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코맥 매카시 지음, 임재서 옮김 / 사피엔스21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최근 인기 있는 영화 "놈놈놈"식으로 이 소설의 등장인물 르웰린 모스, 안톤 시거, 보안관 벨을 표현해보자면,
"이기적인 놈, 잔혹한 놈, 걱정하는 놈"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슴사냥중에 우연히 얻게된 돈가방을 들고 달아나 버리는 모스, 그 돈가방에 죽음이 뒤따를 것을 알면서도 무덤덤하게 도피를 준비하고 필사적으로 달아난다. 모스는 해결하기 위해 투입된 시거, 그의 목적은 돈이 아니라 죽음이다. 그리고 그들의 행로를 천천히 따라가는 벨, 쫓기는 자와 쫓는 자 누구에게도 악의 이미지를 투영하지 않으며, 단지 이렇게 되어버린 세상을 이해할수 없음에 비통해한다.
원작 소설을 읽어보려고 했던 것은 영화를 보면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제목의 의미를 알수 없어서였는데, 책을 보고도 완전히 이해가 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의 제목으로 이 제목이 무척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보안관 벨이 바라보는 이 사태, 그리고 이 세상은 아마도 좋은 놈도 나쁜 놈도 존재하지 않는, 모두가 사이코패스가 되어버린 것 같은 이상한 나라이지 않을까.
 
세상은 겉잡을수 없이 빨리 돌아간다. 한때 정의로운 보안관이기를 바랬던 벨 자신부터가 겉잡을 수 없이 빠른 세상의 소용돌이에 내던져져 어리둥절할 뿐이다. 마음은 여전한데, 몸이 따르지 않는다. 저기 코앞에서 끔찍한 살인사건들이 이어지고, 총격전이 계속되는데도 어찌할수가 없다.
벨은 안타까워 했을테지. 시대의 변함과 인간성의 종말과 그럼에도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시간의 냉혹함을...
그리고 자신에게 예정된 은퇴와 죽음으로 도피하기에는, 이미 많은 좌절감과 후회를 맛보았기 때문에 그 도피가 후련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 오히려 모든 것이 분명해지지 않을까 싶을 때가 있었다.
어른이 되면 좀더 깊이 생각하고 다양하게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른들은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으니까.
우등생 아니면 열등생, 또는 성공한 자 아니면 폐배자- 이렇게 이분법으로 딱잘라 말하는 것이 어른들의 특성이었다고 생각했다. 그건 드라마에서 바람피운 남자를 연기한 배우를 동네 할머니들이 나쁜놈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분명한 흑백논리처럼 느껴졌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보니 오히려 불분명해지는 것이 더 많아지더라. 이거 아니면 저거의 중간에는 꼭 무언가 존재했다.
완전한 선인도, 악인도 없듯이, 완전한 성공도 폐배도 없었고, 더 어렸던 시절에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던 강렬한 감정들도 흑도 백도 아닌 회색빛이 되어버렸다. 나는 점점 더 불필요한 일에 뛰어드는 일이 없어졌으며, 점점 더 방관자가 되어가고, 점점 더 무기력해져갔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상이 무섭다고 하는지도 모른다. 알수없는 것만큼이나 초조하고 불안한 것은 없으니까 말이다.
나는 이 책이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지 확실히 이해할수 없었다.
하지만 암묵적으로, 나는 벨을 연민하고 이해했다.
그저 그것뿐이어도 나는 이 책이 좋아졌다.
 
우리는 회색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 완전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온전한 것도 아무것도 없다.
모두들 조금씩 비틀려 순수함같은 것은 눈씻고 찾아봐도 없다.
어쩌면 이것도 진화라면 진화일 지도 모른다.
무서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더 무서운 것은 이렇게 삶은 여전히 지속된다는 점이다.
죽음이 덮쳐올 때까지 계속 무력한 채로 이렇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이드 2008-08-08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를 먼저 읽었는데, <로드>같으면 좋아할 자신 없는데 말이죠. 아무 이유없이, <인 콜드 블러드>와 비슷한 느낌 아닐까. 하고 샀던 책이에요 -저도 읽으려고 꺼내 놓았는데. .. 한 6월부터.

