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김산해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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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이 글은 쓰게 된 것은 알라딘을 통해 알게 된 <길가메쉬의 서사시> 서평단의 한 사람으로 글을 쓰게 되었음을 밝힙니다. 예전에 영화 quota관한 이야기를 주위 사람과 하면서 마케팅 힘에 대해서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책도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영향력에 의해 완전히 배제될 수 없겠지만, 좋은 책은 좋은 책으로 많이 팔리기를 기대하면서 먼저 밝힙니다.


 저의 경우, 서평 단에 뽑히지 않았어도 아마 책을 구입하였을 텐데, ‘길가메쉬의 서사시’에 대한 책을 한번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중, 이 책이 발간되었습니다. 처음 ‘길가메쉬의 서사시’에 라는 것을 듣게 된 것은 7년 전이었는데, 그 순간부터 저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이유는 세계 최초의 신화 서사시라는 수식에서 느낄 수 있는 ‘최초’에 대한 무게 때문이고, 홍수를 비롯하여 몇몇의 내용은 기독교의 창세기 내용과 유사하다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책의 구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이 책은 양장본인데, 양장본의 장단점은 이미 알려 있듯이 보관을 위해서는 좋은 반면 부피와 무게를 조금이지만 더 하게 되고 그리고 가격도 상승시키는 효과를 갖습니다. 그리고 페이지 당 글자 숫자가 적어 읽기 편한 반면 이 또한 책 가격을 올리는 효과가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책에 삽입된 사진들은 매우 마음에 들고 흡족하였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한글을 전혀 모르는 캐나다 친구에게 보여주었더니 사진만을 보고 감탄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3장 비극의 전주곡, 죽음의 공포, 4장 황금시대의 전설에서 따로 저자의 해설이 붙인 것은 서사시를 읽을 때 선입견을 주지 않도록 하였고, 문학적 감흥을 생각할 때 좋은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위의 언급과 모순 되는 이야기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서사의 원문에 손상을 가하지 않으려는 의도이겠지만, 서사시 밑에 주석을 길게 달아 놓았습니다. 첫 주석인 63p의 주석은 11줄이고, 65p의 주석은 18줄이나 되는 글인데, 이 정도의 글이라면 차라리 본문으로 쓰여 졌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길가메쉬의 서사시’에 관한 해석이 있은 후 주석에 길게 써진 내용들을 본문을 써서 뒤에 붙였다면 작은 글씨를 읽는 것보다는 편하게 읽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학생 시절 때부터 문학과 거리가 멀었던 저는, 서사시에 대해 경험이 거의 없었고, 하물며 학교를 졸업하고 한 참의 시간이 지난 지금에 서사시에 대한 문학적 감흥을 기대했던 것은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였다고 생각합니다. 호메로스Homer의 일리아드Iliad, 오뒤세이아Odysseia가 후대 평가받는 것은 사건의 기록뿐만 아니라 사건과 인물 묘사가 문학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글로 번역된 길가메쉬의 서사시를 통해 문학적 감흥을 받기에는 저의 문학적 소양이 부족하였습니다. 그러나 서사시를 읽으면서 사건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연상되는 것들이 떠올랐고 그 중에 몇 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엔키두와 처음에 맞서다가 연합을 한 것은 정치적 동지를 얻은 것으로 해석됩니다. 영웅이 영웅을 알아 본 경우이죠. 길가메쉬와 엔키두는 형제와 같은 느낌을 주지만 역시 길가메쉬의 군君과 엔키두의 신臣의 관계가 형성됩니다. 형제관계 또는 친구관계이자 군신관계를 갖는 예는 많습니다. 예를 들면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 삼형제, 손책과 주유, 그리고 이성계와 퉁두란은 형제이자 군신관계이고 친구이자 군신관계입니다. 태종 이방원과 원경황후 민씨는 부부이자 정치적 동지였습니다. 또한 길가메쉬와 엔키두의 관계은 지도자와 참모의 역할도 보여주는데 훔바바의 처리에 관해서, ‘그러자 길가메쉬는 그가 측은하게 생각되었다.’라는 길가메쉬의 말에 ‘당신은 당신을 낳아준 어머니의 도시로 결코 돌아갈 수 없습니다.(p174)’라고 엔키두는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엔키두는 그의 목을 잘라버렸다(p178)라고 쓰여 있습니다. 지도자가 어떤 큰일을 결정할 때 지도자는 정신적 갈등을 갖는데, 참모가 지도자의 마음을 다잡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완용이 을사조약이나 한일합병 조약을 체결할 때 마음이 유약하여 고민하였고 이 때 이인직은 이완용이 흔들리지 않도록 참모 역할을 하였다고 하고, 고 박정희 대통령이 5.16 군사 쿠테타를 일으킬 때 최근 얼마 전까지 정치를 한 분이 참모로서 고 박정희 대통령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조언을 하였다고 합니다. 태종 이방원의 왕자난에서도 원경왕후 민씨가 같은 역할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산지기 훔바바를 죽인 것은 아마 산림을 바탕으로 생활하던 부족을 전쟁을 통해 흡수 통합한 것을 상징한 것으로 해석하였습니다. 특히 영웅답지 못한다는 훔바바를 말을 통해 그 당시에 있던 관례나 약속을 어긴 것은 언제 어디에나 있는 정치의 비도덕성을 보여줍니다.  저 개인적인 가치관으로는 국가나 정치는 필요악으로 여기는데, 이에 대한 또 하나의 실례로 여겨집니다.


