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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다다오의 도시방황
안도 다다오 지음, 이기웅 옮김 / 오픈하우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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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근 10년이 되어간다. 건축읽기에 붐이 일었던 2001년 즈음, 건축관련 책을 읽으면서 '물리'만 좀 잘했으면 건축에 도전할 수 있었을텐데 하고 쩝쩝거린 적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것 또한 무지이거나 게으름이었다. 유명한 건축학교를 나오지 않아도, 물리에 대한 지식이 그리 많지 않아도, '열정'만 있다면 가능할 수 있었다. 며칠만 지체되면 굶는 것은 물론이요 한 데서 자야만 할 여비만을 가지고도 훌쩍 보고 싶은 것을 향해 떠날 수 있는 '열정'. 상식에서 벗어나더라도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어떻게든 그려내어 결국은 자신의 색채를 갖게 되는 바로 그 '열정'이다. 이 '열정'은 안도 다다오가 가르쳐 주었다. 물론, 이 책으로.  

'안도 다다오의 도시방황'은 안도 다다오의 자전적 건축 순례기'로 정리할 수 있겠다. 전 세계의 유명한 건축물을 찾아다닌 이야기인데, 각 장 마다 작가는 각 건축물에 대해 알게된 배경과 건축물을 만났을 때의 에피소드, 또 그 건물을 보고 받은 느낌과 깨달은 것들을 담담히 적어나가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작품과 연결짓는다. 베트남, 미국, 프랑스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자신의 찾아낸 작품을 보고는 그 건물이 태어난 배경을 떠올린다. 그리고 단 하나의 키워드를 찾아내고 일본과 자신에게 적용시킨다. 거기에서 안도 다다오만의 독특한 건축이 시작했다. '빛의 교회' '물의 교회', 그리고 많은 주택들이.  

학자들이 줄 지어놓은 리스트 말고 각 개인이 자신의 취향에 맞춰 각자의 리스트를 만드는 것은, 만드는 자신에게나 접하는 우리에게나 새롭고 독특한 느낌을 주는 가보다. 안도 다다오만의 도시방황 건축물리스트도 독특한데, 자신의 여행여정을 간결히 정리해 나간 이야기를 들으며 그가 언급한 많은 건물들을 찾아보고 놓칠 뻔 했던 것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더욱 좋았던 건, 단순히 보기에 좋거나 예쁘거나 건축사적인 의의를 갖춘 것 말고도 처음엔 왜 대단한가 싶은 의문이 들어도 작품 안에 담긴 철학이나 집념에 대해 설명을 듣고 나면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는 건축물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 리스트에 놓인 건물들을 한 데 모아보면 안도 다다오의 취향을 더욱 깊이 알 수도 있다.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먼저 편집디자인에 관련해서다. 검정과 은색, 흰색을 자유롭게 사용하여 여백이나 글씨색에 변화를 주기위해 노력했는데, 은색을 사용했을 경우에는 책을 드는 각도에 따라서 눈이 부시기도 했고, 어떤 경우에는 글자가 전혀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다. 때문에 나는 편히 앉아서 책을 읽다가 아무 내용이 없는 페이지인 줄 알고 그냥 책장을 넘길 뻔한 경험이 생겼다.   

