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을 하는 날이다. 예년 같으면 그냥 얻어다 먹었지만 어머니가 60포기나 되는 김장을 담그시기로 해서 며느리들을 모두 소집했고, 제일 '한가한' 나에겐 잔심부름과 애들 보는 역이 맡겨졌지만 무료한 탓에 페이퍼나 올리고 있다. 계간 <문학동네>(겨울호)의 젊은 작가 특집은 김애란을 다루고 있는데, 이와 관련한 북데일리의 기사를 옮겨놓는다(고아라 기자의 기사들이 자주 눈에 띄는군). 그러고 보면 김애란씨에 대해서는 나도 몇 차례 다룬 바 있는 듯하다. 

 

 

 

 

 

 

 

 

 

 

 북데일리(06. 11. 24) 김애란,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게 가능할까

“출판계와 저널리즘에 이르는 오늘날 문단의 불문율 중 하나는 ‘김애란을 사랑하라’는 명령이다. 모두가 그녀를 사랑한다. 진보적 리얼리스트들에서부터 전위적 모더니스트들에 이르기까지, 젠체하는 비평가들에서부터 자유분방한 독자들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그렇다면 김애란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도대체 가능한가?”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계간 ‘문학동네’ 가을호(작가론 ‘소녀는 스피노자를 읽는다’)에서 던진 질문이다. ‘김애란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전제가 깔려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듯하다. 그가 제시하는 ‘우리가 그녀를 사랑하는 이유’는 이렇다.

첫째. 그녀가 ‘명랑’하기 때문이다. 명랑하다는 건 상처가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김애란의 인물들은 IMF 현실, 서울 문화의 은근한 배타성, 가족의 결핍 등과 마주친다. 그들은 상처를 받지 않을 만큼, 혹은 상처에 맞서 싸울 만큼 강하지 못하다. 조력해줄 키다리 아저씨도 없다. 국가도, 이념도, 가족도 무력하다. 하지만 고독한 개인의 안간힘으로 상처를 이겨낸다. 그 마주침의 기록이 핍진하고 그 안간힘이 애틋하다.

둘째. 김애란의 중성(中性)성. 그녀의 인물들은 자신의 성별에 의지하지 않는다. 마주침과 견뎌냄의 과정에 어떤 성별 논리도 개입하지 않는다. 여자라서 혹은 남자라서 특별히 겪게 되는 마주침은 없다. 그들의 슬픔, 그 슬픔의 처리과정도 중성적이다. 이 중성성이 그녀의 명랑성을 만든다.

신형철의 열렬한 ‘김애란 애찬론’은, 그녀의 작품들을 공간, 소통, 가족, 욕망의 측면에서 조망한 평론 내내 이어진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은 김애란에 대한 애정을 과시한 이가, 비단 신형철 한 명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서울대 백낙청 명예교수는 계간 ‘창비’ 봄호에서 “최근 문학현장에 대한 관심을 가지도록 자극을 준 신인작가”로 박민규와 김애란을 함께 언급한 바 있다. 솔출판사 임우기 대표는 계간 ‘유역’ 창간호에서 그녀의 소설을 “영성적 문학의 소중한 싹”이라고 표현했다.

작년 8월 김애란이 창작집을 발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황순원문학상 예심을 통과하지 못했을 때 몇몇 심사위원이 “규정을 바꾸라”며 반기를 들고 나섰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작년 11월 그녀는 ‘달려라, 아비’로 역대 최연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김애란의 첫 창작집 <달려라, 아비>(창비. 2005)는 출간 한 달 만에 판매부수 1만부를 넘기며, 한동안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일반 독자들 역시 그녀에게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 그렇다면 정말, 신형철의 말대로 모든 사람이 김애란을 사랑하는 걸까. 물론 아니다. 그녀의 소설에 대해 실망의 목소리를 감추지 않는 독자도 있다(*우리 동네 분들이다!).

“하도 칭찬일색이기에 주문해서 읽은 책이건만 너무 실망. 자기 독백에 곁들여진 화려한 말솜씨뿐 아무것도 없다. 스토리도, 줄거리도 없다. 유머도 재치도 없다.” (알라딘 ‘기억의 집’)

“김애란의 소설들은 트렌디 드라마를 닮아 있다. 밝고, 새롭고, 경쾌하지만, 현실성이 없다. 울고 짜고 배신과 복수가 판을 치는 멜로드라마에 식상한 사람에게 트렌디 드라마는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두어 편 보고 나면 금세 질리고 만다.” (알라딘 ‘urblue’)

김애란은 이제 막 스타트를 끊은 작가다. 그녀를 사랑하고, 하지 않고를 결정하기엔 섣부른 감이 있다는 말이다. 선택은 그녀의 장편이 나온 후로 미뤄둬도 그리 늦은 일은 아니지 싶다. 개인적인 바람을 한 가지 덧붙이자면, 모두에게 사랑받는 그 날까지 ‘달려라, 김애란’.

06. 11. 24.

P.S. 개인적으론 김애란의 일부 소설들을 좋아하지만, 이해되지 않는 소설들도 없지 않다. 내가 주목하는 건 단순하게도 '삶의 리얼리티'를 확보하고 있느냐의 여부이다. 그 점에서 그녀는 얼마간 신뢰를 준다. 그녀의 본격적인 소설(장편소설)을 기다려본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맑음 2006-11-24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틈틈이 로쟈님이 올리신 글들을 읽고 있어요. 그런데 어디까지가 기사문이고 어디까지가 로쟈님 글인지 모르겠어요. 저만 그런가요? 색깔이나 구획선으로 구별해주시면 로쟈님 생각을 빨리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ㅅ^

로쟈 2006-11-24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소 불편하시겠네요.^^ 인용문에 코멘트를 집어넣을 때는 언제난 *표시를 합니다. 그밖에 인용되는 기사에 제가 끼여드는 경우는 없구요, 강조표시만 해둡니다. 인용문이 길 경우에 다소 혼동의 소지가 있는데, 그 점에 대해서는 양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색깔은 부분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취향상 많이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기인 2006-11-25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또 퍼갑니다. 신형철 선배가 정말 주목받고 있는 평론가인가 보네요. ㅎ :)

로쟈 2006-11-25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히 발군의 기량을 뽑내고 있습니다. 첫평론집이 나오면 보다 명확해지겠죠...

sommer 2006-11-25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피노자를 사랑하는' 소녀에 관한 글을 읽다가, 그리고 그녀의 자전소설을 읽다가 문득 불능이 아닌 '부재'를 '상상'으로 대체하는 데서 그녀가 명랑으로 인도되는 건 아닐까 긁적이게 되더군요...

로쟈 2006-11-25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잡지를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긁적거리시는 김에 끄적거리시면 '김애란론'이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