Apple 2008-08-08 16:58   좋아요 0 | URL
앗..그래요? 저도 곧 로드를 읽으려고 하는데...^^흐흐..
인콜드 블러드라...어떤 의미에서는 비슷합니다.^^
 
텐더니스 밀리언셀러 클럽 85
로버트 코마이어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여기,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를 하는 척하는 성장소설이 하나 있다.
에릭은 잘생긴 외모에 반듯한 행동거지로 주위에서 사랑을 받는 소년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는 여자애들이 주는 부드러움에 취해버렸다. 그 욕망은 너무도 강렬해서, 그저 여자아이들을 만지고 끌어안는 것으로는 부족해 그 부드러움에 취한 순간을 죽음으로 영원히 봉해놓아야만 했다. 그런 과정에서 그들은 죽어버리고, 그는 이런 식의 부드러움을 가장한 살인을 몇건 저지른 연쇄살인범이 되어버린다. 평소 마음에 들지 않던 엄마와 계부까지 죽여버리고, 그는 평소 미리 혼자서 준비해왔던 몸의 흉터들을 세상에 내보이며, "잘못된 가정에서 자라 심리적으로 삐뚤어진" 살인범의 이미지를 스스로가 만든다. 이 잘생기고 영리한 연쇄살인 용의자에게 세상은 열광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소녀 로리는 열다섯의 나이에 걸맞는 순진한 얼굴과 어른같은 몸을 가진 여자아이이다. 어디를 가나 나이 든 남자들의 표적이 되었던 로리는 계부가 자신을 건드려도 딱히 싫어하는 기색이 아니다. 오히려 그녀가 계부의 유혹을 거부하는 이유는 엄마가 상처를 받기 때문이다. 세상에 별다른 뜻도 없고, 별다른 분노도 없는 소녀 로리는 친구집에 간다는 쪽지를 하나 남기고 가출을 해버린다. 10달라도 안되는 돈만 가지고.
거리에서 히치하이킹을 해, 순진해보이는 평범한 가장과도 같았던 운전자를 유혹하고, 거리의 소녀와 잤다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려 죄책감에 우는 남자를 뒤로 하고, 그의 돈도 훔쳐서 나온다.
어느 날 연쇄살인 용의자 에릭을 보고, 로리에게는 에릭과 키스를 해야겠다는 집착이 생긴다.
 
그렇게 만난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 <텐더니스>. 거리를 나딩구는 소녀 로리와 부드러움에 매혹당한 소년 에릭의 이야기는 그들의 프로필이 그러하듯이 밝고 희망적이지는 않다.
로리와 에릭이 부드러움에 집착하게 되는 이유는 그들이 부모의 사랑을 적게 받았기 때문이리라 생각할수 있겠지만, 어쩌면 그건 원초적인 외로움이 원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낳아준 부모조차 부드럽게 대해주는 아이들이 아니었던 로리와 에릭이 서로에게 빠져드는 것은, 특히 목격자에 가까운 로리를 의심하면서도 끝내 버리지 못하는 에릭에게는, 그 두사람이 서로에게 도플갱어같은 존재였기 때문이 아닐까. 비슷한 성장과정과 그로인해 어쩔수 없이 나오는 행동들, 그들은 많이 닮았고, 은연중에 서로를 알아보았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오래전, 저도 모르게 자신을 구해준 에릭에 대한 로리의 무한한 사랑, 그 맹목적인 부드러움은 에릭에게는 필요치 않은 것이었다. 에릭은 검은 머리와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여자들에게만 끌리기 때문이다.
아마도 에릭의 어머니가 그러했기 때문이겠지. 자신의 얼굴을 검은 머리카락으로 뒤덮으며 부드럽게 말을 걸어주던 어머니의 이미지, 그 사랑스럽고도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증오스럽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그를 검은 머리카락과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여자들을 사랑하다 죽여버리게 만들었을런지도 모른다. 그래서 로리가 아무리 에릭에게 구애를 해도, 그들의 마음은 이런 식으로, 사랑의 완결도 아니고, 그렇다고해서 에릭이 그렇게나 욕망하던 "부드러운" 살인도 아닌, 우연에 가까운 식으로 비극적으로 끝나버리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를 일이다.

