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사박물관대학 제10기 교육생 모집


  서울역사박물관(관장 김우림)에서는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서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2006년 9월 13일(수)부터 11월 22일(수)까지 서울역사박물관대학 제10기 교육과정을 운영합니다.


  이번 박물관대학 제9기는“서울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내용으로 백제시대의 서울, 서울의 풍수, 조선시대의 예술, 민속, 식생활, 한일문화교류사절단 통신사, 조선시대 법의학, 삶의 현장으로서의 청계천 등의 서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등 다양한 내용과 그 분야의 전문가를 모시고 총 10주 동안 진행됩니다.


  교육시간은 매주 수요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이며, 서울시민으로서 20세 이상 성인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인터넷으로 신청을 받으며 추첨으로 250명을 모집합니다.

  

  서울은 백제시대의 서울, 조선의 수도로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조선 건국의 한양 천도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서울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고, 세계 속 국제도시로서의 위상을 높이고 있습니다. 이 강좌를 통해 오랜 역사와 문화를 지니고 있는 국제도시 서울에 대해 바르게 알고,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있는 시간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1. 교육운영개요

   ◦ 기    간:2006. 9. 13 ~ 11. 22(매주 수요일, 10주)

   ◦ 시    간:오후 2시~ 5시(1일 3시간)

   ◦ 대    상 : 서울의 전통 문화에 관심 있는 20세 이상 성인

   ◦ 교육내용:서울의 역사와 문화

   ◦ 교육방법:강의, 시청각교육 등 실시

   ◦ 인    원 : 250명

   ◦ 강    사 : 서울의 역사와 문화 분야 전문가

   ◦ 장    소 : 서울역사박물관 1층 강당

  

2. 교육신청방법

  ◦ 신청기간:2006. 8. 14(월) 09:00 ~ 9. 1(금) 18:00

  ◦ 신청방법:서울역사박물관 홈페이지(www.museum.seoul.kr)

     (① 초기화면 → 교육공지사항 → 교육일정 → 수강신청

      ② 초기화면 → 학습관 → 교육일정 → 수강신청

      ③ 서울시 예약시스템 → 강좌/교육 )

  ◦ 수강자선정:신청자 중 컴퓨터로 250명 추첨

  ◦ 수강자발표:2006. 9. 5(화) 10:00 홈페이지에 수강자명단 발표


3. 문 의 처

  ◦ 주소: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 2가 2-1 서울역사박물관 교육홍보과

  ◦ 전화:02)724-0196

  ◦ 담당자:한은희


4. 교육내용

구분

일자

시간

교육내용(가제)

강사

제1주

9/13

14:00~14:10

 개강식

담당자

14:10~17:00

 백제시대의 서울

권 오 영

(한신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제2주

9/20

14:00~17:00

 고구려의 고분벽화

전 호 태

(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제3주

9/27

14:00~17:00

 서울의 풍수

김 기 덕

(건국대학교 연구교수)

제4주

10/11

14:00~17:00

 조선시대 음식문화

김 상 보

(대전보건전문대학 전통조리학과 교수)

제5주

10/18

14:00~17:00

 조선시대의 예술

  -도자기-

방 병 선

(고려대학교 고미술사학과 교수)

제6주

10/25

14:00~17:00

 한일문화교류사절단

  -통신사-

정 장 식

(청주대학교 동양어문학부 교수)

제7주

11/1

14:00~17:00

 서울의 신앙민속

오 문 선

(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제8주

11/8

14:00~17:00

 조선시대 법의학이야기

김 호

(경인교육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

제9주

11/15

14:00~17:00

 삶의 현장으로서의 청계천

박 현 욱

(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관)

제10주

11/22

14:00~17:00

 대한제국과 근대

이 민 원

(국가보훈처 보훈교육연구원 연구부장)

17:00~17:30

 수료식

담당자

※ 위의 일정은 강사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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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08-10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기덕 교수님도 계시다! 우웅.. 직장인들을 위한 시간에도 개설해 달라ㅡ.ㅜ
 
