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쿠다 히데오 지음, 임희선 옮김 / 북스토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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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공중그네로 참 좋아졌던 오쿠다 히데오, 인더풀로 약간 감정이 식었다가, 남쪽으로 튀어가 모두의 칭찬을 받을 때 구입해놓고 아직 못 보고 있던 중, 상대적으로 덜 반응이 좋은 걸을 먼저 읽기로 했다.(왜 이리 문장이 긴고...;;;;)

화려한 표지와 역시 화려한 핸드폰 액정 클리너로 이 책의 분위기가 이런가보네? 하고 지레짐작했지만 사뭇 다른 점들이 눈에 띈다.  이 책은 여자 주인공들을 앞세운 단편 모음집들인데, 그들은 하나같이 직장 여성이고 30대이다.  그렇다면 대강 짐작되어지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리고, 크게 비켜가지 않는다. ^^

첫번째 단편은 "띠동갑"이란 제목인데, 신입사원을 지도해주는 '지도사원'이란 제도를 소재로 한다.  새로이 지도사원이 된 사람은 12살 아래의 젊은 미남자.  34노처녀의 가슴이 왈랑거린다.  신입사원을 두고 회사 내의 여직원들이 모두 사냥꾼으로 돌변하고 그들로부터 신입사원을 보호/독점하기 위한 그녀의 눈물겨운 투쟁(?)이 시작된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솔직히 내용이 조잡하다ㅡ.ㅡ;;;  이 작품이 맨 앞에 실린 것은 이 책을 고른 독자에게 한방 먹이는 짓이었다!  엔딩은 또 얼마나 허무하던가.  하여간 그녀는 평상시 그녀로 돌아왔고, 이제 한결 여유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게 끝이다.ㅡ.ㅡ;;;;

두번째 이야기는 "히로"라는 제목인데, 여주인공의 남편 이름이다.  자신보다 나이 많은 선배를 부하 직원으로 두게 되면서 상사로서 어려움을 겪는 여자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제법 섬세하게 잘 묘사되는 것 같았는데, 역시 엔딩에서 오버했다.  그렇게 당차게 상대를 기선제압할 수 있었던 그녀가 여태 왜 그렇게 당했을까 싶을 만큼.

여기까지는 참 별로였고..;;;;

세번째 이야기는 "걸"인데, 이 책의 전체 제목에 해당하는 그 작품이다. 나이 먹었지만 나이 들어 보이고 싶지 않은, 여전히 영하다고 믿고 싶은 여인이 주인공이며 그녀 주변의 비슷한 여인들이 잔뜩 나온다.  고지식하고 원칙주의자일 것 같았던 상대 고객도 마지막에 패션쇼의 주인공이 되면서 '걸'로 재탄생 된다는 결론이 도출되는데, 역시 식상했다.  자신을 가꾸고 꾸미고 자신감을 얻고 그 모습을 즐기는 것 자체에 반대할 마음도 없고 오히려 권장할 부분이라고 여기지만, 그걸 이렇게 구구절절 설명듣고 싶지는 않다.  작가의 특기인 유머가 제대로 녹아나질 않고 있다.

그런데 마지막 두 편의 단편이 우수했다. 

"아파트"가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는데, 독신 여성인 주인공은 아파트와 결혼은 별개라는 책의 지침서에 자신감을 얻고 좋은 아파트를 구하러 다닌다.  유독 마음에 드는 아파트를 찾았는데 자신의 예산보다 1000만엔을 초과한다.   회사에선 비서과와 마찰이 있고, 인사조치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려 저자세를 보이기도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신이 눈독들인 아파트에 비서과의 재섭는(ㅡ.ㅡ;;;) 비서가 역시 찜해 놓고 있으니...;;;;

그러나 그녀의 막판 뒤집기는 화끈했다.  원칙을 지키고 소신을 지킬 것!  그리고 주제파악하기.  그 삼박자를 맞출 때 그녀는 가슴 후련함과 자유로움을 찾았다.  이제 두려울 것도 없고 위축될 것도 없고 불안해할 일도 없다.  상무의 두가지 지시는 또 얼마나 재밌던가.  그녀와 마찬가지로 덩달아 내 기분도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마지막 단편은 "워킹맘"인데, 이혼녀인 주인공은 8살 아이를 키우면서 활발한 일을 하고자 영업부로 과를 옮긴다.  회사 직원들은 그녀의 처지를 배려해 주느라 잔뜩 눈치를 보지만, 그녀는 그것을 '무기'처럼 휘두르지 않기 위해 안간 힘을 쓴다.  마지막에는 어쩔 수 없이 혼자 아이 키우는 엄마임을 내세웠지만 이내 후회하게 되고, 오히려 그 솔직함으로 아군을 얻게 된다.

