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종교관의 변천
- 부제 : 가을산님의 답변을 겸하여
아주 어렸을 적 (정확히 기억할 수 없지만 초등학교 2, 3학년)에 저는 기계론적 유물관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기계론적 용어는 몰랐지만 ‘정신이란 것은 물질의 반응이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친구가 교회에서 질문을 했는데, ‘하늘에는 하나님은 없고 구름만 있다던데요?’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당연하지. 하나님이라는 것은 개념적인 것이다. 눈에 보이는 하늘과 구름, 이런 것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겠는가? 저는 천국과 지옥이라는 것은 선행을 했을 때의 행복감을 느끼면 그것이 천국, 악행을 했을 때 죄책감을 느끼면 그것이 지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초등학교 4년 때 교회에 같이 다니는 친구와 창조와 진화에 대해 논쟁한 경우가 있었는데, 친구는 창조론을 지지하고, 저는 진화론을 지지했습니다. 저는 ‘사람이 기후에 맞춰 피부색이 변한 것’을 예로 들고, 친구는 ‘왜 사람이 모두 팔 2개, 다리 2개냐’. 저는 ‘아직 진화가 팔 3개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등. 그러면서도 교회에 다는 것은 교회에서 나쁜 짓 하라고 가르치지는 않으니 교회 다녀서 나쁠 것이 없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계론적 유물론에 확고한 입장이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교를 거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첫째는 위인에 대해 알기 시작하면서 많은 위인들이 유신론(이들은 기독교에 해당하지만 꼭 기독교는 아니라도)적 가치관을 가졌습니다. 이벤트 문제에도 있지만 뉴턴, 아인슈타인, 파스칼, 오일러 등이 포함됩니다. 저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들이 왜 유신론의 입장을 갖게 됐을까?
둘째는 무신론자로 자처하는 사람도 정작 이야기를 하다보면 무신론자가 적다는 것입니다. 무신론자와 이야기를 하다보면 정신세계가 있다느니 (이 때의 정신은 물질에 뿌리를 둔 것이 아닌), 창조주는 있다느니 등등. 그들에게 기독교의 신을 강요할 생각은 없는데 지레 기독교인들이 행하는 전도에 질려 무신론을 자처하고 있었습니다.
셋째는 모르는 것에 대한 입장이 바뀌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하나님의 뜻을 묻는 신도에게 비유하여 설명한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바닷가에서 웅덩이를 파고 바닷물을 퍼 담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뭐하는 것이냐고 묻자, 그 사람은 이 웅덩이에 바닷물을 모두 담고 싶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지나가던 사람이 하는 말, '어리석다. 어떻게 저 많은 바닷물을 웅덩이에 담을까?'
이야기의 요점을 아시겠지만 어찌 보면 불가지론일 수 있습니다. 저는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불가지론이야말로 최대의 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 꺾인 것이 과학지식의 확대와 더불어 모르는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괴델의 불완전성 이론,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실성의 원리, 그리고 플랑크로 시작된 양자역학. 저의 페이퍼에 항상 등장하는 과학 이론이지만 이들 이론의 특징은 '인간의 한계'를 긋고 있습니다. 궤변일 수 있지만 신의 존재가 플랑크 상수이내에 존재한다면...
저의 교만과 한계를 보여준 지식이 있는데 무한에 관한 수학적 지식입니다. ‘0부터 1사이에 있는 실수와 마이너스 무한대부터 플러스 무한대의 유리수 수직선을 비교하여 어느 것의 숫자가 더 많은가?’라는 질문에 수학적 지식이 없을 때는 당연히 무한으로 뻗어 있는 유리수 직선이 많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0부터 1사이의 실수 선분이 더 많은 수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패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린도전서 13장 9~12절) - (이 당시의 거울은 구리거울 같은 것을 말합니다.)
넷째는 배중률에 대한 의심입니다. <신이 있다, 신이 없다.> 이 두 문장 중에 하나는 옳고 하는 틀리는데 꼭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의구심이 생겼습니다. 예를 들면 교회를 가는 중에 아이가 넘어져 크게 다칠 뻔 했는데, 아이가 크게 다치지 않았다. 이런 사건을 두고 하나님께서 교회를 가는 중이기 때문에 아기가 크게 다치지 않게 햐셨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아이가 다쳤으면, 어떤 논리가 되지? 이런 사고의 배경에는 ‘신의 가호’와 ‘사건’의 관계에 배중률을 적용했기 때문입니다. 이 배중률을 포기함으로 저는 자유의지와 결정론의 갈등도 일단락을 지었습니다.
다섯째는 가족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부터 입니다. 기독교가 아닌 일반인도 십계명 정도는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1계명부터 4계명까지를 신에 관한 것, 5계명부터 10계명까지 인간사에 관한 것으로 들었습니다. 과거에는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5계명이 과연 인간에 관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기독교내의 학설에 따라 1계명부터 4계명까지 신에 관한 것으로 돌리는 학파도 있지만 1계명부터 5계명까지를 신에 대한 것으로 돌리는 학파도 있습니다. (저는 후자를 지지합니다.)
고등학교 때 공부하던 영어문제집에 영어지문이 있었습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버지와 아들이 대화로 내용은 대충 이러했습니다. 아버지 말이 ‘너, 집안에서 민주주의를 이야기하지 말라. 내가 아버지로서 너에게 충분히 너를 위한 유익을 행할 것이다. 내가 아버지가 되기 위해 선거를 했냐?’