 길가메쉬는 용맹은 아마 엔키두보다도 못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길가메쉬는 사회지수(social quotient)나 지도력 지수(charisma quotient)가 매우 높은 인물일 것입니다. 마치 케사르Caesar가 공화정을 제정으로 바꾼 것은 정치적 천재의 한 작품이듯 그 때 상황으로 부족을 정복 흡수하여 국가의 형태를 만들었다는 것은 영웅의 탄생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저의 관점에서 보면 ‘길가메쉬의 서사시’는 정치적 격변기 후 안정을 찾기 위해서 홍위병들이 뒷일을 담당하고 처리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영웅 문학이 될지 모르겠으나 길가메쉬라는 인물은 부족에서 부족국가를 형태를 만들고 이 후 민심을 달래기 위한 영웅화 작업으로 비춰집니다.


 3분의 2가 신이고, 3분의 1일 사람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죽게 되는 상황에 대한 합리적 근거로 사람을, 피지배층과 구별되는 신분적 배경을 갖기 위해 신을 혼합한 정치적 논리가 엿보입니다. 다른 해석으로는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진시황제가 죽지 않기 위해 불노초를 찾았던 것처럼 정치적 업적을 이루고 나이가 들어 죽음이 걱정되었던 시점에 신과 인간의 중간이라는 이야기로 스스로 위안을 삼았을 수도 있습니다.


