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주문한 책들 중의 하나는 사회학자 김동춘 교수의 신간 <1997년 이후 한국사회의 성찰>(길, 2006)이다. 아마도 작년 연말에 나왔어야 하는 책이 약간 지체된 모양이다. 저자의 전작들 만큼이나 두툼하고 또 듬직하다. 거기다 제목! 그래서 읽어야 할 '의무감' 같은 걸 촉발시킨다(2월달의 '사회적 독서' 목록에 올려야겠다). 미리 리뷰기사 두 개를 참고삼아 읽어둔다. 개인적인 스크랩이지만 출간 소식을 반가워할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한국일보(07. 01. 12) "한국, 10년만에 기업사회로 변했다"

외환 위기를 경험한 지 10년. 세련된 말로 표현을 못해서 그렇지, 국민 대다수는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몸으로 알고 있다. 김동춘(48)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최근 출간한 <1997년 이후 한국사회의 성찰>(도서출판 길)에서 “한국이 ‘기업사회’가 됐다”는 말로 지난 10년간의 변화를 표현한다.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개념이지만, 단순화하면 시장 혹은 기업이 사회를 지배하는 상태를 말한다. 사회가 시장의 일부가 되고, 기업이 가장 이상적인 조직으로 부각된 것이다.

김 교수가 말하는 한국의 기업사회화 양상은 이렇다. 초일류, 일등 등 경쟁을 부추기는 용어가 난무하고 CEO 대통령, CEO 총장, CEO 장관, CEO 시장이 유행이다. 경제부처 장관이 교육부 장관에 기용되고, 정부 관료가 대기업에 무더기로 들어간다. 대기업 혹은 그 대기업 총수의 잘못은, 돈을 벌어준다는 이유로 법적 면죄부를 받고, 엄정한 법 집행을 책임지고 있는 법무부 장관은 “기업이 신명 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삼성경제연구소가 2만 달러 시대를 주창하면 정부가 이를 받아 반복한다. 정부는 운영의 법칙과 지향이 기업과 다른데도 여전히 기업 배우기에 열중이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우리 사회가 미국을 닮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게 미국은 돈이 지배하는 사회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기업가의 아들이고, 낸시 페레스 하원의장은 남편이 백만장자다. 기업에 대한 비판이 거의 없고, 그래서 기업이 정치 외교 군사 심지어 사람의 정신세계까지 지배하는 사회라는 것이다.

김 교수가 보기에 한국의 기업사회화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돼 있다. 시장도, 국토도 좁아 생존의 압박이 매우 크기 때문에 기업의 신호를 따라간다는 것이다. 교육 의료 복지 등 공공 영역의 임무를 개인이 부담하는 것도 돈에 대한 의존을 높이는 요인이다.

김 교수가 특히 우려하는 것은 기업사회가 반공사회와 닿아있다는 점이다. 과거 안보를 이유로 고문 등 비인도적인 행위가 용인됐듯이, 지금은 돈만 되면 무엇이든 괜찮다는 것이다. 군사형 사회가 총과 칼을 앞세웠다면 기업사회는 국민의 자발적 동의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김 교수는 이 대목에서 “히틀러는 경제 불황을 활용해 나치즘을 일으켰다”고 상기한 뒤 “경제적 어려움에 따른 절망감이 우리 사회에 새로운 파시즘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의 기업사회화 정도가 미국에 달렸다고 말한다. 고삐 풀린 미국의 신자유주의가 견제를 받을 때 우리의 기업사회화도 어느 정도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배층의 도덕성에 대한 유달리 강한 저항력도, 기업사회화를 억제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고 그는 보고 있다.

