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의 공동체 - 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에 대한 성찰 나남신서 377
베네딕트 앤더슨 지음, 윤형숙 옮김 / 나남출판 / 2003년 10월
구판절판


그러므로 나는 인류학적 정신에서 다음과 같은 민족의 정의를 제안한다. 즉 민족은 본래 제한되고 주권을 가진 것으로 상상되는 정치공동체이다.
민족은 가장 작은 민족의 성원들도 대부분의 자기 동료들을 알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며 심지어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지도 못하지만, 구성원 각자의 마음에 서로 친교(communion)의 이미지가 살아있기 때문에 상상된 것이다. 르낭(Renan)이 "민족의 핵심은 전 소속원들이 많은 것을 공유한다는 사실이며, 동시에 전 소속원들이 많은 것을 망각해 주어야 한다는 사실이다."라고 썼을 때 그는 그의 유쾌한 화법으로 이 상상함(imagining)을 언급한 것이다. 겔너(Gellner)가 "민족주의는 민족들이 자의식에 눈뜬 것이 아니다. 민족주의는 민족이 없는 곳에 민족을 발명해낸다"라고 얼마간 잔인하게 규정했을 때 위와 유사한 논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공식화의 결점은 민족주의가 잘못된 구실 아래 가장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고 너무 애쓴 나머지 '발명'을 '상상'이나 '창조'보다는 '허위날조'와 '거짓'에 동화시킨 것이다. 이리하여 그는 민족과 병치될 수 있는 '진정한'공동체들이 존재함을 암시한다. (계속)-25-27쪽

(위에서 계속)
사실 면대면의 원초적 마을보다 큰 공동체는(그리고 아마 이 마을조차도) 상상의 산물이다. 공동체들은 그들의 거짓됨이나 참됨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상상되는 방식에 의해서 구분되어야 한다. (중략)
민족은 제한된 것으로 상상된다. 왜냐하면 10억의 인구를 가진 가장 큰 민족도 비록 유동적이기는 하지만 한정된 경계를 가지고 있어 그 너머에는 다른 민족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민족도 그 자신을 인류와 동일시하지 않는다. 어떤 구세주적 민족주의자들도 기독교도들이 어느 시대에 기독교도만 모인 행성(planet)이 도래할 것이라고 꿈꾸는 것과 같이, 모든 인류의 성원이 그들의 민족에 동참하는 날이 올 것을 꿈꾸지는 않는다.
민족은 주권을 가진 것으로 상상된다. 왜냐하면 이 개념은 계몽사상과 혁명이 신이 정한 계층적 왕국의 합법성을 무너뜨리던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아래에 계속)-25-27쪽

(위에서 계속)오늘날은 어떤 보편적인 종교의 가장 신앙심 깊은 추종자라도 보편적인 종교들이 여럿 존재한다는 사실과, 각 신앙의 존재론적 주장과 영토적 한계 사이에 이질동형(allomorphism)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런 인간의 역사 단계에서 민족들은 자유롭기를 꿈꾸며 만일 신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면, 직접 받기를 꿈꾼다. 이 자유의 표식과 상징은 주권국가이다.
마지막으로 민족은 공동체로 상상된다. 왜냐하면 각 민족에 보편화되어 있을지 모르는 실질적인 불평등과 수탈에도 불구하고 민족은 언제나 심오한 수평적 동료의식으로 상상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지난 2세기 동안 수백만의 사람들로 하여금 그렇게 제한된 상상체들을 위해 남을 죽이기보다 스스로 기꺼이 죽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이 형제애이다.-25-27쪽

이 단순한 관찰들을 이야기하는 주된 이유는 서유럽에서 18세기는 민족주의의 여명기일 뿐 아니라 종교적 사고양태의 황혼기이기 때문이다. 계몽주의와 합리적 세속주의의 세기는 그 자신의 근대적 어둠도 동반하였다. 종교적 믿음이 쇠퇴했다고 해서 믿음이 일부 진정시켰던 고통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낙원의 붕괴로 숙명만큼 종잡을 수 없는 것도 없게 되었다. 영혼의 구원이 어리석은 생각이라면 다른 형태의 연속성만큼 더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없었다. 따라서 숙명을 연속성으로, 우연을 의미 있는 일로 전환시키는 세속적인 작업이 필오하였다. 앞으로 살펴보게 되겠지만, 이러한 목적에 민족이라는 개념보다 더 적합한 것은 별로 없었으며, 현재도 별로 없다. 민족국가가 '새로운' 것이고 '역사적인' 것으로 널리 인정되고 있다면 민족국가가 정치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민족들은 언제나 기억할 수 없는 과거에서부터 나타난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민족은 끝없이 미래로 미끄러져 들어간다는 것이다. 우연을 운명으로 바꾸는 것이 민족주의의 마술이다.-31-32쪽

많은 왕조들은 정통성의 원칙이 조용히 시들어 갈 때 '민족'이라는 표어에 손을 뻗고 있었다. 프레드릭 대제(1740-1786통치) 군대에 지휘관이 대부분 '외국인들'로 구성되었던 반면에, 그의 장조카인 프레드릭 빌헬름 4세(1797-1840통치) 군대의 지휘관은 샨호르스트, 그나이세나우와 클라우제비츠의 눈부신 개혁의 결과로 전적으로 '프러시아 민족(national-Prussian)으로 구성되어 있었다.-45쪽

기본적으로 나는 민족을 상상하는 가능성 자체가 역사적으로 볼 때 아주 오래된 세 가지 근본적인 문화개념이 인간의 사고에 대해 갖고 있던 공리적 통제력(aximatic grip)을 잃어버린 때와 장소에서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이 세 가지 문화개념 중 첫째는 특정한 정본 언어(script-language)가 바로 진리와 분리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존재론적 진리에 접근할 수 있는 특권을 제공한다는 개념이었다. 기독교세계와 이슬람세계 그리고 기타 세계의 초대륙적 대 연대감을 낳게 한 것은 바로 이 개념이었다. 둘째는 다른 인간들과 구별되며 어떤 우주적(신성한) 형태의 섭리에 의해 통치하는 군주라는 상위 중심부의 주변과 그 밑에서 사회가 자연스럽게 조직된다는 믿음이었다. 지배자는 경전처럼 존재에 접근하는 접목점이었으며 존재 안에 본래부터 내재하였기에 인간의 충성심은 반드시 서열적이고 구심점을 향하여 있었다. 셋째는 우주관과 역사가 구별되지 않고 세계의 기원과 인간의 기원이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보는 시간의 개념이었다. (아래에 계속)-62-63쪽

(위에서 계속) 이러한 개념들은 서로 어우러져서 존재의 일상적인 숙명성(무엇보다 죽음, 상실, 예속)에 어떤 의미를 주며 여러 방식으로 그것들로부터 구원을 제공하며 인간의 삶을 사물의 본질 자체에 굳게 뿌리내리게 했다.
이러한 상호 연결된 확실성들이 서서히 불균등하게 퇴조하면서 우주관과 역사 사이에 엄한 쐐기를 박았다. 세 문화개념들의 퇴조는 경제변동, '발견'(사회적인 발견과 과학적인 발견), 그리고 가일층 빨라진 커뮤니케이션의 발달 등의 영향을 받아 처음에는 서유럽에서 일어나고 그 후에는 다른 곳에서도 일어났다. 그렇다면 형제애와 권력과 시간을 의미 있게 서로 연결하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아마도 인쇄자본주의보다 이러한 모색을 촉진시키고 성공적으로 만든 것도 없을 것이다. 인쇄자본주의는 빠르게 늘어나는 사람들이 심오하게 새로운 방식으로 그들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그들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연결할 수 있게 해주었다.-62-63쪽

