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 한주가 정말로 쏜살같이 지나가버린다. '작가와 문학사이' 연재를 매주 한번씩 옮겨놓는 것조차도 숨가쁠 정도이니! 써야 할 아이템들은 매주 서너 개씩 쌓이지만 정말 하나도 마무리짓지 못하는 것이 다반사이다. 레이몬드 카버에 대해서도,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서도 풀어놓을 말들은 한 보따리씩 되지만 시간을 내는 일은 당분간 어려울 듯이 보인다(미친 척하지 않는 이상). '전업 글쟁이'로 나서지 않는 한 이런 푸념은 불가피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궂은 날씨를 핑계로 투덜거려본다. 정현종의 시구를 빌면, 아으 세월이여, 금강역사(金剛力士)여!..(너무 과장했나?)

경향신문(07. 04. 21) [작가와 문학사이](15)정이현-‘과장된 거짓’들춰내기

일찍이 니체는 ‘여성의 위대한 재능은 거짓말이고 최고의 관심사는 외모’라고 말했다. 이 말에는 분명 여성비하적인 뜻이 담겨 있다. 그러나 모든 비난은 언제나 자기가 비난하는 대상에 대한 두려움을 감추고 있다(*안 그래도 니체의 여성론에 대해서 다시 정리해보려고 최근에 <즐거운 학문>을 군데군데 뒤적거린 적이 있다). 거짓말하기와 외모 꾸미기가 여성의 본질이라는 비난 뒤에 있는 것은, 그래서 도대체 여자들의 진심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다는 체념 섞인 두려움이다. 여성은 심지어 완전히 발가벗었을 때조차 언제나 무언가를 입고 있다. 그렇다면 그 무언가는 무엇인가? 그 무언가마저 끝내 벗긴다면, 그때 여성은 ‘본모습’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을까? 그래서 완전히 이해될 수 있을까?

정이현은 오래 전부터 남성 철학자와 예술가들을 매혹시킨 여성이라는 알 수 없는 물 자체에 대해 말해왔다. “아니, 20, 30대 싱글 여성들의 재치 발랄한 일상을 그린 트렌드 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를 쓴 그 정이현이?”하고 반문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첫 단편집인 ‘낭만적 사랑과 사회’에 실린 단편들을 보자.

소설 속 여성인물들은 하나같이 가부장제가 요구하는 순결한 처녀, 무지하고 가련한 가정주부, 깔끔하고 지적인 커리어우먼, 세련된 프리랜서, 발랄하고 순진한 소녀처럼 보인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녀들은 이기적 욕망에 사로잡힌, 속물적 계산법에 철저한 존재들로 판명된다.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기 위해 거짓말은 당연하고 심지어 살인과 시체유기까지 서슴지 않는다. 겉으로는 가부장제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여성상을 연기하면서 궁극적으로는 그러한 가장(假裝)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려는 발칙한 여성들. 한 마디로 그녀들은 배우다. 그녀들의 순진함, 순수함, 우아함, 섬약함, 섬세함 등이야말로 가장 그럴듯한 연기이자 가면이다. 그렇다면 여성다움이라는 가면 뒤에 가려진 것은 무엇인가? 거기에는 진실된 본질이라는 것이 숨어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서둘러 말하면 ‘아니오’다.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찾아본 단서는 다음과 같다. “솔직히 나도 가끔씩 내가 ‘오은수’를 흉내내며 사는 건 아닐까 궁금해요. 내 이름이 오은수가 맞는지, 내 이름과 진짜 나 사이에 뭐가 있는지.” 가면을 벗긴다고 해서 그 속에 맨얼굴의 진실은 없는 것이다. 가면 속에는 또 다른 가면이 끝없이 포개져 있을 뿐이다. 소설 속 ‘오은수’가 평균적인 삼십 초반 싱글녀를 흉내 내며 사는 것처럼, 그러다가 실연한 여주인공을 흉내내기도 하는 것처럼, 우리 모두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흉내 내며 산다.

그렇다고 해서 어딘가에 본래의, 진실한 ‘오은수’가 존재하지는 않는다. ‘오은수’의 원본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특히 상품들이 내쏘는 인공조명으로만 간신히 자신을 비추는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아란 바로 그렇게 조각난 상품의 그림자들로 이루어진 투명한 그림자일는지도 모른다. 그림자 바깥은 없다. 그러니 실체도 없다. ‘오은수’가 합리적인(?) 계산을 통해 “부유하는 먼지처럼 하찮은 자신을 가장 튼튼하고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 줄” ‘기준점’으로 선택한 ‘김영수’가 사실은 실체 없는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그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우리가 진짜라고 믿는 현실은 가장 진짜 같은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정이현의 소설은 그런 진짜 거짓말의 세계에서부터 시작된다. 예컨대 번쩍거리는 상품들로 가득 찬 삼풍백화점이거나(‘삼풍백화점’), 거짓말로 꾸며낸 상품사용 후기로 도배된 인터넷쇼핑몰(‘1979년생’)과 같은 곳 말이다. 과장된 꾸밈과 거짓말로만 이루어진 바로 그곳, 영혼 없이 그림자놀이를 하는 그곳, 아케이드 서울이야말로 우리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달콤한 나의 도시’의 표지에 그려진 붕 뜬 싱글녀는 오늘도 아케이드 서울을 유영한다.(심진경|문학평론가)

07. 04. 21.

P.S. 작가는 한 권의 소설집과 한 권의 장편소설을 펴냈다. 나는 단편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를 읽어봤지만 대중적인 주목을 받은 것은 조선일보에 연재했던 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이다. 평론가의 지적대로 자신을 가장하고 연출할 줄 아는 작가가 아닌가 싶다(그런 의미에서 올갈 데 없는 여성작가이다!). 그런 점에서 작가는 남들이 척하는 것도 예리하게 간파해낸다. 일간지나 주간지 지면에 영화평도 자주 쓰는 그녀가 이번주 '씨네21'에서는 최근 개봉작 <우아한 세계>에 대해 꼬집었다: "이상하다. 아저씨는 왜 그렇게 불쌍한 척하는 걸까? 물론 먹고사는 거 힘들고 구차하지. 나도 안다. 나 역시 때론 힘들고 때론 구차하게 밥 벌어먹고 사는 생활인이니까.(...) 그런데 궁금하다. 보통의 중년사내들이 강인구처럼 진짜로 오로지, 처자식 먹여살리기 위해서만 사는 걸까? 손에 피 묻히고 등에 칼 맞고, 서로 물어뜯고 싸우면서. 글쎄다." 아무래도 아가씨를 속이긴 어렵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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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4-22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이현이다. 저 팬이에요. :) 저 사진보다 이쁜거 책 앞날개에 있는데.

닉네임을뭐라하지 2007-04-22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한 세계>를 그렇게 프랙티컬하게만 보다니, 마지막 장면을 보면 굳이 저런 의문은 가질 필요가 없을 듯도 싶은데, 흠. 확실히 관점의 차이가 크긴 크군요.

2007-04-22 08: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4-22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연재소설의 삽화를 그린 일러스트레이터 권신아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