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의 악몽
가엘 노앙 지음, 임호경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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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시무시한 카드는 타로카드 중 Death-죽음 카드이다. 이름처럼 당연히 죽음을 의미하는 카드라 타로점을 보는 도중 이 카드를 맞딱뜨리면 마음이 철렁~하는 느낌을 받기도 하지만, 사실은 완전히 나쁜 의미만은 가지고 있지 않다. 끝이 난다는 것이 모두 나쁜 의미이기만 한 것은 아닌지라, 죽음, 그리고 이전의 고통이 제거된 또다른 시작을 뜻하기도 한다.
가엘 노앙의 데뷔작 "백년의 악몽"을 다 덮고 났을때 이 책이 주는 가장 명료한 주제의식이 바로 이 카드에 있지 않았나 싶었다. 죽음과 새로운 시작. 게렝델집안의 네 아이들이 꾸는 꿈이 깨어지는 순간은 죽음과 맞딱뜨리는 순간이었고, 그 죽음후에 그들은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저마다 다른 나이의 네 소년이 살고 있는 집안이 하나 있다.
나이답게 반항적인 첫째아들 브누아, 섬세하고 호기심많고 어딘지 고독한 둘째 뤼네르, 형들에게 언제나 겁장이라 놀림받는 엄마 치마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셋째 기누, 그리고 젖먹이 상송.
이렇게 아이들이 많은 가정에는 시끄러운 일도 많을 법한데, 게렝델 집안은 어찌된 일인지 조용하다 못해 이상스럽기마저 하다. 이유는 모든 가족들이 비밀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자식들을 과잉보호하는 어머니는 이유도 알려주지 않은 채 바닷가에 살면서도 아이들을 바다로 내보내려 하지 않으며, 언제나 실체없는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고, 네 아들들은 어머니에게도 말하지 못할 기묘한 악몽에 매일밤 시달린다.
세살짜리 딸을 익사시키는 미친여자의 꿈을 꾸는 브누아, 망망대해에 떠있는 범선 갑판에 갖히는 꿈을 꾸는 뤼네르, 기누를 괴롭히는 흙말의 환상, 그리고 젖먹이 상송에게까지 악몽은 확대되어 간다.
 
이 악몽들을 서로에게 조금도 털어놓지 못한 채 형제는 형제끼리, 부모와 자식은 부모와 자식끼리 서먹서먹해져가는 가정이 바로 게렝델 집안이다. 대체 어떤 이유 때문에 똑같은 꿈에 밤마다 시달리게 되었을까.
누구도 선뜻 얘기하지도, 밝혀내지도 못하지만, 둘째 뤼네르만은 이 꿈의 실체를 쫓기 시작한다.
뤼네르는 꿈속에 등장하는 선원의 실체를 찾기 시작하고, 꿈에 끼어들어 꿈의 패턴을 조금씩 바꾸기도 하는 용감한 아이이다. 그리고 그의 앞에 드러나는 것은 거의 백년에 걸친 비극적인 가족사였다.

어린 시절과 작별하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 원래는 한몸이었던 부모와의 감정적인 이별을 하기도 하고, 어린시절의 순수함 또한 잃어버리게 된다. 책속에 등장하는 네 소년이 어린 시절과 작별하고, 어른이 되어가는 도중에 잃어버리는 것은 바로 "백년의 악몽"이었던 것이다.
태생적으로 주어진 핏줄의 업보-악몽처럼, 또는 환상처럼 주어져있지만, 사실은 부모로부터 은연중에 주입당한 이 핏줄의 이야기들을 잃어버리고, 극복하며 아이들은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 매개체는 죽음- 뤼네르에게 비밀을 알려주는 아르델리아의 죽음과 흙말의 환상을 못이겨 저도 모르게 창문에서 떨어져버린 기누의 죽음에 가까운 무엇, 그리고 그 기누를 죽일뻔했다는 자책감에 휩쌓이게 되는 브누아.
이 모든 죽음의 형태가 소년들을 또다른 차원의 누군가로 성장하게 만든다.
장르소설로 읽었다가는 휘청할만큼 만만치만은 않은 책 <백년의 악몽>에 등장하는 모든 죽음들이 의미하는 것은 인생의 한 시절을 끝내고 또다른 시절로 넘어갈 때 누구나 겪는 "죽음과도 같은" 성장통인 것은 아닐지.
그래서 귀신 얘기처럼 보이거나, 또는 악몽에 얽힌 공포소설처럼 보이는 이 소설이 사실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핏줄에 얽매인 어린 시절의 죽음과 그후에 이어지는 핏줄과는 관계없는 사회로 나아가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인생의 한 단계의 이야기가 아닐지 모르겠다.
 
먼저 말했듯이, 추리소설이나 공포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집어들었다가 중반부에서 잠시 휘청댔던 소설이다. 소설이 은연중에 상징하는 바가 무척 커서, 머리속으로 이 소설을 어떻게 생각해야할 것인가 책을 읽고 한참을 정리해보았다. 뤼네르가 가족의 비밀을 밝혀나가는 부분에서 난항없이 너무도 쉽게 관련자를 찾아내는 점이 조금 아쉬운 부분이기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했다가는 더더욱 머리가 터져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신인이 이토록 더없이 철학적인 소설을 장르소설의 형태로 내놓을수 있는 프랑스라는 나라가 부러워지게 되었던 소설이다. 더불어, 문학동네의 우아한 책표지, 번역자 임호경씨의 애정에 겨운 해석과 역자후기가 이 책의 진가를 더더욱 빛내주었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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