우리는 인간언어의 숙명적 다양성 위에 자본주의와 인쇄술이 수렴됨으로써 그 기본 형태에 있어 근대 민족(nation)을 준비하는 새로운 형태의 상상의 공동체가 형성될 가능성을 창조했다고 말함으로써 지금까지의 논의를 요약할 수 있다. 이 공동체들의 잠재적 영역은 본래적으로 제한되어 있고 동시에 현존하는 정치적 경계들과 아주 우연적인 관계만을 가졌다.-75쪽

새 인쇄소를 시작하는 인쇄업자들은 신문을 그들의 생산에 포함시켰다. 흔히 인쇄업자들 자신이 신문의 주요 기고자요 때로는 유일한 기고자이기도 했다. 이렇게 하여 인쇄업자 겸 신문인들은 처음에는 본질적으로 북아메리카적인 현상이었다. 인쇄업자 겸 신문인들이 당면한 주요 문제는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우편부와 매우 밀접한 연대를 발달시켜 흔히 한쪽이 다른 한쪽을 겸하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인쇄업소는 북아메리카 통신의 중심이자 지역의 지적 생활의 핵심으로 등장했다. 스페인령 아메리카에서는 비록 느리고 간헐적이었지만 유사한 과정이 일어나 18세기 후반에 최초의 지방신문이 출현하였다.
남아메리카에서든 북아메리카에서든 무엇이 아메리카 대륙의 최초의 신문의 특성이었을까? 신문은 본질적으로 시장의 부속물로 시작했다. 초기 신문들은 본국에 대한 소식 외에 식민지의 정치적인 발령, 부호들의 결혼 등에 관한 소식과 함께 상업소식(언제 배가 도착하고 떠나며, 어느 항구에서 어떤 물건의 시세가 어떤지 등)을 실었다. (아래에 계속)-94-95쪽

(위에서 계속)달리 말하면, 같은 면에 이 결혼과 저 배, 이 가격과 저 대주교에 관해 같이 실을 수 있게 한 것은 식민행정부와 시장체계 자체의 구조였다. 이런 식으로 까라까스(Caracas)의 신문은 아주 자연스럽게, 심지어는 비정치적이라 할 수 있게, 독자라는 특정 무리에게 상상의 공동체를 창조해 주었다. 이 배, 신부(brides), 대주교, 가격들은 독자들에게 속하는 것이었다. 물론 적절한 시기에 정치적 요소가 들어오는 것을 기대할 수 있는 일이었다. -94-95쪽

한 자본가가 대개 다른 자본가의 딸과 결혼하지도 않았고 서로의 재산을 상속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일반적으로 자신들과 비슷한 수천 명의 존재들을 활자어를 통하여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문맹한 자본가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세계사적 조건에서 자본가는 본질적으로 상상의 기반 위에 결속력을 성취한 최초의 계급이었다.-111쪽

결론적으로 말해 필자는 19세기 중엽부터 시튼왓슨이 '관주도 민족주의'라고 부른 민족주의가 유럽에서 발전했다고 논하였다. 관주도 민족주의는 대중적 언어민족주의가 출현할 때까지 역사적으로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사실 관주도 민족주의는 대중의 상상된 공동체에서 배제되거나 주변화될 위협을 느낀 세력집단들-주로 왕조와 귀족의 세력집단들-에 의한 반응이었기 때문이다. 1918년 이후와 1945년 이후 일종의 지각상의 대변동이 일어나 이 세력집단들을 에소토릴(Estoril)과 몬테 까를로(Monte Carlo)에 있는 하수구 쪽으로 쏟아버렸다. 그런 관주도 민족주의는 앞서 일어난 대규모의 자발적인 대중 민족주의의 모형에서 각색한 반동적이면서 보수적인 정책들이었다. 그들은 궁극적으로 유럽과 레반트(Levant) 지역에 국한되지 않았다. 제국주의의 이름으로 비슷한 정책들이 19세기에 복속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방대한 지역에 있는 비슷한 종류의 집단들에 의해 추진되었다. 마지막으로 비유럽 문화와 역사 속으로 굴절되어 관주도 민족주의는 직접적인 예속을 피한 소수 지역(그 중에는 일본과 샴이 있다)에 있는 토착지배 집단에 의해 포착되고 모방되었다.-147-148쪽

방대한 교육산업은 미국 젊은이들이 1861-65년의 전쟁을 잠시 존재하였던 두 주권 민족국가 간의 전쟁이 아니라 '형제'간의 '시민' 정쟁으로 기억/망각하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만일 남부연방군이 독립을 유지하는 데 성공하였다면, 이 '시민' 전쟁은 기억에서 매우 비형제적인 어떤 것으로 대체되었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영국 역사책은 모든 학생들이 '정복자 윌리엄(William the Conqueror)이라고 부르도록 가르침을 받은 위대한 시조의 재미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 학생들은 정복자 윌리엄이 영어를 사용하지 않았고 그 시대에는 영어가 없었기 때문에 사용할 수도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배우지 못한다. 또한 학생들은 '무엇의 정복자인가?'에 대해서도 배우지 못한다. 왜냐하면 알기 쉬운, 유일한 근대적 대답은 '영국의 정복자'이기 때문이다. 이 모범답안은 옛 노르만인 약탈자를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성공적인 선구자로 만든다. 그래서 '정복자'는 사람들로 하여금 즉각적으로 망각할 의무가 있는 어떤 것을 상기시키는 '생 바르뗄레미'와 같은 종류의 생략부호로 작동한다.-255-256쪽

의식에서의 모든 심오한 변화는 성격상의 변화와 함께 특징적인 건망증을 가져온다.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서 그러한 망각으로부터 서술이 나온다. 사춘기가 낳은 체질적, 감정적 변화를 경험한 후 어린 시절의 의식을 '기억하기'는 불가능하다. 유아시절과 초기 성년시절 사이에 있는 얼마나 많은 수천의 날들이 직접적으로 회상하기 어려운 곳으로 사라지는가! 바랜 사진 속의 양탄자나 침대 위를 행복하게 기어다니는 벌거벗은 아이가 당신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은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중략) 이런 소외로부터 '기억될 수 없기 때문에' 서술되어야 할 인성(personhood), 정체성(identity:그렇다. 당신과 벌거벗은 아이가 동일하다)의 개념이 나온다. (중략)
민족도 근대적 인간과 마찬가지이다. 세속적, 연속적 시간에 매몰되어 있다는 인식은 연속성에 관한 모든 암시로 인하여, 또한 18세기 단절의 산물인 연속성의 경험을 '망각'하는 것에 관한 모든 암시로 인하여 '정체성' 서술의 필요성을 낳는다.-258-2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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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09-04-18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족주의 이야기를 하려면 읽지 않을 수 없는 고전이라는 의무감으로 읽었다. 앤더슨은 민족 형성에 있어서 대중의 자발성을 강조하는 학자이다. 그의 이야기에 조금 미심쩍은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내가 워낙 대중을 불신하기 때문이겠지.
 