역사는 한 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 - 비전향 장기수 허영철의 말과 삶
허영철 지음 / 보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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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이렇게 말했어. 소련이 붕괴되었다고 사회주의가 지상에서 소멸한 것은 아니다. 크게 보자면 역사는 과정이지 완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일직선으로 진행되는 것도 아니며, 때로는 후퇴도 하고 때로는 우회도 하면서 총체적으로 전진해 가는 것이다. 사회주의 이전에 자본주의도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뒤에 몇 번이고 퇴보와 전진을 계속하다가, 1871년 꼬뮨 이후에야 비로소 부르주아의 승리를 확인하지 않았는가. 소련이 붕괴되고 사회주의가 일시 퇴보했어도 반드시 좀 더 나은 사회주의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새로운 사회주의의 전형이 나와야 할 때이다......

나는 그렇게 내 견해를 피력했어. 그리고 또한 그때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도 강조했지. 그것 말고는 해명할 방법이 없었어. 제도를 만드는 것도 사람이고, 그것을 운영하는 것도 사람이야. 아무리 좋은 제도라고 해도 운영을 잘못하면 잘못될 수도 있는 것이겠지. 소비에트가 그런 것처럼.-351쪽

생활이 여유롭지 못한 것은 사실이에요. 북이 어렵다는 것은 굳이 평양까지 가지 않아도 여기 앉아서도 알잖아요. 그렇게 만든 것은 미국의 탓이 가장 크지만요.
사회주의 경제 체제는 무너지고, 미국의 경제 압력은 거세지고, 거기다 자연재해까지 계속 이어졌지요. 그래도 그 힘든 것 다 극복하면서 이만큼 이뤄 냈잖아요. 자존심 잃지 않고, 자긍심 버리지 않고.
비록 지금 생활이 조금 어려워 보여도 미래를 보면 더 잘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분명 보여요.
그게 진짜 잘 사는 것 아닌가요? 오히려 내가 보기에는, 자본주의에 더 희망이 없어요.


사회주의 붕괴 뒤에 자본주의 사회에 생긴 가장 큰 변화가 무엇인지 아세요? 바로 대량 해고예요.
사회주의가 존재할 때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함부로 대량 해고를 하지 못했어요.
소비에트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제국주의자들은 위기를 느꼈어요.
다르게 말하면 소비에트의 존재가 노동자들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는 거지요.
노동자들이 실제로 의식하든 안 하든 생존이 위기에 처하고 힘이 들게 되면 자본주의 바깥 세상으로 주의를 돌리게 될 것이고,
그러면 성난 노동자들이 소비에트처럼 지배자에게 항거하게 될 게 아니겠어요?
그러니 오늘날과 같이 노동자들을 핍박하지 못했던 거죠.
그런데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나니까 이제는 경영 쇄신을 이유로 대량 해고가 가능해졌거든요.
자본주의 사회는 무엇보다도 이윤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니까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미래는 정말 불투명해요.-3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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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6-08-10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다 읽으셨어요? 전 한 50%정도.. 현대사를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어서 아주 마음에 들어요

마노아 2006-08-10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주가 걸렸는지 몰라요ㅠ.ㅠ 다 읽으니 속 시원해요^^
 
역사는 한 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 - 비전향 장기수 허영철의 말과 삶
허영철 지음 / 보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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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래도록 읽었다.  워낙 쉽게 읽혀질 거라고 짐작하지도 못했지만 중간중간 다른 책도 읽어가며 쉬엄쉬엄 읽었다. 


사실 앞부분에서 그가 태어나서 자라고 어떻게 노동자 생활을 했으며 또 사회주의 사상에 발을 담게 되었는가, 해방 후의 행적과 전쟁 시기 북쪽에서 공부한 이야기, 그리고 남파되어 잡히기까지의 행적은... 많이 지루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 정신 번쩍 나게 만들었으니, 이번엔 책을 깨끗하게 보려고 했는데 색지를 엄청 붙여가며 읽어야 했다. 지금까진 그저 비전향 장기수 한 명의 이야기를 읽어왔다고 친다면, 이제부터는 역사를 온 몸으로 받아내며 스러지지 않았던 한 혁명가의 이야기를 읽게 된 셈이니까.

