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소설담론연구
우한용 / 삼지원 / 199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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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의 소설론을 일별해 볼 때, 장편소설의 경우 발생 배경으로서의 사회사, 작중인물의 계층의식이나 세계관, 소설이 그리고 있는 사회의 면모 등이 검토의 항목이 되어 왔다. 텍스트 자체에 대한 언급이라도 그것은 자체의 구조ㅓ에 시각을 집중하기보다는 텍스트가 보여주는 대상에 대한 일종의 지식이라는 데에 주목하게 된다. 우리는 그러한 예를 1910년대에서 1920년대에 걸쳐 나온 루카치, 가세트(Gasset)등의 소설론에서 볼 수 있다.
이에 앞서 소설을 부르주아 사회의 서사시라고 한 헤겔의 방법론이 있고, 헤겔과 루카치에 연결되면서 소설과 사회의 구조가 상동성을 띤다는 상동성이론에 의해 설명하고자 하는 골드만 등이 뒤를 잇는다. 이러한 이론은 소설을 기법 차원으로 설명하는 이전의 방식을 뛰어넘는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1920년대 소설론을 대비적으로 살필 필요가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1920년대 서구 소설론은 주로 기법론으로 기울어진 경향을 드러내었다. P 러보크라든지 헨리 제임스, EM포스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이론은 미국의 신비평과 시카고학파의 소설이론을 거쳐 프랑스의 구조주의에 이르게 된다. (아래에 계속)-32-34쪽

(위에서 계속) 이러한 이론에서 문제삼는 것은 스토리의 구조, 즉 플롯, 시점, 문체, 거리와 분위기 등의 항목이다. 텍스트의 구조를 주로 문제삼게 되는데 의도의 오류나 효과의 오류 등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이는 텍스트를 만들어낸 작가나 텍스트가 그것을 읽는 독자에게 미치는 감동 등의 주관적인 측면을 벗어나 문학연구의 객관성 혹은 과학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문학연구의 객관성을 어느 정도 보장해 준다고 하더라도 소설의 장르특성을 살리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
헤겔에 이어지는 방법론이 극단적인 이데올리기적 추상성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면 기법론 계열의 이론은 형식적 추상성에 빠지고 만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그러한 비판은 양자의 통합과 지양을 도모하지 않을 수 없다. 두 방법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기호론이 언어의 사회성을 바탕으로 하여 마련한 바흐찐의 소설기호론 혹은 소설담론의 이론이다. 이는 의사소통을 문제삼는다는 점에서 기호론에 기울어지고, 소설을 언어적인 이념의 실천 양상으로 본다는 점에서는 담론의 이론이 된다. -32-34쪽

인간은 남과 더불어 의사소통을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게 된다. 인간의 의사소통을 매우 세련되고 자유롭게 수행하는 하나의 양식으로 우리는 소설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소설 담론을 통한 공감의 산출, 주체의 결단, 이념의 실천 등을 도모하는 장으로 소설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것은 결국 소설이 기호론적인 실천의 양상을 띠지 않을 수 없는 이유에 해당한다.-36쪽

기호론적 소통구조는 서사텍스트의 이야기감(histoire), 이야기(recit), 서사체(texte narratif)의 세 차원에 관여하는 주체들로 구성된다. 이 주체들은 각각 작가, 서술자, 작중인물 등이 된다. 작가는 독자에게 간접적인 방식으로 서술자를 동원하여 이야기를 전달한다. 서술자는 작중인물들의 행동과 배경을 서술한다. 작중인물들 사이에도 이야기가 오간다. 서술자의 이야기를 피서술자가 듣는다. 피서술자는 숨겨진 독자의 의식을 겨냥한다. 피서술자, 숨겨진 독자의 이야기를 직접 읽고 파악하는 것은 실제 독자이다. 이러한 서사체의 기본구조는 작품마다 변이형으로 나타나게 된다.-45쪽

소설의 다층성과 이질언어적 특성 그리고 대화적 속성은 소설의 담론을 형성하는 기본 특성이다. 이들의 관계망 속에서 형성되는 문체는 담론의 이론으로 해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각을 바탕으로 소설의 문체론에서 전망해 볼 수 있는 사항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첫째, 방법론적 측면에서 소설언어의 기본 속성에 대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 (중략) 둘째, 장르적 관점에서 문체를 연구하는 것이다. (중략) 셋째, 국어 문체론 혹은 표현의 문체론과 소설의 문체론이 만날 수 있는 논리를 찾아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중략) 넷째, 문체론의 적용 측면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문체론을 비평에 연결짓는 방법을 통해 분석과 해석의 낙차를 좁히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중략) 끝으로 문체론이 문학교육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52-53쪽

