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와 담론 - 영화와 소설의 서사구조
시모어 채트먼 지음, 한용환 옮김 / 푸른사상 / 2003년 9월
절판


구조주의 이론은 각각의 서사물은 두 개의 부분으로 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야기, 사건들(행위, 돌발사 등)의 내용과 그 연쇄 및 사물적 요소(등장인물이나 배경을 구성하는 것)라고 부를 만한 것이 합쳐진 이야기가 그 하나라면, 표현, 혹은 내용이 전달되는 방식인 담론이 그 다른 하나이다. 단순화시킨다면 이야기란 묘사된 서사물 속의 '무엇'이며, 담론이란 '어떻게'에 해당하는 것이다.-19쪽

서사적 담론, 즉 '어떻게'는 다시 두 개의 하부 구성인자로 나누어진다. 서사적 형태 그 자체 -서사적 전달 구조- 와 그것의 발현 -언어나 영상, 발레, 음악, 팬터마임 등등의 특정한 물리적인 매체를 통해 나타남- 이 그것이다. 서사적인 전달은 이야기의 시간과 이야기를 진술하는 시간의 관계, 혹은 이야기의 출처나 저작적 특성(화자의 목소리나 '시점', 기타 그와 유사한 점 등)과 연관된다. 당연히 매체는 전달에 영향을 미친다. -22쪽

이러한 문제는 현상학적인 미학자들,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가 박물관이나 도서관, 극장 등에서 부딪히게 되는 '실제적 대상'과 '미적 대상'간의 근본적인 차이점에 대해서 밝혀낸 바 있는 로만 잉가르덴에 의해 해결되었다. 실제적 대상이란 바깥 세계에 존재하는 사물-대리석 조각, 그림물감이 굳어 있는 캔버스, 규칙적으로 울리는 공기의 진동파, 한 덩어리로 제본된 인쇄된 종이뭉치-이다. 반면 미적 대상이란 관찰자가 그러한 사물들을 미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순간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관찰자의 마음속에 구축(또는 재구축)되는 것이다. 미적 대상은 실제적 대상의 부재 속에 존재하게 된다. 우리는 순수한 상상 속의 대상들에서도 어떤 미적 경험을 가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하나의 시를 기억 속에 살려낼 때 우리는 '글자들'이나 그에 해당하는 발음들을 단지 상상하게 될 뿐'인 것이다. (중략) '단순한' 독서는 조각을 단순하게 관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적 경험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미적 경험의 예비적인 절차일 뿐이다. 대상을 지각하는 사람은 어느 지점에서 미적 대상의 '영역', 혹은 '세계'를 정신적으로 구축해야 한다.-28-29쪽

사건에 대한 상세한 설명으로서의 서사행위 자체와 그것의 직접적인 표출 방식으로서의 실연 사이의 구분은 diegesis와 mimesis 사이의 고전적 구분, 또는 현대적인 용어로는 '말하기'와 '보여주기' 사이의 구분과 일치한다.-35쪽

몇몇 비평가들은 배경이 플롯과 인물에 관련될 수 있는 방법의 범주화를 제안했다. 자연적 배경에 관심을 기울였던 로버트 리들(R. Liddell)은 이를 다섯 유형으로 구분했다.
첫째, 공리적, 혹은 실용적 배경은 단순하고 중요성이 적고 행동에 최소한의 영향을 미치고, 일반적으로 감정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는 배경이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 좋은 예가 된다.
둘째는 상징적 배경인데, 행위와 밀접한 결합을 강조한다. 여기서 배경은 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행위와 '유사'하다. 소란스러운 돌발사들은 "위대한 유산"에서의 습지 같은 소란스러운 장소에서 일어난다. "황폐한 집"에서의 비 오는 날씨는 데드로크 양의 가슴속에 있는 눈물과 일치한다.
셋째는 무관계한 배경이다. 즉 풍경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인물들은 특별히 그것을 의식하지 않는다. 시골에 묻혀 있는 샤를르 보바리를 따르는 마담 보바리의 경우가 하나의 예가 될 것이다. 이와 인접하거나 그 하위로 분류될 수 있는 유형은 아이러닉한 것으로 거기에서의 배경은 인물의 감정 상태나 지배적인 분위기와 일치하지 않는다. "대사들"에서 몇 년 전에 보스톤 회랑에서 (아래에 계속)-156-157쪽