부모의 효도에 관해 사회진화론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유전자의 확장이라던가. 아니면 경제의 효과로 젊었을 때 자신의 아이를 키우고, 장년이 된 자녀가 노년이 된 부모를 봉양하고. 이것이 전부일까요. 가을산님이 앞 편지에서 ‘인간’적이라는 용어를 쓰셨는데, 이 인간적 용어는 참 다양하게 사용됩니다. 사회를 이루거나 언어를 사용하는 것,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 인간적이지만 모성도 인간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모성은 하찮은(?) 동물 모두에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적이라는 평가를 내리는데 이 인간적인 것의 의미는?
여섯째는 부성父性에 관한 것입니다. 그나마 모성에 관한 것은 설명이 비교적 쉽습니다. 배속에 10달이라는 잉태기간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아이가 보다 더 어머니에 의존적이기 때문에 (마립간 페이퍼 2004년 3월 1일자 남녀차별/부모차별). 만약 유전자 분포만이 남성이 가족을 이루는 것의 목표라면 성관계를 갖은 후 떠나는 것이 더 합리적이죠. 아이는 여성이 키우고 남성은 임신이 가능한 다른 여성을 찾아서. 호랑이는 이와 같은 생활을 하죠. 물론 이것은 제가 개인적으로 느끼는 질문이기 때문에 설명으로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일곱째는 아버지의 원리(보수)입니다. 이것은 부성과 다른 의미로 사용된 것입니다. 한 아이가 부엌에 있던 칼을 가지고 놀고 있습니다. 위험해서 뺏으려 하니 아이는 충분히 다치지 않고 가지고 놀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를 말립니다. 왜 말려야 하지요. 다치니까. 반드시 다친다고 할 수 있나요. 설령 다친다고 하더라도 아이의 의사를 존중해 주어야 하지 않나요. 제가 어렸을 때는 부모가 자녀의 귀가 시간을 통제할 때 남녀의 차별을 두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희 집은 그런 구별은 없었습니다. 저 또한 남녀의 차이가 귀가 시간에 차이를 두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과거형임.) 그런데, 경우에 따라 (모든 경우가 아니지만) 옳은 경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로서 딸이 밤늦게 다녀, 강도나 성폭행의 대상이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귀가 시간을 통제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이런 아버지의 원리의 기능을 이해한 후 기계론적 남녀평등 가치관을 포기했습니다. (마립간 페이퍼 2004년 8월 12일자 순결과 정조의 에피소드, 마립간 페이퍼 2004년 2월 18일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정치인) 부모 자녀간의 민주주의 원칙도 포기했습니다. 이것은 가족관의 분위기가 엄격하고 수직적이며, 반민주적인 것이 옳다는 것이 아니고, 가족에는 민주주의 같은 것으로 설명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여덟째는 부도덕한 부모님, 부모답지 못한 부모님에 대한 평가를 종교를 통해 유보하고 싶은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상해보험을 타기 위해 (아마 천 만원이었죠.) 자녀의 손가락을 자른 아버지, 다방을 경영하면서 딸 셋에게 매춘을 시키는 어머니. 이런 것에 대한 가치평가를 제 스스로 하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아홉째는 종교적 체험입니다. 어쩌다 우연히 불교, 인도 철학 등에서 밝은 빛을 보는 종교적 체험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반야심경의 경우는 이 종교적 체험을 위해 음역을 한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궁금합니다. 기독교이든 비기독교이든 제가 경험하지 못한 것인 종교적 체험에 관해 이에 대한 속단을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을 아는 친구들은 저에게 부모의 마음을 예단하지 말라고. 저는 부모의 마음을 예단하지도 추측하지도 않습니다. 그에 비해 부부관계는 어느 정도 (그야 말로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합니다.
위의 이야기들이 기독교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밤낮이 바뀌는 것을 천동설의 근거로, 지동설의 근거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진정한 지동설의 근거는 연주시차였습니다. 기독교를 선택한 근거는 역시 없습니다. 진화론을 설명한 책의 머리말에 ‘한 개의 세포는 뉴욕시보다 훨씬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다. 이것을 보고 단순히 진화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저의 이야기는 크게 물질에 바탕을 두지 않는 정신세계, 그리고 천국이나 교회의 모형으로 일컬어지는 가족, 몇 가지 과학적 사실들로 나누어지지만 그 어느 것도 남을 설득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전도를 하지 않습니다. 전도를 하지 않은 것은 남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을 불쌍히 여기지 않은 것일 수도, 다른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도 있지만 제 스스로가 오베르의 정원(선과 속의 경계 - 세상과 기독교의 경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신론자도 부럽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도 부럽고, 나름대로 진보적 기독교 신앙을 갖은 분도 부럽습니다. 갈등하지 않을 테니까요. 왜 하필, 개신교냐? 개신교를 갖은 상태에서 다른 종교를 갖은 분(대표적으로 불교)과 대화가 안 되거나 하는 일은 없습니다. 개신교의 종교적 체험은 개신교이어야만 하니까요.
저는 교회에 갈 때, 적자가 아닌 서자처럼 느껴집니다. 왜 저렇게 많은 교인들은 행복해 할까? 나는 그렇지 못한데. 서자도 아들은 아들인 것 맞죠. 왜 나만 힘들지?
하나님은 교회 건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기독교인이라 자처하며 몰려다니는 사람과도 같지 않습니다. 아마, 아마... 하나님은 능력이 크신 사랑일겁니다.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부모님이라는 거대한 사랑의 성안에서 평안했던 그 때. 그리고 언제가 헤어질 부모님. 어쩌면 부모님의 권위를 그리워하는지도 모르지만... 한편 부모가 되기 전에는 부모의 마음을 알 수 없다는 그 말처럼, 다른 집에 아이를 맡기기 불안해하는 부모님 마음이 하나님 마음일 수도... 배우자를 선택하는 이유가 있지만 막상 그 이유가 전부가 아닌 것처럼, 선택이 그 자체로 이유인 것처럼. 저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