그리고는 사진자료에 대한 아쉬움인데, 안도 다다오가 언급한 건물들에 대한 사진 자료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을 만큼 자료가 적어서 각 장마다 도대체 어떻게 생긴 건물인가 싶어 검색을 해야만 했다. 물론, 건축을 공부하거나 관심있는 사람들이 올려놓은 포스팅 덕분에 더 많은 공부를 하게 된 것은 다행이지만, 각 장마다 관련 사진 자료를 첨부해주었다면, 책 읽기가 더욱 풍부해졌을 것 같다. 안도 다다오의 작품은 책의 중간과 마지막에 모아 보여주었는데, 그마저도 많은 양이 아니어서 그것 또한 검색을 통해 보충해야했고, 있는 사진들도 모노톤이라 조금 아쉬웠다. 책값이 좀 올라가겠지만, 사진 자료를 첨부해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처음으로 일본과 스위스 바젤에 가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안도 다다오가 빛과 물 등의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한 교회, 주택 등의 건축물들은 사진만으로는 만족하기가 어려울 만큼 매력적이었고, 각각 동양과 서양을 대표하는 건축물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서 있고, 건물이나 건물이 담고 있는 것들이나 모두 예술적 가치가 있는 것들로 채워진 스위스 바젤이라는 도시는 읽는 내내 군침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열정을 글을 통해 전해줄 수 있는 이 안도 다다오란 남자는 도대체 얼마나 깊고 뜨거운 열정을 갖고 있다는 것인지! 샘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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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 보면 옛 생각난다] 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 - 하루 한 장만 보아도, 하루 한 장만 읽어도, 온종일 행복한 그림 이야기
손철주 지음 / 현암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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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제자가, 돈 안 되는 일, 공부하겠다고 나섰을 때, 선생님은 고미술을 공부해보라 하셨다. 제자는 알아보겠다 말은 했지만,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아 그냥 두었다. 고미술이란 말은 그런 기분이 들게 했다. '나는 할 수 없을 거야.'  

그런데, 옛그림이란 말을 듣고 보면 이야기가 달라 진다. 할머니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시절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이라 생각하니, 지금 내가 보고 즐기는(어렵지만) 그림과 그리 멀지 않겠다 느껴진다. 그 생각에 힘을 얻어 책을 펼치니 딱 거기까지가 힘들 뿐이었다. 책장이 술술 넘어가 가다 멈춘 적이 여러번이다. 작가의 손말이 어찌나 구성지고 부드러운지 그 말 뜻 모를 것 같은 단어들에 덜컹 거리지도 않고 휘적휘적 나아간다. 어찌 그러십니까. 이 귀한 그림들을 이리 쉬 넘겨도 되겠습니까, 여쭈고 싶어도 한 쪽 한 쪽 그림과 글이 번갈아 불러대어 정신 놓기 일쑤다. 하이고, 이제야 마지막 그림 이야기를 듣고 숨 한 번 들이 쉬었다. 아매도 책 겉 면에 '하루 한 점만 보아도, 하루 한 편만 읽어도, 온종일 행복한 그림 이야기'라 써놓은 것은 이 깊은 뜻 지닌 그림들이 아무리 재촉을 해대도 하나씩 음미하며 즐기라는 뜻인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선 그런 말이 나올 연유가 없지.  

중학생 시절, 동양화 전공하신 미술선생님 덕으로 사군자를 열심히 그려댄 적은 있지만 지금까지 옛 그림에 대해 집중하여 본 적은 그리 많지 않았다. 미술 수업을 들어도, 미술사에 관한 글을 살펴도 거의 전부가 서양미술을 주로 다루었기 때문에, 더더욱 우리 어른들의 옛 그림과 친해질 기회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교양 좀 있어보겠다고 호암, 리움 미술관 등등 좇아다닐 적에 만난 그림들에 압도되기도 감동 받기도 했지만, 어떤 연유로 내 감정을 쥐고 흔드는 지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하지만, 예순 점이 넘는 그림들을 이야기와 함께 주욱 보고 듣고 있으려니, 어느 정도 감이 잡힌다. 다시보아도 우리 선조들의 그림은 그동안 서양미술사에 치중되어 배운 미술의 표현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 자화상을 그려도 집중하여 그리는 것이 다르니 같은 얼굴이 나올 수 없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다르니 감상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사물을 보는 눈은 또 얼마나 다른지 그리는 대상부터 다르고 각 대상에서 발견하고자 하는 아름다움이 다르니 그림이 전혀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  

처음 둘의 차이에 대해 생각할 때에는 캔버스와 한지(혹은 비단), 유화물감과 먹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만큼 표현재료에 차이가 있어서 그림에 차이가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보는 눈, 하는 생각부터가 달라 표현재료를 구하는 것이 달라진 게 아닌가 싶다. 왜 우리 어른들은 어쩜 이리도 생각하시는 게 그들과 영딴판이셨을까? 이 책 속에는 구도와 실물같다는 말 들은 있지만, 비율이나 절대미와 같은 단어는 들어있지 않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원근법을 도입한 그림도 생겨나지만 그 전부터 '원근법'이란 말만 안 썼을 뿐 깊이를 표현하는 화가들만의 방법들이 있었기도 했고, 깊이를 표현하여 그림 자체가 갖는 일루전에 집중하기 보다는 그림이 말하고자 하는 바에 집중한 것이 더 많기도 한 것을 보면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것도 같다.  