추천사에서 윤구병 교수님이 이 책을 읽고 나서 대한민국 평균 국민이라면 아마도 불편할 것이라고 했다.  당신도 많이 불편했노라고.  읽기 전부터 불편할 것을 예상했지만, 역시나 책을 읽어가면서 혼란이 밀려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왜?  대한민국 평균 교육을 받고 자랐고, 딱 그만큼의 사고관을 가진 사람이었으니...

시대가 바뀌어 북한 사람은 모두 머리에 뿔난 도깨비다!라는 말도 안 되는 비방은 먹히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북한 사람도 우리랑 똑같은 사람이야!라는 당연한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서 우리에게 그들의 실상이, 우리 역사의 감춰진 이면이 제대로 설명되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릴 적에는 어른들 말씀이 다 옳은 줄 알았고, 교과서에 적혀 있는 게 진리라고 믿었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고 의심하지 않았다.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것이 전혀 당연하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받게 되는 충격과 상처는 내가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피해갈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다고 믿었음에도,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여전히 혼란스럽고 아프고 서러웠다.

허영철은 무려 36년 간이나 감옥에서 신념을 지키며 살았다.  정말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긴 시간이었다.  아니, 거짓으로라도 전향한 척하고 나오면 안 되나?  남겨진 가족은 어떡하고?  그렇게 시간을 죽인다고 뭐가 달라지는데?  라는 질문이 모두 내 것이었다.  그런데, 책장을 넘겨가면서부터는 그런 질문들이 부끄러워졌다.  그건 일생을 한 목표를 바라보며 곁눈질하지 않고 달려온 혁명가에 대한 모독이었으며 아픈 역사를 짊어지고 사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책임 유기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공화국이 있기 때문에 견딜 수 있다고 했다.  대체 그 공화국이 무엇이길래... 우리에게는 국민들 굶겨 죽이는 부도덕하고 무능력한 정권이기만 했는데, 그 공화국이 대체 어떤 의미였기에 허영철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수십 년의 시간을 바치면서까지 신념을 꺾지 않았을까.  단지 그들이 미쳐서, 혹은 꼴통이어서 그랬다고 한다면 차라리 내 마음이 편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는 것을 마음 깊숙이 인정하게 되는 순간부터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우린 모두 단체로 속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진실을 모르고 사는 것은 우리가 아닐까?  정말 누구의 표현처럼 우린 일본의 식민지에서 해방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식민지로 보이지 않게 이동한 것은 아닐까... 이런 망상 아닌 망상들이 머리 속을 헤엄치고 다니는 것이다.

대학에서 교양 수업으로 한국 현대사를 들었었다.  교수님께선 한국전쟁에 대한 수업 중에 한 전쟁을 두고 어떻게 부르는가 명칭이 매우 다르다고 여러 예를 들어주셨다.  그때 북한이 부르는 이름 중에 “이긴 전쟁”이란 표현이 있었다.  사실, 난 그때 웃었다.  일종의 자기 암시라고 여겼던 탓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도 그런 내용이 나왔다.  박헌영에 대한 기술이었는데, 남에서는 박헌영에게 전쟁의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서 북이 그를 희생시킨 것이라 말한다고... 허영철은 반문한다.  6.25 전쟁은 우리가 승리한 전쟁인데 어째서 그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 넘기냐고......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벌어진 전쟁을 두고 그 원인과 과정, 결과가 모두 다르게 해석되어지고 있는, 비틀거리는 우리 역사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아서 난 아찔함을 느꼈다.  그리고 당시 받았던 수업 내용이 얼마나 심각했었던가를 새삼 깨달으며 어쩐지 송구한 기분도 들었다.

허영철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혁명의 차이를 얘기할 때에도 아찔함을 넘어 난 비틀거릴 지경이었다.  그의 말을 잠시 옮겨 보자.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자본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혁명이 다르다는 겁니다.  자본주의는 봉건제도를 무너뜨리고 혁명을 이뤘지만, 그 혁명은 거기에서 멈춘 채 권력을 교체하는 것에서 끝났어요.  자본주의가 자랑하는 삼권분립이라는 것도 결국에는 봉건 군주들, 승려들, 신생 부르주아지들의 야합의 결과물일 뿐입니다.  혁명을 이루었다고 하면서도 의회는 신생 부르주아지들이 차지하고, 행정은 봉건 군주 치하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차지하고, 사법은 승려의 몫이 되고 말았잖아요.  그게 소위 삼권분립이라는 것의 요체입니다.