김 교수는 “1970년 전태일이 제 몸을 불살랐을 때는 대학생들이 달려가 그를 끌어안았지만, 지금과 같은 분위기라면 사회적 약자가 분신해도 그를 못난 놈이라며 더 소외시킬 가능성이 있다”며 “당장 먹고 살기 힘들더라도 과도한 기업사회화에 대한 견제가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박광희 기자)

한겨레(07. 01. 12) 한국사회는 기업의 식민지

시이오 시장, 시이오 총장, 시이오 목사, 시이오 대통령…. 한국에서 시이오(CEO,기업 최고경영자)는 모범이자 모델이고 표준이자 이념이다. 지방자치단체를 운영하는 일에서부터 국가와 정부를 통괄하는 일까지, 학문의 전당을 책임지는 일에서부터 사람의 영혼을 돌보는 일까지 모든 것이 ‘기업경영’을 이상형으로 삼고 있다. ‘전사회의 기업화’ 논리는 기업가 식으로 하는 것이 가장 창조적이고 가장 효율적이며 가장 진취적이라는 가정 위에서 맹렬한 힘으로 사람들을 몰아세우고 있다.

‘반공’만이 살 길이라고 외쳤던 한국사회는 이제 혁신만이 살 길이고 변화만이 살 길이라고 외치고 있다. 요컨대, 기업만이 구세주라고 통성기도하는 형국이다. 이 현상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여기에 함정은 없는가. 혹시라도 기업가의 피리 소리를 따라 사람들이 벼랑 끝으로 내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사회학)가 최근 출간한 책 <1997년 이후 한국 사회의 성찰>(도서출판 길 펴냄)에서 한국사회에 불어닥친 기업화 광풍을 강력하게 경고하고 나섰다. 지난 10여년 동안 우리 사회 변화를 성찰한 글을 모은 이 책은 서론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에 주목할 것을 요구한다. 김 교수는 이 글에서 1997년 외환위기 이래 한국사회가 ‘기업사회’로 전환했다고 진단하면서, 그 변화의 파국적 본질을 직시할 것으로 촉구하고 있다.

그가 이 책에서 처음 제시한 ‘기업사회’라는 말은 한 마디로 줄이면, 기업이 중심이자 주인이 된 사회다. “기업이 단순히 사회의 일부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가 기업의 모델과 논리에 따라 재조직되는 사회”가 기업사회다. 경제학자 카를 폴라니의 논리를 빌리면, 기업사회는 “시장이 사회로부터 분리돼 나와 자율적인 것이 되는 데 머물지 않고, 사회를 식민화한 상태”를 말한다. 이 식민화의 가공할 성격은 사람들이 식민지배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데 있다. 과거의 식민화가 총과 칼을 앞세운 것이었다면, 새로운 식민화는 생산성과 효율성을 앞세운다. 사회 전체를 기업의 힘 아래 굴복시킨 기업사회는 강력한 이데올로기 체제다.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동의와 헌신을 끌어내고 그것을 동력으로 삼아 작동하기 때문이다.

삼성공화국, 정책 입맛맞게 조성

자본주의 체제, 시장경제 체제라고 해서 모두 기업사회인 것은 아니다. 기업이 사회의 기준으로 서고 기업가 마인드가 사회적 마인드가 되고, 기업의 사회지배를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한 것으로 인식하는 사회가 기업사회다. 기업은 단순이 이윤을 창출할 뿐만 아니라 고용을 창출한다는 것, 그래서 더 많은 이윤은 더 많은 고용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기업사회의 바탕에 깔린 일반적 믿음이다. 기업의 이익이 곧 사회의 이익이 되는 것이다. 이 믿음 위에서 이제 기업 바깥의 모든 것이 의심의 대상이 된다. 기업가의 손이, 기업가 마인드가 뻗치지 않은 공공 영역은 비효율과 무능력의 온상으로 낙인찍힌다. 그런 인식이 진전되면 “효율성과 경쟁력을 갖춘 대기업이 정부와 정치를 모두 직접 담당하는 게 좋지 않은가”라는 과격한 주장마저 불러들인다. 그리하여 대기업이 국가의 교육과 복지는 물론이고 국가의 최후 보루인 안보와 전쟁까지 담당하는 ‘기업가정부’, ‘기업가국가’가 나타날 가능성이 커진다. 김 교수는 지금 미국이 거기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한다.