 
스릴러를 기대하고 읽었다가는 실망하게 될지도 모르는 책이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이 소설이 참 좋다.
유년 시절이 마냥 밝고 아름답기만 한 사람들의 이야기보다는 에릭과 로리처럼 희미한 악몽처럼 남아버리는 유년 시절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에 나는 더 끌리게 된다.
제목처럼 이 책은 부드럽다. 그 말랑말랑해서 상처입기 쉬운 부드러움이 이 책을 맥빠지게, 슬프게 느껴지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백년의 악몽
가엘 노앙 지음, 임호경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무시무시한 카드는 타로카드 중 Death-죽음 카드이다. 이름처럼 당연히 죽음을 의미하는 카드라 타로점을 보는 도중 이 카드를 맞딱뜨리면 마음이 철렁~하는 느낌을 받기도 하지만, 사실은 완전히 나쁜 의미만은 가지고 있지 않다. 끝이 난다는 것이 모두 나쁜 의미이기만 한 것은 아닌지라, 죽음, 그리고 이전의 고통이 제거된 또다른 시작을 뜻하기도 한다.
가엘 노앙의 데뷔작 "백년의 악몽"을 다 덮고 났을때 이 책이 주는 가장 명료한 주제의식이 바로 이 카드에 있지 않았나 싶었다. 죽음과 새로운 시작. 게렝델집안의 네 아이들이 꾸는 꿈이 깨어지는 순간은 죽음과 맞딱뜨리는 순간이었고, 그 죽음후에 그들은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저마다 다른 나이의 네 소년이 살고 있는 집안이 하나 있다.
나이답게 반항적인 첫째아들 브누아, 섬세하고 호기심많고 어딘지 고독한 둘째 뤼네르, 형들에게 언제나 겁장이라 놀림받는 엄마 치마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셋째 기누, 그리고 젖먹이 상송.
이렇게 아이들이 많은 가정에는 시끄러운 일도 많을 법한데, 게렝델 집안은 어찌된 일인지 조용하다 못해 이상스럽기마저 하다. 이유는 모든 가족들이 비밀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자식들을 과잉보호하는 어머니는 이유도 알려주지 않은 채 바닷가에 살면서도 아이들을 바다로 내보내려 하지 않으며, 언제나 실체없는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고, 네 아들들은 어머니에게도 말하지 못할 기묘한 악몽에 매일밤 시달린다.
세살짜리 딸을 익사시키는 미친여자의 꿈을 꾸는 브누아, 망망대해에 떠있는 범선 갑판에 갖히는 꿈을 꾸는 뤼네르, 기누를 괴롭히는 흙말의 환상, 그리고 젖먹이 상송에게까지 악몽은 확대되어 간다.
 
이 악몽들을 서로에게 조금도 털어놓지 못한 채 형제는 형제끼리, 부모와 자식은 부모와 자식끼리 서먹서먹해져가는 가정이 바로 게렝델 집안이다. 대체 어떤 이유 때문에 똑같은 꿈에 밤마다 시달리게 되었을까.
누구도 선뜻 얘기하지도, 밝혀내지도 못하지만, 둘째 뤼네르만은 이 꿈의 실체를 쫓기 시작한다.
뤼네르는 꿈속에 등장하는 선원의 실체를 찾기 시작하고, 꿈에 끼어들어 꿈의 패턴을 조금씩 바꾸기도 하는 용감한 아이이다. 그리고 그의 앞에 드러나는 것은 거의 백년에 걸친 비극적인 가족사였다.

어린 시절과 작별하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 원래는 한몸이었던 부모와의 감정적인 이별을 하기도 하고, 어린시절의 순수함 또한 잃어버리게 된다. 책속에 등장하는 네 소년이 어린 시절과 작별하고, 어른이 되어가는 도중에 잃어버리는 것은 바로 "백년의 악몽"이었던 것이다.
태생적으로 주어진 핏줄의 업보-악몽처럼, 또는 환상처럼 주어져있지만, 사실은 부모로부터 은연중에 주입당한 이 핏줄의 이야기들을 잃어버리고, 극복하며 아이들은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 매개체는 죽음- 뤼네르에게 비밀을 알려주는 아르델리아의 죽음과 흙말의 환상을 못이겨 저도 모르게 창문에서 떨어져버린 기누의 죽음에 가까운 무엇, 그리고 그 기누를 죽일뻔했다는 자책감에 휩쌓이게 되는 브누아.
이 모든 죽음의 형태가 소년들을 또다른 차원의 누군가로 성장하게 만든다.
장르소설로 읽었다가는 휘청할만큼 만만치만은 않은 책 <백년의 악몽>에 등장하는 모든 죽음들이 의미하는 것은 인생의 한 시절을 끝내고 또다른 시절로 넘어갈 때 누구나 겪는 "죽음과도 같은" 성장통인 것은 아닐지.
그래서 귀신 얘기처럼 보이거나, 또는 악몽에 얽힌 공포소설처럼 보이는 이 소설이 사실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핏줄에 얽매인 어린 시절의 죽음과 그후에 이어지는 핏줄과는 관계없는 사회로 나아가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인생의 한 단계의 이야기가 아닐지 모르겠다.
 
