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새 1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지음, 이재형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지난번, 함께 읽었었던 <악의 심연>과 <검은 선> 두 작품은 각기 나름대로의 매력이 넘치는 작품인지라, 개인적으로는 무척 재밌게 읽어서 동생에게 빌려주었었다. <악의 심연>을 보고 "내 인생 최고로 재밌었던 소설"이라고 극찬하던 동생은 이상하게도 <검은 선>은 더 읽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었다. 너무 잔인하다나. <악의 심연>도 잔인하기는 했지만,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처럼 상세하게 이미지를 그려볼 수는 없었는데, <검은 선>은 눈앞에서 살인장면이 펼쳐지는 것 같아서 괴로워서 읽지 못하겠다나. 따져보면, 동생의 말처럼 인체가 절단나는 <악의 심연>만큼이나 그저 무중력상태에서 맨살에 칼집을 내 피를 뽑아내던 <검은 선>이 잔인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는 하지만, 확실히 선연한 묘사는 <검은 선>이 더 했던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검은 선>에 이어 두번째로 읽는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의 <황새>는 그랑제의 데뷔작임에도 몹시 꼼꼼한 구성을 가지고 있는 소설이다. 크게 말하자면 황새를 쫓아 사건을 추리해나가는 이야기이지만, 독자는 이 책을 펴는 순간, 이 책이 어떠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고, 또 그 비밀이 소설속의 사건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다는 암시를 받게 된다.
주인공 루이는 이제 갓 공부를 마친 30대의 남자인데, 그의 과거는 안개속에 있다. 어려서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 일이지만, 그의 부모는 중앙아프리카에서 불에 탄채 죽었고, 자신만 살아남아 양부모의 손에 키워지게 된다. 부족한 것 없는 인생이기는 하지만, 양부모는 언제나 재정적인 도움을 제외하고는 그를 방치해 놓았었다. 루이에게는 어떠한 나른한 공허함이 언제나 존재한다. 별로 부족한 것이 없이 자라서인지 딱히 원하는 바도 없고, 미래도 그다지 상상하지 않으며, 늘 의욕이 없는 젊은이인 것이다.

양부모의 소개로 루이는 막스뵘이라는 스위스 조류학자를 소개받게 되어 그의 밑에서 일하게 된다.
황새를 연구하는 막스 뵘은 나이가 들어 더이상은 황새를 따라 연구를 계속할수 없었기 때문에 루이를 자신을 대신해 황새를 연구하게 한다. 황새 연구를 위해 여행을 준비하던 도중, 막스뵘이 황새둥지에서  죽은 채 발견된다.
평소 심장이 건강하지 못하던 이 늙은이의 죽음은 당연한듯 심장마비사로 처리되었지만, 경찰 뒤마는 이 사인에 의문을 품고 루이에게 수사협조를 요청하게 되어, 루이는 다른 목적을 가지고 황새를 따라다니게 된다.
황새를 따라 막스뵘의 과거를 추적하던 도중, 루이는 이 사건의 배후에 도사리는 악을 만나게 된다.
 
세계 이곳저곳에서 심장을 적출당한 사람들, 그리고 세상 여기저기를 떠도는 황새, 그리고 다이아몬드.
언뜻 매치되지 않을 소재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참 재밌게 엮었다.
거장은 원래부터 그렇게 태어나는 건지, 데뷔작이라고는 믿지 못할 정도로 섬세하고 뛰어난 얼개를 가진 소설이라, 이 소설의 등장부터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의 스릴러 소설가로써의 능력은 입증되었으리라.
이런 잔인무도한 행위가 실제로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긴 하고, 아무리 마음에 차지 않는 아들이라 해도 아들의 심장을 자신에게 이식할수 있는 정신세계를 가진 아버지가 존재할까 하는 의구심 또한 들지만, 어차피 이 책은 소설이니 심각하게 생각할 것 없지 않은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무서웠던 것은 아무리 심장이 적출되고, 기이한 시체들이 발견되어도, 역시 주인공 루이의 과거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 모를 비밀에 대한 것이었는데, 모든 비밀을 알고나니 더더욱 소름끼치는 일이 아닐수가 없다. 뭐니뭐니해도 인간의 악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리라.
잠도 오지 않을 열대야의 밤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스릴러 소설이다.
스릴러소설의 임무를 다하면서도, 생각을 멈추지 않게 하는 그랑제 소설의 힘은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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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8-07-15 0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쵸 그쵸? 그랑제 소설의 힘, 정말 대단해요^^
리뷰를 보니 <황새>의 장면이 막 떠오릅니다ㅋㅋㅋ
(막심 샤탕도 멋진 작가지만, 그랑제보단 한 수 아래라고 생각해요.
너무 우연적인 설정이 많아서리...)

Apple 2008-07-15 22:54   좋아요 0 | URL
흐흐..재밌었어요.^^쥬베이님 추천받아서 샀었는데..흐흐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