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의 공동체 - 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에 대한 성찰 나남신서 377
베네딕트 앤더슨 지음, 윤형숙 옮김 / 나남출판 / 2003년 10월
구판절판


그러므로 나는 인류학적 정신에서 다음과 같은 민족의 정의를 제안한다. 즉 민족은 본래 제한되고 주권을 가진 것으로 상상되는 정치공동체이다.
민족은 가장 작은 민족의 성원들도 대부분의 자기 동료들을 알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며 심지어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지도 못하지만, 구성원 각자의 마음에 서로 친교(communion)의 이미지가 살아있기 때문에 상상된 것이다. 르낭(Renan)이 "민족의 핵심은 전 소속원들이 많은 것을 공유한다는 사실이며, 동시에 전 소속원들이 많은 것을 망각해 주어야 한다는 사실이다."라고 썼을 때 그는 그의 유쾌한 화법으로 이 상상함(imagining)을 언급한 것이다. 겔너(Gellner)가 "민족주의는 민족들이 자의식에 눈뜬 것이 아니다. 민족주의는 민족이 없는 곳에 민족을 발명해낸다"라고 얼마간 잔인하게 규정했을 때 위와 유사한 논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공식화의 결점은 민족주의가 잘못된 구실 아래 가장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고 너무 애쓴 나머지 '발명'을 '상상'이나 '창조'보다는 '허위날조'와 '거짓'에 동화시킨 것이다. 이리하여 그는 민족과 병치될 수 있는 '진정한'공동체들이 존재함을 암시한다. (계속)-25-27쪽

(위에서 계속)
사실 면대면의 원초적 마을보다 큰 공동체는(그리고 아마 이 마을조차도) 상상의 산물이다. 공동체들은 그들의 거짓됨이나 참됨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상상되는 방식에 의해서 구분되어야 한다. (중략)
민족은 제한된 것으로 상상된다. 왜냐하면 10억의 인구를 가진 가장 큰 민족도 비록 유동적이기는 하지만 한정된 경계를 가지고 있어 그 너머에는 다른 민족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민족도 그 자신을 인류와 동일시하지 않는다. 어떤 구세주적 민족주의자들도 기독교도들이 어느 시대에 기독교도만 모인 행성(planet)이 도래할 것이라고 꿈꾸는 것과 같이, 모든 인류의 성원이 그들의 민족에 동참하는 날이 올 것을 꿈꾸지는 않는다.
민족은 주권을 가진 것으로 상상된다. 왜냐하면 이 개념은 계몽사상과 혁명이 신이 정한 계층적 왕국의 합법성을 무너뜨리던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아래에 계속)-25-27쪽

(위에서 계속)오늘날은 어떤 보편적인 종교의 가장 신앙심 깊은 추종자라도 보편적인 종교들이 여럿 존재한다는 사실과, 각 신앙의 존재론적 주장과 영토적 한계 사이에 이질동형(allomorphism)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런 인간의 역사 단계에서 민족들은 자유롭기를 꿈꾸며 만일 신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면, 직접 받기를 꿈꾼다. 이 자유의 표식과 상징은 주권국가이다.
마지막으로 민족은 공동체로 상상된다. 왜냐하면 각 민족에 보편화되어 있을지 모르는 실질적인 불평등과 수탈에도 불구하고 민족은 언제나 심오한 수평적 동료의식으로 상상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지난 2세기 동안 수백만의 사람들로 하여금 그렇게 제한된 상상체들을 위해 남을 죽이기보다 스스로 기꺼이 죽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이 형제애이다.-25-27쪽

이 단순한 관찰들을 이야기하는 주된 이유는 서유럽에서 18세기는 민족주의의 여명기일 뿐 아니라 종교적 사고양태의 황혼기이기 때문이다. 계몽주의와 합리적 세속주의의 세기는 그 자신의 근대적 어둠도 동반하였다. 종교적 믿음이 쇠퇴했다고 해서 믿음이 일부 진정시켰던 고통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낙원의 붕괴로 숙명만큼 종잡을 수 없는 것도 없게 되었다. 영혼의 구원이 어리석은 생각이라면 다른 형태의 연속성만큼 더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없었다. 따라서 숙명을 연속성으로, 우연을 의미 있는 일로 전환시키는 세속적인 작업이 필오하였다. 앞으로 살펴보게 되겠지만, 이러한 목적에 민족이라는 개념보다 더 적합한 것은 별로 없었으며, 현재도 별로 없다. 민족국가가 '새로운' 것이고 '역사적인' 것으로 널리 인정되고 있다면 민족국가가 정치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민족들은 언제나 기억할 수 없는 과거에서부터 나타난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민족은 끝없이 미래로 미끄러져 들어간다는 것이다. 우연을 운명으로 바꾸는 것이 민족주의의 마술이다.-31-32쪽

