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의 '위대한 작가들' 시리즈 중 신간 <톨스토이>를 읽고 있다.  


앤드류 노먼 윌슨이 저자다. 저자 이력을 둘러보면 옥스퍼드에서 영문학 가르치고, 저널리스트로 옵저버, 선데이 텔레그라프 등에서 활동. '스펙테이터'의 문학 편집자로 활동. 톨스토이 전기 외에 월터 스콧 연구서, 존 밀턴과 힐레어 블록의 전기를 출간하기도 했고, 펭귄 클래식에 포함된 월터 스콧<아이반호>의 편집자였다.  

<핌리코의 연인들>로 데뷔. 존 르웰린 라이스 기념상을 받고, <치유의 기술>로 서머싯 몸 상, 남부예술문학상, 내셔널 북 어워드 수상. 그 외 <오스왈드 피시는 누구인가>, <스캔들>, <영국 신사들>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잠이 오면 자면 되는데, 어젯밤에 이 책, 읽다, 자다, 읽은데 또 읽다, 졸다, 톨스토이 꿈 꾸고, 퍼뜩 깨서 또 읽다를 무한 반복하며 지루하게 지루하게 읽어나갔다. 한 80페이지 정도 읽으니깐 드디어 재미있어진다. 800페이지 가까운 평전이라 (빽빽한 편집은 말할 것도 없고, 소위 무기가 되는 과의 묵직한 책이기도 하고) 이 정도는 각오했다. (얼마전 읽은 700페이지 넘는 에드워드 케네디 자서전이 처음부터 끝까지 온통 재미있는 것이 비정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페이퍼는 지루할 것이다. 미리 이야기해두고,  

메모해 둔 부분들을 옮겨본다.  

톨스토이의 어머니도 죽고, 아버지도 죽고, 아버지의 누이동생인 알렉산드라 일리니치나 오스텐- 사켄 백작 부인( 헥헥 ;; 러시아 이름이란 참 ;;; ) 이 아이들의 후견인을 맡게 된다.   

이 부인은 도스토옙스키 소설에서 볼법한 인물인데 '남편은 발트 해 지역 공작이었지만, 실성해서 자기 아내의 혀를 자르려고 했고, 그녀에게 총을 쏘기도 했다. 그녀의 유일한 피난처는 러시아 정교회였다. 그녀는 성자전을 읽으면서 행복해했고, 성자전을 안 읽을 때면 성자들을 모신 성지를 순례했다.'  

그녀가 야스나야 폴랴나( 톨스토이가 쭉 머물렀던 곳으로 유명) 에서 머물게 되면서 반쯤 정신 나간 떠돌이 순례자들을 극진하게 대접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에 대한 묘사 인용  

" 아주 오래전부터 러시아에는 그런 방랑자들이 존재해왔다. 그들은 어떤 기운에 사로잡혀서, 지향점이나 정치도 없이 그저 끝없이 사방을 헤매며 다니는 걸인이나 떠돌이였다. 떠돌이 집시는 아니었지만 완전히 집시 행색을 하고서 그들은 마을에서 마을로, 이곳에서 저곳으로 광활한 러시아 전역을 떠돌아다녔다. 아무도 그들이 왜 순례를 다니는지 알지 못한다. 확신컨대 그들 중 몇몇에게 왜 어디로 순례를 다니는지 물으면 그 누구도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뭐라고 적절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구체적인 동기가 없는, 단지 러시아인만이 경험하는, 과거에 대한 향수가 짙게 밴 비애감을 떨쳐내기 위해서 그렇게 떠도는 것일 것이다."  

러시아인만이 경험하는 과거에 대한 향수가 짙게 밴 비애감이라니..  

아직까지도, 다른 어느 곳보다 '러시아'라는 나라에 큰 환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러시아'가 관련되어 있다면, 알 수 없는 특별한 색채가 덧입혀지는 듯하다. 

평전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인물을 둘러싼 시대, 역사, 인물들을 읽는 재미 때문이기도 한데, 이 책에서는 당대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톨스토이의 작품과 다른 위대한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에 대해서도 많이 언급되고 인용되고 있어서, 더욱 즐겁다.  

톨스토이 문학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일기'이다.
그의 일기문 중 발췌  

" 내게 사랑의 중요한 징표는 사랑하는 대상의 마음을 아프게 하거나 불편하게 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나타난다. 명징한 두려움으로."  

거장, 귀족, 농부, 성인 등의 단편적인 이미지로만 떠돌고 있는 톨스토이의 모습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은 금단의 문을 들어서는 느낌이다.

