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살무늬토기의 추억 - 문학동네 소설 2001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이제는 그 이름만으로도 보증수표가 되어버려 믿고 읽을 수 있는 작가로 내게 새겨진 김훈씨의 첫 번째 장편 소설이다.  양장본이지만 비교적 얇은 책 두께에 ‘장편’이란 말이 조금 낯설었지만, 막상 읽고 보니 글씨가 빼곡할 뿐 아니라, 그의 글이라는 것이 쉽게 빠르게 읽혀지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충분히 장편소설로서의 시간은 투자하게 만들었다.


‘나’라는 주인공은 소방수인데, 그의 휘하에서 2년 간 함께 일하다가 사고사한 부하 소방수 장철민과 장님 안마사 김복희가 등장한다.  조금은, 아니 사실은 많이 난해하였기에 작품의 줄거리를 요약해서 옮기기는 힘이 들겠다.  그렇지만 이 작품에서도 그의 특유의 언어 세계와 사유 세계를 훑어볼 수 있어서 신기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는 한자어를 많이 쓰는 편이고, 특유의 단어들을 잘 사용한다.  이를테면, ‘서식’, ‘계통’, ‘생성’, ‘소멸’, ‘아득한’ 등등이 그런 것이다.  그를 몹시 유명하게 만들었던 ‘칼의 노래’에서와 같은 짧은 문장은 긴 시간 글을 쓰며 다듬고 다듬어서 이뤄진 것인지, 95년도의 작품에서는 문장이 길고 호흡도 길었다.(풍경과 상처도 95년 작품으로 비슷한 특징을 보였다.)  아마도 연륜이 많은 잘 가르치는 선생은 쉽고 기억하기 좋게 설명해주는 것처럼 단련되는 것처럼 말이다.


소방서의 소장인 주인공의 사유 세계가 관념적으로 흐르고, 제법 지적 수준을 자랑하는 것은 작품의 전개에 아무 지장이 없었지만, 중장기 노동자로 일하던 장철민이 그와 비슷한 사유 체계로 나오는 것은 조금 어색하게 보였다. (물론 그가 그런 일을 한다고 해서 지적 수준이 꼭 낮아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김복희의 죽음에서 작품은 끝을 맺는데, 이야기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을, 작품의 끝에 해설로 덧붙인 문학평론가 김윤식씨의 글을 통해서 오히려 이야기가 잘 이해가 되었다.  역시나 어렵다 느껴진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제목에서부터 신비로운 이질감을 준 이 작품은, 책을 다 덮고 나서도 그 신비감과 미지에 대한 기묘한 인상을 함께 선사했다.  점차로 도구화되어 가는 우리네 인간들의 삶이, 문명의 이기를 끝끝내 정복한 채 굴복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무서운 상상도 들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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