솔직히 우리나라 상황에 비추어 본다면 지극히 비현실적인 이야기였지만 일본은 그런 분위기인가 보다.  이런 부분은 굉장히 인간적이고 또 바람직해 보이기도 하는데, 고졸 여사원과 전문대 여사원과 4년제 대학 졸업의 여사원의 업무 비교에는 좀 놀랐다.  선진국이라고 다를 바 없구나....  (우리나라하고의 차이라면, 우리나란 4년제 대학 졸업해도 커피 심부름 복사 심부름 한다.  안 하면 예의 없는 인간이 되어버린다.ㅡ.ㅡ;;;)

작가가 'GIRL'이란 제목 아래 이런 내용의 단편을 실은 의도는 알 것 같다.  그렇지만 그 표현 방법이 별로 매끄럽지 않았다.  아니, 작가가 여자의 심리를 훤히 꿰뚫는 것 같지가 않았다.  여자들은 그보다 더 복잡하고 섬세하다고...(작가가 남자 맞지???)

그리고 표지의 컨셉도 잘못 정한 것 같다.  너무 유치했다ㅡ.ㅡ;;; 오히려 겉표지를 벗겨낸 속표지가 더 세련되고 작품의 내용에 맞다는 느낌이다.  이건 마치 플라이 대디 플라이의 새 표지를 보는 기분이다ㅡ.ㅡ;;

그래서 별 셋으로 시작된 이 작품은 별 넷으로 마무리 되었다.  이제 남쪽으로 튀어!  차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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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0-23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두들 그렇다고 하길래 저도 이어서 그거 보려구요. 다행히 1권 사면 2권 줄 때 질렀습니다. ^^
 
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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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하니 박민규의 소설을 두고 별 넷을 줄 것인가 별 다섯을 줄 것인가 고민하게 될 줄은 몰랐다.  별넷을 줄까 고민한 것은, 박민규에게서 기대한 것을 비켜갔다는 이야기이고, 별 다섯을 줄만하다고 여긴 것은 그에게서 기대하는 것을 얻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래도 별 넷은 된다는 것은 이 작품이 잘 써졌다고 인식하는 까닭이다.)

액자식 구성이라고 해야 하나. 삼미슈퍼스타즈에서도 총체적 위기를 외치는 소설 속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 작품에서도 존 메이슨의 소설 등등의 더 소설 다운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형식은 또 어떻던가?  카스테라에선 '줄 바꿈' 의 미학이 있었다면, 이 작품에선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의 미학이 있다.

주인공 소년의 대답은 점점 작아진다.  그 이상 목소리가 커지지 않는다.  실제로, 그렇게 냈기 때문이다.
드라마처럼 눈으로 보는 장면이 아닌데, '활자'만 가지고도 주인공의 내적 상태와 분위기를 묘사하는 독특한 능력을 박민규는 이미 가지고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쉼표'의 미학 또한 빠지지 않는다.  작가가 시키는 대로 그렇게 끊어 읽다 보면, 딱 그 속도로, 하고자 하는 목소리 그대로 들리는 것만 같다.  이 작품의 분위기는, 그것들을 필요로 한다.  마찬가지로, 핑.퐁. 하며 튀기는 효과음도 직접 속으로 되뇌어볼 필요가 있다.  그 묘한 울림을, 가볍지만 대단해 보이는 그 소리를 말이다.

주인공 소년은 별명이 '못'이다.  못의 친구는 '모아이'다. 이 책 9페이지에는 일러스트 박민규라고 적혀 있는 그림이 나오는데, 아마도 작가가 직접 그렸나 보다.(놀랍다!)

정말 못처럼 보이고, 또 모아이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기형적인 모습을 한 채 탁구대를 들고 서 있다.  이들의 입술은 닫혀 있고, 눈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왕따를 당하고 있지만, 그 억울함을 호소할 입이 없다.  편들어줄 아군도 없다.  그들은 그냥 같이 당하는 동지의 처지일 뿐, 서로가 서로를 돕지도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탁구를 친다.  그 순간엔, 그냥 다른 이유가 필요치 않아진다.

이들을 괴롭히는 치수는 중학생이면서 머리 돌리는 범죄의 수준은 어른의 그것을 능가한다.  이렇게 사악할 수 있는가!라고 한탄해 보지만, 또 이런 인간을 주변에서 보지 못했음을 안심하지만, 그래서 그 마음이 미안해지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나 역시 다수결에 안주한, 그리고 익숙한 인간일 뿐이니까.