신자유주의의 지구적 확산으로 기업사회라는 미국적 모델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기업사회는 국경을 치고 들어가 점령군처럼 주둔하고서 연일 포고령을 내린다. 모든 것을 기업의 이익에 맞춰 바꾸라. 부패한 것은 참아도 이익을 내지 못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 비효율이야말로 부도덕이다.

기업사회는 수천년 인류를 이끌어온 도덕의 기준마저 바꾸어 놓는다. 그러나 기업사회는 결코 대중의 이익에 복무하는 사회가 아니다. 기업사회는 기업주의 사회이며, 더 좁혀 말하면 대기업 소유주와 경영자의 사회다. 통제받지 않는 기업사회는 대기업의 절대권력화를 낳으며 그것은 기업사회 이데올로기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기업부패를 불러온다. 기업가의 이윤 추구와 공공의 이익 사이에 심각한 괴리가 빚어진다. 기업의 생산성 향상의 결과는 사회의 특권층에게 집중된다. 공공성은 실종되고 기업의 사익이 공익으로 둔갑해 횡행한다.

약자 보호법 대항 공장이전 위협

김 교수는 지난 10년 사이 기업사회의 이데올로기가 한국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기업은 선과 정의와 올바름의 잣대를 독점하다시피 했다. 기업을 비판하는 것은 곧 공익을 비판하는 것이 됐고 기업가의 잘못을 추궁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사회적 자산을 공격하는 것이 됐다. 김 교수는 여기서 삼성의 경우를 이야기한다.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기업사회 한국’의 한가운데에 삼성이 버티고 있다.

삼성은 국가경제를 책임지는 견인차와 같은 존재로 칭송받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나서서 자신이 아니라 삼성이 한국의 대표자라고까지 말한 바 있다. 삼성의 경쟁력 강화는 곧 국가 경쟁력 강화로 통한다. 급기야 정부의 주요 정보가 삼성의 정보망을 통해 사유화된다. 삼성의 힘은 관료사회를 움직여 정부의 정책마저 자신의 이익에 맞게 조정할 정도로까지 강력해지고 있다. 국가와 정부가 껍데기 또는 들러리가 되고 삼성이 나라의 핵심을 장악하는 말 그대로 ‘삼성공화국’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공화국 현상은 한국사회가 기업사회로 진입했음을 도드라지게 입증하는 사례다. 기업사회는 사회를 재편하려는 이데올로기 공세도 멈추지 않는다. 기업가 단체들이 ‘중고등학교 경제교과서 반시장·반기업 정서를 부추긴다’며 뜯어고칠 것을 요구하고, 비정규직 노동자 보호 법안을 통과시키면 기업을 국외로 이전해버리겠다는 ‘기업 파업’ 위협도 마다하지 않는다. 국민이 기업을 키운 것이 아니라 기업이 국민을 먹여 살리고 있다는 이데올로기를 공격적으로 구사하는 모습이다.

정치기능 복원·주체적 대중이 해법

기업사회의 이 진군은 사회적 보호장치가 폐기되고 약자가 강자의 힘 앞에 무방비로 서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기업사회에서 처벌은 체포·구금·고문·학살이 아니라 명예퇴직 강요, 분사, 비정규직화, 해고, 비연고지 근무 요구”로 나타나며, 더 끔찍한 것은 그것이 “처벌이 아니라 기업 경영 합리화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포장돼 있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약자들의 자살행렬이 ‘기업의 처벌’에서 비롯한다.

김 교수는 이렇게 사회 구성원을 식민화하고 지배하는 기업사회에서 벗어나려면 정치의 기능을 복원시켜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기업사회의 하수인이 된 정치를 본디 상태로 정상화해야 한다. 대중이 단순히 기업사회의 지배대상인 ‘소비자’가 아니라 시민으로, 주체로 일어서야 한다. “우리는 유권자이며 노동자이며 주민이며 학부모이며 자신의 귀중한 삶의 방향을 선택해야 하는 존엄한 인간이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과 억울한 죽음에 공감해야 할 신성한 의무가 있는 공동체의 구성원이다.”(고명섭 기자)

07. 01. 12.