민중은 혁명에 동참했지만, 열매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결국 그런 식의 야합으로 정권 교체를 하니까 혁명이 거기서 멈춰 버리는 것이지요.  혁명이 일어났다고 해도 결국에는 상층부만 교체된 것에 불과하니까요.

사회주의 혁명도 권력을 쟁취한 뒤에 이뤄진 것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하나의 사회가 완성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에요.  인간의식을 개조하면서 좀 더 높은 사회로 전진해야 하죠.  더 높은 수준의 사회는 있을망정 , 완성된 사회는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하지 않을 거예요. 

참으로 매끄럽고 적확한 설명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더 높은 수준의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도 같이 이야기한다.  인간의 의식 개조가 가장 중요하다고.  물질보다 중요한 것은 정신이라며... 우리가 머리로만 알고 가슴으로는 잘 실천하지 못하고 행동으로 잘 보여주지 못하는 그 명제를 얘기한다.  그의 말대로, 미국은 전후 50년 이상 북조선을 압박하며 탄압하고 갖은 모략을 다 동원했지만 그 체제를, 그 사회를 온전히 꺾어내지 못하고 축출하지 못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미국이 힘이 부족해서?  남한이 중재를 잘해서?  아니라는 것은 우리가 안다.  어쩌면 그 대답을 일부러 피해왔는지도 모르겠다.  그건 북조선의 인민들의 힘이었다.  북이 아무리 독재 사회라지만 인민들의 저항이 거세다면 저렇게 유지될 수가 없는 것을...

우리도 겪어서 알고 있다.  이승만 때에도 그랬고, 박정희, 전두환 때에도 그랬다.  부당한 독재 체제를 벗어나기 위해 학생들도 시민들도 끊임없이 항거했다.  북조선이 유지되는 것은 독재가 너무 강력해서도 아니고, 그곳의 국민들이 모두 온순해서도 아니다.  거기엔 당위성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남한 땅보다, 우리가 가엾게 여기는 저 북쪽 땅이, 사실은 더 민주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해보니 소름이 끼친다. 

그는 4.19와 5.18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을 모두 감옥 안에서 맞았다.  그럼에도 그가 겪은 체험은 소위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는 우리의 정보망을 앞선다.  우리는 심각한 언론 통제와 세뇌 교육을 너무 오랫동안 받아온 것이다.  그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서글픔을 넘어서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안타까움대로, 그때 자유를 향한 울부짖음과 투쟁이 좀 더 거세어져서 거국적인 움직임이 되었더라면 통일도 결코 꿈이 아니었을 텐데, 민족의 역량을 얘기할 때 늘 우수한 한국인을 자랑하지만, 그렇지 못한 반대 사례도 많음을 새삼 깨달으며 부끄러움이 치솟았다.  현장에 있어보지 못한 세대로서 함부로 할 말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는 출옥하고서 생계 유지를 위해 아파트 경비병으로 일했다.  모두 합해서 7년 4개월의 근무였는데, 해당 아파트 주민들로부터 감사패를 받을 만큼 성실하게 일했다.  그는 그 까닭을 공산당원이라면 조직을 떠나 있다고 하더라도 도덕적인 책무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모습이 곧 당을 대신할 수 있으므로.  반 생애를 감옥에서 보내며 고된 삶을 이어온 그의 입에선 그토록 당당한 이유가 나오는데, 만약 같은 경우 우리들은 조국 대한민국의 명예를 위해서 열심히 일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 그런 생각을 할 수나 있는가?  국가의 명예가 개인의 행복을 앞서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매 순간 부끄럽지 않기 위해 우린 과연 노력해본 적은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그의 아내는 그와 함께 산 시간이 도합해서 모두 6개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나머지 시간은 그가 잡혀서 가족이 함께 고통을 당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한 시간이었으며, 그가 무기징역을 받은 이후로는 좌익사범의 가족으로 결코 평범함이 용인되지 않은 살얼음판 같은 고통의 시간이었다.  당연히 원망이 없을 수 없는데, 그런 아내도 남편을 가리켜 정치적으로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솔직히 꽤 충격을 받았다.  소위 배웠다고 하는,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보다 오히려 더 객관적인 판단과 인식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오래도록 통일을 꿈꿔왔다.  그가 남쪽에 내려와 하고자 했던 것도 통일을 위한 초석 다지기였다. (이런 표현을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 한다.) 수구 기득권은 통일을 가리켜 ‘당위’라고 못 박아 얘기하지만 ‘당면’한 문제는 아니라고 역시 못박아 얘기한다.  그들의 속내엔 사실 통일 안 하고 싶은 이유가 백만 배쯤은 많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인식이 점차 퍼져가고 있다는 것에 민족의 비극이 있다고 생각한다.  (문득, 6.15선언 때의 김대중 전 대통령을 가리켜 치매 노인 운운한 모 여인이 떠오른다....;;;;;;)