 뱀에 대한 느낌도 서사시에 대한 초반과 후반에서 달라지는데, 인류학자에 의하면 기독교에서 조차 처음부터 뱀이 부정적인 상징을 갖은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처음에 뱀은 허물벗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젊음으로 환생하는 착각을 주었고 영물 또는 신적 존재로 숭앙받았습니다. 자연스럽게 기독교에서 유일신을 섬기면서 영물로 여겨지는 뱀은 외양적인 혐오감과 더불어 사탄의 상징이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기독교에서도 성경의 뱀이 상징적인 것인지, 뱀과 유사한 외양을 갖은 다른 동물인지, 실제 우리가 보는 뱀이지 확신이 없는 듯 합니다. 어째든 이 서사시에서 전반부에는 '둘째는 자궁 같은 뱀으로 혀를 날름거리며, (중략) 다섯째는 머리가 잘 생긴 뱀으로 혼을 쏙 빼앗으며(p165)'라고 기술되어 일곱 전사를 수사하는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반면 후반부에는 ‘뱀 한 마리가 식물의 향기를 맡고 몰래 올라와 그것을 갖고 달아났다.(p311)’라고 쓰여 있어 부정적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종교에 관해서는 어떤 말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 스스로가 기독교 성서의 연관성 때문에 이 책을 읽었고, 저자가 히브리족의 창세기 <베레쉬트>를 언급한 이상 이에 관해서도 언급을 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신의 지문>을 읽다 보면 큰 홍수에 관한 것도 성경에 기술되어 있는 것과 같은 전 지구적인 홍수가 있었는지, 국지적인 홍수에 대한 인간의 감흥은 동일하여 세계 거의 모든 곳에서 홍수에 대한 설화가 있는지 혼동되었습니다. <성경: 고고학인가 전설인가> 책을 보면 다윗왕 시대의 국가는 큰 나라가 아니였다고 하며 솔로몬의 궁전도 성경에 기술되어 있는 것과 같은 크고 화려한 궁전은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이 책에서는 요시아Joshia왕이 자국의 역사와 설화로 성경이라는 근사한 소설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서 고고학에 관해 꽤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지인에게 물어보니 이 책에 언급된 것들은 이 분야에 있어서 항상 논란이 되었던 이야기라고 합니다. 또 다른 학설에서는 출애굽(The Exodus from Egypt)한 것 자체가 부정된 학설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기기 좋아했던 이집트인들이 유대인 출애굽한 것과 같은 대사건을 한 줄의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는 것과 출애굽하여 방황과 정착한 가나안 땅 조차 애굽의 지배 하에 있었다고 하여 출애굽을 허구로 여기는 고고학 학설도 있습니다. 저자가 은연중 에 내비추고 있는 '길가메쉬의 서사시'가 있다는 것이 성경을 낳은 신화로 그리고 그리스 신화의 원형으로 인정해야 될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본인도 상당한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후반부에 죽음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 것은 단지 사건을 바탕으로 한 서사시뿐만 아니라 철학적 내용을 일부 담고 있다는 것이며 이것은 국가가 완성된 이 후 아마 지배계층을 이루는 지식인들의 지적 욕구에 비롯된 것이거나 아니면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죽음을 앞에 둔 길가메쉬의 요구에 따라 죽음에 관한 이론이 필요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많은 내용이 현실감에 있게 다가오는 것은 5천년의 사람이나 현재의 사람이나 사람 사는 것이 거기서 거기인 듯한, 사람으로서의 한계로 해석됩니다. 강자에 의한 정복의 이야기,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한 몇 가지 작업들, 그리고 모든 것이 안정적일 때 나타나는 허무적 감정들을 위한 철학적 의문들...

 

 ‘길가메쉬 서사시’ 자체가 역사적 사건을 담고 있고 최초의 서사시라는 점과 그 내용이 성서적 창조 신화와 관계되었다는 점에서, 교양인으로서 읽어 볼만한 책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제목을 처음 보고 당연히 번역서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이와 같은 책이 한국 사람에게 쓰여졌다는 것은 매운 반가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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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5-02-11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의 지문> 상, 하 그레이엄 핸콕 저/이경덕 역/까치글방 출판
<성경 : 고고학인가 전설인가> 이스라엘 핑컬스타인, 애셔 실버먼 저/오성환 역/까치글방 출판
이완용과 이인직에 관한 이야기는 어느 선생님께 들었고, 고 박정희 대통령과 그의 참모(정치인)과의 관계는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단지 한번 이야기 듣고 책 한권에 글이 쓰여진 것만으로 사실로 인정해야 될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미완성 2005-02-11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이렇게 날카롭게 분석을...앞서 올린 제 글이 부끄러울 지경입니다;;
마립간님 정말 잘 읽었습니다. 추천이어요, 추천. 왜 추천은 한 번 밖에 할 수 없는 걸까요 ㅜ_ㅜ 님도 숙제 끝내신 거 축하드려요 :)