이에 더해 그림에 써놓은 글들에게서 따뜻하고 다정한 느낌을 받았다. 그림에 담은 마음을 조금이나마 더 풀어내고 싶은 화가들의 마음이 오롯이 전해졌다. 그리고 붓으로 써낸 글자는 처음부터 그 자리에 놓인 것처럼 썩 잘 어울려 그림 같기도 해보였다. 한 폭의 그림 안에 여러 겹의 이야기를 담고, 뜻을 심기 위해 꿰어맞추는 그 마음은 한편 감사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친구 사이에 전한 그림은 선물과 함께 재기가 되니 그 지혜를 배우기 위해 힘쓸 필요까지 느껴진다.

도판으로만 이 그림을 보고 있으려니, 속이 점점 쓰려온다. 지금이라도 채비를 갖춰 미술관으로 떠나고 싶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이 그림의 세계에 조금은 친한 척 발 들일 수 있을 거란 믿음에서다. 이 믿음은 개화기에 흐트러진 우리만의 방식과 그 마음이 좋다하여 지금까지 쌓은 것을 다 버리고 다시 쌓자는 것은 아니나, 돌아볼 것 돌아보면서 우리 속에서 피어나는 우리만의 소리들을 캐내고 다듬는 것은 꼭 가져야할 태도가 아니겠나는 생각에까지 미친다. 이 책 참, 여러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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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볼프강 카이저 지음, 이지혜 옮김 / 아모르문디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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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2011년 7월, 신간평가단 문화/예술 분야의 첫 책은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이다. 말 그대로 그로테스크한 그림과 함께 크고 굵게 쓰인 '그로테스크'란 글자는 나에게 거부감을 일으키기 딱 좋았다. 이 이유로 나는 이 책을 추천하지 않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책을 만든 분이 이런 표지를 만들어낸 이유를 조금 알 것도 같다. 이거야 말로 책과 내용이 일치하는 경우라고 봐야할.. 까? 나도 덩달아 그로테스크한 글쓰기를 해야하는 건 아닌지, 약간의 부담이 있지만 일단 시작하고 봐야겠다.  

그로테스크하다,는 말은 시크하다, 엣지있다, 아방가르드 하다는 단어와 같이 어떤 것의 상태를 설명하는 단어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받는 느낌에 따라서 쓸 수도 있고 안 쓸 수도 있는 그런 단어 말이다. 어쩌면 이렇게 소비되고 말 수도 있었던 '그로테스크'라는 단어를 저자는 놓치지 않고 끄집어 냈다. 그리고 하나의 장르 혹은 사조로 만들어냈다. 이야, 이것이 바로 미학이 하는 일일까? 그렇다면 정말이지 더욱 더, 공부하고 싶어지는 학문이다.  

그로테스크, 이 스쳐지나갈 수도 있는 단어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저자는 다양한 방법을 사용한다. 처음은 그 뜻과 쓰임을 밝히는 것인데, 이는 단어분해부터 시작한다. 이때, 뭣보담도 -esque'라는 어미가 만들어내는 깊이감이 그로테스크라는 단어를 단순히 이상하고 괴기스러운 것을 표현하는 데서 그치지 않게 만들어준다는 게 참 흥미로웠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깊이있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저자의 능력은 더욱더 흥미로웠고 말이다.   

그 후부터는 보통의 미학 책들이 그렇듯, 시대와 문학장르별로 단어를 파악해 나간다. 특히 제목에 명시한 대로 미술과 문학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문학 장르 안에는 연극이 포함되어 있어서 반가웠는데, 아무래도 내가 주로 배운 게 연극이라 그렇지 '미술과 문학'만 기대한 사람들에게는 조금 낯선 진행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어쩌랴, 반가운 것은 반가운 것이고, 키치적인 감상이라 해도 조금이라도 아는 이야기를 들어야 이해도 빠른 것을.

