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 화가들의 반란, 민화]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무명화가들의 반란, 민화 정병모 교수의 민화읽기 1
정병모 지음 / 다할미디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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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는 자유다.  

책은 이 말로 시작한다. 자유롭고 극히 자유로운 그림이라 말한다. 그런 것 같다. 내키는 대로 그린 것도 같다. 중고등학교 미술시간에는 서양화 위주라 우리 그림에 대해서는 잘 말하지 않지만, 그 마저도 선비들의 그림이라는 사군자가 어떤 것인지 얘기하느라 '민화'에 대해서는 많은 얘기를 못 들었다. 들은 건, 아마도 국사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는데, 민화에는 누가 그림을 그렸는지 표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의 그림, 어느어느파라고 할 수 없고 그냥 다 끌어모아서 '민화'라 불렀다는 것이다. 

아마도 나는 그때 심각한 이분법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을텐데, 그 때문인지 수업을 들으며 민화는 궁에 발도 못 내밀겠거니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역사에 대해 시청각자료로 삼을 수 있는 건 사극 드라마 뿐이었는데, 내가 보아온 궁에는 걸린 그림이 별로 없었다. 병풍이 있어도 알 수 없는 한자로 써내린 명문들로 되어 있었던 것만 같고.  

그런데, 아닌가 보다. 한석규가 세종으로 분한 '뿌리깊은 나무(SBS)'를 보면 왕의 방에 있는 병풍은 글씨가 아닌 그림으로 되어 있다. 그것도 매난국죽 이런 거 말고 '책거리병풍'이라 말하는 민화다. 이 책에서는 정조가 구상했다고 하는데, 드라마가 꼭 모든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믿으면 곤란하니까 그러려니 하자, 아무래도 책을 좋아하는 세종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한다. 하지만 이런 그림들이 궁 안에 여기저기 있던 것은 사실이었다.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 그랬구나. 이제야 알겠다란 말이 톡 튀어 나오는 순간이다. 도대체 학교를 다니면서 뭘 듣고 배우고 기억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어지는 상황이 된 것이다. 심지어 이런 그림을 김홍도 등의 이름 있는 사람들이 그렸다는 것도 충격이었다. 도대체 민화를 뭘로 알고 있었던 걸까. 백성들만 쓸 수 있었던 그림체? 역시, 자꾸 부숴나가야 한다. 고정관념이든 뭐든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들을 다 깨부셔버려야 한다. 

그래서, 묻고 싶다. 자신의 그림에 직인을 찍지 않는 그 화가는, 화선지에 먹으로 도를 닦듯 그리지 않고 여러 색을 써서 신나게 그렸던 그 화가는, 반란이라고 생각했을까? 

역사라는 건 알수록 신기하다. 촛불 들고 광장에 나간 사람들의 삶이 제각각이듯, 우리의 조상들도 제각각의 삶을 살았을텐데 그걸 무시하고 똑같이 옷 입고 똑같이 가구를 들이고 똑같은 반찬을 먹고, 똑같은 그림을 그렸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자유'한 걸로 치면, 이건 뭐 다양하기가 이를 데 없다.   

문자도'란 건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새롭고 재미있었다. 우리가 손글씨라고 흔히 쓰는 '캘리그라피'란 말이 서양식 서예를 뜻한다는 걸 알게 된지 얼마 안 됐는데, 우리 조상님들은 이미 캘리그라피의 선구자셨고, 이에 글자 자체를 '가지고 노는' 상태에 이르셨던 거다. 
 