(위에서 계속)보랑비네의 풍경화를 연상시키는 '푸르고 신선한 풍경을 그 프랑스풍의 시골'에서 발견하고 흥분해 있던 스트레더는 우연히 비오네 부인과 채드가 보우트에서 밀회를 즐기는 현장을 목격한다. 스트레더에게 있어 '그것은 마치 꿈속에서와 같이 별안간 나타난 갑작스럽고, 환상적인 위기였다.'
리들이 제시하는 네 번째 배경은 '마음속의 배경'이다. 즉, 이블린의 회상 속에 있는 내면 풍경이 그것이다.
다섯째는 만화경적인 배경인데, 물리적인 외부 세계에서 상상의 세계로 재빨리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에서 이러한 예를 찾을 수 있다.-156-157쪽

마지막으로 검토해야 할 부분은 화자의 개입이 있거나,혹은 없는 이야기의 전달이다. (중략) 그러한 구분에 대한 유용한 기초가 최근에 발전된 '화행 이론'이라 불리는 학문에 의해 제공되고 있다. (중략) 그 이론은 영국의 존 오스틴에 의해 발전되었다. 간단히 말해서 문장들이 의도하는 것 -오스틴이 그것을 '언표내적(illocutionary)' 국면이라 부르는 것-은 단순히 문법적인, 혹은 '언표적(locutionary)' 국면과, 그것들이 실제로 전달되는 것, 즉 청자에 미치는 영향 혹은 '완전언표적(perlocutionary)' 국면과 날카롭게 구분된다. 그리하여 한 사람의 화자가 영어로(혹은 다른 자연언어로) 한 문장을 말할 때 그는 적어도 두 가지, 어쩌면 세 가지 일을 하고 있다. (1)그는 문장을 만드록 있다. 즉 영문법의 규칙에 의하여 문장을 형성하고 있다. ('언표화 하기'). (2)그는 그러한 언어 행위의 '내부에서', 비언어적 수단에 의해서도 똑같이 수행될 수 있는 완전히 분리된 하나의 행위를 수행하고 있다. ('언표내화 하기')
(아래에 계속)-168-169쪽

(위에서 계속)
예를 들어, 만일 그가 '물 속으로 뛰어들어'라고 말한다면, 그는 (1)명령법 구문에 관한 표준 영어 규칙에 의해서 '물 속으로 뛰어'라고 하는 어법을 수행하고 있다. 동시에 그는 (2)ㅂ물웅덩이의 가장자리에서 뚜이ㅓ드는 시늉을 함으로써 전달될 수도 있는 행동인 '명령하기'의 언표내화를 수행하고 있다. 만일 그가 자신의 대화 상대자로 하여금 물웅덩이에 뛰어들게 함으로써 언표내화의 의도를 달성한다면 (3)그는 설득이라는 완전언표화를 성취한 것이다. -168-169쪽

우리가 텍스트상의 의미론적 분석에 대하여 보다 많은 것을 알게 된다면 대화 유형들에 유효한 분류법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인상적이긴 하지만 모리스 블랑쇼는 이미 세 가지의 유용한 구분법을 제안했다. 그가 내세운 보기들은 말로, 제임스, 카프카이다. 말로의 작품에서는, 전통적인 소크라테스적 의미로, 대화는 수수한 토론의 기능을 제공한다. 그의 인물들은 그들의 열정적인 강렬함에도 불구하고, '이성저깅ㄴ 순간에... 갑자기, 시대의 압력이 의견 합치에 이르는 것을 방해할지라도, 진리를 발견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토론한다. 반면에 제임스의 인물들은 (호오도온이 말한 것처럼) '늙은 부인들과 더불어 차나 마시는' 한가한 담소의 마음으로 대화를 수행한다. 그러나 그러한 대화 속에 갑자기 하나의 '예외적인 설명'이 끼어든다. (아래에 계속)-190-191쪽

