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경향신문에서 읽은 칼럼은 '대학 밖에서 꽃피는 인문학'. 실제 대학 밖의 비공식 '강의'도 한두 가지 맡아서 하고 있는 처지라 눈길이 가는 제목이었다. 기사의 낙관적인 톤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지만 교양 인문학의 향방과 관련한 자료로 스크랩해놓는다. 더불어, 대학가 교양 과목들의 폐강 현황을 다루고 있는 문화일보의 기사도 옮겨놓는다. 이 또한 호들갑을 떨 만큼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고, 은근히 '교양과목' 경시 풍조를 정당화하는 역효과를 낳기도 있지만 '데이터'로서의 가치는 있다(사실 교양 과목의 폐강에는 대학마다 최소 수강인원을 30명 이상 등으로 '과도하게' 설정하고 있는 것도 주된 이유로 작용한다. 비용 절감 차원이라지만 그로 인한 '과밀 강좌'가 교양과목 개설의 본래 취지에 부합하는지는 의문이다). 

문화일보(07. 03. 19) '교양’이 무너지는 상아탑

교양 인문학과 제2외국어 강좌들이 대학에서 대거 퇴출되고 있다. 취업 준비에 목을 매고 있는 학생들에게 역사·문화·민속 등 순수 인문학 교양 강좌는 ‘사치’가 됐기 때문이다. 90년대 인기를 끌었던 컴퓨터 프로그래밍 등 컴퓨터 교양 강좌도 대거 폐강됐다. 학생들의 관심이 ‘개발’보다는 ‘활용’으로 넘어간 세태 변화를 반영한 것이지만, 교양을 쌓아야 할 대학신입생들로부터 ‘교양’을 아예 배제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교양 인문학은 퇴출 1순위 = 역사와 문화 등 교양 인문학 강좌들은 대부분 대학의 폐강 리스트에서 발견된다. 성균관대에서는 ‘일본역사탐구’, ‘세계영화와 문화교류’ 등 10여개의 역사·문화 관련 강좌가 최소 수강인원을 못채워 폐강됐다. 중앙대에서는 ‘문화 이해와 수사학’ ‘현대사회와 민속’ 등이, 한양대는 ‘동아시아 문화’ 등이 폐강 명단에 포함됐다. 철학 관련 강좌도 인기가 없기는 마찬가지. 동국대에서는 ‘철학·과학·생명·가치’, ‘현대사회의 철학적 이해’ 등의 강좌가 폐강됐고, 서강대에서는 ‘신학적 인간학’ 등이 기준 수강생을 채우지 못했다.

정용욱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수용자 중심의 교육으로 바뀌고 학생들이 취직 준비 등을 우선시하면서 실용적인 학문에 치우쳐 공부하는 현상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 했다. 최갑수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도 “최근 대학들이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 배출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지식의 변화속도 가 매우 빠른 현대 사회에서 대학은 오히려 기초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제2외국어도 관심 밖으로 = 국내 기업의 중국 진출이 확대되면서 중국어 인기는 여전하지만 독일어나 프랑스어 등 전통적 제2 외국어는 학생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중앙대에서는 ‘독일문화와 예술’, ‘독일 정치와 사회’ 등이 폐강됐고, 성균관 대에서도 ‘독어의미론’ 등의 강좌가 폐강됐다. 숙명여대의 ‘ 독일어1’ 강좌, 단국대의 ‘기초독일어’ 등의 강좌도 폐강됐다. 동국대에서는 ‘기초독일어’, ‘기초불어’ 등이 폐강됐다.

김영주 숭실대 독어독문학과 교수는 “사실 우리나라에 진출한 독일 기업만도 300여개가 되는데 세계화가 미국화로 오인되면서 독일 관련 과목들이 폐강되고 있다”면서 “진정한 세계화를 위 해서는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컴퓨터 언어도 옛날 얘기 =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과 관련된 기초 강좌들도 쇠퇴 일로를 걷고 있다.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 인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학생들의 관심은 컴퓨터 활용에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대에서는 ‘자바(JAVA)프로그래밍’과 ‘웹 프로그래밍’ 강좌가, 단국대 ‘비주얼베이직(Visual Basic) 입문’, 동국대 ‘프로그래밍기초와실습’ 등의 강좌가 폐강됐다. 연세대의 ‘컴퓨터와 IT 기술의 발전과 활용’, 성신여대의 ‘IT와 지리정보’ 강좌 등도 폐강 리스트에 올랐다.(음성원 기자)

경향신문(07. 03. 19) 대학 밖에서 꽃피는 인문학

대학에서 역사학을 가르치는 한 교수는 필자에게 최근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최근 한 단체의 초청을 받아 근현대사를 강의했는데, 수강생들의 자세가 대학과 달리 진지하고 열정적이어서 내심 놀랐다고 말했다. 수강생들은 복지재단이나 장애인·아동생활시설 등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들. 그는 사회복지사들이 전공과 무관해 보이는 역사·철학 등에 관심을 갖는 것을 보고 인문학의 새로운 희망을 보았다고 했다.