이야기와 담론 - 영화와 소설의 서사구조
시모어 채트먼 지음, 한용환 옮김 / 푸른사상 / 2003년 9월
절판


구조주의 이론은 각각의 서사물은 두 개의 부분으로 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야기, 사건들(행위, 돌발사 등)의 내용과 그 연쇄 및 사물적 요소(등장인물이나 배경을 구성하는 것)라고 부를 만한 것이 합쳐진 이야기가 그 하나라면, 표현, 혹은 내용이 전달되는 방식인 담론이 그 다른 하나이다. 단순화시킨다면 이야기란 묘사된 서사물 속의 '무엇'이며, 담론이란 '어떻게'에 해당하는 것이다.-19쪽

서사적 담론, 즉 '어떻게'는 다시 두 개의 하부 구성인자로 나누어진다. 서사적 형태 그 자체 -서사적 전달 구조- 와 그것의 발현 -언어나 영상, 발레, 음악, 팬터마임 등등의 특정한 물리적인 매체를 통해 나타남- 이 그것이다. 서사적인 전달은 이야기의 시간과 이야기를 진술하는 시간의 관계, 혹은 이야기의 출처나 저작적 특성(화자의 목소리나 '시점', 기타 그와 유사한 점 등)과 연관된다. 당연히 매체는 전달에 영향을 미친다. -22쪽

이러한 문제는 현상학적인 미학자들,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가 박물관이나 도서관, 극장 등에서 부딪히게 되는 '실제적 대상'과 '미적 대상'간의 근본적인 차이점에 대해서 밝혀낸 바 있는 로만 잉가르덴에 의해 해결되었다. 실제적 대상이란 바깥 세계에 존재하는 사물-대리석 조각, 그림물감이 굳어 있는 캔버스, 규칙적으로 울리는 공기의 진동파, 한 덩어리로 제본된 인쇄된 종이뭉치-이다. 반면 미적 대상이란 관찰자가 그러한 사물들을 미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순간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관찰자의 마음속에 구축(또는 재구축)되는 것이다. 미적 대상은 실제적 대상의 부재 속에 존재하게 된다. 우리는 순수한 상상 속의 대상들에서도 어떤 미적 경험을 가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하나의 시를 기억 속에 살려낼 때 우리는 '글자들'이나 그에 해당하는 발음들을 단지 상상하게 될 뿐'인 것이다. (중략) '단순한' 독서는 조각을 단순하게 관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적 경험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미적 경험의 예비적인 절차일 뿐이다. 대상을 지각하는 사람은 어느 지점에서 미적 대상의 '영역', 혹은 '세계'를 정신적으로 구축해야 한다.-28-29쪽

사건에 대한 상세한 설명으로서의 서사행위 자체와 그것의 직접적인 표출 방식으로서의 실연 사이의 구분은 diegesis와 mimesis 사이의 고전적 구분, 또는 현대적인 용어로는 '말하기'와 '보여주기' 사이의 구분과 일치한다.-35쪽

몇몇 비평가들은 배경이 플롯과 인물에 관련될 수 있는 방법의 범주화를 제안했다. 자연적 배경에 관심을 기울였던 로버트 리들(R. Liddell)은 이를 다섯 유형으로 구분했다.
첫째, 공리적, 혹은 실용적 배경은 단순하고 중요성이 적고 행동에 최소한의 영향을 미치고, 일반적으로 감정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는 배경이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 좋은 예가 된다.
둘째는 상징적 배경인데, 행위와 밀접한 결합을 강조한다. 여기서 배경은 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행위와 '유사'하다. 소란스러운 돌발사들은 "위대한 유산"에서의 습지 같은 소란스러운 장소에서 일어난다. "황폐한 집"에서의 비 오는 날씨는 데드로크 양의 가슴속에 있는 눈물과 일치한다.
셋째는 무관계한 배경이다. 즉 풍경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인물들은 특별히 그것을 의식하지 않는다. 시골에 묻혀 있는 샤를르 보바리를 따르는 마담 보바리의 경우가 하나의 예가 될 것이다. 이와 인접하거나 그 하위로 분류될 수 있는 유형은 아이러닉한 것으로 거기에서의 배경은 인물의 감정 상태나 지배적인 분위기와 일치하지 않는다. "대사들"에서 몇 년 전에 보스톤 회랑에서 (아래에 계속)-156-157쪽

(위에서 계속)보랑비네의 풍경화를 연상시키는 '푸르고 신선한 풍경을 그 프랑스풍의 시골'에서 발견하고 흥분해 있던 스트레더는 우연히 비오네 부인과 채드가 보우트에서 밀회를 즐기는 현장을 목격한다. 스트레더에게 있어 '그것은 마치 꿈속에서와 같이 별안간 나타난 갑작스럽고, 환상적인 위기였다.'
리들이 제시하는 네 번째 배경은 '마음속의 배경'이다. 즉, 이블린의 회상 속에 있는 내면 풍경이 그것이다.
다섯째는 만화경적인 배경인데, 물리적인 외부 세계에서 상상의 세계로 재빨리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에서 이러한 예를 찾을 수 있다.-156-157쪽

마지막으로 검토해야 할 부분은 화자의 개입이 있거나,혹은 없는 이야기의 전달이다. (중략) 그러한 구분에 대한 유용한 기초가 최근에 발전된 '화행 이론'이라 불리는 학문에 의해 제공되고 있다. (중략) 그 이론은 영국의 존 오스틴에 의해 발전되었다. 간단히 말해서 문장들이 의도하는 것 -오스틴이 그것을 '언표내적(illocutionary)' 국면이라 부르는 것-은 단순히 문법적인, 혹은 '언표적(locutionary)' 국면과, 그것들이 실제로 전달되는 것, 즉 청자에 미치는 영향 혹은 '완전언표적(perlocutionary)' 국면과 날카롭게 구분된다. 그리하여 한 사람의 화자가 영어로(혹은 다른 자연언어로) 한 문장을 말할 때 그는 적어도 두 가지, 어쩌면 세 가지 일을 하고 있다. (1)그는 문장을 만드록 있다. 즉 영문법의 규칙에 의하여 문장을 형성하고 있다. ('언표화 하기'). (2)그는 그러한 언어 행위의 '내부에서', 비언어적 수단에 의해서도 똑같이 수행될 수 있는 완전히 분리된 하나의 행위를 수행하고 있다. ('언표내화 하기')
(아래에 계속)-168-169쪽

(위에서 계속)
예를 들어, 만일 그가 '물 속으로 뛰어들어'라고 말한다면, 그는 (1)명령법 구문에 관한 표준 영어 규칙에 의해서 '물 속으로 뛰어'라고 하는 어법을 수행하고 있다. 동시에 그는 (2)ㅂ물웅덩이의 가장자리에서 뚜이ㅓ드는 시늉을 함으로써 전달될 수도 있는 행동인 '명령하기'의 언표내화를 수행하고 있다. 만일 그가 자신의 대화 상대자로 하여금 물웅덩이에 뛰어들게 함으로써 언표내화의 의도를 달성한다면 (3)그는 설득이라는 완전언표화를 성취한 것이다. -168-169쪽

우리가 텍스트상의 의미론적 분석에 대하여 보다 많은 것을 알게 된다면 대화 유형들에 유효한 분류법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인상적이긴 하지만 모리스 블랑쇼는 이미 세 가지의 유용한 구분법을 제안했다. 그가 내세운 보기들은 말로, 제임스, 카프카이다. 말로의 작품에서는, 전통적인 소크라테스적 의미로, 대화는 수수한 토론의 기능을 제공한다. 그의 인물들은 그들의 열정적인 강렬함에도 불구하고, '이성저깅ㄴ 순간에... 갑자기, 시대의 압력이 의견 합치에 이르는 것을 방해할지라도, 진리를 발견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토론한다. 반면에 제임스의 인물들은 (호오도온이 말한 것처럼) '늙은 부인들과 더불어 차나 마시는' 한가한 담소의 마음으로 대화를 수행한다. 그러나 그러한 대화 속에 갑자기 하나의 '예외적인 설명'이 끼어든다. (아래에 계속)-190-191쪽

