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더니스 밀리언셀러 클럽 85
로버트 코마이어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여기,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를 하는 척하는 성장소설이 하나 있다.
에릭은 잘생긴 외모에 반듯한 행동거지로 주위에서 사랑을 받는 소년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는 여자애들이 주는 부드러움에 취해버렸다. 그 욕망은 너무도 강렬해서, 그저 여자아이들을 만지고 끌어안는 것으로는 부족해 그 부드러움에 취한 순간을 죽음으로 영원히 봉해놓아야만 했다. 그런 과정에서 그들은 죽어버리고, 그는 이런 식의 부드러움을 가장한 살인을 몇건 저지른 연쇄살인범이 되어버린다. 평소 마음에 들지 않던 엄마와 계부까지 죽여버리고, 그는 평소 미리 혼자서 준비해왔던 몸의 흉터들을 세상에 내보이며, "잘못된 가정에서 자라 심리적으로 삐뚤어진" 살인범의 이미지를 스스로가 만든다. 이 잘생기고 영리한 연쇄살인 용의자에게 세상은 열광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소녀 로리는 열다섯의 나이에 걸맞는 순진한 얼굴과 어른같은 몸을 가진 여자아이이다. 어디를 가나 나이 든 남자들의 표적이 되었던 로리는 계부가 자신을 건드려도 딱히 싫어하는 기색이 아니다. 오히려 그녀가 계부의 유혹을 거부하는 이유는 엄마가 상처를 받기 때문이다. 세상에 별다른 뜻도 없고, 별다른 분노도 없는 소녀 로리는 친구집에 간다는 쪽지를 하나 남기고 가출을 해버린다. 10달라도 안되는 돈만 가지고.
거리에서 히치하이킹을 해, 순진해보이는 평범한 가장과도 같았던 운전자를 유혹하고, 거리의 소녀와 잤다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려 죄책감에 우는 남자를 뒤로 하고, 그의 돈도 훔쳐서 나온다.
어느 날 연쇄살인 용의자 에릭을 보고, 로리에게는 에릭과 키스를 해야겠다는 집착이 생긴다.
 
그렇게 만난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 <텐더니스>. 거리를 나딩구는 소녀 로리와 부드러움에 매혹당한 소년 에릭의 이야기는 그들의 프로필이 그러하듯이 밝고 희망적이지는 않다.
로리와 에릭이 부드러움에 집착하게 되는 이유는 그들이 부모의 사랑을 적게 받았기 때문이리라 생각할수 있겠지만, 어쩌면 그건 원초적인 외로움이 원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낳아준 부모조차 부드럽게 대해주는 아이들이 아니었던 로리와 에릭이 서로에게 빠져드는 것은, 특히 목격자에 가까운 로리를 의심하면서도 끝내 버리지 못하는 에릭에게는, 그 두사람이 서로에게 도플갱어같은 존재였기 때문이 아닐까. 비슷한 성장과정과 그로인해 어쩔수 없이 나오는 행동들, 그들은 많이 닮았고, 은연중에 서로를 알아보았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오래전, 저도 모르게 자신을 구해준 에릭에 대한 로리의 무한한 사랑, 그 맹목적인 부드러움은 에릭에게는 필요치 않은 것이었다. 에릭은 검은 머리와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여자들에게만 끌리기 때문이다.
아마도 에릭의 어머니가 그러했기 때문이겠지. 자신의 얼굴을 검은 머리카락으로 뒤덮으며 부드럽게 말을 걸어주던 어머니의 이미지, 그 사랑스럽고도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증오스럽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그를 검은 머리카락과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여자들을 사랑하다 죽여버리게 만들었을런지도 모른다. 그래서 로리가 아무리 에릭에게 구애를 해도, 그들의 마음은 이런 식으로, 사랑의 완결도 아니고, 그렇다고해서 에릭이 그렇게나 욕망하던 "부드러운" 살인도 아닌, 우연에 가까운 식으로 비극적으로 끝나버리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를 일이다.

 
스릴러를 기대하고 읽었다가는 실망하게 될지도 모르는 책이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이 소설이 참 좋다.
유년 시절이 마냥 밝고 아름답기만 한 사람들의 이야기보다는 에릭과 로리처럼 희미한 악몽처럼 남아버리는 유년 시절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에 나는 더 끌리게 된다.
제목처럼 이 책은 부드럽다. 그 말랑말랑해서 상처입기 쉬운 부드러움이 이 책을 맥빠지게, 슬프게 느껴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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