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의 노래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어려웠다.  솔직히 말해서 한 마디로 어려웠다.  그러나 그 어려움은 철학 서적이나 혹은 고도의 지적 수준을 요구하는 그런 책을 읽었을 때의 무거운 감정이 아니라, 그저 삶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 혹은 미처 깨닫지 못했던 다른 진실을 알아차렸을 때의 그런 낯설고 어색한 기분에 가깝다.


현의 노래는 전혀 대중적이지 않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극히 순수문학에 가깝다.  여기서는 터럭만큼의 상업성을 발견할 수 없다.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현실적인 문제나 혹은 유혹의 얽매임을 벗어나야 가능하겠지만, 또 동시에 그것들을 초월해도 좋을 만큼의 여유도 있었다는 얘기이니 아이러니하고도 아이러니 하다.


우리는 흔히들 예술의 세계는 영원하고 혹은 무궁무진하며 깊고 오묘한... 그렇게 추상적인 단어들을 나열하면서 설명하곤 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 우륵은 소리의 주인은 없으며, 또한 소리는 살아있을 동안만의 소리라고 단언한다.  영원불멸의 그것이 아닌, 다만 소리 자체로서의 존재를 인정할 뿐이다.  이것은 매우 충격적인 선언이었다.  그리고 그 명제에 동의할 때쯤이 되면, 이 작품을 마지막 장을 덮을 즈음이 되게 된다.  그래서 이번에도 역시 김훈이다! 라고 생각해야 했다.  매번 그의 작품을 접할 때마다 지르게 되는 그 탄성을 이번에도 비켜가지 않고 질러야만 했다.


작품 속에는 거추장스런 장식이 하나도 없다.  인물들은 정말로 가야의, 그리고 신라의 사람들이고, 그들의 언어도 그 시대를 비켜가지 않으며, 그들의 생각의 그릇 또한 그 시대를 벗어나지 않는다.  마치 내가 꼭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그 시절로 찾아가 그들의 삶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투항한 적군을 먹일 양식도 없고, 또한 부릴 인력으로도 필요치 않기에 죽여서 매장시키라는 이사부의 명령은, 오늘날의 윤리나 도덕으로는 결코 용서되지 않을 터이지만, 그 시절의 질서로는 충분히 설명이 되고 납득조차 된다.  그 사실성과 진실성에 때로 몸서리치게 놀라기까지 했다.


금을 뜯고, 춤을 추는 우륵과 그의 제자 니문의 움직임이 눈앞에 재현되는 것처럼 묘사되었다.  그래서 김훈의 문장을 산문 문학의 극치를 따른다고 표현했나 보다.  간결하지만 충분히 묘사하고, 지극히 직설적이지만 결코 낯간지럽거나 낯을 붉히게 만들지 않는 그 문장의 힘은 그가 여태껏 보여주었던 진솔함의 단면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칼의 노래에 이어, 그 제목의 유사성을 보여주는 현의 노래...... 이제 그에게는 어떤 노래가 남아 있을까.  독자는 그로부터 어떤 노래를 더 들을 수 있을 것인가.  소리는 다만 살아 있을 동안만의 소리라고 하니, 나는 그의 소리를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더 많이 듣고 싶은 독자일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