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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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하니 박민규의 소설을 두고 별 넷을 줄 것인가 별 다섯을 줄 것인가 고민하게 될 줄은 몰랐다.  별넷을 줄까 고민한 것은, 박민규에게서 기대한 것을 비켜갔다는 이야기이고, 별 다섯을 줄만하다고 여긴 것은 그에게서 기대하는 것을 얻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래도 별 넷은 된다는 것은 이 작품이 잘 써졌다고 인식하는 까닭이다.)

액자식 구성이라고 해야 하나. 삼미슈퍼스타즈에서도 총체적 위기를 외치는 소설 속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 작품에서도 존 메이슨의 소설 등등의 더 소설 다운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형식은 또 어떻던가?  카스테라에선 '줄 바꿈' 의 미학이 있었다면, 이 작품에선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의 미학이 있다.

주인공 소년의 대답은 점점 작아진다.  그 이상 목소리가 커지지 않는다.  실제로, 그렇게 냈기 때문이다.
드라마처럼 눈으로 보는 장면이 아닌데, '활자'만 가지고도 주인공의 내적 상태와 분위기를 묘사하는 독특한 능력을 박민규는 이미 가지고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쉼표'의 미학 또한 빠지지 않는다.  작가가 시키는 대로 그렇게 끊어 읽다 보면, 딱 그 속도로, 하고자 하는 목소리 그대로 들리는 것만 같다.  이 작품의 분위기는, 그것들을 필요로 한다.  마찬가지로, 핑.퐁. 하며 튀기는 효과음도 직접 속으로 되뇌어볼 필요가 있다.  그 묘한 울림을, 가볍지만 대단해 보이는 그 소리를 말이다.

주인공 소년은 별명이 '못'이다.  못의 친구는 '모아이'다. 이 책 9페이지에는 일러스트 박민규라고 적혀 있는 그림이 나오는데, 아마도 작가가 직접 그렸나 보다.(놀랍다!)

정말 못처럼 보이고, 또 모아이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기형적인 모습을 한 채 탁구대를 들고 서 있다.  이들의 입술은 닫혀 있고, 눈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왕따를 당하고 있지만, 그 억울함을 호소할 입이 없다.  편들어줄 아군도 없다.  그들은 그냥 같이 당하는 동지의 처지일 뿐, 서로가 서로를 돕지도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탁구를 친다.  그 순간엔, 그냥 다른 이유가 필요치 않아진다.

이들을 괴롭히는 치수는 중학생이면서 머리 돌리는 범죄의 수준은 어른의 그것을 능가한다.  이렇게 사악할 수 있는가!라고 한탄해 보지만, 또 이런 인간을 주변에서 보지 못했음을 안심하지만, 그래서 그 마음이 미안해지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나 역시 다수결에 안주한, 그리고 익숙한 인간일 뿐이니까.

못은 말한다.  처음엔 따의 원인을 치수가 전부라고 여겼다고.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의 같은 반 학급 마흔한명이, 그것을 원하고 있었다.  자신이 아니니까... 자신이 아닐 수 있다는 이유로, 그들은 누군가의 따를 용인한다.   따를 당하는 학생이 조회시간에 말을 걸면 당황해 한다.  그리고 두려워한다.  또 다른 친구들은 무슨 얘기를 했냐고 묻고, 그 학생은 아무 얘기도 안 했음을 강변한다.  그런 것이다.  그러니까 작가의 말처럼, 마흔 한 명의 학생들, 그 학년 총원 육백삼십칠명, 그리고 세 학년 모두 천구백삼십오명의 전교생, 그리고 시에 있는 서른 한 개의 중학교 학생 오만구천이백오명의 중학생과 마찬가지로. 또 60억 지구인과 마찬가지로, 우린 다수결에 움직이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래서, 못과 모아이는 인류의 미래를 건 탁구 경기를 앞두고 자신들의 존재를 이렇게 정의내린다.  이 세계가 '깜박'한 인간들.