(위에서 계속) 즉 어떤 전달할 수 없는 비밀스러운 내용을 둘러싼 한동안의 대화 속에서, 그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은밀한 분위기와, 그들로 하여금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하게 하는 상호 이해 때문에 마땅히 서로가 모르고 있으리라고 생각한 그 숨겨진 비밀을 통해 주인공들이 놀랍게도 서로를 이해하고 있다는 설명이 그것이다. 카프카의 인물들은 그들의 역할상 서로를 벗어나 반대의 목적으로 말하도록 영구히 운명지워진다. 이 인물들은 실제로 대화자들이 아니다. 실제로 발화들은 교환되지 않고, 표면적 의미는 닮았을지라도 그것들은 결코 동일한 비중이나 현실성을 갖지 못한다. 어떤 것은 말 이상의 말이며, 판단과 계울과 권위와 유혹의 말들인 반면, 또 다른 것은 그 대화들이 서로 오고 가지 못하게 만드는 책략과 도피와 기만의 말들이다.-190-191쪽

우리는 정신 행위의 두 가지 유형을 분리할 수 있다. 즉 '언어화'를 수반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거칠게 말해서 인식(cognition)과 지각(perception) 사이의 구분이 그것이다. (중략) 인식이란 이미 언어적 구성물이기 때문에, 또는 수비사리 언어화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의 언어적 서사물로의 전환은 간단하고도 직접적인 것이다. 그러나 지각의 전달은 언어로의 변형을 필요로 한다. (중략) 비언어적 지각 내용들은 '지정되지 않은' 언어적 형태로 변형될 수 있는가? '내적 독백'에 의해 그것은 가능하다.
등장인물의 사고 내용을 다루는 가장 명백하고 직접적인 방식은 그것들을 '비언표적 언술'로 취급하는 것, 득 '그는 생각했다'와 같은 인용 표현과 더불어 그것들을 인용부호로 묶는 것이다. (중략) 최근에 올수록 인용 표현 또한 생략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는 '직접 자유 사고(direct free thought')이다. -195-196쪽

그러나 '감각 인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의식의 흐름'을 사용해야만 하는가? 왜 '감각 인상'은 그 자체로 완전히 적절한 용어가 되지 않는가? 우리는 보울리으이 가치 있는 구분법을 역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즉 두 개의 하위 분류를 지시하게 하는 것이다. '개념적인 내적 독백'은 등장 인물의 마음속을 스쳐 가는 실질적인 말에 대한 기록을 일컫는 것이고, '지각적인 내적 독백'은 관례적인 언어적 변형에 의해 등장인물의 발음되지 않은 감각 인상들을 전달하는 (화자의 분석 없이) 것을 일컫는 것이다.
따라서 '의식의 흐름'은 따로이 무언가를 의미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롭다. 즉 그것은 생각과 인상들을 임의로 배열하는 것이다. '흐름'이라는 말은 그것을 적절히 암시한다. 이 경우 정신은 어떤 목적을 가진 생각과는 정반대의 극을 이루는 연상의 일상적인 흐름에 몰두하는 것이다. -204쪽

만약 화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포작가와 내포독자 사이에 의사 전달이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그 내포작가는 아이러닉하며 화자는 믿을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2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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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09-03-29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쉬운 설명을 기대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읽는 동안에 더 헷갈려 버린 책. 그래도 앞부분 읽은 게 아까워서 반납하기 전에 억지로 끝까지 읽긴 했다. 문학이론을 번역서로 읽는 건 정말 고역이다.
 
장편소설과 민중언어 창비신서 88
미하일 바흐친 지음, 전승희 외 옮김 / 창비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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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련의 진술들의 끝은 실상 후에 헤겔에 의해 정식화된 소설이론으로 맺어진다. (중략) 첫째, 소설은 다른 상상적 문학장르들에서 사용되는 의미에서 '시적'이어서는 안된다. 둘째, 소설의 주인공은 서사시 혹은 비극에서 사용되는 의미에서 '영웅적'이어서는 안되며, 그 자신 속에 긍정적인 모습뿐 아니라 부정적 모습도, 고상한 모습뿐 아니라 미천한 모습도, 진지한 모습뿐 아니라 우스꽝스러운 모습도 함께 지녀야만 한다. 세째, 소설의 주인공은 이미 완성되어 불변하는 인물로 묘사되어서는 안되고 계속 진화하고 발전하는, 삶으로부터 배워나가는 인물로 그려져야 한다. 네째, 소설은 당대 세계에 의해 고대 세계에서의 서사시의 우치와 같이 되어야 한다.-26쪽

나는 그 원칙에 있어서 소설을 다른 장르들과 근본적으로 구별해주는 세 가지 기본적 특징을 발견한다. 첫째, 소설에 실현된 다중 언어적(multi languaged)의식과 결부되어 있는 소설의 문체상의 삼차원성. 둘째, 소설이 문학적 형상의 시간적 좌표에 야기하는 근본적 변화. 세째, 문학적 형상들을 구조화하기 위하여 소설에 의해 개방된 새로운 영역, 즉 모든 미완결상태의 현재(당대 현실)와의 최대한의 접촉영역.-27쪽

하나의 장르로서의 서사시는 편의상 세 가지 구성적 특징을 지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첫째, 한 민족의 서사적 과거 -괴테와 쉴러의 용어로 하면 '절대적 과거'- 가 서사시의 주제로 사용된다. 둘째, 개인의 경험과 그것으로부터 자라나온 자유로운 사상이 아니라 민족적 전통이 서사시의 원천으로 사용된다. 세째, 절대적인 서사시적 거리가 서사시적 세계를 당대현실로부터, 즉 음유시인(작가, 그리고 그의 청중)이 살고 있는 시대로부터 분리시킨다.-29쪽

희극적으로 되기 위해서는 가까와져야 한다. 우리를 웃게 만드는 모든 것은 가까이 있는 것이고 모든 희극적 창조성은 최대한의 근접영역에서 발휘된다. (중략) 웃음은 대상 및 세계를 친숙하게 접촉하는 것을 통해 그것을 완전히 자유롭게 검토할 수 있게 하는 공간을 마련해줌으로써 그것에 대한 공포심이나 충성심을 파괴한다. 웃음은 세계를 리얼리스틱하게 접근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대담성의 전제조건을 마련하는 하나의 본질적인 요소이다. 웃음이 대상을 자신에게로 끌어당겨 친숙하게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웃음은 그 대상을 대담한 탐구적 실험의 손 -과학적이면서 동시에 예술적인- 에, 그리고 자유로운 실험적 상상의 손에 인도한다. 웃음과 민중적 언어를 통해 세계를 친숙하게 만드는 일은 자유롭고 과학적으로 해독할 수 있으며 예술적으로 리얼리스틱한 창조성을 유럽문명에 가능하게 하는 데 있어서 지극히 핵심적이고 필수불가결한 한 단계였던 것이다.-41쪽

하나의 전체로서 소설을 구성하고 있는 문체구성적 단위체의 기본유형은 다음과 같다.
1. 작가에 의해 직접적으로 이루어지는 문학적 예술적 서술 및 그 변형들
2. 다양한 형태의 일상구어체 서술의 양식화 (skaz 이야기)
3. 다양한 형태의 준(準)문학적 (문어체의) 일상서술의 양식화 (편지나 일기 등)
4. 작가에 의한 다양한 형태의 비예술적 문예언어(윤리적, 철학적, 과학적 진술이라든가 수사학적, 인종학적 묘사, 비망록 등)
5. 작중인물들의 독특한 개성이 담긴 발언.
위와 같은 이질적인 문체적 단위체들은 소설 속에서 결합하여 구조화된 하나의 (단일한) 예술적 체계를 형성하며, 그 결과 전체로서의 작품이 지니는, 위의 어떤 문체적 단위체와도 동일시될 수 없는 보다 차원 높은 문체적 통일성에 종속하게 된다.-67-68쪽

