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하숙집 이층 작은 독방에는
창문이 있고 햇살도 있어서
천원짜리 화분도 갖다놓았다
강낭콩 화분이었다
강낭콩 콩깍지를 본 기억은 없지만
연보라색 꽃잎은 본 듯하다
강낭콩은 손길이 닿지 않아도
저 혼자 강낭콩이 되어 가는가
어느 날은 푸른 잎사귀에 달팽이 한 마리
하숙집 이층까지 기어서 올라올 리 없는
그런 달팽이가 강낭콩 잎새에 얹혀 있었다
생명의 자연발생설을 믿지 않지만
달팽이는 예외라고 하는 수밖에
그때도 달팽이에 대한 시를 쓴 건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강낭콩 화분에 대해서도 달팽이에 대해서도
하숙집 이층 독방은 책장 하나로도 비좁았지만
강낭콩과 달팽이는 많은 걸 요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인생을 짧게 사는 데 익숙했던가
어느 날 달팽이가 홀연 사라졌고
나는 화분을 한번 뒤집어보았을 뿐이다
강낭콩 꽃이 지고 열매도 맺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모두가 콩깍지였는지도
오래전 일이란 게 으레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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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맘 2019-04-07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티비프로에서 젊은 날엔 기억하는 프레임이 많다하더라고요 나이들면 그게그거라 기억할것도 없어서 세월도 더 빨리간다고 생각된답니다 지금 와 생각하니 콩깍지처럼 느껴지는 그날들도 다 이유가 있었던것 같네요 용서해주기로~ㅎㅎ

로쟈 2019-04-08 07:24   좋아요 0 | URL
나이 들면서 새로운 경험이 줄어드니 그렇게 되는 거 같습니다. 대개 반복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