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아래서 책을 읽었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동네
한달 넘게였지
밥상에 촛농으로 받친 촛불 아래
책을 읽다가 눈을 비비고
책을 읽었지
숨결에도 흔들리는 건 촛불의 습관
책장을 넘기며 
촛불의 그늘을 읽었지
눈가에 그늘이 졌지
촛불에라도 읽어야 할 것이 있었지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랬다고 믿었지
그리고 안경을 쓰게 되었지
촛불 아래 책을 읽다가
촛농 대신 시력을 떨어뜨렸지
안경을 쓰고 읽었지
전기가 들어와도 안경을 써야 했지
촛불 아래 책을 읽다가
한 세월을 보낸 것만 같아
아직도 못 읽은 책들이 가물거리지
촛불의 습관을 나도 갖게 되었어
책장을 넘기며 마음이 흔들리네
읽어야 하는데 읽을 수 없네
촛불 아래서 너무 많이 읽었네
이제 침침해서 읽을 수 없네
누가 나를 읽을 것인가
촛불처럼 흔들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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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19-08-20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가 자전적 이야기 맞죠? 어디선가 본 듯 해서요.
어릴 때 저희집에 전기밥솥이 방에 있었어요.
버튼의 노랗고 둥근 빛으로 책을 본 기억이 있어요...
정말 그렇게까지라도 읽어야 했던...

지금은 방도 많고 책 살 돈도 많건만...
그 절실함은 사라지고...

쌤! 휴가 이후 시가 계속이니
일 폭탄? 책 폭탄 맞으신건가요?

로쟈 2019-08-20 21:56   좋아요 0 | URL
중학생때. 일폭탄은 맞아요. 손놓고있지만.~

뭉개림 2019-08-20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촛불 세대가 아닌데도 마음이 아련하고 애잔함이 느껴집니다. 시인이셨군요. 몰라뵀습니다~.

로쟈 2019-08-21 07:18   좋아요 0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