많은 왕조들은 정통성의 원칙이 조용히 시들어 갈 때 '민족'이라는 표어에 손을 뻗고 있었다. 프레드릭 대제(1740-1786통치) 군대에 지휘관이 대부분 '외국인들'로 구성되었던 반면에, 그의 장조카인 프레드릭 빌헬름 4세(1797-1840통치) 군대의 지휘관은 샨호르스트, 그나이세나우와 클라우제비츠의 눈부신 개혁의 결과로 전적으로 '프러시아 민족(national-Prussian)으로 구성되어 있었다.-45쪽

기본적으로 나는 민족을 상상하는 가능성 자체가 역사적으로 볼 때 아주 오래된 세 가지 근본적인 문화개념이 인간의 사고에 대해 갖고 있던 공리적 통제력(aximatic grip)을 잃어버린 때와 장소에서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이 세 가지 문화개념 중 첫째는 특정한 정본 언어(script-language)가 바로 진리와 분리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존재론적 진리에 접근할 수 있는 특권을 제공한다는 개념이었다. 기독교세계와 이슬람세계 그리고 기타 세계의 초대륙적 대 연대감을 낳게 한 것은 바로 이 개념이었다. 둘째는 다른 인간들과 구별되며 어떤 우주적(신성한) 형태의 섭리에 의해 통치하는 군주라는 상위 중심부의 주변과 그 밑에서 사회가 자연스럽게 조직된다는 믿음이었다. 지배자는 경전처럼 존재에 접근하는 접목점이었으며 존재 안에 본래부터 내재하였기에 인간의 충성심은 반드시 서열적이고 구심점을 향하여 있었다. 셋째는 우주관과 역사가 구별되지 않고 세계의 기원과 인간의 기원이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보는 시간의 개념이었다. (아래에 계속)-62-63쪽

(위에서 계속) 이러한 개념들은 서로 어우러져서 존재의 일상적인 숙명성(무엇보다 죽음, 상실, 예속)에 어떤 의미를 주며 여러 방식으로 그것들로부터 구원을 제공하며 인간의 삶을 사물의 본질 자체에 굳게 뿌리내리게 했다.
이러한 상호 연결된 확실성들이 서서히 불균등하게 퇴조하면서 우주관과 역사 사이에 엄한 쐐기를 박았다. 세 문화개념들의 퇴조는 경제변동, '발견'(사회적인 발견과 과학적인 발견), 그리고 가일층 빨라진 커뮤니케이션의 발달 등의 영향을 받아 처음에는 서유럽에서 일어나고 그 후에는 다른 곳에서도 일어났다. 그렇다면 형제애와 권력과 시간을 의미 있게 서로 연결하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아마도 인쇄자본주의보다 이러한 모색을 촉진시키고 성공적으로 만든 것도 없을 것이다. 인쇄자본주의는 빠르게 늘어나는 사람들이 심오하게 새로운 방식으로 그들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그들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연결할 수 있게 해주었다.-62-63쪽

우리는 인간언어의 숙명적 다양성 위에 자본주의와 인쇄술이 수렴됨으로써 그 기본 형태에 있어 근대 민족(nation)을 준비하는 새로운 형태의 상상의 공동체가 형성될 가능성을 창조했다고 말함으로써 지금까지의 논의를 요약할 수 있다. 이 공동체들의 잠재적 영역은 본래적으로 제한되어 있고 동시에 현존하는 정치적 경계들과 아주 우연적인 관계만을 가졌다.-75쪽

새 인쇄소를 시작하는 인쇄업자들은 신문을 그들의 생산에 포함시켰다. 흔히 인쇄업자들 자신이 신문의 주요 기고자요 때로는 유일한 기고자이기도 했다. 이렇게 하여 인쇄업자 겸 신문인들은 처음에는 본질적으로 북아메리카적인 현상이었다. 인쇄업자 겸 신문인들이 당면한 주요 문제는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우편부와 매우 밀접한 연대를 발달시켜 흔히 한쪽이 다른 한쪽을 겸하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인쇄업소는 북아메리카 통신의 중심이자 지역의 지적 생활의 핵심으로 등장했다. 스페인령 아메리카에서는 비록 느리고 간헐적이었지만 유사한 과정이 일어나 18세기 후반에 최초의 지방신문이 출현하였다.
남아메리카에서든 북아메리카에서든 무엇이 아메리카 대륙의 최초의 신문의 특성이었을까? 신문은 본질적으로 시장의 부속물로 시작했다. 초기 신문들은 본국에 대한 소식 외에 식민지의 정치적인 발령, 부호들의 결혼 등에 관한 소식과 함께 상업소식(언제 배가 도착하고 떠나며, 어느 항구에서 어떤 물건의 시세가 어떤지 등)을 실었다. (아래에 계속)-94-95쪽

