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아래서 책을 읽었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동네
한달 넘게였지
밥상에 촛농으로 받친 촛불 아래
책을 읽다가 눈을 비비고
책을 읽었지
숨결에도 흔들리는 건 촛불의 습관
책장을 넘기며
촛불의 그늘을 읽었지
눈가에 그늘이 졌지
촛불에라도 읽어야 할 것이 있었지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랬다고 믿었지
그리고 안경을 쓰게 되었지
촛불 아래 책을 읽다가
촛농 대신 시력을 떨어뜨렸지
안경을 쓰고 읽었지
전기가 들어와도 안경을 써야 했지
촛불 아래 책을 읽다가
한 세월을 보낸 것만 같아
아직도 못 읽은 책들이 가물거리지
촛불의 습관을 나도 갖게 되었어
책장을 넘기며 마음이 흔들리네
읽어야 하는데 읽을 수 없네
촛불 아래서 너무 많이 읽었네
이제 침침해서 읽을 수 없네
누가 나를 읽을 것인가
촛불처럼 흔들리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