비로그인 2005-02-11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립간님. 훌륭한 리뷰 잘 읽었습니다. 저자의 수메르 세계관을 좀 더 확실하게 파악하려면 그의 책 -신화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를 꼭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저도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를 읽은 후에야 그 책을 알게되었고, 지금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시면 수메르 신화가 과연 그리스와 히브리 신화의 원형일까? 라는 의구심은 사라지겔 될 것으로 믿습니다. 저자가 다음에는 무엇을 들고 우리에게 다가올 지 기대됩니다.

마립간 2005-02-12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화예찬님 반갑습니다. 훌륭한 리뷰라고 칭찬해 주시니 부끄럽네요. 그냥 연상되었던 것들을 적은 것 뿐인데요. 그리고 <신화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 구입신청을 하였습니다. 좋은 책을 추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신화예찬님, 서재를 닫으셨네요(?).
 
천.천.히 그림 읽기
조이한.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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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에 관해 문외한인 저는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손주철 지음/효형 출판)라는 책을 읽으면서 ‘아하 그렇구나!’ 이 그림은 이런 것이었구나. 그런데 어떤 분이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것은 사람의 지적 오만이라고 이야기하셨습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보는 만큼 알게 되는 것’이라는 주장하셨습니다. 시인 조지훈님은 '시를 해석하는 것은 시를 죽이는 어리석인 일이다.'라고 이야기하셨습니다.


 문학이든 음악이든 미술이든 많은 작품을 통한 풍부한 경험이 있고 그 분야에 대한 지식도 있어 작품을 대할 때, 직관으로 그 작품을 평가하는 것이 가장 좋은 작품의 감상방법인데, 경험과 지식이 없을 때에는 어떻게 감상해야 할까요.


 여기서 미술을 포함한 예술에 관한 (저 개인적인 그리고 철학적으로 오래된 질문인) ‘미’ 즉 ‘아름다움’이 사람과 관계없이 실존하는 것이냐에 대한 의문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세계의 교양을 읽다> (최병권, 이정옥 역음/휴머니스트)라는 책에서는 ‘예술 없이 아름다움에 대해 말할 수 있는가?’라는 제목에서 아름다움이라 사람의 인식 즉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즉 밤하늘의 별이 아름답다는 것은 사람의 여러 가지 직 간접 경험을 통해 아름답게 생각할 수 있는 자료가 있는 사람에게만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저 개인적으로 이 이견에 선뜻 동의할 수 없습니다.


 책의 마지막에 현대 미술을 소개하면서 관객이 받는 느낌을 강조하지만 미술에 문외한들이 미술 작품을 보면서 ‘이게 뭐야’라고 한다면, 그것이 작품으로 가치를 갖지 않는 다는 뜻일까.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보고 잘 모르겠다는 느낌을 갖게 되면, 그 작품은 내가 아무렇게 그린 그림과 다른 것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없는 것인가?


 이 책은 ‘도상학Ikonographie’이라는 학문을 소개하면서 그림이 무엇을 그린 것이지, 그린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작가 및 사회배경과는 어떻게 관련 있는지를 설명합니다.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저는 그림의 아름다움을 보기 보다는 논리적 추론의 재미에 빠졌습니다. 그림에 대한 충분한 직관을 갖지 못한 저의 경우 그림의 해설은 또 다른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그림 보기가 아닌 그림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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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5-01-23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선물해 주신 깍두기님과 로드무비님께 감사드립니다. 깍두기님은 그림이 부족하다는 평을 주셨지만 저는 그에 대한 불만은 없습니다. 서양 미술 도감을 빌려서 본 적이 있었는데, 그에 대한 감흥이 ...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글쎄) ... 오히려 동양화는 해석보다 그림 자체를 즐길 수 있었는데, 서양화는 해석이 붙지 않으면 좋은 것을 잘 모르겠습니다. 최근에 <진중권의 현대미학 강의>, <미덕과 악덕의 알레고리>를 읽으면서 미술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저의 수준에 적절한 책이었습니다.