(위에서 계속) 즉 어떤 전달할 수 없는 비밀스러운 내용을 둘러싼 한동안의 대화 속에서, 그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은밀한 분위기와, 그들로 하여금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하게 하는 상호 이해 때문에 마땅히 서로가 모르고 있으리라고 생각한 그 숨겨진 비밀을 통해 주인공들이 놀랍게도 서로를 이해하고 있다는 설명이 그것이다. 카프카의 인물들은 그들의 역할상 서로를 벗어나 반대의 목적으로 말하도록 영구히 운명지워진다. 이 인물들은 실제로 대화자들이 아니다. 실제로 발화들은 교환되지 않고, 표면적 의미는 닮았을지라도 그것들은 결코 동일한 비중이나 현실성을 갖지 못한다. 어떤 것은 말 이상의 말이며, 판단과 계울과 권위와 유혹의 말들인 반면, 또 다른 것은 그 대화들이 서로 오고 가지 못하게 만드는 책략과 도피와 기만의 말들이다.-190-191쪽

우리는 정신 행위의 두 가지 유형을 분리할 수 있다. 즉 '언어화'를 수반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거칠게 말해서 인식(cognition)과 지각(perception) 사이의 구분이 그것이다. (중략) 인식이란 이미 언어적 구성물이기 때문에, 또는 수비사리 언어화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의 언어적 서사물로의 전환은 간단하고도 직접적인 것이다. 그러나 지각의 전달은 언어로의 변형을 필요로 한다. (중략) 비언어적 지각 내용들은 '지정되지 않은' 언어적 형태로 변형될 수 있는가? '내적 독백'에 의해 그것은 가능하다.
등장인물의 사고 내용을 다루는 가장 명백하고 직접적인 방식은 그것들을 '비언표적 언술'로 취급하는 것, 득 '그는 생각했다'와 같은 인용 표현과 더불어 그것들을 인용부호로 묶는 것이다. (중략) 최근에 올수록 인용 표현 또한 생략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는 '직접 자유 사고(direct free thought')이다. -195-196쪽

그러나 '감각 인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의식의 흐름'을 사용해야만 하는가? 왜 '감각 인상'은 그 자체로 완전히 적절한 용어가 되지 않는가? 우리는 보울리으이 가치 있는 구분법을 역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즉 두 개의 하위 분류를 지시하게 하는 것이다. '개념적인 내적 독백'은 등장 인물의 마음속을 스쳐 가는 실질적인 말에 대한 기록을 일컫는 것이고, '지각적인 내적 독백'은 관례적인 언어적 변형에 의해 등장인물의 발음되지 않은 감각 인상들을 전달하는 (화자의 분석 없이) 것을 일컫는 것이다.
따라서 '의식의 흐름'은 따로이 무언가를 의미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롭다. 즉 그것은 생각과 인상들을 임의로 배열하는 것이다. '흐름'이라는 말은 그것을 적절히 암시한다. 이 경우 정신은 어떤 목적을 가진 생각과는 정반대의 극을 이루는 연상의 일상적인 흐름에 몰두하는 것이다. -204쪽

만약 화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포작가와 내포독자 사이에 의사 전달이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그 내포작가는 아이러닉하며 화자는 믿을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2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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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09-03-29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쉬운 설명을 기대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읽는 동안에 더 헷갈려 버린 책. 그래도 앞부분 읽은 게 아까워서 반납하기 전에 억지로 끝까지 읽긴 했다. 문학이론을 번역서로 읽는 건 정말 고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