색도 대상도 구도도 크기도 재료도 마음도. 이렇게 자유로운 어른들의 후손인 우리도 분명 자유한 유전이 있을텐데, 너무 눌려살아서였을까 갑자기 급 안타까워진다. 그렇지만, 유전의 흔적을 보여주는 자유로운 영혼들이 속속들이 나타나고 있으니,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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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억속의 색]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우리 기억 속의 색 -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청소년권장도서
미셸 파스투로 지음, 최정수 옮김 / 안그라픽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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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는 참 다양한 학문이 많구나. 홍차가 가장 맛있는 온도와 시간에 대해 연구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그랬지만, 이번 책을 읽으면서 같은 생각을 했다. 색에 대한 연구는 '컬러리스트'라고 부르는 색의 활용에 대해서는 집중되어 있을 거라 짐작했었는데, 보다 근본적인 연구를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차갑고 따뜻한 색, 보색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건 다 이런 연구 덕이 아니겠는가. 그저 감사할 뿐!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때에는 신호등의 색이 왜 초록과 빨강으로 되어 있느냐, 노랑은 사람들에게 어떤 기분을 갖게 하는가 등의 질문과 답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어지겠거니 했다.  이런 내용도 있었지만, 내가 주목한 것은 역사와 사회상과 언어가 함께 얽혀서 색에 대한 느낌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었다. 일례로, 초록 염료를 만드는 과정에 비소가 들어가 초록 염색을 한 옷을 입거나 벽지를 발랐을 경우, 비소 중독으로 죽게 되는 일이 생기는데, 사람들은 '비소'를 문제 삼지 않고, 초록색 자체를 멀리하고 불길하게 여겼다고 했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우리도 색에 대한 이미지가 정해져 있는데. 홍안(紅顔)이란 말은 뜻그대로 보면 붉은 얼굴이지만, 이 말은 미인에게 보통 붙인다. 혈색이 좋아서 붉어졌기 때문이라는데 단순호치(丹脣皓齒 - 붉은 입술과 하얀 치아라는 뜻으로, 아름다운 여자를 이르는 말)를 생각해 봐도 '붉다'는 것이 어떤 식으로든 아름다움과 연결되어 있는 건 맞는 것 같다.   

아, 어떤 색이 예쁘다. 배색이 좋다는 등의 생각은 했지만, 더 깊이 들어가 왜 빨강이 금지를 나타내는지 궁금해 한 적은 있지만, 저자처럼 역사와 시대상을 반영할 생각은 하지 못 했다. 태어날 때부터 보게 되는 엄청난 색에 대한 정보가 우리의 색에 대한 감각을 마비시킨 건 아닐까? 마치 별 것 아닌 것처럼, 우리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이유로 말이다.  

마지막 부분에는 '무색'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지적이 참 흥미롭다. 무색과 색이 지나치게 많은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책을 읽어보라.

책을 덮고 글을 쓰려고 이것저것 떠올리니 우리의 대화에도 색에 대한 표현이 다양했다는 걸 생각하게 되었다.

재미있게도 우리에게 색色이란 단어는 '색채color'란 뜻뿐 아니라 다른 데에도 쓰였는데, 국어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것 같진 않지만(네이버 사전으로 검색하니 없었다), 색기(色妓)란 단어를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원래 이 말은 기생 중, 춤이나 노래 등을 주로 하는 '예기'에 반하여 몸을 밑천으로 하는 기생 들을 '색기'라 부르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가끔 어떤 사람에게 '섹시하다'는 말을 쓸 때, '색기'가 있다고 말을 한다. 개인적으로는 '色氣'가 아닐까 했는데, 네이버 사전에 없으니 넘어가자. 어쩌거나 이 색色이란 신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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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철학의 풍경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사진철학의 풍경들
진동선 글.사진 / 문예중앙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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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왜'란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고민을 할 겁니다. 상사에게 안 좋은 소리를 들었을 때, 월급을 받았을 때, 아침에 일어났는데 출근하기 싫을 때, 어쩌면 매순간 마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왜 이런 일들을 해야 하지, 내가 하고 있는 일이란 게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지 등등의 질문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사진작가이면서 사진평론가인 진동선 님은 이 책을 통해 자신의 고민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사진하는 사람이 사진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요. 하지만 그 고민을 하고 고민에 대한 답을 생각하고, 그것을 문장으로 정리해내려는 마음은 당연하지 못합니다. 쉬운 일도 아닐 뿐더러 하지 않는다고 해서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물론, 몇몇분에게는 생존의 문제와 연결되는 경우도 있겠습니다) 

머릿 속에 막연히 들어 있는 생각들을 문장으로 정리해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이냐는 우리가 주관식 문제를 풀 때 끙끙대던 것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알고는 있는데 써 내지 못 할 때의 그 답답함도 조금 포함되겠지요. 네, 그런데 그 어려운 일을 꿋꿋하게 해내는 용기, 그 뚝심이 느껴졌다니까요, 이 책에서요.  