P.S. 한국사회의 단면을 꼬집는 기사 하나를 덧붙여둔다.

경향신문(07. 01. 12) 상상할수록 불쾌한 광고…양극화 부추기는 TV광고 눈총

TV 광고가 도를 넘는 소재와 설정으로 시청자들에게 불쾌감을 주고 있다. 소비자들의 마음은 물론 지갑까지 열어야 하는 광고의 속성상 허영을 부추기고 현실을 과장할 수도 있지만, 요즘 방영되는 광고는 지나치게 계층간 위화감을 조성하는 데다 사람 목숨을 아예 돈으로 환산하는 위험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부럽거나 불쾌하거나

지난해 말 한 보험회사 광고가 논란을 일으켰다. ‘남편이 죽은 뒤 보험설계사의 도움으로 생명보험금 10억원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광고를 본 시청자들은 ‘실제로 10억원을 받으려면 까다로운 조건이 붙는다’는 지적부터 ‘생명을 돈으로 연결시켰다’는 비난을 퍼부었다. 심지어 ‘보험설계사를 남자로 설정해 부적절한 상상까지 가능케 했다’는 반응도 있었다. 광고회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 광고가 소비자들에게 불쾌감을 안겼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명품 아파트’ 이미지를 남용하고 있는 아파트 광고에서 소형 평수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헬스클럽에 골프장까지 갖춘 대형 아파트에 사는 여성들은 서로 같은 아파트 주민임을 한눈에 알아본다. 때로는 유럽이나 뉴욕의 이미지를 차용하며 집안에서 드레스를 입고 다닌다. 유부남, 유부녀가 아파트에서 첫사랑과 재회하는 분위기를 묘사하는 한 아파트 광고는 ‘불륜 아파트인가’ 하는 냉소까지 유발한다. 아파트 속 모델들은 신형 아파트의 특별한 시설을 통해 첫사랑의 추억을 떠올리고 배우자, 아이와 함께 지나가다 어색하게 마주친다. 집값 폭등과 경제적 양극화,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등으로 괴로운 소비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광고는 끊임없이 ‘돈 들고 돈 되는’ 아파트만 보여준다.

자동차 광고에서는 자동차의 크기나 값을 사회적 ‘성공’과 ‘능력’의 증거로 연결시킨다. 광고 속에 외환위기 시절 절약의 이미지를 대변하기도 했던 소형차나 경차는 온데 간데 없고 대형 외제차를 경쟁 상대로 삼는 대형차들만이 넘쳐난다. 대형차를 타는 아버지를 둔 아이가 친구들에게 인형을 나눠주는 내용이 방영되기도 했다.

이런 광고에 대해 시청자들은 불쾌함을 넘어 화가 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학생 김민석씨(27·한국외대 불어과)는 “아는 분이 광고를 본 아이가 ‘우리는 집이랑 차가 왜 이렇게 작으냐. 언제 저런 데로 이사가느냐’고 물어 가슴이 아팠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트렌디 드라마에 외제차와 최신형 휴대전화가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처럼, TV 광고도 비현실적 상황으로 허영을 조장한다”고 말했다.

