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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 - 하루 한 장만 보아도, 하루 한 장만 읽어도, 온종일 행복한 그림 이야기
손철주 지음 / 현암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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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제자가, 돈 안 되는 일, 공부하겠다고 나섰을 때, 선생님은 고미술을 공부해보라 하셨다. 제자는 알아보겠다 말은 했지만,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아 그냥 두었다. 고미술이란 말은 그런 기분이 들게 했다. '나는 할 수 없을 거야.'  

그런데, 옛그림이란 말을 듣고 보면 이야기가 달라 진다. 할머니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시절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이라 생각하니, 지금 내가 보고 즐기는(어렵지만) 그림과 그리 멀지 않겠다 느껴진다. 그 생각에 힘을 얻어 책을 펼치니 딱 거기까지가 힘들 뿐이었다. 책장이 술술 넘어가 가다 멈춘 적이 여러번이다. 작가의 손말이 어찌나 구성지고 부드러운지 그 말 뜻 모를 것 같은 단어들에 덜컹 거리지도 않고 휘적휘적 나아간다. 어찌 그러십니까. 이 귀한 그림들을 이리 쉬 넘겨도 되겠습니까, 여쭈고 싶어도 한 쪽 한 쪽 그림과 글이 번갈아 불러대어 정신 놓기 일쑤다. 하이고, 이제야 마지막 그림 이야기를 듣고 숨 한 번 들이 쉬었다. 아매도 책 겉 면에 '하루 한 점만 보아도, 하루 한 편만 읽어도, 온종일 행복한 그림 이야기'라 써놓은 것은 이 깊은 뜻 지닌 그림들이 아무리 재촉을 해대도 하나씩 음미하며 즐기라는 뜻인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선 그런 말이 나올 연유가 없지.  

중학생 시절, 동양화 전공하신 미술선생님 덕으로 사군자를 열심히 그려댄 적은 있지만 지금까지 옛 그림에 대해 집중하여 본 적은 그리 많지 않았다. 미술 수업을 들어도, 미술사에 관한 글을 살펴도 거의 전부가 서양미술을 주로 다루었기 때문에, 더더욱 우리 어른들의 옛 그림과 친해질 기회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교양 좀 있어보겠다고 호암, 리움 미술관 등등 좇아다닐 적에 만난 그림들에 압도되기도 감동 받기도 했지만, 어떤 연유로 내 감정을 쥐고 흔드는 지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하지만, 예순 점이 넘는 그림들을 이야기와 함께 주욱 보고 듣고 있으려니, 어느 정도 감이 잡힌다. 다시보아도 우리 선조들의 그림은 그동안 서양미술사에 치중되어 배운 미술의 표현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 자화상을 그려도 집중하여 그리는 것이 다르니 같은 얼굴이 나올 수 없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다르니 감상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사물을 보는 눈은 또 얼마나 다른지 그리는 대상부터 다르고 각 대상에서 발견하고자 하는 아름다움이 다르니 그림이 전혀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  

처음 둘의 차이에 대해 생각할 때에는 캔버스와 한지(혹은 비단), 유화물감과 먹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만큼 표현재료에 차이가 있어서 그림에 차이가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보는 눈, 하는 생각부터가 달라 표현재료를 구하는 것이 달라진 게 아닌가 싶다. 왜 우리 어른들은 어쩜 이리도 생각하시는 게 그들과 영딴판이셨을까? 이 책 속에는 구도와 실물같다는 말 들은 있지만, 비율이나 절대미와 같은 단어는 들어있지 않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원근법을 도입한 그림도 생겨나지만 그 전부터 '원근법'이란 말만 안 썼을 뿐 깊이를 표현하는 화가들만의 방법들이 있었기도 했고, 깊이를 표현하여 그림 자체가 갖는 일루전에 집중하기 보다는 그림이 말하고자 하는 바에 집중한 것이 더 많기도 한 것을 보면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것도 같다.  

이에 더해 그림에 써놓은 글들에게서 따뜻하고 다정한 느낌을 받았다. 그림에 담은 마음을 조금이나마 더 풀어내고 싶은 화가들의 마음이 오롯이 전해졌다. 그리고 붓으로 써낸 글자는 처음부터 그 자리에 놓인 것처럼 썩 잘 어울려 그림 같기도 해보였다. 한 폭의 그림 안에 여러 겹의 이야기를 담고, 뜻을 심기 위해 꿰어맞추는 그 마음은 한편 감사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친구 사이에 전한 그림은 선물과 함께 재기가 되니 그 지혜를 배우기 위해 힘쓸 필요까지 느껴진다.

도판으로만 이 그림을 보고 있으려니, 속이 점점 쓰려온다. 지금이라도 채비를 갖춰 미술관으로 떠나고 싶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이 그림의 세계에 조금은 친한 척 발 들일 수 있을 거란 믿음에서다. 이 믿음은 개화기에 흐트러진 우리만의 방식과 그 마음이 좋다하여 지금까지 쌓은 것을 다 버리고 다시 쌓자는 것은 아니나, 돌아볼 것 돌아보면서 우리 속에서 피어나는 우리만의 소리들을 캐내고 다듬는 것은 꼭 가져야할 태도가 아니겠나는 생각에까지 미친다. 이 책 참, 여러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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