(위에서 계속)달리 말하면, 같은 면에 이 결혼과 저 배, 이 가격과 저 대주교에 관해 같이 실을 수 있게 한 것은 식민행정부와 시장체계 자체의 구조였다. 이런 식으로 까라까스(Caracas)의 신문은 아주 자연스럽게, 심지어는 비정치적이라 할 수 있게, 독자라는 특정 무리에게 상상의 공동체를 창조해 주었다. 이 배, 신부(brides), 대주교, 가격들은 독자들에게 속하는 것이었다. 물론 적절한 시기에 정치적 요소가 들어오는 것을 기대할 수 있는 일이었다. -94-95쪽

한 자본가가 대개 다른 자본가의 딸과 결혼하지도 않았고 서로의 재산을 상속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일반적으로 자신들과 비슷한 수천 명의 존재들을 활자어를 통하여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문맹한 자본가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세계사적 조건에서 자본가는 본질적으로 상상의 기반 위에 결속력을 성취한 최초의 계급이었다.-111쪽

결론적으로 말해 필자는 19세기 중엽부터 시튼왓슨이 '관주도 민족주의'라고 부른 민족주의가 유럽에서 발전했다고 논하였다. 관주도 민족주의는 대중적 언어민족주의가 출현할 때까지 역사적으로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사실 관주도 민족주의는 대중의 상상된 공동체에서 배제되거나 주변화될 위협을 느낀 세력집단들-주로 왕조와 귀족의 세력집단들-에 의한 반응이었기 때문이다. 1918년 이후와 1945년 이후 일종의 지각상의 대변동이 일어나 이 세력집단들을 에소토릴(Estoril)과 몬테 까를로(Monte Carlo)에 있는 하수구 쪽으로 쏟아버렸다. 그런 관주도 민족주의는 앞서 일어난 대규모의 자발적인 대중 민족주의의 모형에서 각색한 반동적이면서 보수적인 정책들이었다. 그들은 궁극적으로 유럽과 레반트(Levant) 지역에 국한되지 않았다. 제국주의의 이름으로 비슷한 정책들이 19세기에 복속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방대한 지역에 있는 비슷한 종류의 집단들에 의해 추진되었다. 마지막으로 비유럽 문화와 역사 속으로 굴절되어 관주도 민족주의는 직접적인 예속을 피한 소수 지역(그 중에는 일본과 샴이 있다)에 있는 토착지배 집단에 의해 포착되고 모방되었다.-147-148쪽

방대한 교육산업은 미국 젊은이들이 1861-65년의 전쟁을 잠시 존재하였던 두 주권 민족국가 간의 전쟁이 아니라 '형제'간의 '시민' 정쟁으로 기억/망각하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만일 남부연방군이 독립을 유지하는 데 성공하였다면, 이 '시민' 전쟁은 기억에서 매우 비형제적인 어떤 것으로 대체되었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영국 역사책은 모든 학생들이 '정복자 윌리엄(William the Conqueror)이라고 부르도록 가르침을 받은 위대한 시조의 재미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 학생들은 정복자 윌리엄이 영어를 사용하지 않았고 그 시대에는 영어가 없었기 때문에 사용할 수도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배우지 못한다. 또한 학생들은 '무엇의 정복자인가?'에 대해서도 배우지 못한다. 왜냐하면 알기 쉬운, 유일한 근대적 대답은 '영국의 정복자'이기 때문이다. 이 모범답안은 옛 노르만인 약탈자를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성공적인 선구자로 만든다. 그래서 '정복자'는 사람들로 하여금 즉각적으로 망각할 의무가 있는 어떤 것을 상기시키는 '생 바르뗄레미'와 같은 종류의 생략부호로 작동한다.-255-256쪽

의식에서의 모든 심오한 변화는 성격상의 변화와 함께 특징적인 건망증을 가져온다.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서 그러한 망각으로부터 서술이 나온다. 사춘기가 낳은 체질적, 감정적 변화를 경험한 후 어린 시절의 의식을 '기억하기'는 불가능하다. 유아시절과 초기 성년시절 사이에 있는 얼마나 많은 수천의 날들이 직접적으로 회상하기 어려운 곳으로 사라지는가! 바랜 사진 속의 양탄자나 침대 위를 행복하게 기어다니는 벌거벗은 아이가 당신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은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중략) 이런 소외로부터 '기억될 수 없기 때문에' 서술되어야 할 인성(personhood), 정체성(identity:그렇다. 당신과 벌거벗은 아이가 동일하다)의 개념이 나온다. (중략)
민족도 근대적 인간과 마찬가지이다. 세속적, 연속적 시간에 매몰되어 있다는 인식은 연속성에 관한 모든 암시로 인하여, 또한 18세기 단절의 산물인 연속성의 경험을 '망각'하는 것에 관한 모든 암시로 인하여 '정체성' 서술의 필요성을 낳는다.-258-2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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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09-04-18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족주의 이야기를 하려면 읽지 않을 수 없는 고전이라는 의무감으로 읽었다. 앤더슨은 민족 형성에 있어서 대중의 자발성을 강조하는 학자이다. 그의 이야기에 조금 미심쩍은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내가 워낙 대중을 불신하기 때문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