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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레슬러 - The Wrestle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그는 결코 멋지지도 않았고, 아름답지도 않았다. 그저, 그런 인생을 살았을 뿐이다.
세상을 다 가진 영웅이었다가 결국 자신이 영웅이었던 링 위를 떠나지 못하는 한 남자의 인생.
객관적으로 말해 못난 인생이었다. 한때 잘 나갔었다고 가족들을 돌보지 않았고, 그들이 떠나가도 신경쓰지 않았고, 자신을 향한 환호에 황홀해지기만 했고, 인기에 뒤따른 쾌락도 쫓았고, 기고만장했고, 세상에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했고...
그런 인생이라고 어찌 연민을 품을 여지조차 없을리 있겠나.
세상의 가장 높은 곳에서, 저 지하의 밑바닥까지 추락해본 자. 그가 이 영화의 레슬러 랜디 램이었고, 미키루크였다.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래서 그의 인생이 옳았다는 것은 아니다.
똑같이 쇼를 벌여 먹고사는 스트리퍼 캐시디 역시 이제는 퇴물 스트리퍼가 되어서 여기저기서 무시나 당하지만, 그녀의 삶은 성실하고 헌신적이다.
다만 그런 잘못된 인생도 되돌이켜볼 여지는 있고, 연민을 품을수도 있다는 것이다.
마음아플 정도로 오버랩되는 역활과 배우의 싱크로. 이 영화가 미키루크를 위한 영화가 아니었다면 또 누구를 위한 영화였을까.
오래전에 너무 바빠서, 인기의 환락에 빠져서 잃어버렸던 딸 앞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던 자가 또다시 실수를 저지르는 것을 그저 그 인간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수 밖에 없을까.
실수를 되풀이 하는 인생. 되돌이켜보면 깔끔하게 정리되지않고, 수많은 후회가 남는 인생.
죽을 줄 알면서도 불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같은 인생.
참으로 바보같지만, 참으로 불쌍하고 가슴아픈 인생.
신이 있다면, 세상에 왜 이런 인생들을 이렇게나 많이 내버려 둔 건지.
실패작마저 사랑하는 예술가처럼, 신은 그의 이런 인생을 더 가련히 생각해 주었을까.
영화를 보면서 사는 게 참 쓸쓸하고, 모든게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 자신과 가장 잘 어울리는 인생의 마지막 선택을 한 그에게 박수를 보내며 마음으로나마 같이 울어주고 싶었다.
꿈이 있는 자의 마지막이 항상 해피엔딩이기만 한다면 좋겠지만, 아마도 그 꿈들의 태반은 버려지거나 타락하거나, 또는 이 영화의 주인공처럼 추락에 추락을 거듭해 결국은 씁쓸하게 끝나버릴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꿈은 여전히 빛난다는 것.
어떤 인생이었어도 나름대로 살아보려고 아둥바둥하는 모습을 기특하게 바라봐줘야 한다는 것.
그의 말처럼, 우리가 있어야할 곳은 바로 여기다.
나를 추락시키고, 낙담하게 만들고, 모든 것을 얻게도, 모든 것을 잃게도 만들었던 지긋지긋한 바로 이곳.
마침표가 없는 인생. 마침표를 찍지 않은 영화. 왜 이 영화를 이제서야 보게되었는지 억울할 지경이었다.
21그램이후 다시 한번 나를 울린 대런 아르노브스키의 영화.
엔딩 타이틀에 친구 미키루크를 위해 헌사한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노래가 흘러나올 때는 쉬이 자리에서 일어날수가 없더라. 내내 갑갑했던 마음이 벅차오르면서 그 노래에서 비로소 눈물을 철철 흘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역시....역시....브루스 스프링스틴은 시인이었던 것이야....흐흑....감격이 소나기처럼 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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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고등학생 신분으로 몰래 몰래 19금 영화였던 <나인 하프 위크>를 처음 보았을 때가 생각난다.
사실 당시에는 야하다는 소리에 호기심으로 봤지만, 아니, 그 영화에 나온 어떤 배우가 눈을 잡아끄는 것이 아닌가.
지금은 섹시댄스의 전형이 되어버린 폭포수같이 물맞으며 허리를 꺽는 킴 배신저 언니는 둘째치고, 말쑥한 생김새에, 나른하고 아찔할 정도로 묘하게 카메라를 처다보는 저 남자배우는 또 뭐임? 그가 바로 미키루크였다.
다른 미남 배우들과 차별화된 오묘한 그것은 어떤 이의 말처럼 미남인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는 나르시즘이었는지도 모른다.
수많은 스캔들과 복싱, 성형의 부작용으로 추락해버린 왕년의 섹시스타. 너무나 오만했고, 뭐가 먼저인지 몰랐던 멍청이.
미노년이 아니어도 좋다. 다시 돌아온 그를, 그의 다시 시작된 인생을 환영할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