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평전 읽기
지지부진하게 느릿느릿 나답지 않게 톨스토이 평전을 읽어내고 있다. 재미 있어서 그만 둘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것 저것 빠져 있는 상황 속에서도 톨스토이에 빠져 있어서, 술 마시다 술주정으로 톨스토이! 할 기세다.
중간에 한 번 더 정리해야지. 했는데, 본격적으로 작품으로 넘어가기 전인 지금 한 번 더 메모해 둔 것을 정리하고, 그 다음에 마지막 페이퍼를 써야지 싶다.
지금까지 읽은 것의 결론부터 말한다면, 톨스토이라는 이 미약하고, 어이 없을 정도로 한심한 인간. 정도 되지 않을까.
그는 심하게 여자를 밝혔다. 그는 심각하게 도박에 중독되어 있었다.
역사 이래로 심하게 여자를 밝히거나 심각하게 도박에 중독된 사람은 많았다. 둘 다인 사람도. 근데, 이 위대한 작가의 그것이 뭐가 더 황당(?)하냐면, 심하게심하게 죄책감, 죄악감을 가진다는 거다.
여자를 겁탈하고, 섹스하고 (이건 당시의 특이하지 않은 일반적인 상황이었다고 하니, 그렇게 읽겠다.)
엄청나게 후회하고,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하는 거다.
이건 어떻게 보면 상당히 꼴불견이고, 주변에 누가 이러면, 패주고 싶을텐데,
위대한 작가의 영혼 속의 엄청난 성욕,도박욕, 그리고, 특출난(?) 죄책감 까지 버무려져서 아주 독특하고, 생생한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단점이 있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위대한 인물들의 평전을 읽으며, 그 단점, 혹은 살면서 하는 여러가지 실수들이 그들을 어떻게 단련시키고, 허물어뜨리고, 그들의 위대함을 어떻게 돋보이게 하는지를 보며, 압도당하는 기분이다.
인간은 그렇게 살아있다. 위대하다. 생생하다. 엄청나게 매력적이다.
"나는 나에 대해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을 자주 들었다. '삶의 별다른 목표도 없이 사는 속이 텅 빈 인간.' 나는 가끔 다른 사람의 말을 되뇌기도 하지만, 스스로도 자신에 대해 그런 말을 자주 내뱉는다. 내 영혼에서 나는 그렇게 살면 안 되고, 사람은 삶의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행동하는 인간이 되고, 삶의 목표를 가지고 사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하는 것일까?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목표를 줄 수 없다. 나 자신이 이미 수도 없이 그렇게 해보려고 시도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사람은 삶의 목표를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거나 우리가 인식해야만 하는 어떤 것을 찾아야 한다. 나는 무엇인가 내 삶의 목표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보편적 진리든 아니면 내 소질을 개발하는 것이든.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가운데 하나는 프랭클린 일기를 계속 쓰는 것이다. 매일 일기를 쓰며, 그것에 내가 저지른 과오를 모두 기록하는 것이다.'
그에게 일기는 정말 너무너무 중요했다. 위대한 작가의 위대한 작품을 읽고, 그 작가에 대해 속속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톨스토이의 경우, 그의 작품은 그의 일기, 그가 살아온 이야기와 너무나 밀접하다. 그렇기에 톨스토이의 작품을 더 이해하기 위해서 그의 일기를 읽거나 평전을 읽는 것은 빠질 수 없는 조각이라고 생각된다.
도박 중독은 수많은 러시아 귀족 가문을 패가망신시켰듯이, 삶에 대한 심각한 위협 요소였다. 게으름과 도덕적 해이, 무력증 같은 것이 이른바 러시아니이 말하는 '잠옷 입고 공상하기'의 전형적인 특성이었다. 본래 '잠옷 입고 공상하기'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부질없는 공상만 일삼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바로 이러한 풍토 속에서 도박으로 인한 패가망신이나 염세적 사상의 추구, 자살 시도와 같은 극단적 행위가 부화되었다.