미술에 나타난 그로테스크를 설명할 때 이용되는 보스나 브리헐 등의 작품은 실제로는 보지 못했지만, 도판을 통해서 접했고, 또 미술사를 훑어보기만 해도 한 번은 만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접근하는 데 낯선 것이 많지 않았지만, 문학은 전혀 다르다. 번역자도 '이 책은 미학책이지만 저자가 독일어문학 전공이 아니면 읽기 힘든 작품들을 거론하는 바람에 이번 기회에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할 만큼 문학분야에서 다루는 소설은 낯설기가 한량 없다. 저자는 해당 작품마다 줄거리와 인물 등에 관한 설명을 덧붙여가며 설명하고 있지만, 내가 '모른다'고 생각하는 작품에 대해 친근하게 접근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괴테, 카프카 정도는 알고 있고 몇 작품은 내용을 알고 있어서 그로테스크를 설명할 때에 잘 찾아갈 수 있었던 게 다행이었다. 나머지 작품들은 들어본 적도 없는 데다가, 그로테스크를 전면에 들고 나온 작품이다보니 쉽게 이해되지도 않는 것들이어서 읽기 어려운 적도 있었다.

이런 점에서 문학에서 연극을 다룬 것은, 이해하는 데에 있어 큰 도움이 되었는데, 내가 실제로 읽거나 깊이있는 분석을 하지 못한 작품이라 할 지라도, 어디서 들어봤다는 이유만으로 더 꼼꼼히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셰익스피어', '몰리에르','뷔히너' 등의 작가 이름 뿐만 아니라 '꼬메디아 델아르떼'라는 프랑스의 즉흥극 중 하나의 장르를 설명할 때에는 친근감마저 들 정도였다.  아무래도 문학이란 장르에서도 특히 소설과 연극을 주로 이용한 이유는 '극(劇)'이라는 구조 속에서 그로테스크를 더 쉽게 설정, 표현할 수 있고, 또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다고해서 미술 분야에서 거론된 모든 것을 알고 있었느냐 하면 그것은 결코 아니다. 저자는 미술의 범주도 상당히 넓혀놓았는데, 캐리커쳐와 풍자화, 신문이나 책 등에 들어가는 삽화까지 다양한 그림들을 소개하며 그로테스크를 설명해낸다. 저자가 현대 미술의 초현실주의로까지 범주를 확대해 그로테스크를 설명하는 지점에 이르면, 저자의 설명을 넘어서서 우리 주위에 나타나는 각양각색의 그로테스크를 우리 스스로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마저 들게 된다. (이것마저 저자의 의도라면... 흠좀무?) 

 미학자의 흥미에서 시작된 이 연구는 미학이라는 틀 안에서 전개된 까닭인지 술술 읽어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흥미로운 주제와 폭넓은 예시는 책을 끝까지 읽어낼 수 있게 해준다. 지리한 장마가 그치고 찜통같은 폭염이 시작된다고 하니, 지금이야말로 공포물을 접하기 딱 알맞은 시기다. 피가 튀고 눈알이 돌아가는 공포영화, 소설과 함께 약간의 지적허영심을 채워주고, 또, 후에 '그로테스크'란 단어를 사용하는 데 있어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는 이 책을 중간중간 읽어주는 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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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 지은 집, 한국 건축 - 우리 건축의 구조와 과학을 읽다
김도경 지음 / 현암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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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집을 짓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패스트푸드점의 셋트메뉴처럼 순식간에 뚝딱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조립식 건물부터 시작하여 철제구조물 등 예전에 비해 쉽고 간단하고 매끈하게 집을 만드는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사실이죠.  대단지 아파트가 기획되는가보다 알아채기가 무섭게 한 층 한 층 높이를 더해가고, 곧 있어 분양현수막이 바람에 나부끼지요. 잠깐 한눈을 팔았을 뿐인데, 어느덧 각 창문마다 노란 불빛이 들어와 사람들이 들어와 살고 있구나, 생각하게 될 정도로 이 모든 과정이 순식간에 이루어집니다. 바야흐로 '패스트건축아레나'가 시작된 것입니다. 

