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이긴 하나 휴일의 하루인지라 느지막이 일어났다(돼지해이니까 돼지꿈이라고 꿔줘야 했을 텐데, 설날을 기약하는 수밖에). 아침신문들을 읽다가 눈에 뜨인 기사는 '책읽기 365'를 제안하는 도정일 교수의 칼럼이었다. 365이니까 오늘도 예외가 아니다. 끈을 바짝 조이는 의미가 있겠다. 그간에 독서문화운동이나 독서캠페인 등을 많이 있어 왔지만, '사회적 독서'를 기치로 내건 건 처음이 아닌가 싶다. '개인적 독서'의 짝이 될 이 말의 효용에 대해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나의 방점은 '해보자'에 찍힌다. 뭐라도 해보기로 결심하는 게 또한 시년을 맞는 의례이기도 하므로 '사회적 독서를 시작해보자'라는 제안에 한 표를 던진다.   

경향신문(07. 01. 01) 독자여, 당신에게서 희망을 찾는다

미국 일리노이 출신 민주당 상원의원 바락 오바마는 차세대 대통령 감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의 떠오르는 별로 알려지고 있는 사람이다. 마흔 다섯 살의 초선 의원이 정계 진출 3년 만에 이처럼 빠르게 부상한 것은 존 F. 케네디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이런 오바마 현상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정치에 실망하고 정치판에 덧정 떨어진 국민들에게 그가 신선한 희망으로 비치기 시작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희망’을 말하기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근년 한·미 두 나라 정치판은 기이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국민은 극단적인 분열과 이해관계의 대립으로 풍비박산 쪼개져 있으나 정치는 이 분열을 치유할 힘이 없다. 정치 자체가 분열의 조장자이자 분열을 먹고 사는 독버섯 같은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치판은 진지한 토론과 숙고 대신 막말, 욕설, 비방, 험담으로 날 새는 저열하고 잔인한 정쟁의 지옥이 되어 있다.

-희망의 원천은 시민의 자질-

대립과 싸움은 정치의 숙명이다. 민주정치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대립이고 싸움이냐에 따라 정치의 품질과 수준은 한참 달라진다. 국민을 위한 봉사보다는 오로지 권력잡기가 목표일 때 정치는 사회악이 되고, 국가적 현안과 국민생활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보다는 당략과 점수따기를 위한 진흙던지기가 될 때 정쟁은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싸움질로 전락한다.

인권변호사, 공동체 운동가, 시카고 법대 강사의 경력을 가진 오바마가 정치에 투신한 이유는 미국의 ‘깨진 정치과정을 수리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분열보다는 공통의 희망과 꿈으로 국민을 한데 묶어주는 일이 더 위대하고 시급하다는 것이 그가 최근 저서 ‘대담한 희망’ 등에서 말하는 희망의 정치 기조다. 당리당략과 이데올로기를 넘어 건강한 양식과 상식의 힘으로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나가자는 주장도 그가 제안하는 새로운 정치 방법론이다.



-‘사회적 독서’를 시작해 보자-

금년은 우리에게 대선의 해다. 우리에게도 공동체를 위한 새로운 정치문화가 필요하고 정치과정의 대대적인 수리가 필요하다. 희망의 메시지도 그립다. 그러나 새로운 정치를 가능하게 할 궁극적인 힘은 ‘시민’에게서 나오므로 그 시민의 판단력과 자질이 또다시 요긴해지고 있다. 시민적 자질을 강화하는 첩경 중의 첩경은 누가 뭐래도 책 읽기이고 독서를 통한 숙고의 능력 키우기다.

무슨 책? 독자여, 나는 당신에게 어떤 책도 권할 생각이 없다. 나는 오히려 당신이 뽑아주는 책, 당신이 만드는 책들의 목록을 보고 싶다. 그 목록으로 우리가 사회적 독서를 시작하고, 이슈를 가리고 문제를 토론해 보는 것이 금년에 우리가 해야 할 소중한 일의 하나다. 경향신문이 새해 벽두부터 책읽기 문화의 확산을 위한 연중시리즈 ‘책읽기 365’를 시작하는 의미도 거기에 있다.(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07. 01. 01.

P.S. 그러니까 논리는 이렇다. 새로운 정치문화는 시민에게서 나온다 -> 따라서 시민의 판단력과 자질이 요긴하다 -> 그러한 자질을 강화하는 첩경은 책읽기이다. 이 책읽기가 다가올 '파국'으로부터 우리를 구제해줄 수 있을지 회의적이긴 하나(지젝의 표현을 빌면, 소행성과의 충돌 같은 재난 앞에서 철학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기분이면 못할 것도 없겠다. 한데, '주최측'에서 어떤 책도 권할 의사가 없다고 하므로 좀 난감하다. '당신이 뽑아주는 책으로 시작해보겠다고 한다. 젠장, 민주주의의 고단함이여!

 

 

 

 

해서, 마지못해 몇 권의 책을 꼽아본다. 한국사회에 대한 책으로 지승호의 대담집 <금지를 금지하라>(시대의창, 2006), 그리고 미국에 대한 책으로 에릭 포너의 <역사란 무엇인가>(알마, 2006), '인문서'로 어느샌가 출간된 테리 이글턴의 <우리시대의 비극론>(경성대출판부, 2006), 그리고 시집으로 김경주의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랜덤하우스코리아, 2006). 네 권을 1월에 짬짬이 읽을 책으로 정해둔다. '이슈를 가리고 문제를 토론해보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사회적 책임감'이 강제하는 책읽기도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올해는 분단국에서 또 한 차례 대선이 치러지는 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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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 책 2007-01-01 11:46   좋아요 0 | URL
새해를 맞이해서 올해는 무슨 책을 읽을까 고민하고 있는 제게 좋은 화두를 던져주셨네요..감사합니다..그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로쟈 2007-01-01 11:50   좋아요 0 | URL
제가 '화두'를 인수인계한 셈이군요.^^

승주나무 2007-01-02 09:13   좋아요 0 | URL
경향에서 1면마다 책 한 권을 소개하기로 했다네요. 경향의 기획력은 인정하지만, 제발 동아처럼 설대 교수가 추천하는 고전 100선처럼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제에발~

로쟈 2007-01-02 11:15   좋아요 0 | URL
첫호를 보니까 김지하의 서평을 싣고 있더군요. 한데, 분량이 너무 짧아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