서울 예술의전당 이동국 학예사도 지난 겨울 추사 학술강좌에 참여한 수강생들의 열기에서 인문학의 힘을 느꼈다고 전했다. 1월부터 두 달간 주말에 열린 특별 강좌에는 매번 200명 가까이가 몰렸다. 연 인원이 1000명에 달했다. ‘추사의 학문과 예술’ 등 모두 21개 강좌가 개설됐는데, 토요일 1시부터 7시까지 진행된 강좌를 빠짐없이 들은 사람도 상당수에 이르렀다고 했다. 이 학예사는 “전시장에서 구체적인 작품을 놓고 강의한 게 관객들에게 어필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인문학이 꽃피고 있다. ‘인문학 위기 선언’이 나온 지가 불과 몇달 전인데 무슨 소리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실이다. 만개하지는 않았어도 최소한 개화할 조짐은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물론 대학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곳의 인문학은 여전히 ‘위기’이다. 문학, 역사학, 철학 관련 학과들은 학생수를 채우지 못해 폐과 대상 1순위이다. 서울대를 비롯한 많은 대학들이 대학원 중심 대학을 외치지만, 정작 진학자가 없어 공허한 울림이 되고 있다.



반면 캠퍼스 밖의 인문학 공부의 열기는 뜨겁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안 연구공동체를 표방하는 ‘연구공간 수유+너머’이다. 이곳은 그간 단기적으로 운영해온 강좌를 올해부터 학기제로 바꿔 장기 강좌 중심으로 꾸렸다. 철학, 고전강독, 문화예술, 글쓰기를 강의한다. 수강료가 과목당 35만원씩 하는데도 접수를 받기 시작한 지 1주일도 안돼 정원을 다 채웠다. 강좌뿐 아니라 회원들의 공동 연구에도 힘을 쏟고 있는 ‘수유+너머’는 지난주 ‘모더니티의 지층들’이라는 묵직한 사회학 개설서를 펴내 주목을 받고 있다.

부산의 ‘인디고서원’은 이제 꽤 이름을 얻었다. 인디고서원은 서점이다. 그러나 인디고는 책 판매에 그치지 않고 독서 프로그램 운영, 명사 초청 강연 등을 통해 청소년 대상의 인문학 교육장이 되고 있다. 이밖에 철학아카데미, 민예총 문예아카데미, 디지털문화예술아카데미 등에서 다양한 인문학 강좌를 열고 있다.

주목할 점은 최근의 인문학 교육이 서민과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공회 노숙인다시서기 지원센터는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과정을 개설하고, 광명시는 ‘광명시민대학’에 인문학 과정을 포함시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또 ‘경기광역 자활후견센터’와 ‘관악일터나눔 자활후견기관’ ‘노원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과정’도 각각 지역민을 위한 인문학 프로그램을 운영중이다.



지난주에는 의정부교도소에서 국내 처음으로 재소자를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좌가 열렸다. ‘빈자(貧者)의 인문학’을 내건 얼 쇼리스가 창안한 클레멘토 코스를 한국에 적용한 것이다. 10년 전 뉴욕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철학, 예술 등을 가르쳤던 얼 쇼리스는 “인문학이 가난한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그들에게 정당한 힘을 갖게 해 준다”고 믿고 있다. 인문학(humanitas)을 ‘사람을 사람답게 해주는 학문’이라 한다면, 쇼리스의 ‘빈자의 인문학’은 인문학의 본령에 가장 근접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쇼리스의 인문학 강좌는 이제 캐나다, 호주, 멕시코 등 4개 대륙으로 수출돼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최근의 인문학 위기는 학문 또는 인문학자의 위기라기보다는 인문적 지적 풍토의 허약성과 관련되어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런 측면에서 교양을 쌓고, 자신을 성찰하며, 삶을 바꿔나가는 ‘장외의 인문학’ 열기는 분명 주목할 일이다.

교육부와 학술진흥재단은 올해 인문학 위기 타개를 위해 200억원을 투입할 것이라고 한다. 대부분 ‘위기에 처한 대학’을 지원하기 위해 쓰여질 터이지만, 대학 밖의 인문학 활동에 대해서도 지원 방안이 검토돼야 하지 않을까(*국가에서 지원하는 인문학은 여전히 '대학 밖'의 인문학일까?). 그간 많은 학술지원사업이 내실보다는 외형에 치우쳤다는 비난이 많았다. 이제는 인문학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는 공부와 연구 활동에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진정한 대학은 넓은 캠퍼스가 아니라 ‘나날이 새로워지고 또 날로 새로워지는’(‘大學’) 곳이기 때문이다.(조운찬 문화1부장)

07. 0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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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3-19 16:18   좋아요 0 | URL
이런 현상들이 제가 음모론을 신봉하는 이유입니다. 후후

토토랑 2007-03-19 17:28   좋아요 0 | URL
흠흠... 중간에 조금 딴지이긴 하지만요 로쟈님..
IT 인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고는 하지만.. 점점 유입인력이 감소하고 있어서
요즘은 인력소싱하기도 힘들어요 --;;;
몇년만 지나면 IT쪽 인력난이 대두될거에요..아마.. 인문학과는 상관이 없지만 그냥 주절주절 하고 갑니다.

기인 2007-03-19 17:48   좋아요 0 | URL
음 퍼갑니다;; 수료하면 강의 자리 구할 수 있을지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