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전쟁의원인과 책임을 지도자 개인에게만 물을 것인가?
-
-
제2차 세계대전의 기원
A.J.P. 테일러 지음, 유영수 옮김 / 지식의풍경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의 광고는 약간 과장되어 있기는 하지만 책 자체는 괜찮은 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어느 것이 과장이냐 하면 우선 이 책의 표4에 나오는 문구 "히틀러는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A.J.P.테일러의 이 주장은 어느 경우라도 전면적으로 옳다고 할 수 없고, 또 전적으로 틀렸다고 부정될 일은 아니다. 그것은 이 책이 지닌 의미에 적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전에 그는 독일의 비스마르크에 대해 "비스마르크는 최고봉의 정치적 천재였지만 그는 건설적인 정치가가 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한 요소를 결여하고 있었다. 그는 미래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라고 평가한 적이 있었다. 그의 말을 빌어 말하자면 "히틀러는 정치적 선동의 최고봉에 이른 천재였지만 그는 건설적인 정치가가 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한 요소를 결여하고 있었다. 그는 인간에 대한 존중과 신뢰가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A.J.P. 테일러의 말을 빌어보자. "문명은 보통사람들의 문명화된 습관에 의하여 유지되어 왔다. 현실에 있어서는 보통사람들이 통치자보다도 더 교양 있고 침착했다."고 그는 말한다. 이 말 속에서 "보통 사람들"이란 어떤 존재인지 비록 명확하진 않지만 분명한 건, 고민없이 고착된 문명화된 습관이 합리적인 최종해결책으로서의 가스실로 이르는 고속도로를 닦았다.
이렇게 서두를 시작하니 A.J.P. 테일러와 이 책 "제2차 세계대전의 기원(The Origins of the Second World War)"에 대해 내가 상당히 부정적인 독서 체험을 한 것으로 오인할지도 모르겠으나 읽는 내내 상당히 재미있었고, 세부적인 부분으로 들어가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둔 유럽의 외교 무대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상상해보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매우 만족스러운 독서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는 이 책의 저자인 A.J.P. 테일러가 외교사를 주전공으로 한 역사학자란 점을 고려한다면 당연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기 전에 독자들이 유념해두어야 할 한 가지는 이 책이 처음 출간된 것이 1961년의 일이며, 이 책이 국내에 처음 번역 출판된 것은 2003년의 일이란 사실이다. 이 역시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1961년, 그리고 A.J.P. 테일러가 이 책을 저술할 무렵이었을 1950년대 중후반은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지 불과 10여년 내외의 일이었을 것이란 점이다. 이 점을 간과한 채 이 책을 읽는 것은 최신 자료들과 새로운 연구로 무장된 결과물을 멀리 하고 과거에 규명된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을 읽고 그것이 전부인 줄 알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된다.
물론 A.J.P. 테일러가 처음 이 책을 출간했을 무렵 "제2차 세계대전의 기원(The Origins of the Second World War)"은 매우 충격적인 내용과 주장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다시 말해 그 당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보통 사람들)은 "히틀러가 강력히 전쟁을 원했으며" 영국을 비롯한 당시 연합국들은 전쟁에 대한 거의 아무런 책임도 없는 존재들로(오로지 피해당사자) 인식되었다. 그러므로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은 주로 돌연변이 천재 히틀러와 그의 맹신적인 추종자들, 그 추종자들의 선전선동 정책에 사로잡힌 독일 국민들의 몫이었다.
A.J.P. 테일러는 "제2차 세계대전의 기원(The Origins of the Second World War)"에서 역사적 외교문서들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당시 그에게 쏟아진 온갖 비난(?)들을 무릅쓰고 학문적 확신을 가지고 말한다. 히틀러는 자신이 권력을 잡으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으나 권력을 차지한 뒤에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아무런 계획(장기적인 전쟁 계획 수립은 물론 단기적인 경기 부양정책조차)을 갖지 못했다. 히틀러의 집권 이후 독일 경제의 부흥은 우리가 알고 있듯 히틀러의 여러가지 경제정책들(경제개발계획, 아우토반 건설 등 )에 힘입은 것이기 보다는 히틀러가 정권을 잡기 이전에 이미 시작된 세계 경제 상황의 전반적인 호전에 기인한,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히틀러와 나치당엔 아무런 경제계획이 없었다. 최소한 초기에는... 제국의회 방화 사건 이후 벌어진 공산당 탄압 및 조직적 체포 행위에 대해서도 A.J.P. 테일러는 이것이 나치에 의해 사전에 준비된 명단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괴링의 전임자였던 사회민주당원 제베링이 준비해 두었던 것(독일 사민당과 공산당은 역사적으로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이상의 앙숙이다.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싶어할 만큼)을 이용해 실행에 옮긴 것이었다.