마태우스 2005-01-23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재밌게 읽었어요. 그런데 저는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에 더 동의합니다. 한번 접해본 그림을 전시장에서 보면 굉장히 반갑거든요. 물론 새로운 그림을 저자의 설명을 곁들여 알게 되는 것도 좋지만, 비교를 하자면 전자가 더 좋았어요.
 
괴델, 에셔, 바흐 : 영원한 황금 노끈 -상 까치글방 150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지음, 박여성 옮김 / 까치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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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언어에 대해서 언어로 말하는 것은 쉬운 반면에, 수에 대한 진술이 어떻게 자기 스스로 대해서 말할 수 있는가는 전혀 쉽지 않다. 그래서 사실 재귀준거적인 진술의 착상을 수론과 결부시키는 것만으로도 천재적 발상이다.-p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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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정신의 진화
하워드 블룸 지음, 양은주 옮김 / 파스칼북스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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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진화에 관한 네트워킹의 역할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세 가지 개념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자아 또는 정체성으로 대변될 수 있는 meme의 개념과 방법적인 접근에 있어서는 스파르타의 방식과 아테네 방식의 비교, 그리고 복합 적응 시스템complex adaptive system입니다. 그리고 저의 가치관의 한계가 아직 플라톤Platon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서양의 학문은 뉴턴Newton에 이르기 까지 플라톤이 벌려 놓은 일을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었지만...

 아테네는 다양성, 수평적, 민주주의(개인주의), 자유주의, 국제주의(세계화), 성장주의, 상업주의 등의 방법을 택하였고, 스파르타는 통일성, 수직성, 전체주의(집단주의), 권위주의, 고립주의(지역화), 저성장주의, 군국주의 등의 방법을 택하였습니다. 저자는 환경이 좋을 때와 나쁠 때에 따라서 그 환경에서 그 집단(meme의 하나)이 생존하는 우월적인 방법이 다르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이 책은 네트워킹을 통한 공생을 강조합니다. 다양성의 확보와 정보의 교환이 진화의 핵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meme이 한번 형성되면 우리와 너희를 구분하는 행위가 있고, 너희에 대한 적대적 행위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국 meme의 확장이 필요한데 개인, 가족, 국가 그리고 각각의 문화의 한계를 넘는 meme, 즉 인간의 도덕성으로 인류 전체에 대한, 그리고  자연을 포함한 meme의 확장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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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 2004-10-08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화'라는 생물학의 개념을 이용해서 '집단정신'을 풀어내는 저자의 통찰력과 솜씨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동조집행자, 다양성생성자, 내부심판관, 자원이동자, 집단간토너먼트, 이 다섯 가지 개념은 meme을 보다 구체화시키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빨리 하워드 블룸의 다음 저작이 나왔으면 좋겠네요.
 
아이들이 너무 빨리 죽어요
폴 방키뭉 지음, 김미선 옮김, 남희섭 감수 / 서해문집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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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분은 ‘아이들이 너무 빨리 죽어요.’라는 제목을 보고 ‘헉 저렇게 강렬한 제목은’이라고 이야기하셨지만 저는 강렬한 인상을 ‘이윤이냐 생명이냐?’라는 문구에서 받았습니다. 너무도 당연하지 않은가! (당연보다 더 당연을 뜻하는 용어가 있었으면 그 단어를 사용하고 싶다.) 그것은 이윤입니다.