못은 말한다.  처음엔 따의 원인을 치수가 전부라고 여겼다고.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의 같은 반 학급 마흔한명이, 그것을 원하고 있었다.  자신이 아니니까... 자신이 아닐 수 있다는 이유로, 그들은 누군가의 따를 용인한다.   따를 당하는 학생이 조회시간에 말을 걸면 당황해 한다.  그리고 두려워한다.  또 다른 친구들은 무슨 얘기를 했냐고 묻고, 그 학생은 아무 얘기도 안 했음을 강변한다.  그런 것이다.  그러니까 작가의 말처럼, 마흔 한 명의 학생들, 그 학년 총원 육백삼십칠명, 그리고 세 학년 모두 천구백삼십오명의 전교생, 그리고 시에 있는 서른 한 개의 중학교 학생 오만구천이백오명의 중학생과 마찬가지로. 또 60억 지구인과 마찬가지로, 우린 다수결에 움직이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래서, 못과 모아이는 인류의 미래를 건 탁구 경기를 앞두고 자신들의 존재를 이렇게 정의내린다.  이 세계가 '깜박'한 인간들.

이들에게 탁구 사부가 되어주는 세끄라텡, 그의 아들은 조류의 뇌와 쥐의 뇌를 갖고 있다는데, 벌판에서 만난 학생회장은 조류의 뇌와 쥐의 뇌를 가진 신입생 때문에 고민하고, 그 학생들을 전학시키기 위해 용을 쓰지만, 사실 그 쌍둥이 학생들의 형이 바로 전교회장이었고, '탁구계'라는 이공간에서 전 인류를 대표하여 경기를 할 때 원근법이 역행하는 현상 등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장면이었다.  멀리 있을 땐 거대해 보이고 더 거창해 보이고, 더 어마어마해 보이는 것.  그러나 가까이 다가서면, 본질에 다가서면 있는 그대로 보이는 것...  이들이 구원군으로 요청하는 인물이 말콤X라는 사실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라인홀트 매스너는 아는 바가 별로 없다.ㅡ.ㅡ;;;)

몹시 심각한, 또 많이 우울한, 그리고 꽤 엽기적이기까지 한 이야기를 이끌어 가면서, 박민규는 뜻밖의 유머를 결코 잊지 않는다.  내가 가장 웃었던 부분은 인류의 미래를 건 탁구 경기에 누구를 구원군으로 부를까 고민하던 대목이었다.

탁구를 치는 테레사 수녀를 떠올리며 우리는 굳게 침묵했다.  에디슨도 아인슈타인도, 그러나 탁구와 연결하는 순간 모든 것이 난감해졌다.  쉽게 알렉산드로스를 떠올리기도 했지만 알렉산드로스가 탁구를 쳐봤을까?라는 생각에 역시 침묵을 지켜야 했다.  가능한 한 현대의 인물이 유리하지 않을까? 처칠과 탁구, 루즈벨트와 탁구...이런...없잖아.. 탁구계의 리스트에서 빠져 있는 위인도 많았다.  결국 간디와 탁구... 석가모니 같은 인물은 어떨까? 말하자면, 위인이잖아.  그런데 다리가 저려 일어설 수 있을까?

박민규의 소설은 이렇다.  종잡을 수가 없다.  실컷 우울할 것처럼 심각하게 만들어놓고,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게 하고, 또 미안하게 하고 그리고 침묵하게도 한다.  여전히 탁구공은 핑.퐁.하고 울리지만 그저 바라보는 것 말고는 할 게 떠오르지 않는다.  인류는 생존해 있는 것이 아닌 '잔존'해 있는 것이라는 작가의 맺음말을 보며, 나는 또 할 말을 잃고 침묵하면서 그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한다.

이 소설의 호불호가 나뉘는 것은, 엉뚱하고 기이하면서 엽기적인 내용 전개에 혼란스러움을 피해갈 수 없는 까닭이고, 또 작품 속에서 핑,퐁, 하고 가볍게 제시하는 사회 문제들에 움찔 놀라며 뜨끔해 하는 이유가 아닐까. 