내용이야 어찌되었든 그렇다면 A.J.P. 테일러가 생각하는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은 무엇일까? 전쟁의 원인이야 하나가 아니지만 최소한 이전에 감정적으로 혹은 전쟁 기간 동안의 경험으로 인해 합리적인 이유를 생각해내기 어려운 이들에게(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자. 한국전쟁은 1950년에 발발해서 1953년에 끝났지만, 전후 50여년이 지나는 동안 지금까지도 전쟁의 원인과 성격을 합리적으로 규명하는 데, 얼마나 많은 감정적 요소들이 작용하고 있는가를) 그는 전쟁의 책임을 "히틀러"라는 통치자 일인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얼마나 비상식적이고, 우스운 일인가를 조목조목(주로 외교, 국제정치적인 차원에서) 따져서 분석해내고 있다. 그 결과는 조지프 S. 나이가 서구전쟁의 역사와 국제정치이론을 접목시킨 "국제분쟁의 이해(Understanding international conflicts, 국내에서는 지난 2000년 "한울"에서 출판)"에 이미 상당히 반영되고 있다. 나중에 이 책에 대한 리뷰에서 좀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지만, 조지프 S. 나이는 A.J.P. 테일러에게 상당한 학문적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을 따지기 위해서는 당연히 제1차 세계대전을 살펴보아야 한다. 서구 학계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을 제국주의 유럽의 민족국가들 사이에서 일어난 세력 균형 정책때문인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독일 세력이 증대되는 반면, 동맹체제는 자만으로 인해 과거 비스마르크 시대의 정책적 유연함을 잃어버렸고, 당시 세력 균형의 구조가 파괴되었음을 간과한 결과라는 것이다. 세력 균형이 파괴된 가장 중요한 원인들은 독일의 세력 확대(이것은 특히 영국에 커다란 위협이 되었으며 무엇보다 대륙에서 독일이 강력한 경제력과 해군력을 증강시킨 것이 영국으로 하여금 강력한 견제 수단의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와 동맹체제, 민족주의의 출현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세게대전을 경험한 유럽과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세력균형을 대신한 평화 유지책으로 집단 안보 개념을 도입해 국제연맹을 결성한다. 그러나 국제연맹은 독일에게 높은 배상금을 책정함으로서 도리어 제2차 세계대전의 씨앗을 잉태했고, 일본의 만주 침략과 이탈리아의 이디오피아 침공에 무력하게 대처함으로써 집단안보에 대한 도전을 용인했다.
A.J.P. 테일러의 주장을 역으로 말해보면 만약 1920년대에 서구 유럽의 민주(자본)주의 국가들이 독일에 대한 보복(주로 군사, 경제)적 응징 대신, 독일의 경제 부흥을 도왔거나 미국이 국제연맹에 가입하는 등 적극적인 개입 정책을 실시했거나, 1930년대 초반 소련을 고립시키는 대신에 영국과 프랑스가 소련과 동맹을 맺었다면 독일은 전쟁이라는 극한적인 방식을 동원하지 못했을 것이다. 조지프 S. 나이는 비록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미국에 패배하긴 했지만 일본이 미국을 공격한 것이 비이성적인 행위는 아니었다고 본다. 그 까닭은 만약 당시 일본이 전쟁을 하지 않았다면, 일본은 미국의 봉쇄 정책으로 고립될 것이고, 동남아시아의 천연자원에 대한 권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제관계의 냉혹함이 드러나는 대목이 바로 이런 부분이며, 전쟁의 책임을 한 사람의 정치지도자에게만 돌리는 일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문제는 A.J.P. 테일러와 조지프 S. 나이의, 이런 관점의 연속선상에서 전쟁과 그 원인을 파악할 때 우리는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와 일본의 천황 히로히토에게 전쟁의 책임을 '전적으로' 물을 수 없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종종 우리는 분노와 화해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전쟁의 원인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전쟁의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 것인가? 문제는 다시 구조냐? 인간이냐?의 것으로 환치된다. 자, 전쟁의 원인과 책임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제2차 세계대전이 너무 먼 과거의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한국전쟁으로 바꿔놓고 생각해보라.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한국전쟁의 원인을 김일성이나 이승만이란 당시의 정치지도자들, 한 개인에게만 물을 때, 화해와 평화는 멀고먼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될 것이란 사실이다. 때로 이런 인식은 마치 종교전쟁처럼 어느 한 쪽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절멸될 때까지(더군다나 한국전쟁은 내전으로, 작게는 서로 얼굴을 잘 아는 마을 단위로부터 멀리는 고공의 하늘로부터 내리꽂히는 익명의 폭탄에 이르는 대규모 학살이 자행된 전쟁이었다) 증오를 부르는 일이 될 테니 말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우리나라에선 너무 늦게 나온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