 돈을 벌고 싶다. 무슨 돈 벌이가 없을까? 아픈 사람들이 항상 있으니 약을 만들어 팔면 되겠다. 이왕이면 효과가 좋고 부작용이 적으면 많이 팔리겠지. 그리고 좋은 약이라면 약값이 비싸도 환자들은 기꺼이 돈을 낼 것이다. 아니야, 너무 비싸면 약이 덜 팔리지도 몰라. 조금 가격을 낮추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환자도 구입할 만큼 조정을 한다면 더 많은 이윤을 남기게 될 꺼야.


 이것이 자연스러운 생각의 흐름이 아닐까요. 같은 돈벌이라도 환자라는 즉 아픈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면 부수적으로 더 좋은 일이지만, 좋은 의미와 돈벌이의 우선 순서를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타적 유전자>에 나와 있는 글을 인용합니다. 1768년 루이앙투안 드 부갱빌Louis-Antoine de Bougainville은 타이티 섬을 발견했다. - 중략 - 섬을 에덴 동산에 비유했다. - 중략 - 섬 주민들은 풍요롭고 안락하며 불화 없는 생활에 대한 보고들을 가지고 돌아왔다. - 중략 - 반동은 예고된 것이었다. 타히티 섬 생활의 어두운 측면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을 제물로 받치는 관습, 사제의 손을 빌린 정기적인 영아살해, 살인적인 분쟁의 악순환, - 후략

 같은 에피소드가 남양군도에서 반복되었다. 1925년 스물세 살의 마거릿 미드는 사모아를 방문했는데 - 중략 - 파라다이스에 관한 이야기를 갖고 돌아왔다. - 중략 - 미드의 신기루도 좀더 정밀한 조사를 통해 덧없이 증발해 버렸다.


 사람들은 꿈을 꿉니다. 각박한 도시, 문명, 불의不義, 비도덕적인 것들... 이 모든 것을 떠나고 싶다. 마음씨 좋은 사람들이 모여 평화롭게 사는 작은 마을이 있는 어느 섬. 사람이 루소Jean Jacques Rousseau의 '고상한 야만인'이나 맹자의 성선설의 해당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은 너무나 이기적입니다. 그리고 제약회사와 의료계도. 저는 법조계도 종교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향점까지 버리자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으로서 추구해야 하는 바는 분명하게 있으며, 이 책과 연관된 것을 이야기하자면 이윤보다 생명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분들 때문에 약소국이나 가난한 사람들이 그나마 삶을 지행하고 있습니다. 동정에 호소하는 것이 전부일까요. 저는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동정에 호소하기 위해서는 사실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자료들이 필요합니다. 이 책은 저에게 막연하게 알고 있던 것들에 대해 구체적인 정보를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프레토리아 소송에 참여한 분들을 포함하여 이기적인 인간 본성에 대해 항거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분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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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4-08-26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선물해 주신 가을산님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막상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윤이냐 생명이냐'라는 문구는 저에게 너무 강렬했습니다.

가을산 2004-08-26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네... 강렬한 리뷰였습니다! ^^
저의 멘트는 제가 정신좀 차린 후에....

가을산 2004-08-27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 이제 발등의 불을 끄고.....   저도 화끈하게......  ^^ 
미리 알림. 제가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어느정도 '이해가 될만한 분'이라는 전제에서 씁니다. 
재미있게 토론해 보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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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님, 대단한 환원주의자시군요! 

물론 인간은 이기적입니다. 물론 인간은 이윤을, 자기의 이익을 추구합니다. 당연하지요.

저도 이기적입니다.  저도 돈 많이 벌면 좋습니다. 저도 머리 아프지 않고 살면 좋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것 하고, 내가 생각하고 싶은 것만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약, 만들어서 많이 팔면 좋죠. '너무 비싸면 약이 덜 팔릴지도 몰라서 조금 가격을 낮추어' 팔아도 좋죠. 맞아요. 그게 '자연스러운 인간으로서의 생각'입니다.