#일그러진 현실 더욱 일그러지게

학습지나 학원 광고도 비뚤어진 우리의 교육현실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한 학습지 광고에서는 학부형이 치과에서 이빨을 잘못 뽑히고도 “괜찮다”며 웃는다. “당신은 상위권 엄마의 기쁨을 아느냐”고 묻는 이 엄마는 아이가 상위권이 된 배경에는 학습지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면서 마지막 장면에서 아이와 함께 학습지 교사에게 머리 숙여 인사한다. 심지어는 ‘학년을 앞서가는 힘’이라며 미리 학습지로 공부한 아이들이 학교 선생님을 떠난다는 내용의 광고도 있다. 광고 속에 등장하는 교사마저 ‘애들은 (학습지)를 좋아해. 자꾸 자꾸 앞서가면 나는 어떡해’라며 노래한다.공교육이 힘을 못 쓰고 사교육이 위세를 떨치고 있는 현실이 광고 탓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교육효과를 강조하는 것을 넘어 공교육을 아예 무시하는 듯한 광고를 보는 시청자들은 씁쓸할 수밖에 없다.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김형진 팀장은 “광고가 부정적인 현실을 더욱 왜곡하며 사회적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팀장은 “소비층은 다양한데 비해 광고는 상류층 지향으로만 흐르고 있다”며 “잠재되어 있는 욕망을 끌어내기 위해 불쾌감까지 주면서까지 소비자들을 자극한다”고 지적했다.(장은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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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1-12 07:07   좋아요 0 | URL
우리사회는 어딜가나 미국에 대한 담론으로 넘쳐나지요.(미국유학파가 많기 때문인지) 반면 유럽과 우리를 비교해보면 분통터지는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지요. 미국과 비교하면 이 사회는 정말 잘 돌아가고 있는거지만 ㅋ

로쟈 2007-01-12 08:15   좋아요 0 | URL
기사내용만으로는 상식의 확인수준이지 '통찰'이란 건 없는데요. 강준만의 '삼성공화국'론에서 더 나아간 내용이 있는지 찾아봐야겠습니다...

아놔키스트 2007-01-12 09:03   좋아요 0 | URL
로쟈님이 낚은 책에 저는 썩 낚이지(^^) 않네요..근데 광고 기사를 보니 속이 부글거립니다. 무엇보다 저런 광고들 보기 싫어 전 TV를 끊었지요...

로쟈 2007-01-12 09:07   좋아요 0 | URL
다행이십니다. 두꺼운 데다 책값도 비싸거든요.^^ 저는 읽어볼 '필요'가 생겨서 부득불 구입을 했습니다...

드팀전 2007-01-12 09:17   좋아요 0 | URL
^^...제가 오늘 아침 본 기사 두 개가 공교롭게 페이퍼로 올라왔군요.한겨레 김동춘 교수 리뷰하고 경향신문 광고....
기사는 기업공화국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듯한데..알라딘에 실린 소제목들을 보니 꼭 그런 것 같지만은 않네요. IMF 이후 한국 사회 전반의 변화를 짚고 있는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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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 | '기업사회'로의 변화를 중심으로

제1부
탈분단 시대 지식인의 역할 | 리영희의 사상과 실천을 생각하며
한국 사회과학의 탈식민 과제
21세기에 돌아보는 1980년대 한국 사회성격 논쟁
한국의 지식인들은 왜 외환위기를 읽지 못했는가

제2부
한국의 우익, 한국의 '자유주의자' | 상처받은 자유주의
한국의 자유주의자
한국의 지식사회와 지식권력

제3부
'민주화'라는 환상? | 교체되는 권력과 교체되지 않는 권력
강요된 지구화와 한국의 국가, 자본, 노동 | IMF체제하의 한국
노동.복지체제를 통해 본 한국 자본주의의 성격 | 냉전 자본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한국 노동자 내부 구성과 상태의 변화 | '계급' 없는 계급사회?
신자유주의와 한국 노동자의 인권 | 외환위기 직후를 중심으로
전환기의 한국사회, 새로운 출발점에 선 사회운동

제4부
한국 민주화의 주도세력
21세기에는 학벌주의가 사라져야 한다 | 대학 서열화 극복을 위한 대학개혁
유교와 한국의 가족주의 | 가족주의는 유교적 가치의 산물인가

제5부
한국인들의 자민족 중심주의
시민운동과 민족, 민족주의
21세기와 한국의 민족주의
일상적 파시즘론에 대한 생각
해방 60년, 한국의 민족주의와 민족문제의 위상

로쟈 2007-01-12 10:25   좋아요 0 | URL
기사는 아마 다들 서론만 읽고 썼나 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