우리는 여기서 이중의 강조와 이중의 문체를 가진 전형적인 혼성구문(hybrid construction)을 보게 된다. 우리가 여기서 혼성구문이라고 부르고자 하는 것은 그 문법적 성문적(compositional) 표지로 보면 단일한 화자에게 속해 있는 것이면서도 실제로는 그 안에 두 가지 발언, 두 가지 어법, 두 가지 스타일, 두 가지 '언어', 두 가지 세계관(의미 및 가치상의)이 혼합되어 있는 발언을 말한다. 거듭 말하지만 이같은 두 가지 발언과 스타일과 '언어'와 세계관 사이에는 어떠한 형식적 경게 -구문에 있어서나 화법에 있어서나- 도 없다.-116쪽

디킨즈의 소설 전체가 이와 같다. 실로 그의 작품 전체가 사방에서 밀려드는 다양한 언어의 파도로부터, 작가의 직접적 발언이라는 점점이 흩어져 있는 조그만 섬들을 구분해주는 인용부호로 점철되어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인용부호를 실제로 삽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앞서도 살펴보았듯이 하나의 어휘가 동시에 작가의 말이자 타인의 말인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120쪽

희극소설에서 발견되는 언어적 다양성과 그것의 문체적 활용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특징을 뚜렷이 보인다.
(1) 소설 속에는 다양한 '언어들'과 언어 이념적 신념체계들, 즉 장르별, 직업별, 계급 이해집단별로 각기 세분되는 언어(귀족언어, 농민언어, 상인언어, 농업노동자의 언어 등)와 경향적 일상적 언어(소문의 언어, 사교계 잡담의 언어, 하인의 언어 등) 따위가 포함된다. 그러나 이러한 어어들은 대체로 주인공이나 작중화자 따위의 특정한 인물들에 의해 대변되기보다는, 작가에 의한 직접적 담론과 번갈아 나오면서(이런 언어들과 작가의 직접적 담론 사이의 형식적 경계는 분명치 않다) '작가'로부터 직접 유래하는 단일한 객관적(비개성적) 형식 속에 통합된다.
(2) 작중에 삽입된 언어들과 사회 이념적 신념체계들은 작가의 의도를 굴절시켜 표현하는 데 활용되는 한편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들은 그릇되고 위선적이며 탐욕스러운 어떤 것이자 한계가 분명하고 설혹 합리적인 경우라도 편협하게 합리적인 어떤 것, 현실에는 맞지 않는 어떤 것임을 드러냄으로써 파괴된다. (아래에 계속)-124-125쪽

(위에서 계속) 이미 완성된 형식을 갖춘 공인된 언어로서 권위주의적이고 반동적인 지배언어인 이러한 언어들은 실생활 속에서 대부분 사멸과 대치의 운명에 처해 있다. 소설 속에서 그에 포함된 언어들에 대한 다양한 형식, 다양한 정도의 패러디적 양식화가 지배적인 것은 이 때문이다.-124-125쪽

소설을 소설로 만들어주며 소설의 문체적 고유성을 보장해주는 근본적인 조건이 바로 말하는 사람과 그의 담론이다. 이 말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측면을 주의깊게 구별해야 한다.
(1) 소설에서는 말하는 사람과 그의 담론이 언어에 의한 예술적 묘사의 대상이다. (중략)
(2) 소설 속의 화자는 본질적으로 구체적인 역사에 의해 규정되는 사회적 개인이며, 그의 담론도 '개인적 방언'이 아닌 (맹아 상태의) 사회적 언어이다. (중략)
(3) 소설 속의 화자는 언제나 어떤 정로도는 이념인(ideologue)이며, 그의 말은 언제나 이념소(ideogeme)들이다. 소설 속의 특정 언어는 언제나 세계를 바라보는 특정 방식이며, 따라서 사회적 의미를 추구하게 마련이다. -150-151쪽

서사시의 주인공이 말하는 담론은 이념적으로 경계를 정할 수 없다. (그것은 단지 형식면에서, 즉 구성이나 플롯에 의해서만 구분될 뿐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작가의 담론과 합쳐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 또한 자기 자신의 이념적 경계를 분명히 하지 않는다. 그것은 가능한 한 단 하나의 이념인 공동체의 이념과 융합한다. 서사시에는 단 하나의 일원론적이고 단일한 신념체계만이 존재한다. 반면 소설에는 그러한 신념체계가 여러 개 있으며, 주인공은 대체로 자신의 체계 내에서만 행동한다. 이런 연유로 해서 서사시에는 다양한 여러 언어들의 대변자들로서 기능하는 화자들이 없다. 서사시에서 화자는 본질적으로 작가뿐이며, 서사시의 담론은 단일하고 일원론적인 작가의 담론이다.-152-153쪽

유럽소설 발달양식의 첫번째와 두번째 흐름은 둘 다 각기 그 나름의 방식대로 일련의 특수한 문체상의 변형태들로 나누어진다. 두 가지 흐름은 서로 교차되며 여러가지 방식으로 서로 뒤섞이기도 한다. 즉 궁극적으로는 소재의 양식화와 다양한 언어에 의한 교향화 사이에 통일성이 생겨나기도 하는 것이다.-201쪽

모든 담론에는 그것 자체를 자신의 것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소유자가 있다. 모든 사람이 그의미를 공유하는 말이나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은' 말이란 없다.-231쪽

피카레스크 소설은 아직은 그 자신의 의도들을 말 그대로 교향시키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이전에 자신을 억압했던 무거운 파토스와 모든 죽어버린 강조와 거짓된 강조로부터 담론을 해방시켜서 담론의 무게를 덜어주고 어느 정도는 담론을 비워줌으로써 그같은 교향화를 위한 필수적 준비를 해나간다.-240쪽

문학사 속에서 재강조의 과정은 엄청난 중요성을 지닌다. 각 시대는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전(前) 시대의 작품들에 대해 새로운 강조점을 부여해왔다. 고전적 작품들의 역사적 삶이란 사실상 끊임없는 사회 이념적 재강조의 과정이었다. 그러한 작품들은 작신들 속에 내재해 있던 의도상의 잠재력 덕분에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때마다, 그리고 끊임없는 자기 갱신의 과정을 밟고 있는 대화적 배경 속에서 항상 의미의 새로운 측면들을 드러낼 수 있었던 작품이다. 그들의 의미 내용은 문자그대로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것이며 스슿로를 재창조해나가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 작품들이 후대의 창조적 제품들에 미치는 영향에 도 불가피하게 재강조가 포함된다. 문학상의 새로운 형상들은 종종 제전의 형상들을 재강조함으로써, 즉 형상들을 어떤 한 강조체계로부터 다른 강조체계로 (예를 들어, 희극적 평면에서 비극적 평면으로, 혹은 그 반대로) 옮겨 뫃음으로써 창조된다. -255쪽

위대한 소설적 형상들은 그것들이 창조되고 난 이후에도 계속 자라고 발전한다. 그 형상들은 자신들이 처음 태어났던 날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다른 시대에도 거듭거듭 창조적 변형을 겪을 수 있을 것이다.
"소설 속의 담론" 끝 (인용자주)-257쪽