다른 시대와 역사, 다른 장소의 인물을 현대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위험하다. 이번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요사의 기사에 우익인물이니 독재자와 어떤 관계니' 하는 등의 이야기가 나오자, 댓글에 나쁜놈이네, 안 읽어야겠네. 라는 가벼워서 댓글에 줄을 달으면 저 안드로메다까지 붕붕 떠서 날아가 버릴 것 같은 그런 댓글들이 달려 있더라. 어휴 -
"신이여, 이 얼마나 슬프고 우울한 날들인지요... 제가 느낀 우울함은 스스로도 이해하기 어렵고 상상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저는 깊이 후회해야 할 일도 없고, 간절히 갈망하는 것도 없으며, 제 운명에 대해 분노해야 할 이유도 전혀 없습니다.저는 제 상상력을 통해 제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삶을 살 수 있는지도 압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제 상상력은 저를 위한 어떤 것도 제시하지 못합니다. 저는 꿈이 없습니다. 사람들을 경멸하면 거기에는 음울한 만족감이 담기지만, 저는 그렇게 할 수조차 없습니다. 저는 그들에 대해 특별한 생각을 전혀 갖고 있지 않습니다."
톨스토이가 얼마나 불완전한 인간인지를 계속해서 읽는 건, 대단히 매력적이다. 불완전은 완전한 위대함을 위해 빠지면 안 되는 필수적인 그 무엇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있다. 고민하고, 행동하고, 치열하게 살기.
121쪽, 톨스토이 <습격> 중 인용 부분, ( 기니깐, 다 옮기지는 않겠다.) 정부에서 그를 존경하고, 두려워하고, 구박 (탄압이란 말은 아직까지 어울리지 않는다. 톨스토이는 그들 중에 하나였고, 그러니깐, 고귀한 집안 출신의 톨스토이 백.작.이 었으니깐. 군인이었다. 집안의 맘대로 안 되는 아저씨 같은 존재. 라는 비유가 나와 있었다.) 은 톨스토이의 천재성을 잘 드러내준다.
문학의 파괴력. 이라는 것. 문학이, 글이 세상에, 사람을 바꿀 수 있는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나라, 시대, 사람들, 그리고, 그 펜을 쥐고 있는 위대한 작가, 톨스토이
달처럼 회색을 띤 긴 턱수염.
이 책에서 정말 깨알같이 재미난 부분들은 러시아의 대문호들과 톨스토이와의 이야기들이다.
아, 이렇게 위대한 러시아의 작가들이 다 요 시대에 올망졸망 모여 있었다니, 러시아 작가들 이 시기에 대폭발인가?
투르게네프와의 일화(일화라고 하기에는 그보다 더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 도스토옙스키와의 이야기. 디킨스. 셰익스피어. ... 그 중에서도 디킨스에 대한 이야기는 작품이야기까지 꽤 많이 나올 정도로 톨스토이와 뗄래야 뗄 수 없는 존재였다.
서로를 질투했던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
처음에 도스토옙스키는 대단히 감동을 받았지만 나중에 두 작가가 서로 늘 지니게 된 부정적 태도를 촉발시킨, 질투심과 지우기 힘든 당혹감이 톨스토이에 대한 그의 문학적 평가를 유보케 했다. 그는 나중에 이렇게 쓴다. "나는 레프 톨스토이를 대단히 좋아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그 이상의 어떤 것을 쓰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다."