아마도 이 책은 먼저는 사진작가인 자신과 자신의 작품들인 사진들에게 주는 위로, 혹은 자찬(!)의 말일 것이고, 나아가서는 사진을 공부하고, 앞으로 사진작가로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주는 선배의 말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사진과는 약간 무관한 길에 서 있지요. 그렇다면 저에게는 이 책이 어떤 것이냐. 네, 바로 '너는 네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나처럼 고민하고 있니?'라고 묻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물론, 절대 이 책은 우리에게 질책하지 않습니다. 고민해본 적이 없다면, 고민을 해보라고 그렇게 하면 좀 더 깊은 하루를 살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겠죠. 고민하고 있다면? 어떻게든 이 책은 위로가 되어줄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잠깐 짚어보고 싶은 것이 바로 '사진함'입니다. 사진을 담아놓는 함이 아니라, '사진을 하고 있다'는 뜻의 명사형이겠죠. 그래서 photographing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고요. 사진을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렇다면 우리가 각자의 일터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이쯤되면 머리가 복잡해지지요. 삶은 살아낸다.라고 말하는 것과 함께요.  

고민합시다. 사진이 주는 의미와 사진의 본질 사진의 힘에 대해 말하는 이 책과 함께, 내 삶의 의미와 내 일의 본질, 내 일이 주는 힘 또는 가치에 대해서요. 그렇게 고민하고 나면 문장으로 남겨보는 것도 좋습니다. 막연하게 이미지만 갖고 있어서 놓치고 있던 수 많은 디테일들이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 우수수 떨어져 손가락 끝에서 꽃처럼 펼쳐질 겁니다. 글이란 그런 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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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모더니즘편]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예술/대중문화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모더니즘 편 (반양장) - 미학의 눈으로 보는 아방가르드 시대의 예술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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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 어쩌지. 감성이란 게 사라진 게 아닌가 싶어 당장이라도 미술관에 달려가야할 것만 같은 두려움이 엄습하는 주간입니다. 글쎄, 동료 직원 분이 '이거 너무 예쁘지 않아요?'하고 조각상 사진을 보여주시는데, 저는 그걸 보고, (다시 생각해도 너무한데) '아, 이게 구축주의라고 할 수 있는 거구나, 구축주의는 저렇게 발현되는구나'라고 생각했다는 거 아니겠어요? 

아, 밀려드는 쓸쓸함. 그래도 나에게는 예쁜 것을 보면 예쁘다고 말하고, 감상에 젖어도 보던 그 시절이 있지 않았던가, 나에게 그런 감성이 전혀 없을 수는 없을 거라고 부정하며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미술관을 좇아다니며 예쁘다 좋다 남발하던 그 시기는 이미 10년전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어요. 아 놔 몰라!!!!!!!! 

이제는 그저 예쁘다, 라고 말할 수 없는 현대미술에 대해 우리의 시크한 SNS대변인 이신 '진중권'님은 어떻게 말씀하실까, 궁금했지요. 그래서 이 책을 기쁘게 받아읽은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술의 흐름도 어떤 사람이 어떤 시각을 가지고 보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진중권은 특히 시크하다! 라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현대미술을 아방가르드로 보고 출발했다는 것과 사조의 흐름을 따라가는 시선이 철학적인 사고에 있다는 것 때문일텐데요. 이 것을 아주 간략하게 부제에서 말하고 있죠. 부제는 뭐냐하면 바로  

 '미학의 눈으로 보는 아방가르드 시대의 예술' 

입니다. 이것이 오늘 <진중권의 서양미술사>를 설명하는 가장 간단하고 명료한 말일 것입니다.  아방가르드란 뭘까요, 미학자에게는 아방가르드란 말 자체는 더 이상 궁금하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저처럼 무지몽매한 부류에게는 이런 단어조차 생소하고 어렵단 말이지요. 