이 글에서는 문학작품 속에 예술적으로 표현된 시간과 공간 사이의 내적 연관을 '크로노토프(chronotope)라고 부르겠다. (중략) 문학예술 속의 크로노토프에서는 공간적 지표와 시간적 지표가 용의주도하게 짜여진 구체적 전체로서 융합된다. 말하자면 시간은 부피가 생기고 살이 붙어 예술적으로 가시화되고, 공간 또한 시간과 플롯과 역사의 움직임들로 채워지고 그러한 움직임들에 대해 반응하게 된다. 이러한 두 지표들간의 융합과 교차가 예술적 크로노토프를 특징짓는 것이다.
문학작품 속의 크로노토프는 본질적으로 장르를 규정하는 의미를 지닌다. 크로노토프야말로 장르와 장르적 차이점들을 결정하는 요인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바, 그것은 문학작품 속의 크로노토프에 있어서 주된 범주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또한 크로노토프는 형식적 구성범주로서 문학작품 내의 인간 형상(image)도 크게 좌우한다. 인간형상은 언제나 본질적으로 크로노토프적이다.-260-261쪽

만남의 모티프가 공간적 지표와 시간적 지표의 통일성이라는 면에서 만남의 모티프와 유사한 이별, 탈출, 획득, 상실, 결혼 등등의 모티프들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는 사실은 특별히 중요하다. 그 중에서도 만남의 모티프가 길(大路)의 크로노토프 및 길에서의 만남과 관련한 다양한 유형의 크로노토프와의 사이에 가지는 밀접한 관계는 특별한 중요성을 지닌다. 길의 크로노토프에서는 시간적 지표와 공간적 지표 사이의 통일성이 대단히 정확하고 명백하게 드러난다. 문학에서 길의 크로노토프가 지니는 중요성은 지대하다. 거의 모든 작품이 이 모티프의 변형태를 포함하고 있으며 많은 작품들이 길의 크로노토프 및 길에서의 만남과 모험을 직접적인 기반으로 하여 구성되어 있다.
만남의 모티프는 또한 다른 중요한 모티프들, 특히 인지,비인지의 모티프와 같이 문학(가령 고대 비극)에서 지대한 역할을 담당하는 모티프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276-277쪽

악한과 광대와 바보는 그들의 주위에 자신의 특별한 小세계, 즉 자신의 크로노토프를 창조한다. (중략) 첫째로 이 인물들은 문학 속에 자신들과 더불어 광장의 간이무대나 가면극의 무대장치에 대한 생생한 연관을 끌어들인다. 그들은 평민들이 모이는 광장이라는 대단히 특수하고 극히 중요한 영역과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이들의 존재 그 자체는 직접적인 의미가 아닌 은유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들의 외양과 그들의 언행은 직접적이고 無매개적인 방식으로 이해될 수 없으며 반드시 은유적으로 파악되어야만 한다. 그들의 의미는 때로 뒤집어질 수조차 있다. 그들은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져서는 안된다. 그들과 그들의 겉모습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세째로 그들의 현존은 다른 어떤 것의 존재양식을 반영한 것이며, 그나마도 간접적인 반영이다. 그들은 삶의 가면극배우들이다. 따라서 그들의 존재는 그들이 맡은 역할과 일치하며 이 역할을 벗어나면 그들의 존재는 곳 없어진다. (아래에 계속)
-351-354쪽

(위에서 계속)
이 세 인물은 대단히 중요한, 동시에 하나의 특권이기도 한 한 가지 특징 -이 세계 속에서 '타자'가 될 권리, 즉 현존하는 인생의 범주들 중 어느 하나와도 협력하지 않을 권리- 를 지닌다. 그 범주들 중 어느 하나도 그들에게는 적합하지 않은데 그 까닭은 그들이 모든 상황의 이면과 허위를 보기 때문이다.(중략)
소설가는 그가 바라본 삶을 公表할 수 있는 위치뿐만 아니라 그가 삶을 바라보는 위치를 결정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어떤 본질적이고 형식적이고 장르적인 가면을 필요로 하고 있다. 여러가지로 변형된 광대와 바보의 가면들이 소설가를 돕게 되는 곳이 바로 여기이다. (중략) 그것들은 삶에 참여하지 않아도 될 유서깊은 바보의 특권을 통해서, 그리고 그의 유서깊은 거친 언어를 통해서 민중과 유대를 맺는다. (중략) 마침내 사적인 삶을 반영하면서 그것을 공적인 것으로 만드는 특수한 형식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351-354쪽

고대적인 복합체의 모든 측면들 중 웃음만이 여하한 방식(종교적, 신비적, 철학적)의 승화도 겪지 않았다. 웃음은 결코 공식적인 성격을 띤 적이 없었으며, 문학에서도 희극적 장르는 가장 자유분방하고 가장 통제가 적은 장르이다. (중략) 웃음은 생명없는 관료주의에 조금도 오염되지 않았다. 따라서 웃음은 다른 진지한 형식, 특히 비장한 형식처럼 왜곡되거나 허위에 찬 것으로 될 수 없었다. 웃음은 비장한 진지함이라는 껍질로 덮여 있는 공식적 허위의 외부에 존재했다. (중략)
웃음이 가장 다양하게 현현하는 곳은 바로 말이다. (중략) '일차적 의미와는 다른 의미를 활용하는' 시적 언어 사용, 즉 비융화 더불어 언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웃음을 표현하는 많은 다양한 형식들이 존재하는바, 풍자나 패러디, 해학, 농담, 다양한 형태의 희극적인 이야기 등이 그것이다. (중략) 말에 포함된 관점은 재해석되며 언어의 양식 및 언어와 사물의 관계, 그리고 언어와 화자의 관계 또한 재해석된다. (중략) 말로 웃음을 표현하는 이런 모든 특징들이 대상을 둘러싸고 있는 허위에 찬 언어적, 이데올로기적 껍데기를 벗겨내는 저 특별한 힘과 능력에 기여한다.-442-443쪽

작품 및 그 작품 안에 재현된 세계는 실제 세계의 일부가 되어 그 세계를 풍요롭게 만들며, 한편 ㅎ실제 세계는 작품이 창조되는 과정의 일부로서, 그리고 그 결과 작품이 지니게 된 생명의 일부로서 청중과 독자의 창조적 인식을 통해 작품을 끊임없이 쇄신하면서 작품과 그 작품 속의 세계로 침투한다. 두말할 나위 없이 이러한 교환 과정은 크로노토프적이다. 그 과정은 무엇보다도 먼저 역사적으로 발전하는 사회적 세계 속에서 발생하며 변화하는 역사적 공간과의 접촉을 항상 유지한다.-463쪽

문학의 영역, 더 넓게 말해서 문화의 영역은 문학 작품과 그 안의 작가의 위치에 필수불가결한 맥락을 구성하는데, 이 맥락을 떠나서는 작품이나 그 작품에 반영된 작가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다. 작가와 다양한 문학현상 및 문화현상과의 관계는 대화적 성격을 띤다. 이것은 문학작품 속의 크로노토프들간의 상호관계와 유사하다.-4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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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리피데스 비극 - 희랍어 원전 번역
에우리피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단국대학교출판부 / 1999년 1월
품절


<메데이아> 230-233
메데이아: 생명과 분별력을 가진 모든 것들 가운데 우리들 여자들이 가장 비참한 존재들이에요. 첫째 우리는 거금을 주고 남편을 사서 우리 자신의 상전으로 모셔야 해요.-22쪽

<메데이아> 294-297
메데이아: 분별있는 사람이라면 자식들을 너무 영리하게 가르쳐서는 안 돼요. 그들은 태만하다는 비난을 듣는 것말고도 시민들로부터 미움과 시기를 사게 될 테니까요.-24쪽

