어 새로운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일 것이다.(김문정 동국대 강사)

07. 0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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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5-15 23:10   좋아요 0 | URL
로쟈님, 동국대 대학원 신문까지 레이더가 퍼져있단 말입니까. 아. 꼼꼼하십니다. :) 덕분에 저는 좋은 페이퍼들 많이 보는군요.

로쟈 2007-05-15 23:15   좋아요 0 | URL
'담비'에 링크돼 있는 기사입니다. 저는 부지러한 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