부동산 매매와 관련한 기사는 신문의 주요자리를 당최 내 줄 생각을 하지 않고, 자기계발/재태크 분야에서 부동산 관련 서적이 베스트 순위를 놓치지 않는 것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집은 사는 게 아니라 사는 것'이라는 광고 카피는 역으로 우리가 집을 보는 시각이 얼마나 변화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집은 이제 정말 잘 사고 잘 팔아야 할 '투자품목'이 되었습니다.  

빈 땅만 보이면 아파트, 빌딩 등 돈이 되는 건물을 지으려고 애를 쓰고, 말짱한 강 마저 뒤엎어버리고 그 옆에 건물을 지으려고 혈안이 된 시대에 '한국 건축'을 말한다는 것은 어떤 가치가 있으며, 또 어떻게 비춰질까요?   

'지혜로 지은 집, 한국 건축'은 군더더기 없이 한옥 한 재를 지어가기 위한 세밀한 정보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기단을 놓기 위해 돌을 고르고 초석을 놓고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올리고 벽을 마감하고 바닥을 정리하고 세부적인 것들을 잘 갖출 수 있게끔 안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책은 상당히 많은 양을 꼼꼼하게 소개하게 있는데, 줄글 뿐만 아니라 사진자료와 그림, 도식까지 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이해시키고자 하는 저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한국 건축에 대해 공부하려는 학생에게는 모든 것이 외우고 익혀야 할 '지식'들일 것 같아 압도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지요. 그러나 좋은 교과서를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위로를 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세밀한 부분을 외울 필요가 없는 사람은 꼼꼼한 설명들을 따라가다가 문득, 이 모든 것을 생각해내고 지켜행한 그 시절의 건축가들을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그저 가져다놓고 조립하는 것만으로는 절대 지어낼 수 없는 복잡하고 단단한 구조물이니 특히 신경을 써야했겠지요.  게다가 평행을 맞춰야 한다고 그저 건설기계로 밀어버리거나, 마르면 단단히 굳어버리는 반죽으로 발라버리고 마는 성질 급한 사람은 혀를 내두를 정도의 인내력마저 발휘합니다.  자연이 만들어낸 것을 있는 그대로 쓰려고 하고, 재사용가능하도록 험하게 다루지 않는 그 마음씨까지 더하여 생각해보니, 이게 바로 요즘의 트렌드 '슬로우', '착한', '공정'이 갖는 목표에 닿지 않나 싶습니다.  

지어질 집에서 살게 된 가족을 생각하며 척도를 맞추고, 생활패턴에 맞춰 지반의 높이를 정하는 등의 아주 느리고, 세밀한 집짓기. 이것이 바로 슬로우하우스의 매력이겠지요. 조금 불편하더라도 '느리게 걷고 사는' 맛을 즐길 수 있는 한옥으로 평생은 아니더라도 며칠 들어갔다 나오는 것도 좋은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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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 속의 영화]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사유 속의 영화 - 영화 이론 선집 현대의 지성 136
이윤영 엮음.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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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영화관련학과 학생들은 긴장 좀 해야겠습니다. 읽든 안 읽든 상관없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책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는 필독서가 될 것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그냥' 교과서가 될 지도 모르지만, 어쩌거나 책이름 정도는 알고 있어야할 그런 책 말입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상당히 '계획적인' 영화 관련 글 모음집이기 때문이다. 

글을 묶고 번역하여 내신 이윤영님께서 교수님이시라는 것도 상당히 예민한 이유입니다만, 하필이면 묶인 글이 15개라는 것은 16주과정의 학기를 경험한 저에게는 더할나위없이 불길한 것이지요. 그러니까 한 주에 하나씩을 목표로 글을 읽어나간다면 한 학기에 한 권을 해결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물론 축제도 중간기말고사도 여기저기 포진해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 읽고 넘어가는 글이 생기는 건 아니겠지요. 아마도 그렇게 될 거에요. 하하, 나 너무 불길한 말을 하고 있는 걸까요? 