도스토옙스키의 본능이 분명 그에게 말했겠지만 그 어떤 것도 진실보다 더 나아갈 수 없다. 톨스토이는 작가가 되었다. 즉 그의 삶은 그가 무엇을 썼는지에 의해 규정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톨스토이의 '유년시절' 에 대한 이야기인데, 도스토옙스키는 이 글을 유배지인 시베리아에서 읽었고, 투르게네프는 고골 예찬 조사를 썼다는 죄목으로 가택 연금 상태에서 읽었다. 투르게네프는 이 작품(유년시절)을 극찬하는데, '데이비드 카퍼필드'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언급하지 않다가 영국 평론가들이 디킨스 작품을 희미하게나마 모방했다고 말하자 무척 당황했다... 거나 하는 이야기들이 나와서 뭔가 이 작가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다는 것이 벅차고 보람되다. ㅎ
그는 세련되지 못한 목소리를 지녔고 별로 이렇다 할 만한 매력이 없었지만, 다른 저술가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말을 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설사 우리가 그에게 떠밀린다해도, 우리는 다시 멈춰 서서 그가 말하는 바를 들으려 할지 모른다. "내가 온 영혼을 사랑하고 가장 아름답게 그려내려 했던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진실이다."
169쪽, 전쟁터에서 톨스토이를 본 직업군인 글레보프 대령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단순히 전쟁터에 있는 젊은이가 아니라 자신이 표현해야 할 것을 대면하는 예술가' <전쟁과 평화>의 씨앗이 여기 뿌려지고 있었다.
디킨스의 초상화는 항상 야스나야 폴랴나에 있는 톨스토이의 서재에 걸려 있었다. 그는 디킨스를 읽고 또 읽었다. 나중에 노인이 되어서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디킨스는 점점 더 내 관심을 끈다. 나는 오를로프에게 <두 도시 이야기>를 번역할 것을 요청했고, 오즈미도프에게는 <어린 도릿>을 번역하라고 했다. 그리고 만약 내가 틈이 나면 직접 <우리가 같이 알고 있는 친구>를 번역해 보려 한다."
디킨스는 위대하다. 디킨스의 어떤 점이 톨스토이에게 그렇게 매력적이었는지 궁금하다. 궁금해 ..
톨스토이가 알렉산드라에게 보낸 편지중 정부에 대해 '쓰디쓴 악감과 극도의 혐오감, 그리고 증오를 가지고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톨스토이의 정치적 노선은 이렇다. 그는 개인의 영지와 독립생활의 기반을 지닌 사람의 가장 큰 특권인 무관심주의를 항상 견지했다.
톨스토이와 소피아와의 결혼!
그들은 서로 좋아한다는 것을 알 만큼 서로에 대해 충분히 알고 지내지도 않았다. 아마도 그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그녀가 낯설지만 매력이 있음을 알았다. 그녀는 그가 기괴하고 무섭다고 느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매우 강렬한 육체적 매력을 느꼈다. 그것을 바탕으로 그들은 역사상 가장 세밀하게 자료로 기록되고 또 가장 비참한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소피아와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흥미진진. 위에 말했듯, 아주 많은 이야기, 많은 분량으로 나오는데,
이 정도만 덧붙인다.
신혼부부가 야스나야 폴라냐에 도착하여 첫날밤을 보내고, 톨스토이는 나쁜 꿈을 꾸고 깨어난다.
이 말만으로는 그것이 악몽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사악한 꿈을 의미하는지 분간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두 단어는 틀림없이 첨가되어야 한다. "그녀가 아니었다."
새벽에 빵 터졌다. 소피아와의 결혼하기까지의 이야기가 수십 페이지에 걸쳐 나오는데, 8장 결혼의 마지막 문장
"그녀가 아니었다." 니 .. 더 읽다보면, 그녀가 맞다. 싶은데, 여튼, 신혼 첫날밤을 보낸 톨스토이의 저 감회아닌 감회섞인 두 단어의 문장은 뭐랄까 결혼의 악몽에 대단히 비비드한 색을 입혀준다고나 할까. 흐흐
여기까지.
10장부터는 드디어 <전쟁과 평화> , <안나 카레니나> , <부활>과 같은 작품들이 나온다.
셋 중 하나도 제대로 읽지 않은 나는, 이번 기회에 톨스토이 평전 마저 읽고, 톨스토이의 작품에 즐겁게 도전해보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