그는 늙은 몸을 하고서도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한다.  지금이야 미군기지 평택이전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어 있지만, 보다 덜 알려져 있던 시기에 이미 반대 집회 등에 참석했던 사람이 허영철이다. 

2005년도에 그는 북한을 4박 5일 동안 방문하고 돌아왔다.  무사히 다녀오긴 했지만 언뜻 생각해도 그 과정이 쉬웠을 리는 없다.  편집자의 말대로 평생을 통일 운동에 헌신한 사람을 못 가게 하는 것이 합법적인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보며 갑갑함에 갈증마저 인다.

그는 가난하나 긍지를 잃지 않고 사는 북조선의 현재를 보며 오히려 희망을 읽고 돌아왔다.  오로지 물질적인 척도만 가지고 그들을 적선의 대상으로나 여기며 혹은 이 쌀 받아가서 군수품으로 쓰는 거 아니야? 라며 의심만 하는 우리의 눈이 부끄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 인터뷰 내용에서 편집자는 묻는다.  “선생님 소원은 통일이지요?”
허영철은 대답한다.  “그럼 여러분은 아니에요?  우리 모두의 소원이 통일이 아니었나요?”
그 반문에, 나는 엉엉 울고 말았다.  왜 우는 지도 설명하기 어려웠다.  그냥 왈칵 눈물이 치솟았고, 부끄럽고 또 고맙고, 또 한편으론 희망도 보이는 것 같아 복잡한 심정에 목을 놓아 울었다.

문득, 잊고 있던 기억 하나를 두드린다.  99년도에 시립 교향악단의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클래식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졸린 시간이었다.  그런데 모든 순서가 다 끝나고 앵콜이 들어왔는데, 앵콜 곡도 끝나고 또 한 차례의 앵콜 요청에 지휘자는 깊이 절을 하고는 특정 곡을 연주하도록 했다.  그 곡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었고, 그 순간 장내는 박수 소리 온 데 없이 숙연해지고 말았다.  우리는 누구도 앉아 있지 못하고 기립하여 다 함께 그 노래를 불렀다.  그때도 나는 울컥해서 참 많이 울고 돌아왔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당연한 거였는데, 당연하다는 듯 잊고 살았다.  아직 갈 길이 먼데 내 일 아니라는 듯 태만을 보이고 말았다. 머리로만 알고 심장은 알지 못했던......

이 책의 제목을 다시 한 번 새겨본다.  “역사는 한 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 어디 허영철 뿐이겠는가.  우리 모두 역사의 한 가운데에 놓여 있다.  그 도도한 흐름을 피해갈 수도 없고 거스를 수도 없다.  그 역사의 바른 흐름을 위해 애써야 할 사람이 우리들이다.  어느 시인이 말했듯이, 사람만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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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8-10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너무 궁금해요!

마노아 2006-08-10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처럼 심장이 뜨거워지는 책을 만났어요. 적극 추천이에요~

Lauren 2006-08-11 0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정적인 감상평 잘 읽었습니다.
꼭 읽어보도록 할께요. 감사합니다!