먼저 말했듯이, 추리소설이나 공포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집어들었다가 중반부에서 잠시 휘청댔던 소설이다. 소설이 은연중에 상징하는 바가 무척 커서, 머리속으로 이 소설을 어떻게 생각해야할 것인가 책을 읽고 한참을 정리해보았다. 뤼네르가 가족의 비밀을 밝혀나가는 부분에서 난항없이 너무도 쉽게 관련자를 찾아내는 점이 조금 아쉬운 부분이기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했다가는 더더욱 머리가 터져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신인이 이토록 더없이 철학적인 소설을 장르소설의 형태로 내놓을수 있는 프랑스라는 나라가 부러워지게 되었던 소설이다. 더불어, 문학동네의 우아한 책표지, 번역자 임호경씨의 애정에 겨운 해석과 역자후기가 이 책의 진가를 더더욱 빛내주었지 않았나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황새 1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지음, 이재형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지난번, 함께 읽었었던 <악의 심연>과 <검은 선> 두 작품은 각기 나름대로의 매력이 넘치는 작품인지라, 개인적으로는 무척 재밌게 읽어서 동생에게 빌려주었었다. <악의 심연>을 보고 "내 인생 최고로 재밌었던 소설"이라고 극찬하던 동생은 이상하게도 <검은 선>은 더 읽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었다. 너무 잔인하다나. <악의 심연>도 잔인하기는 했지만,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처럼 상세하게 이미지를 그려볼 수는 없었는데, <검은 선>은 눈앞에서 살인장면이 펼쳐지는 것 같아서 괴로워서 읽지 못하겠다나. 따져보면, 동생의 말처럼 인체가 절단나는 <악의 심연>만큼이나 그저 무중력상태에서 맨살에 칼집을 내 피를 뽑아내던 <검은 선>이 잔인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는 하지만, 확실히 선연한 묘사는 <검은 선>이 더 했던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검은 선>에 이어 두번째로 읽는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의 <황새>는 그랑제의 데뷔작임에도 몹시 꼼꼼한 구성을 가지고 있는 소설이다. 크게 말하자면 황새를 쫓아 사건을 추리해나가는 이야기이지만, 독자는 이 책을 펴는 순간, 이 책이 어떠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고, 또 그 비밀이 소설속의 사건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다는 암시를 받게 된다.
주인공 루이는 이제 갓 공부를 마친 30대의 남자인데, 그의 과거는 안개속에 있다. 어려서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 일이지만, 그의 부모는 중앙아프리카에서 불에 탄채 죽었고, 자신만 살아남아 양부모의 손에 키워지게 된다. 부족한 것 없는 인생이기는 하지만, 양부모는 언제나 재정적인 도움을 제외하고는 그를 방치해 놓았었다. 루이에게는 어떠한 나른한 공허함이 언제나 존재한다. 별로 부족한 것이 없이 자라서인지 딱히 원하는 바도 없고, 미래도 그다지 상상하지 않으며, 늘 의욕이 없는 젊은이인 것이다.

양부모의 소개로 루이는 막스뵘이라는 스위스 조류학자를 소개받게 되어 그의 밑에서 일하게 된다.
황새를 연구하는 막스 뵘은 나이가 들어 더이상은 황새를 따라 연구를 계속할수 없었기 때문에 루이를 자신을 대신해 황새를 연구하게 한다. 황새 연구를 위해 여행을 준비하던 도중, 막스뵘이 황새둥지에서  죽은 채 발견된다.
평소 심장이 건강하지 못하던 이 늙은이의 죽음은 당연한듯 심장마비사로 처리되었지만, 경찰 뒤마는 이 사인에 의문을 품고 루이에게 수사협조를 요청하게 되어, 루이는 다른 목적을 가지고 황새를 따라다니게 된다.
황새를 따라 막스뵘의 과거를 추적하던 도중, 루이는 이 사건의 배후에 도사리는 악을 만나게 된다.
 