이들에게 탁구 사부가 되어주는 세끄라텡, 그의 아들은 조류의 뇌와 쥐의 뇌를 갖고 있다는데, 벌판에서 만난 학생회장은 조류의 뇌와 쥐의 뇌를 가진 신입생 때문에 고민하고, 그 학생들을 전학시키기 위해 용을 쓰지만, 사실 그 쌍둥이 학생들의 형이 바로 전교회장이었고, '탁구계'라는 이공간에서 전 인류를 대표하여 경기를 할 때 원근법이 역행하는 현상 등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장면이었다.  멀리 있을 땐 거대해 보이고 더 거창해 보이고, 더 어마어마해 보이는 것.  그러나 가까이 다가서면, 본질에 다가서면 있는 그대로 보이는 것...  이들이 구원군으로 요청하는 인물이 말콤X라는 사실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라인홀트 매스너는 아는 바가 별로 없다.ㅡ.ㅡ;;;)

몹시 심각한, 또 많이 우울한, 그리고 꽤 엽기적이기까지 한 이야기를 이끌어 가면서, 박민규는 뜻밖의 유머를 결코 잊지 않는다.  내가 가장 웃었던 부분은 인류의 미래를 건 탁구 경기에 누구를 구원군으로 부를까 고민하던 대목이었다.

탁구를 치는 테레사 수녀를 떠올리며 우리는 굳게 침묵했다.  에디슨도 아인슈타인도, 그러나 탁구와 연결하는 순간 모든 것이 난감해졌다.  쉽게 알렉산드로스를 떠올리기도 했지만 알렉산드로스가 탁구를 쳐봤을까?라는 생각에 역시 침묵을 지켜야 했다.  가능한 한 현대의 인물이 유리하지 않을까? 처칠과 탁구, 루즈벨트와 탁구...이런...없잖아.. 탁구계의 리스트에서 빠져 있는 위인도 많았다.  결국 간디와 탁구... 석가모니 같은 인물은 어떨까? 말하자면, 위인이잖아.  그런데 다리가 저려 일어설 수 있을까?

박민규의 소설은 이렇다.  종잡을 수가 없다.  실컷 우울할 것처럼 심각하게 만들어놓고,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게 하고, 또 미안하게 하고 그리고 침묵하게도 한다.  여전히 탁구공은 핑.퐁.하고 울리지만 그저 바라보는 것 말고는 할 게 떠오르지 않는다.  인류는 생존해 있는 것이 아닌 '잔존'해 있는 것이라는 작가의 맺음말을 보며, 나는 또 할 말을 잃고 침묵하면서 그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한다.

이 소설의 호불호가 나뉘는 것은, 엉뚱하고 기이하면서 엽기적인 내용 전개에 혼란스러움을 피해갈 수 없는 까닭이고, 또 작품 속에서 핑,퐁, 하고 가볍게 제시하는 사회 문제들에 움찔 놀라며 뜨끔해 하는 이유가 아닐까. 

그래도 나는, 여전히 작가 박민규가 좋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보여준 것처럼, 밑바닥의 이야기를 그토록 적나라하게 이야기해도, 적어도 '희망' 한조각을 밟아버리지는 않으니까.  못과 모아이가 그래도 지구를 '언인스톨'한 것처럼. 못이 다시 돌아간 곳이 '학교'인 것처럼.  비록 치수가 가버린 자리에 종모가 치수의 역할을 한다 할지라도, 여전히 학교 안에서 그들이 '따'이더라도, 그래도 그들은 살아지는 삶을 포기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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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0-20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헷, 속닥이신 님~ 영광입니다. ^^ 전 나중에 삼미슈퍼스타즈를 다시 읽어보려구요. 그건 진짜 희망 가득이었거든요. 희망의 크기로 치면 그 작품이 제일 컸고, 카스테라에선 더 내려왔고, 이 작품은 거의 바닥을 치지만, 그래도 꼭 한줌씩은 남아있으니까 좋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