"만무방"은 서술자의 개입으로 작중인물의 시각과 서술자의 시각이 넘나드는 가운데 현실적 언어를 동원하여 소설의 리얼리티를 살리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의미의 역전 형상을 보여줌으로써 현실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언어의 측면에서 본다면, 인간의 가장 바람직한 삶의 조건으로 설정할 수 있는 것은 의미의 공유와 생성이 원활한 세계일 것이다. 이는 개인과 전체 사이에 언어적 소통이 원활한 세계를 뜻한다. 그러한 세계에서라야 개인과 전체 사이의 소통작용이 원활해져 의미공유가 수월하고 그 결과 소외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의미의 소통이 장애를 받거나 의미공유가 이루어지지 안흔ㄴ 사회나 의미가 역전되는 사회는 바람직한 사회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어느 사회의 언어병리를 보여주는 것 자체가 그 사회에 대한 비판이라는 논리가 성립하는 것이다.-98쪽

소설을 서사론 차원에서 볼 경우, 넓은 의미의 이야기 문학의 한 갈래일 뿐이다. 인물이 있고, 그 인물이 행동을 보여주며, 행동이 구체화되는 배경이 있게 마련이다. 또한 소설을 서술하는 방법이 문제가 된다. 시점이라든지 서술자의 유형 등이 문제되는 것은 이러한 영역에서이다. 따라서 이러한 방법을 택할 경우 형식주의적 방법으로 기울게 된다. 소설을 장르론적 관점에서 보는 경우 소설은 그것이 탄생된 사회 역사적 조건을 고려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이는 시대와 이념의 문제를 고려하는 방법 즉 소설사회학적 방법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리얼리즘 소설론에서 중요한 방법론으로 활용하는 전형개념이라든지 세계관 등이 이 방법론의 중요한 검토 항목이 된다.-100쪽

액자유형의 소설은 전달되는 이야기 내용에 대한 작가의 불간섭을 원칙으로 함으로써 작품 세계의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준다. 현실과 괄호치기를 함으로써 현실이 작품에 행사하는 영향을 배제하고 예술적 독립성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액자유형을 택하는 것은 소설에서 내용으로 다루고 있는 세계의 속성과 맞아떨어질 때라야 기능적일 수 있다.-104쪽

"무녀도"를 구성하는 중요한 모티프 가운데 하나가 '근친상간' 모티프인데, 이는 금기위반이라는 원형적 의미를 지닌다. 근친상간은 앞에서 논의한 절대세계, 무한대의 혼란을 수용하는 세계를 표상하는 모티프이다. 근친상간은 가족관계의 혼란과 함께 폭력과 성스러움의 역학관계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일종의 희생제의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낭이를 욕망의 대상으로 하여 모화와 욱이는 서로 경쟁자가 되는 것이다. 낭이는 모화가 섬기는 수국 용왕의 딸이란 점에서 모화가 추구하는 욕망의 대상이 된다. 집을 나갔다가 돌아와 이제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존재로 변해 있는 욱이는 모화와 경쟁관계에 놓이게 된다. 욱이는 낭이에게 하느님을 증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서로 용납할 수 없는 경쟁관계 속에서 지라르가 말하는 짝패(le double)가 되는 것이다. 짝패의 관계는 일종의 심리적 모방의 관계인데, "경쟁자가 대상을 욕망하기 때문에 욕망주체는 그 대상을 욕망한다."-100-111쪽

무녀에게 있어서 넋을 건지는 일은 곧 자기 세계의 핵심을 건지는 행위이다. 따라서 넋을 건지는 일에 실패한다는 것은 자신의 세계에 패배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할 때 자신의 세계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죽음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 그런 점에서 모화의 죽음은 본질에 도달하는 길이다. 모화의 죽음이 재생의 제의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죽음이 세계의 완결로 된다는 데에 이 소설의 의미가 드러난다. -118쪽