세계 이곳저곳에서 심장을 적출당한 사람들, 그리고 세상 여기저기를 떠도는 황새, 그리고 다이아몬드.
언뜻 매치되지 않을 소재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참 재밌게 엮었다.
거장은 원래부터 그렇게 태어나는 건지, 데뷔작이라고는 믿지 못할 정도로 섬세하고 뛰어난 얼개를 가진 소설이라, 이 소설의 등장부터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의 스릴러 소설가로써의 능력은 입증되었으리라.
이런 잔인무도한 행위가 실제로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긴 하고, 아무리 마음에 차지 않는 아들이라 해도 아들의 심장을 자신에게 이식할수 있는 정신세계를 가진 아버지가 존재할까 하는 의구심 또한 들지만, 어차피 이 책은 소설이니 심각하게 생각할 것 없지 않은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무서웠던 것은 아무리 심장이 적출되고, 기이한 시체들이 발견되어도, 역시 주인공 루이의 과거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 모를 비밀에 대한 것이었는데, 모든 비밀을 알고나니 더더욱 소름끼치는 일이 아닐수가 없다. 뭐니뭐니해도 인간의 악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리라.
잠도 오지 않을 열대야의 밤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스릴러 소설이다.
스릴러소설의 임무를 다하면서도, 생각을 멈추지 않게 하는 그랑제 소설의 힘은 대단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쥬베이 2008-07-15 0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쵸 그쵸? 그랑제 소설의 힘, 정말 대단해요^^
리뷰를 보니 <황새>의 장면이 막 떠오릅니다ㅋㅋㅋ
(막심 샤탕도 멋진 작가지만, 그랑제보단 한 수 아래라고 생각해요.
너무 우연적인 설정이 많아서리...)

Apple 2008-07-15 22:54   좋아요 0 | URL
흐흐..재밌었어요.^^쥬베이님 추천받아서 샀었는데..흐흐흐흐
 
암흑 동화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이식된 눈이 다른 것을 본다' 라는 설정을 보고 영화 <디아이>를 떠올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오츠이치 최초의 장편소설 <암흑동화>는 그보다 조금 더 기발하고, 그보다 조금 더 아름답고 두렵다. 어떤 운명앞에 놓여진 무기력한 소년과 소녀들, 오츠이치의 주인공들을 하나같이 커다란 열망이나 객기나 패기같은 것은 눈씻고 찾아볼래야 없이 몽환적인 암흑으로 물들어있는 느낌을 풍긴다. 그리고 그 점이 소설을 무척 즐겁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한없이 나약하고, 한없이 기이한 악몽속의 주인공들같다.

 
<암흑동화>는 "눈의 기억"이라는 액자동화 이야기로 시작된다.
극장근처에서 태어나 영화보는데 재미를 붙인 한 까마귀는 아무도 몰래 인간의 언어를 습득하게 된다. 말하는 까마귀는 어느 날, 눈이 없는 소녀를 만나게 되고, 자신이 새라는 사실을 모르고 대화상대가 되어주는 소녀를 사랑하게 되어 버려서, 꿈에서조차 암흑뿐인 소녀를 위해 눈을 훔치기 시작한다. 저마다의 인간들에게서 빼앗아온 눈동자를 그것이 눈동자인지도 모르고 하나씩 간직하게 된 소녀는 까마귀의 선물을 텅빈 눈구멍에 끼워 다른 사람의 기억을 훔쳐보게 되고, 그 눈의 기억에 기뻐하는 소녀를 위해 까마귀는 계속 소녀에게 선물할 눈동자를 찾아다닌다.
 