그래도 나는, 여전히 작가 박민규가 좋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보여준 것처럼, 밑바닥의 이야기를 그토록 적나라하게 이야기해도, 적어도 '희망' 한조각을 밟아버리지는 않으니까.  못과 모아이가 그래도 지구를 '언인스톨'한 것처럼. 못이 다시 돌아간 곳이 '학교'인 것처럼.  비록 치수가 가버린 자리에 종모가 치수의 역할을 한다 할지라도, 여전히 학교 안에서 그들이 '따'이더라도, 그래도 그들은 살아지는 삶을 포기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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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0-20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헷, 속닥이신 님~ 영광입니다. ^^ 전 나중에 삼미슈퍼스타즈를 다시 읽어보려구요. 그건 진짜 희망 가득이었거든요. 희망의 크기로 치면 그 작품이 제일 컸고, 카스테라에선 더 내려왔고, 이 작품은 거의 바닥을 치지만, 그래도 꼭 한줌씩은 남아있으니까 좋습니다. ^^
 
-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김훈 지음 / 푸른숲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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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 대한 내 리뷰를 찾아보다가 깜딱! 놀랐다.  없는 것이다.

헉!  이럴 수가... 읽었는데 왜 없지?  작년에 책 나오자마자 읽었으니까 일년도 더 지났는데 왜 리뷰가 없을까 고민해 보았다.  음... 내가 서재질을 시작한 게 올해였구나...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가볍게(?) 인정했다.

제목 : 개

이 단순명료한 제목은 김훈의 문체만큼이나 깔끔하고 또 단호했다.  난 이 개가 설마 멍멍 개일까? 생각했는데 의심 없이 바로 그 개였다.

사람의 개 이야기가 아니라, 개의 개, 그리고 사람 이야기였다.

읽으면서, 소탈하게 자꾸 웃게 되었다.  김훈답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서. 견공을 주인공으로 삼아도 그의 작품은 결코 격이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진솔하고 또 인간은 스스로 하지 못할 말들을 적나라하게 해주니 말이다.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에서는 주인공의 말투가 참 부담스러웠다.  이건 선입견이지만, 칼의 노래에서 인상깊었던 그 이순신의 목소리가 다른 캐릭터를 통해서 들려오게 되면 왠지 화가 나거나 섭섭한 기분이 든다.  같은 김훈 작가의 글이고, 또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이 전작임에도 불구하고.

반면, 강산무진에서 화자의 목소리가 이순신의 목소리(실은 말투나 문체)를 닮아 있는 것은 괜찮았다.  그게 캐릭터의 성격이었으니.

그래서 이 작품에선 그런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솔직하고 단순하고 또 정직한 개의 목소리가 나는 참 듣기 편했다.  개의 눈에 비친 인간 세상의 군상은 걸러낼 것도 없이 직접적이어서 어느 순간 조금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건 뜨끔함의 정체지 작품의 탓이 아니다. 

개의 발바닥에 붙어 있는 굳은 살. 자신이 살아온 삶의 적나라한 흔적들.  치열하기까지 한 생존싸움, 혹은 자존심 대결까지.  어쩌면 그냥 '인간'에 비유해도 하나 틀리지 않을 그 모습들이 이 작품을 더 인상깊게 만드는 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표지 이야기.  내가 참 좋아하는 색깔들의 조합, 그리고 여백의 미, 하다 못해 글씨의 폰트마저도 참 마음에 든다.  이젠 책의 외관도 구매에 상당 부분 영향력을 끼치는 것 같다.  살까말까 하는 책이 디자인이 이쁘면 그래 한번 사보자! 하게 되는데, 그런 책이 디자인이 꽝이라면 슬그머니 내려놓을 가능성이 있다.  책은 책장에 꽂혀서도 한 번 더 폼을 잡아야 하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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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의 노래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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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웠다.  솔직히 말해서 한 마디로 어려웠다.  그러나 그 어려움은 철학 서적이나 혹은 고도의 지적 수준을 요구하는 그런 책을 읽었을 때의 무거운 감정이 아니라, 그저 삶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 혹은 미처 깨닫지 못했던 다른 진실을 알아차렸을 때의 그런 낯설고 어색한 기분에 가깝다.


현의 노래는 전혀 대중적이지 않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극히 순수문학에 가깝다.  여기서는 터럭만큼의 상업성을 발견할 수 없다.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현실적인 문제나 혹은 유혹의 얽매임을 벗어나야 가능하겠지만, 또 동시에 그것들을 초월해도 좋을 만큼의 여유도 있었다는 얘기이니 아이러니하고도 아이러니 하다.


우리는 흔히들 예술의 세계는 영원하고 혹은 무궁무진하며 깊고 오묘한... 그렇게 추상적인 단어들을 나열하면서 설명하곤 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 우륵은 소리의 주인은 없으며, 또한 소리는 살아있을 동안만의 소리라고 단언한다.  영원불멸의 그것이 아닌, 다만 소리 자체로서의 존재를 인정할 뿐이다.  이것은 매우 충격적인 선언이었다.  그리고 그 명제에 동의할 때쯤이 되면, 이 작품을 마지막 장을 덮을 즈음이 되게 된다.  그래서 이번에도 역시 김훈이다! 라고 생각해야 했다.  매번 그의 작품을 접할 때마다 지르게 되는 그 탄성을 이번에도 비켜가지 않고 질러야만 했다.