<메데이아> 407-409
메데이아: 우리들 여자들은 태어날 때부터 선한 일에는 서투르지만 온갖 악한 일에는 가장 영리한 장인(匠人)들이 아닌가!-29쪽

<메데이아> 569-575
이아손: 그대들 여자들은 어떤가 하면, 결혼 생활만 원만하면 모든 것을 다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결혼 생활에 무슨 불상사라도 생기면 가장 훌륭하고 가장 아름다운 것조차 가장 적대적인 것으로 여긴단 말이오. 사람들은 다른 방법으로 자식들을 낳고 여자 같은 것은 없어져 버렸으면! 그러면 인간들에게도 불행이란 것이 없을텐데!-35쪽

<알케스티스> 669-672
알케스티스: 노인들이 살아온 긴 세월과 노령에 대하여 불평을 늘어놓으며 죽기를 기원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어요.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면 아무도 죽기를 원치 않고, 노령도 그들에게는 더 이상 짐이 되지 않으니까요.-175쪽

<트로이아의 여인들> 509-510
헤카베: 그대들은 행복한 자들 중에 어느 누구도 행복하다고 믿지 마시오. 그가 죽을 때까지는!-307쪽

<엘렉트라> 938-940
엘렉트라: 너 자신도 모르게 너를 속인 가장 큰 기만은 네가 돈의 힘에 의하여 스스로 위대해졌다고 우쭐대는 것이었다. 그러나 돈은 아무 것도 아니며 잠시 우리 곁에 머물 뿐이다. 확실한 것은 타고난 인품이지 돈이 아니다.-464쪽

<엘렉트라> 426-431
농부: 그런 점들을 곰곰히 생각해 보면 손님을 접대하고 병든 몸을 치료할 비용을 대는 데 있어 돈이 얼마나 큰 힘을 갖고 있는지 알게 된단 말이야. 그러나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는 많은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니야. 배불리 먹은 사람은 부자든 가난뱅이든 똑같은 몫을 받은 셈이니까.-4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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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소설담론연구
우한용 / 삼지원 / 199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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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의 소설론을 일별해 볼 때, 장편소설의 경우 발생 배경으로서의 사회사, 작중인물의 계층의식이나 세계관, 소설이 그리고 있는 사회의 면모 등이 검토의 항목이 되어 왔다. 텍스트 자체에 대한 언급이라도 그것은 자체의 구조ㅓ에 시각을 집중하기보다는 텍스트가 보여주는 대상에 대한 일종의 지식이라는 데에 주목하게 된다. 우리는 그러한 예를 1910년대에서 1920년대에 걸쳐 나온 루카치, 가세트(Gasset)등의 소설론에서 볼 수 있다.
이에 앞서 소설을 부르주아 사회의 서사시라고 한 헤겔의 방법론이 있고, 헤겔과 루카치에 연결되면서 소설과 사회의 구조가 상동성을 띤다는 상동성이론에 의해 설명하고자 하는 골드만 등이 뒤를 잇는다. 이러한 이론은 소설을 기법 차원으로 설명하는 이전의 방식을 뛰어넘는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1920년대 소설론을 대비적으로 살필 필요가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1920년대 서구 소설론은 주로 기법론으로 기울어진 경향을 드러내었다. P 러보크라든지 헨리 제임스, EM포스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이론은 미국의 신비평과 시카고학파의 소설이론을 거쳐 프랑스의 구조주의에 이르게 된다. (아래에 계속)-32-34쪽

(위에서 계속) 이러한 이론에서 문제삼는 것은 스토리의 구조, 즉 플롯, 시점, 문체, 거리와 분위기 등의 항목이다. 텍스트의 구조를 주로 문제삼게 되는데 의도의 오류나 효과의 오류 등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이는 텍스트를 만들어낸 작가나 텍스트가 그것을 읽는 독자에게 미치는 감동 등의 주관적인 측면을 벗어나 문학연구의 객관성 혹은 과학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문학연구의 객관성을 어느 정도 보장해 준다고 하더라도 소설의 장르특성을 살리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
헤겔에 이어지는 방법론이 극단적인 이데올리기적 추상성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면 기법론 계열의 이론은 형식적 추상성에 빠지고 만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그러한 비판은 양자의 통합과 지양을 도모하지 않을 수 없다. 두 방법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기호론이 언어의 사회성을 바탕으로 하여 마련한 바흐찐의 소설기호론 혹은 소설담론의 이론이다. 이는 의사소통을 문제삼는다는 점에서 기호론에 기울어지고, 소설을 언어적인 이념의 실천 양상으로 본다는 점에서는 담론의 이론이 된다. -32-34쪽

인간은 남과 더불어 의사소통을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게 된다. 인간의 의사소통을 매우 세련되고 자유롭게 수행하는 하나의 양식으로 우리는 소설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소설 담론을 통한 공감의 산출, 주체의 결단, 이념의 실천 등을 도모하는 장으로 소설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것은 결국 소설이 기호론적인 실천의 양상을 띠지 않을 수 없는 이유에 해당한다.-36쪽

기호론적 소통구조는 서사텍스트의 이야기감(histoire), 이야기(recit), 서사체(texte narratif)의 세 차원에 관여하는 주체들로 구성된다. 이 주체들은 각각 작가, 서술자, 작중인물 등이 된다. 작가는 독자에게 간접적인 방식으로 서술자를 동원하여 이야기를 전달한다. 서술자는 작중인물들의 행동과 배경을 서술한다. 작중인물들 사이에도 이야기가 오간다. 서술자의 이야기를 피서술자가 듣는다. 피서술자는 숨겨진 독자의 의식을 겨냥한다. 피서술자, 숨겨진 독자의 이야기를 직접 읽고 파악하는 것은 실제 독자이다. 이러한 서사체의 기본구조는 작품마다 변이형으로 나타나게 된다.-45쪽

소설의 다층성과 이질언어적 특성 그리고 대화적 속성은 소설의 담론을 형성하는 기본 특성이다. 이들의 관계망 속에서 형성되는 문체는 담론의 이론으로 해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각을 바탕으로 소설의 문체론에서 전망해 볼 수 있는 사항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첫째, 방법론적 측면에서 소설언어의 기본 속성에 대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 (중략) 둘째, 장르적 관점에서 문체를 연구하는 것이다. (중략) 셋째, 국어 문체론 혹은 표현의 문체론과 소설의 문체론이 만날 수 있는 논리를 찾아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중략) 넷째, 문체론의 적용 측면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문체론을 비평에 연결짓는 방법을 통해 분석과 해석의 낙차를 좁히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중략) 끝으로 문체론이 문학교육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52-53쪽

"만무방"은 서술자의 개입으로 작중인물의 시각과 서술자의 시각이 넘나드는 가운데 현실적 언어를 동원하여 소설의 리얼리티를 살리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의미의 역전 형상을 보여줌으로써 현실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언어의 측면에서 본다면, 인간의 가장 바람직한 삶의 조건으로 설정할 수 있는 것은 의미의 공유와 생성이 원활한 세계일 것이다. 이는 개인과 전체 사이에 언어적 소통이 원활한 세계를 뜻한다. 그러한 세계에서라야 개인과 전체 사이의 소통작용이 원활해져 의미공유가 수월하고 그 결과 소외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의미의 소통이 장애를 받거나 의미공유가 이루어지지 안흔ㄴ 사회나 의미가 역전되는 사회는 바람직한 사회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어느 사회의 언어병리를 보여주는 것 자체가 그 사회에 대한 비판이라는 논리가 성립하는 것이다.-98쪽