전에 그런 수업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매 시간 하나의 논문을 읽고 수업에 참여합니다. 그 날의 발표를 맡은 학생이 그 시간에 다룰 논문을 미리 열심히 공부해와서 중요 내용과 이론 등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합니다. 그 후에는 교수님께서 나오셔서 학생의 발표를 기본으로 하여 부족한 부분을 설명해주시고, 그 시간의 논문이 다루고 있는 해당학문의 주요 논점과 흐름, 전문용어 등을 알려주십시다. 학생들은 질문을 해대고 교수님께서 아주 친절하게 꼼꼼하게 설명해주십니다. 그러고나면 끝입니다.  

네, 이 책은 위와 같은 수업을 진행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매우 유혹적인 책입니다. 저만해도 저 책이면 한 학기동안 학생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칠 수 있겠구나 (학생들을 고문하며 즐거운 한 학기를 보낼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물론 저는 교수님도 강사도 아니지만요.  

이 중에는 제가 처음 대학에 입학하여 예술을 할 거라면 이건 읽고 시작하라는 발터벤야민의 '기술 복제시대의 예술작품'도 있고, 건성건성 듣고 넘긴 영화이론 시간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아이젠슈타인, 앙드레 바쟁 등의 유명인물의 글도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더 매력적이지요. 이제는 굳이 교과서가 아니어도 이 책 한 권을 사놓고 읽기만 하면 나는 영화교양은 충분해질 거라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결론으로 점프해보자면, 맞습니다. 이 책을 꼼꼼히 읽고 나면 영화이론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 뿐만 아니라 영화에서 다루는 세밀한 이론적인 부분까지 어느 정도 섭렵가능해 보입니다. 또한 왜 영화가 지극히 상업적인 면을 자랑하면서도 예술이란 장르에 포함될 수 있는 지에 대한 고민과 설명들도 가득합니다. 심지어 영화가 관계하는 학문, 기술분야가 워낙 넓고 광대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교양지식을 늘리는 것도, 인문학에서 영화라는 소재를 사용하기 위해서도 여러모로 유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저처럼 게을러서 그 중요성을 알면서도 차일피일 미루던 학생들에게 더 이상의 변명거리를 없애버릴 해결책이기도 할 겁니다. 

그 학생 중에 제가 포함될 수 있는지, 더 이상 학생은 아니라고 껴주지 않을런지는 단박에 알 수 없지만 결국 저도 차일피일 미루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읽었네요. 하핫, 며칠 뿌듯할 것만 같습니다. 아 씐나.

다만 아쉬운 것은, 번역의 문제입니다. 영화산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은 워낙 글을 어렵게 쓰는 걸 즐겼는지, 번역과정에 있어서 한국어의 마땅한 호응이 없었는지, 이유야 저는 잘 모르지만, 글들이 참 어렵습니다. 쉽게 이해되지 않은 문장들이 꽤 있었는데, 여러번 읽어서 이해가 되는 것도 있었지만 문장 자체가 어색한 경우도 꽤 있었기 때문에, 석사과정의 학생들과 여러번 독회를 가지셨다는 서문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심이 든 정도 있었지요. 아무래도 배움이 부족한 제게 더 많은 책임이 있겠으나, 좀 더 쉽게 풀어주셨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덧붙여, 영화라는 것이 현재를 반영하기 때문에, 철학과 심리학과 생득적으로 조우해야 한다는 것에 상당한 흥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술의 변화가 사람들의 전반적인 삶의 형태를 변화시키며, 하나의 장르를 대하는 태도마저 변화시킨다는 것은 미디어생태학에서 다루고 있는 부분입니다만, 미디어생태학이 태동하기 전에 영화라는 매체가 '극'이라는 장르를 접하는 방법에 일대 변혁을 가져왔다는 부분에서는 정말이지 직지심체요절을 140년이나 앞서는 금속활자를 발견한 것 만큼이나 신나는 기분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가을이 오면, 따뜻하고 사약같은 진한 커피를 옆에 두고 밑줄을 그어 가며 차근차근 한 글씩 읽어나가볼까, 생각 중입니다. 정작 가을이 오면 깜빡할 수도 있고, 새로운 신간평가 때문에 허덕이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왠지 이 책은 가을에 더 잘 어울릴 느낌이 드는 거있죠. 표지 때문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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