작품 속에는 거추장스런 장식이 하나도 없다.  인물들은 정말로 가야의, 그리고 신라의 사람들이고, 그들의 언어도 그 시대를 비켜가지 않으며, 그들의 생각의 그릇 또한 그 시대를 벗어나지 않는다.  마치 내가 꼭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그 시절로 찾아가 그들의 삶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투항한 적군을 먹일 양식도 없고, 또한 부릴 인력으로도 필요치 않기에 죽여서 매장시키라는 이사부의 명령은, 오늘날의 윤리나 도덕으로는 결코 용서되지 않을 터이지만, 그 시절의 질서로는 충분히 설명이 되고 납득조차 된다.  그 사실성과 진실성에 때로 몸서리치게 놀라기까지 했다.


금을 뜯고, 춤을 추는 우륵과 그의 제자 니문의 움직임이 눈앞에 재현되는 것처럼 묘사되었다.  그래서 김훈의 문장을 산문 문학의 극치를 따른다고 표현했나 보다.  간결하지만 충분히 묘사하고, 지극히 직설적이지만 결코 낯간지럽거나 낯을 붉히게 만들지 않는 그 문장의 힘은 그가 여태껏 보여주었던 진솔함의 단면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칼의 노래에 이어, 그 제목의 유사성을 보여주는 현의 노래...... 이제 그에게는 어떤 노래가 남아 있을까.  독자는 그로부터 어떤 노래를 더 들을 수 있을 것인가.  소리는 다만 살아 있을 동안만의 소리라고 하니, 나는 그의 소리를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더 많이 듣고 싶은 독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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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살무늬토기의 추억 - 문학동네 소설 2001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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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그 이름만으로도 보증수표가 되어버려 믿고 읽을 수 있는 작가로 내게 새겨진 김훈씨의 첫 번째 장편 소설이다.  양장본이지만 비교적 얇은 책 두께에 ‘장편’이란 말이 조금 낯설었지만, 막상 읽고 보니 글씨가 빼곡할 뿐 아니라, 그의 글이라는 것이 쉽게 빠르게 읽혀지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충분히 장편소설로서의 시간은 투자하게 만들었다.


‘나’라는 주인공은 소방수인데, 그의 휘하에서 2년 간 함께 일하다가 사고사한 부하 소방수 장철민과 장님 안마사 김복희가 등장한다.  조금은, 아니 사실은 많이 난해하였기에 작품의 줄거리를 요약해서 옮기기는 힘이 들겠다.  그렇지만 이 작품에서도 그의 특유의 언어 세계와 사유 세계를 훑어볼 수 있어서 신기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는 한자어를 많이 쓰는 편이고, 특유의 단어들을 잘 사용한다.  이를테면, ‘서식’, ‘계통’, ‘생성’, ‘소멸’, ‘아득한’ 등등이 그런 것이다.  그를 몹시 유명하게 만들었던 ‘칼의 노래’에서와 같은 짧은 문장은 긴 시간 글을 쓰며 다듬고 다듬어서 이뤄진 것인지, 95년도의 작품에서는 문장이 길고 호흡도 길었다.(풍경과 상처도 95년 작품으로 비슷한 특징을 보였다.)  아마도 연륜이 많은 잘 가르치는 선생은 쉽고 기억하기 좋게 설명해주는 것처럼 단련되는 것처럼 말이다.


소방서의 소장인 주인공의 사유 세계가 관념적으로 흐르고, 제법 지적 수준을 자랑하는 것은 작품의 전개에 아무 지장이 없었지만, 중장기 노동자로 일하던 장철민이 그와 비슷한 사유 체계로 나오는 것은 조금 어색하게 보였다. (물론 그가 그런 일을 한다고 해서 지적 수준이 꼭 낮아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김복희의 죽음에서 작품은 끝을 맺는데, 이야기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을, 작품의 끝에 해설로 덧붙인 문학평론가 김윤식씨의 글을 통해서 오히려 이야기가 잘 이해가 되었다.  역시나 어렵다 느껴진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제목에서부터 신비로운 이질감을 준 이 작품은, 책을 다 덮고 나서도 그 신비감과 미지에 대한 기묘한 인상을 함께 선사했다.  점차로 도구화되어 가는 우리네 인간들의 삶이, 문명의 이기를 끝끝내 정복한 채 굴복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무서운 상상도 들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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