그리고 또 한명의 눈을 잃은 소녀 나미가 등장한다. 비가 오는 날, 바닥을 기어다니면서 무언가를 찾는 소녀가 잃어버린 것은 왼쪽 눈알. 우산을 쓰며 분주히 사람들이 지나가는 사이 누군가의 우산에 찔려 눈동자를 잃어버리고, 그 충격으로 소녀는 기억상실증에 걸려버린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모른 채, 불과 몇일전 자신의 집이었고 일상이었던 모든 것들에게서 멀어지는 것을 느낀다. 눈을 잃은 동시에 기억도 잃고 자신도 잃어버린 것이다.
나미와 친구처럼 지냈던 어머니는 자신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딸에게 섭섭함을 느끼면서 '너'와 '나미'라 자신을 구분지어 말하고, 학교 친구들은 모든 것에 뛰어났던 이전의 나미와 기억을 잃은 지금의 나미를 사사건건 비교하면서, 주위 모든 것이 나미를 부정하고 든다.
왼쪽눈을 이식하고 병원에서 나오던 날, 달력에 그려진 그네타는 소녀의 그림을 바라보던 나미는 신기하게도 투명한 영상이 비쳐 그네에 앉은 소녀가 움직이고 자신을 향해 웃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런 기억은 인식하지도 못하는 새에 아무때나 찾아와 나미를 곤란하게 만들면서도, 한편으로는 텅빈 기억을 메꾸어주는 아름다운 대리 추억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식받은 왼쪽눈의 기억, 아련히 찾아오는 백일몽속에 '나'는 남자였고, 또 다정한 누나가 있었고, 특별하지는 않지만 아름다운 추억들이 있었다. 단지 타인의 눈을 통한 기억으로, 나미는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과 부정당하는 현재를 잊어나가게 된다.
그리고 그 백일몽속의 '나'가 죽게되는 장면까지 보아버리게 된 것이다.
 
<암흑동화>는 책속의 동화 "눈의 기억"과 왼쪽눈으로 타인의 기억을 보는 나미의 이야기, 또 하나 실종당한 열네살짜리 여자아이의 이야기를 번갈아가면서 진행되는 소설이다. 몹시도 기이한 환상이라 눈앞에 펼쳐진다면 엽기적이고 잔혹하기 그지 없을 이야기들이 무덤덤하게 진행되는데도 끊임없이 아련하고 몽환적이라는 느낌이 들게 만든다. '아무렇지도 않음'에서 오는 무심함과 악몽에서 따온듯한 몽환적인 느낌이 오츠이치의 매력이라면 또 매력일수 있겠다. 또 단편들에서 줄곧 보여졌던 이유없는 쓸쓸함의 감성은 <암흑동화>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되어서, 소설을 보는 내내 어디 갈곳도, 의지할 곳도 없을 것 같은 소녀 나미의 방황에, 마음속으로 숨겨두었던 일상적이 고독한 감정들을 조금씩 건드린다.
<Zoo>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국내에 발간된 오츠이치의 모든 소설을 읽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단편에서의 매력이 조금 더 뛰어난 작가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해서 최초의 장편이라는 <암흑 동화>가 재미없거나 지루했던 것은 아니지만, 짧은 이야기였다면 더더욱 여운이 남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아무렇게나 내던져져, '이유없이' 진행되었다가 끝나는 것이 또 오츠이치의 매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 기이한 상상력만으로도 오츠이치는 내게 굉장히 마음에 드는 소설가이기 때문에, 앞으로 예정되어있는 다른 소설들도 모두 읽게 될 것 같다. 오츠이치는 내게 엄청나게 마음에 들거나, 또는 적어도 실망은 하지 않는 작가가 되어버린 것같다.
 
참고로, 표지디자인은 지금까지 나온 모든 오츠이치의 소설들중에 이 <암흑 동화>가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
소설의 느낌과도 딱 맞고, 잘 모르고 봐도 잔혹한 암흑동화가 이어질 것같은 그림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의 제목이 <눈의 기억>이라고 나왔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쥬베이 2008-07-10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즈님 서평만으로도 분위기가 느껴져요
소녀를 위해 눈을 훔쳐오는 까마귀의 모습은 감동적이면서,엽기적이에요
까마귀의 심리묘사는 어떻게 되어있는지 궁금해요^^
일본소설 특유의 A-B-A-B 구성인듯 합니다. 얼른 읽어봐야겠어요ㅋㅋㅋ

Apple 2008-07-10 22:56   좋아요 0 | URL
ABAB...케케케케^^;;
넵..쥬베이님은 즐겁게 보실수 있을거예요..^^ 전에 나온 Goth가 살짝 더 재밌기는 하지만, 두 작품 다 재밌답니다.^^ Goth는 곧 시중에서 팔지 못하게 될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 보시려면 빨리 사놓으시는 편이 좋으실듯....=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