다국적 제약기업, 그정도의 양심조차 없습니다. 다국적 기업, '자연스러운 인간으로서의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기계적으로 이윤을 추구하고는 그것을 숨기기 위해 자신의 이미지에 분칠을 할 뿐입니다.

'자연스러운 인간으로서의 생각'이 있다면, 현재의 우월적인 위치나 이익에 빠지지 않고, 앞날을 대비해서 염려할 것입니다.
자연스러운 인간으로서의 생각이 있다면 오늘은 내가 착취자의 입장에 있더라도, 언젠가 내가, 나의 후손이 약자의 위치에 놓일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인간으로서의 생각이 있다면, 오늘날처럼 지구의 자연환경을 오염시키거나 자원을 고갈시키는 것이 나와 내 자손에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깨달을 수 있을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 이유는, 현재의 질서가 '인간으로서의 생각'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자본의 논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인간적인 사고'를 가진 기업가라면, 선진국 환자의 구매력을 기준으로 매긴 약가를 전 세계적으로 고집하지 못할겁니다. 인간적인 생각이 있다면, 일년 수입이 240불 이상인 중국인 백혈병 환자에게 하루에 200불 가량의 약을 매일 먹도록 강요하지는 못할겁니다.
(노바티스는 세계의 일부 선택된 백혈병 환자에게 '글리벡' 무상 공급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경우, 이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일년 수입이 하위 10% 이내 - 년 240불 - 에 들고, 혈청학적 검사 및 chromosomal study가 적응증에 해당하고, 인터페론 치료를 시도해서 효과가 없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일년 수입이 240불 미만인 환자가, 과연 인터페론 치료는 고사하고, 의사 얼굴 보는 것이, chrosomal study를 하는 것이, 그리고 인터넷을 할 줄 알고, 영어를 읽을 줄 알아서 이런 프로그램을 신청할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까? 완전히 빛좋은 개살구죠. ) 

돈이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약을 먹지 못하는 사람에게서는 그저 '약이 덜 팔리는' 문제가 아니라 '죽고 사는' 문제가 걸려 있습니다.

이건 단순히 '동정'이나 '이타적'인 생각이 아니라, 언제라도 내가, 나의 자녀가, 나의 가족이 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기 때문에 미리 대비하고 염려하는, 지극히 이기적인 계산의 결과입니다.
이게 더 자연스러운 생각의 흐름 아닐까요? 

저는 사실, 결혼 한 것에 대해서 구속을 많이 느낍니다. 결혼하지 않았으면 이루었을 것들에 대해 동경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결혼해서 제가 바람직하게 변했다는 것들 중 몇가지가, 조금은 갈등과 고통을 이기고 기다리는 참을성이 생길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겸손해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도 이기적 유전자니, 사회생물학 논쟁이니 하는 것에 대해 압니다.
우리는 이기적이라는 것 무척 공감합니다. 
저도 이기적이기 때문에, 머리 굴리는겁니다. 
저도 가족이 없었다면 '그게 그런거지' 냉정하게 생각하고, 나 하나쯤이야 어찌되어도 상관 없습니다. 내 유전자 풀쯤이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입니다. 물론 진짜 위험이 닥쳤을 때에는 유전자적 본능으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 치겠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제게는 자식이 생겼고 - 부처는 '라훌라(장애물)'이라고 했지요 - 이로서 이 세상과의 끈이 더 강하게 묶이게 되었습니다 .
자식과 미래의 세대를 걱정하는 것이 '이기적 유전자'의 작동 원리이지요.

저는 이기적인 머리 굴리고 있습니다. 재벌이 될 가망도 없고, 자자손손 돈걱정 없이 만들어줄 능력도 없기 때문에 시스템을 바꾸려는겁니다. 
돈 벌려고 아귀다툼 하기 싫고, 내 자녀들이 아귀다툼 하는 것이 싫기 때문에 무언가 안전망을 만들고 싶은겁니다.