그래서 찾아보면, avant-garde는 프랑스어인데, 처음엔 군사용어로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부대를 뜻했다고 하죠. 제가 프랑스어를 아는 건 아니지만 avant이라는 단어 자체가 앞으로 향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해요. 그래서 우리는 보통 아방가르드나 전위예술이라고도 부릅니다.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모더니즘 편>은 왜 예술가들이 전투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느냐에 대한 역사적인 답들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처음 뒤샹이 소변기를 들고 미술관이 들어와 제목을 붙여 전시했을 때의 그 충격을 생각해보면 아방가르드라는 게 뭔지 조금 감이 잡히기도 하지요. '그냥 심심해서, 재미있으려고'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뒤샹에게는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대체로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이죠. 예술작품을 만들어내거나 설명하는 사람은 우리 중에 드문 비율로 존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그들의 작품세계를 '소 뒷걸음치다가 파리를 잡은 격'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렇게 시작한 사조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연히 시작한 것일지라도 예술가가 그것을 반복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말하게 되었다면 웃고 넘길 수 있는 가벼운 것이 아니게되지요. 그들에게는 어떻게든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통로가 생긴 것이니까요. 

제3 인터내셔널이 정치적인 움직임을 했으나, 그 사상을 표현하고 설득하기 위해 예술작품을 선택한 것은 분명히 예술에게 갖는 희망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매개가 된다고 말입니다. 자신의 신념을 연설이나 정책 뿐만이 아닌 예술작품으로 말하려는 시도부터가 매력적이었습니다.

우리는 무수한 예술을 만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쓰는 컴퓨터, 스마트폰 등도 디자인을 생각하지 않고는, UI와 (꼭 보이는 것만을 예술로 생각하게 되는 것 같은데 꼭 그렇지는 않다고 말씀드리고 싶은데 아.... 어떻게 써야할 지 감이 안 오네요) 각 어플들까지 모두 어떤 의미에서 예술이 될 수 있습니다.  

어려운 말들과 문장 때문에 전체를 다 이해하는 건 불가능했지만 (워낙에 방대한 양이다보니 그럴 수 밖에요) 서양미술의 흐름을 짚어내는 것도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에 읽었던 현대미술사에서는 소개되지 않았던 사조들이 있는가 하면 있을 것 같던 사조가 소개되지 않은 경우도 있거든요. 예를 들면, 구축주의랄까요?   때문에 저는 지금까지 제가 서양미술사를 보는 시각이 편중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역시, 무엇이든 단 하나의 길만 있는 건 아니구나, 이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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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 그 삶과 음악]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차이콥스키, 그 삶과 음악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가 시리즈 7
제러미 시프먼 지음, 김형수 옮김 / 포노(PHONO)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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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야 분야가 다양해져서 악기만 배운다고 해도, 바이올린, 첼로부터 클라리넷, 오카리나 등등 무수한 학원이 있어서 그 선택의 폭이 넓다. 그러나 얼마전까지 남들 다 하니까 내 자식도 다녀야 속이 풀리는 곳은 피아노 학원이 유일했다. 악기 자체는 들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무거운데 반해서 배우기는 쉬웠던 모양인지, 아니면 열손가락을 다 써서 머리가 좋아진다는 것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거나 나도 엄마 손에 이끌려 피아노 학원에 갔었다.   

학원만 다니면 뭐하나, 아쉽게도 '도레도레도'의 바이엘부터 시작하여 체르니와 하농, 바하, 모차르트, 베토벤 등등을 배우며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소나타랄지, 인벤션이랄지의 장르에 대한 구분은 전혀 하지 못 했었고, 그건 아직도 유효하다. 피아노 협주곡이라니까 그런 줄 알고 교향곡이라고 하니까 교향곡이구나 생각하지 그냥 들어서는 뭔가뭔지 도통 분간 하기가 힘들다. 그러니까. 음악, 특히 클래식에 있어서는 이런 무지랭이가 따로 없을 정도라고 해야할까? 