한국 근대 소설사에서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계열성을 선명히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구인회'의 성립으로부터이다. 민족주의 문학과 대타적인 관계에 있던 계급주의 문학이 카프의 해산으로 인해 긴장력을 상실한 시점에서 구인회는 성립된다. 표면적으로는 카프의 세력이 약화되어 있었지만, 내적으로는 그들이 탐색해 온 이론을 실천으로 보여주던 시기이다. 주류를 상실한 평단에 등장한 '구인회'의 성격은 자연스럽게 리얼리즘과 대립적인 위치에 놓이는 것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소설은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두 계열로 분화하게 된다. 소설에서 모더니즘이 가능해짐으로써 소설의 언어적인 조건이 검토될 수 있는 가능성이 마련된 것이다. 즉 소설에서 현실의 반영보다는 자체의 언어적 조건에 대한 반성이 가능해진 것이다.-120-121쪽

담론은 일차적으로 언어행위를 띃ㅅ한다. 언어행위는 정확한 문장을 만들어 낸다든지 화자의 의도를 분명히 전달한다든지 하는 차원에 멈추지 않는다. 언어행위는 최소한 실천의 개념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언어행위에 대해서는 심리학과 철햑 영ㅇ역에서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왔다. 언어행위를 이루는 여러 요소 가운데 주체의 문제는 다양한 측면에서 검토되었다. 특히 일상언어학파의 원조가 되는 오스틴 등의 관심은 기왕의 언어학적 분석과는 또 다른 관점을 이룩할 수 있게 하였다. 오스틴은 언어행위를 다음의 셋으로 구분하고 있다. 발화행위, 발화수반행위 그리고 발화효과행위 등이 그것이다. -151-152쪽

"미의 가치는 주, 객 어느 일면에만 돌릴 수 없는 바, 한편으로는 대상의 형상과 형태에 의존함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주체의 태도와 활동에도 의존한다. 이러한 두 가지의 조건이 서로에게 미적 가치의 성립을 가능케 하며 또 그것의 높고 낮음을 규정한다. ......미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체험된 대상은 주체의 의식을 초월하여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미적 대상은 인식 대상과 달리 즉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대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미학사전" 논장, 1988, p291-184쪽

은유적 발상법이란, 명제의 형식에서 종차를 제거하는 것이다. 종차가 제거되면 동일률이 무너진다. 하나의 사물이 다른 사물과 경계를 잃게 된다. 그것이 넝어로 나타날 때는 A=B라는 공식으로 정리된다. 그 결과 정의항과 피정의항이 동일 차원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은유적 발상법은 논리가 아니라 生理 차원을 지향한다. 이것은 논리적 억압을 뚫고 나가는 힘이 되기도 하고 그 자체가 논리를 무시하는 데서 언어가 곧 사물인 세계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동원되기도 한다.-224쪽

소설은 문학적인 장에 자리잡은 하나의 담론체계이다. 소설을 통해 작가의 체험과 세계관을 드러내고 그것이 수용자의 세계 구성의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소설텍스트는 그 자체가 담론의 이중적인 체계가 된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세계를 새롭게 구성하고 수용자인 독자는 소설텍스트를 통해 세계를 재해석하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수용자는 담론의 주체로서 자기교육을 수행해 나간다. 소설의 담론은 의사소통만을 가맏ㅇ하는 텍스트가 아니다. 소설 자체가 세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과정이고 결과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자신의 자연어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담론체계를 소설 속에 변형하여 문체화한다. 그러한 점에서 소설텍스트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지닌다. 이데올로기는 "그 밑바탕에 어휘적 레퍼토리, 의미론적 대립과 약호화된 분류들 및 여러 행역자 모델과 한 사회어의 서술적 진행이 깔려 있는 일종의 이차적인 모델화의 체계'로 규정된다. (아래에 곟속)-264-265쪽

(위에서 계속) 이러한 담론을 다루는 솟헐 담론에 대한 메타담론으로서 소설 연구와 교육은 한 단계 위의 상위담론(meta-discourse)이 된다. 즉 작가의 문학적인 장과 독자의 문학적 인식의 장이 역동작용을 하는 가운데 문화적 이념을 실천하는 것이 소설교육의 진정한 모습이다. 여기에 우리는 소설의 교육이 이데올로기적인 이미지를 강하게 부각시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소설 담론의 체계에 대한 설명이나 이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기간이 길든지 짧든지 간에, 수용자의 문학적인 감수성을 확대하고 의식의 변화를 촉구하며 삶에 대한 이념을 구성하도록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264-2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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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09-03-10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학기 수업 받으면서 여러 번 들춰봐야 하는 책인 것 같다. 특히나 개별 작품 분석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것만 봐서는 아직도 막연하기만 하구나.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