소설을 서사론 차원에서 볼 경우, 넓은 의미의 이야기 문학의 한 갈래일 뿐이다. 인물이 있고, 그 인물이 행동을 보여주며, 행동이 구체화되는 배경이 있게 마련이다. 또한 소설을 서술하는 방법이 문제가 된다. 시점이라든지 서술자의 유형 등이 문제되는 것은 이러한 영역에서이다. 따라서 이러한 방법을 택할 경우 형식주의적 방법으로 기울게 된다. 소설을 장르론적 관점에서 보는 경우 소설은 그것이 탄생된 사회 역사적 조건을 고려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이는 시대와 이념의 문제를 고려하는 방법 즉 소설사회학적 방법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리얼리즘 소설론에서 중요한 방법론으로 활용하는 전형개념이라든지 세계관 등이 이 방법론의 중요한 검토 항목이 된다.-100쪽

액자유형의 소설은 전달되는 이야기 내용에 대한 작가의 불간섭을 원칙으로 함으로써 작품 세계의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준다. 현실과 괄호치기를 함으로써 현실이 작품에 행사하는 영향을 배제하고 예술적 독립성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액자유형을 택하는 것은 소설에서 내용으로 다루고 있는 세계의 속성과 맞아떨어질 때라야 기능적일 수 있다.-104쪽

"무녀도"를 구성하는 중요한 모티프 가운데 하나가 '근친상간' 모티프인데, 이는 금기위반이라는 원형적 의미를 지닌다. 근친상간은 앞에서 논의한 절대세계, 무한대의 혼란을 수용하는 세계를 표상하는 모티프이다. 근친상간은 가족관계의 혼란과 함께 폭력과 성스러움의 역학관계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일종의 희생제의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낭이를 욕망의 대상으로 하여 모화와 욱이는 서로 경쟁자가 되는 것이다. 낭이는 모화가 섬기는 수국 용왕의 딸이란 점에서 모화가 추구하는 욕망의 대상이 된다. 집을 나갔다가 돌아와 이제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존재로 변해 있는 욱이는 모화와 경쟁관계에 놓이게 된다. 욱이는 낭이에게 하느님을 증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서로 용납할 수 없는 경쟁관계 속에서 지라르가 말하는 짝패(le double)가 되는 것이다. 짝패의 관계는 일종의 심리적 모방의 관계인데, "경쟁자가 대상을 욕망하기 때문에 욕망주체는 그 대상을 욕망한다."-100-111쪽

무녀에게 있어서 넋을 건지는 일은 곧 자기 세계의 핵심을 건지는 행위이다. 따라서 넋을 건지는 일에 실패한다는 것은 자신의 세계에 패배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할 때 자신의 세계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죽음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 그런 점에서 모화의 죽음은 본질에 도달하는 길이다. 모화의 죽음이 재생의 제의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죽음이 세계의 완결로 된다는 데에 이 소설의 의미가 드러난다. -118쪽

한국 근대 소설사에서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계열성을 선명히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구인회'의 성립으로부터이다. 민족주의 문학과 대타적인 관계에 있던 계급주의 문학이 카프의 해산으로 인해 긴장력을 상실한 시점에서 구인회는 성립된다. 표면적으로는 카프의 세력이 약화되어 있었지만, 내적으로는 그들이 탐색해 온 이론을 실천으로 보여주던 시기이다. 주류를 상실한 평단에 등장한 '구인회'의 성격은 자연스럽게 리얼리즘과 대립적인 위치에 놓이는 것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소설은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두 계열로 분화하게 된다. 소설에서 모더니즘이 가능해짐으로써 소설의 언어적인 조건이 검토될 수 있는 가능성이 마련된 것이다. 즉 소설에서 현실의 반영보다는 자체의 언어적 조건에 대한 반성이 가능해진 것이다.-120-121쪽

담론은 일차적으로 언어행위를 띃ㅅ한다. 언어행위는 정확한 문장을 만들어 낸다든지 화자의 의도를 분명히 전달한다든지 하는 차원에 멈추지 않는다. 언어행위는 최소한 실천의 개념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언어행위에 대해서는 심리학과 철햑 영ㅇ역에서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왔다. 언어행위를 이루는 여러 요소 가운데 주체의 문제는 다양한 측면에서 검토되었다. 특히 일상언어학파의 원조가 되는 오스틴 등의 관심은 기왕의 언어학적 분석과는 또 다른 관점을 이룩할 수 있게 하였다. 오스틴은 언어행위를 다음의 셋으로 구분하고 있다. 발화행위, 발화수반행위 그리고 발화효과행위 등이 그것이다. -151-152쪽

"미의 가치는 주, 객 어느 일면에만 돌릴 수 없는 바, 한편으로는 대상의 형상과 형태에 의존함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주체의 태도와 활동에도 의존한다. 이러한 두 가지의 조건이 서로에게 미적 가치의 성립을 가능케 하며 또 그것의 높고 낮음을 규정한다. ......미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체험된 대상은 주체의 의식을 초월하여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미적 대상은 인식 대상과 달리 즉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대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미학사전" 논장, 1988, p291-184쪽

은유적 발상법이란, 명제의 형식에서 종차를 제거하는 것이다. 종차가 제거되면 동일률이 무너진다. 하나의 사물이 다른 사물과 경계를 잃게 된다. 그것이 넝어로 나타날 때는 A=B라는 공식으로 정리된다. 그 결과 정의항과 피정의항이 동일 차원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은유적 발상법은 논리가 아니라 生理 차원을 지향한다. 이것은 논리적 억압을 뚫고 나가는 힘이 되기도 하고 그 자체가 논리를 무시하는 데서 언어가 곧 사물인 세계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동원되기도 한다.-224쪽

소설은 문학적인 장에 자리잡은 하나의 담론체계이다. 소설을 통해 작가의 체험과 세계관을 드러내고 그것이 수용자의 세계 구성의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소설텍스트는 그 자체가 담론의 이중적인 체계가 된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세계를 새롭게 구성하고 수용자인 독자는 소설텍스트를 통해 세계를 재해석하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수용자는 담론의 주체로서 자기교육을 수행해 나간다. 소설의 담론은 의사소통만을 가맏ㅇ하는 텍스트가 아니다. 소설 자체가 세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과정이고 결과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자신의 자연어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담론체계를 소설 속에 변형하여 문체화한다. 그러한 점에서 소설텍스트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지닌다. 이데올로기는 "그 밑바탕에 어휘적 레퍼토리, 의미론적 대립과 약호화된 분류들 및 여러 행역자 모델과 한 사회어의 서술적 진행이 깔려 있는 일종의 이차적인 모델화의 체계'로 규정된다. (아래에 곟속)-264-265쪽

(위에서 계속) 이러한 담론을 다루는 솟헐 담론에 대한 메타담론으로서 소설 연구와 교육은 한 단계 위의 상위담론(meta-discourse)이 된다. 즉 작가의 문학적인 장과 독자의 문학적 인식의 장이 역동작용을 하는 가운데 문화적 이념을 실천하는 것이 소설교육의 진정한 모습이다. 여기에 우리는 소설의 교육이 이데올로기적인 이미지를 강하게 부각시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소설 담론의 체계에 대한 설명이나 이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기간이 길든지 짧든지 간에, 수용자의 문학적인 감수성을 확대하고 의식의 변화를 촉구하며 삶에 대한 이념을 구성하도록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264-2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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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09-03-10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학기 수업 받으면서 여러 번 들춰봐야 하는 책인 것 같다. 특히나 개별 작품 분석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것만 봐서는 아직도 막연하기만 하구나.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