동정? 그런건 집어치우세요.

다 내 맘 편하자고 하는겁니다.  다 나와 내 자식들 편하자고 하는거에요.
간단히 머리를 굴려 80:20 사회에서 우리가 어느쪽에 속할 확률이 높은지 생각해보세요.
내가, 아니면 나의 자식들이, 가족들이 20에 들기보다는 80에 속할 가능성이 큽니다.
20안에 들기 위해 피터지게 싸우는 것보다는 80도 맘 편하게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더 얻을 게 많은 싸움이라는겁니다.

마립간님은 자신 있으신가요?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혹시나 해서 사족.
제 계급적 출신 때문에 80 운운하는 것 아닙니다. 
저는 몰라도, 제 부모님.... 상위 1프로 이내에 드십니다.
저도 현재 상태로는 아마 상위 20-30 내에 들겠지요.
당대에는 이래도 미래는 알 수 없는겁니다.  
유전자는 생각보다 영리합니다. 더 계산을 잘할 수 있어요.


2004-08-27 0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립간 2004-08-27 0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가을산님을 좋아하는 것 아시죠. 제가 잘못된 생각이 있다면 바로 잡는 좋은 기회가 되겠지요. 가을산님의 '제가 정신을 차린 후에'라는 댓글을 보니 제 글이 조금은 충격적이었나 봅니다. 제가 두번째로 인터넷이라는 곳에 글을 올리고 제목도 과격했던 '나는 안티 페미니스트다.'를 올릴 때 많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좋하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저의 생각의 흡집을 메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죠.
우선적으로 가을산님이 질문에 답변을 하면 '아니요, 자신 없습니다.' 마립간의 생활 OX 문제로 언뜻 보였지만 저는 하위 10%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스템'... 다음에 쓸 글의 내용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 저도 생각의 정리를 하고...

가을산 2004-08-27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립간님, 저도 마립간님 좋아하는 것 아시죠? ^^ 그래서 맘에 있는대로 쓴 글입니다.
음... 그리고 '정신차린 후에'는.... '다른 밀린 일들을 끝내고 나서'라는 의미였습니다.
상황을 보는 출발은 같은 것 같은데, 결론의 차이는.... 아마 우리의 '선택'의 영역 아닐까 합니다.

조선인 2004-08-27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문방송학과를 나와 마케팅본부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으로서 잠깐 껴들어 보겠습니다. 가격을 결정함에 있어 "너무 비싸면 약이 덜 팔리지도 몰라. 조금 가격을 낮추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환자도 구입할 만큼 조정을 한다면 더 많은 이윤을 남기게 될 꺼야."라고 판단하지 않습니다.
아예 제품기획단계에서 부유층에 팔 비싼 약과 누구에게나 팔 값싼 약을 결정합니다. 전자의 경우 가격을 높이면 높일수록 좋습니다. 구매자에게 특권의식을 줄 수 있기 때문이죠. 후자의 경우 가격을 적정수준으로 조정하는 대신, 누구나 꼭 먹어야 하는 만병통치약으로 여기도록 광고전략을 짜게 됩니다. 즉 누군가가 가지고 있을 '인간'의 양심에 호소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죠.
저로서는 인간 본성이 이기적인지, 이타적인지, 혹은 유전자가 이기적인지 이타적인지 판단을 내릴 수 없지만, 인간을 논의함에 있어 개체 단위로 판단하는 것보다 개미처럼 집단 단위로 파악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뭐, 본성에 의해 혹은 유전자에 의해 사회가 형성 존속된다고 부연설명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요 ^^;;

마립간 2004-08-27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타적 유전자>, <이기적 유전자>, <게놈>은 유전학책이 아니며 인간이 유전자에 의해 조정받는다라는 보다는 유전자의 입장에서 본 사회학 정도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개미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조선인 2004-08-27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미 얘기 듣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