마노아 2006-08-11 0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Lauren님, 안녕하세요. 열정적이라니, 부끄러워요~ 님의 감상도 기다릴게요. 저야말로 고마워요^^

내이름은김삼순 2006-08-24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뽑히셨군요~축하드려요! 방금 보구선 바로 달려왔어요,,ㅎㅎ
긍데 너무 길어서 지금 다 못 읽겠어요,ㅠ 저녁 먹으로 갈 시간이거든요,
다시 와서 꼭 읽고 가겠습니다,,^^

마노아 2006-08-24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헷, 고맙습니다.^^ 저도 물만두님께서 알려주셔서 알았어용^^;; 알라딘 덕에 호강을 한 거죠^^;;;;

해리포터7 2006-08-25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리뷰 뽑히셨네요..축하드려요!!

마노아 2006-08-25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헷, 고맙습니다^^ 긁적긁적...^^;;;
 
한국생활사박물관 3 - 고구려생활관 한국생활사박물관 3
한국생활사박물관 편찬위원회(3권) 지음 / 사계절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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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붙어 있는 습관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이런 순서였다.

국사 책이 분류사로 나뉘어서 기술될 때에도 제일 앞부분에 나오는 것은 "정치"다.  그나마도 시간 관계상 정치사 중심으로 배우고 문화사는 근처까지 가지도 못하고 학기를 마친다.

우리 신문도 대체로 그런 편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정치'가 가장 중요한 것처럼 세뇌당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유독 반가웠다.  정치 이야기를 배제한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이 주제로 삼고 관심을 쏟은 것은 "생활사"니까.  그 속의 주인공은 왕이나 귀족이나 장군이기보다 그저 우리와 똑같은 "백성"이었다.

사진도 적절히 나오지만 대개 정성을 엄청 쏟은 티가 나는 그림이 나온다.  아마도 사진만은로 구성되어 있으면 좀 더 친밀감이 들지 않고 딱딱한 분위기를 가졌을 텐데, 만화체의 그림이 나오니 어린 학생들도 손쉽게, 정겹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책의 말미에는 논문을 보듯 전문적 지식을 담아 쭈욱 정리를 해주는데, 글이 많아서 읽기가 눈 아프지만 만족도를 높여주는 데에는 역시 일조한다.

내 기억에, 이 책 시리즈가 없는 도서관은 보지 못한 것 같다.  혹여 없는 도서관이 있다면 신청하면 갖춰놓을 게 틀림 없다.

그렇지만 집에 한질 갖고 있다면 더더욱 폼나고 공부되고 도움 될 것이다.   사계절이 이 책 내고 출판상을 많이 휩쓸었다고 들었는데 그럴 만하다고 공감할 것이다.  엄청난 정성을 쏟아 부었으니까.

안 그래도 요새 고구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분위기인데, 그 분위기에 편승하는 거라면 말이 웃겨지지만, 공부해서 나쁠 것 없지.  엄마와 아이가, 언니 동생이 함께 보며 좋아할 수 있는 멋진 학습책이다.  그것도 절대 지루하지 않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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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나무 왼쪽 길로 4
박흥용 지음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7월
품절


내가 열댓 살 되던 때지...
동네 스무 살 된 형님들이 공장에 취직해서 돈도 벌고
술, 담배하는 것이
어른같이 그럴 듯해 보이는 거야.

나, 스무 살 되던 해, 집 뛰쳐나와 공장에 들어갔어.
이런, 어른은 무슨... 돈 벌고 술, 담배만 하는,
껍데기만 어른 흉내를 낸 거였어.

그런데 서른 살 된 선배, 형님들이 장가가고 애도 낳고... 그러는 거야.
그 모습이 진자 어른 같더라구.
그래서 나도 장가갔어.
그런데 겉만 어른이고 속은 여전히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애야.

마흔이 되면 뭐 좀 알겠거니 했는데...
서른 살 때 아무 것도 몰랐던 그대로 마흔이 되더라구.

이제 내 나이 오십이 됐거든...
이제, 뭐 좀 알겠더라구.

아무 것도 몰랐던 서른 살의 그때 그 모 습으로
육십, 칠십, 마침내 죽음까지 맞이하게 된다는 것을... 말야...

투둥 투두둥, 오토바이 타고 세상을 한바퀴 휘돌아 다시 집에 왔지만
집 떠날 때 그대로 여전히 답답한 거야.
누가 인생과 여행은 닮았다고 했나...
그 말이 뼈에 사무치더라니까... -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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