차이콥스키도 피아노 소품을 썼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 처음 알았다. 호두까기 인형이란 발레곡 조차도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차이콥스키라는 이름 자체도 멀게만 느껴졌는데, 이 사람의 삶과 또 음악에 대해 빼곡히 써 놓은 책을 읽게 되다니, 이거 참, 도전적인 마음이 들면서도 한구석에선 미안한 마음이 솟아올랐다.   

그러나, 책을 보면서 어느 정도 미안한 마음이 줄었는데, 차이콥스키는 내가 미안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생전에 많은 인기를 누렸었고, 그 자신 스스로도 어느 정도 자신의 작품에 대한 만족이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주위 친인척들의 사랑을 많이 받은 데다가 재정적으로도 이런저런 방식으로 여유있게 생활할 수 있었다. 아 물론, 그 인기 그 자체로 지금까지 명성이 이어진 것은 아닌데, 사후에 그 이름이 오래 남을 수 없을 만큼 평론가들의 혹평에 시달려야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이콥스키란 이름이 지금까지 남아서 많은 사람들을 울리고 웃게 하는 걸 보면, 그의 음악이 가진 생명력은 잡초만큼 강인하고 푸른 것이구나 싶기도 하다.  

음악은 강인하고 푸르지만, 음악가 스스로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읽으면 읽으수록, 차이콥스키의 예민한 감수성과 극과 극으로 달리는 감정이 실제적으로 느껴졌다. 처음에는 예전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정도로 느껴졌는데, 어린시절에 바닥까지 내려갔던 가정형편과 기숙학교에서의 생활, 동성애 성향의 발견(혹은 커밍아웃)과 어머니의 죽음을 연달아 경험했다는 것을 들으면서 그 모든 것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해결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사람은 그럴 수 없다. 아마도 괜찮은 것으로 남에게 보이려고 했거나, 혹은 자기 자신마저 괜찮다고 넘기기 위해서 외려 더욱 차분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만들어졌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다거나, 동성애적 기질을 숨기지 않았다거나, 감정의 폭이 컸다는 것은 지금 나에게 있어서는 그 사람을 남과 다른 - 정신병력이 있다고 봐야 한다거나, 천재성을 찾아봐야한다는 등의 - 평가를 내릴 이유가 되지 않는다. 사람이란 본래 각자가 남과 같은 것이 없을 정도로 특이하고 유별나다고 생각해서 일 테다. 그래서 인지, 차이콥스키는 요즘 말하는 '여린' 남자가 아니었을까, 자꾸 생각하게 되었다. 음악에 대한 열정, 혹은 집요함이 그를 작곡가로 성공하게 만들어주었을 거라고도 생각하게 되었고, 그가 보여준 음악 스타일들은 그 자신 스스로를 가장 잘 드러내는 도구가 아니었나 결론 짓게도 되었다.  

그의 음악 보다도 먼저 그의 인생을 만나게 되어 왠지 서먹한 기분이 들지만, 이제는 좀 더 집중해서 그의 음악을 들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기분이 든다. 이 책은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가 시리즈'의 일곱번째 책으로 음악가의 삶과 음악을 정리하고 알리는 데 목적을 두었다. 아무래도 음악가이다 보니 그의 삶과 음악을 그저 글로만 전하는 것이 아쉬운지 출판사는 큰 결정을 내리는데, 바로 그 음악가의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다. CD 2장에 담긴 곡들은 글 속에서 자주 언급되는 곡들로 음악가의 대표곡이라 볼 수 있다. 중간중간 안내되는 곡을 찾아 듣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가를 끌어낼 순 없었지만, 입체적인 글읽기를 한다는 기분도 들고 이 기회가 아니면 듣지 못했을 것을 듣게 된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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