그가 여성에 대한 욕망으로 괴로워 했다는 부분은 얼핏 들은 것 같기도 하지만 역시 새롭다.  

"여성에게서가 아니라면 도대체 우리는 누구에게서 관능적 감성이나 여성적 교태, 또 모든 상황에서 경박해지는 것이나 다양한 사악함에 대해 배울 수 있었겠는가? 여성이 아니라면 우리가 본래 지닌 대담함이나 결단력, 현명함과 정의로움을 잃게 된 것이 도대체 누구의 책임이란 말인가? 여성은 남성보다 감수성이 탁월한 존재다. 그래서 미덕이 넘치던 시대에는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한 존재였으나, 지금처럼 타락하고 부패한 시대에는 오히려 그들이 우리보다 더 저급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  

여성에 대한 욕망, 갈망이 놀랍고 새로울 것은 없으나, 그가 끊임없이 금욕하고자 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 두가지가 강렬하게 부딪히는 와중에 톨스토이의 캐릭터 라인이 뚜렷하게 보인다.  

이런 것은 또 어떤가.  

성적 행위 자체에 대해 암시적으로 기록  

" 나는 약간 떨어진 곳에서 보면 예뻐 보이는 핑크빛을 띤 어떤 것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약간 뒤쪽에 있는 문을 가만히 열었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지 못했다. 나는 수치심과 혐오감을 느꼈으며, 또한 그녀를 미워하기까지 했다. 왜냐하면 그녀 때문에 내 도덕률을 깨뜨렸기 때문이다."  

아... 불같고, 얼음같은 러시아의 사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랑 영화가 <러브 오브 시베리아>인 것이 우연이 아니다.   
사랑은 '병'이다. 화끈하게 앓고, 개박살 나는 러시아식 사랑    

꽤나 대단한 배경을 지니고 있었던 톨스토이.
형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면  

" 형은 제가 변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아마도 이렇게 말하겠지요. '그런 말은 벌써 스무 번째 하는 것이고, 너는 여전히 망상에 사로잡혀 있구나.' 하지만, 아닙니다. 이번에는 제가 정말로 전에 제가 변했다고 했던 때와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변했습니다. 이전에는 저 자신에게 '이제 변하겠어'라고 말했지만, 지금은 제가 완전히 새롭게 거듭난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변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톨스토이는 스물 한 번째에는 변했을까?  

... 안 생겨요.. 아니, 안 변해요..  

스물 한 살 톨스토이의 외모를 묘사해 놓고 이렇게 이야기한다.  

'무척 생동감 있고 조심스러운 얼굴이다. 넥타이나 연미복 또는 소파 같은 것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표정으로 우리를 응시한다. 마치 '도대체 내가 여기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지?' 하는 듯한 표정으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곳에 있다'는 의식은 러시아에서 톨스토이보다 앞서 살았던 많은 작가들에게 반복되는 주제였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세계문학사에서 가장 독특한 소설 중의 하나로 평가받는 또 그 무렵에 톨스토이가 읽었던 레르몬토프의 <우리 시대의 영웅>의 주제이기도 하다.'  

그러니깐, 이게 그거잖아. '나는 누군가.. 여긴 또 어딘가..'  

슬슬 다시 시동걸어서 톨스토이, 러시아, 러시아 문학으로 빠져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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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톨스토이 평전 읽기 세번째
    from 책과 고양이와 이대호 2010-11-04 05:06 
    지지부진하게 느릿느릿 나답지 않게 톨스토이 평전을 읽어내고 있다. 재미 있어서 그만 둘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것 저것 빠져 있는 상황 속에서도 톨스토이에 빠져 있어서, 술 마시다 술주정으로 톨스토이! 할 기세다.    중간에 한 번 더 정리해야지. 했는데, 본격적으로 작품으로 넘어가기 전인 지금 한 번 더 메모해 둔 것을 정리하고, 그 다음에 마지막 페이퍼를 써야지 싶다.   지금까지 읽은 것의 결론부터
 
 
moonnight 2010-10-29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톨스토이라니. +_+;
리뷰 부탁드려요. (조그만 소리로 의기소침;;;;)

하이드 2010-10-30 0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인용해 둔 부분 되게 재미있을 것 같지요? ㅎ 술술 넘어가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러시아문학을 좋아한다면 읽어볼만 하지요. 언제 다 읽을지는 모르지만 리뷰던 페이퍼던 더 올릴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