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애청하는 프로그램이 '불후의 명곡'이다.
이제껏 중 최고의 무대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알리의 '킬리만제로의 표범'이 갑이었다.
작년에 본 최고의 무대는 JK김동욱의 '백만송이 장미'였다.
처음 출연해서 438표로 역대 최고 점수를 기록했다.
그 전까지 그 점수는 정동하가 받았지만 당시 김태원이 같이 출연해서 기타를 쳐준 덕에 점수가 좀 후하게 나온 듯했다.
그렇지만 기록은 갈아치우라고 있는 법.
이후 정동하는 439표로 그 점수를 혼자 나와서 갱신했다. 비처럼 음악처럼이었던가?
김태원과 함께 한 곡보다 더 좋았다. 인정!
그랬는데 얼마 전에 김종서가 출연을 했다. '전설'로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그가 출연 가수로 등장했다.
그리고 눈물의 부르스를 아주 멋지게 불러주었다. 역대 최고 점수인 442표를 얻었다.
와우, 그 득표를 받아 마땅한 무대였다.
그런데 아뿔싸! 이어서 나온 거미가 445표를 받고 5분 만에 기록을 갈아치웠지 뭔가.
아무래도 그때 관객들이 점수가 좀 후한 편이었나 보다. 난 거미 무대가 그 정도 점수 받을 정도로 좋진 않았는데 말이다.
아까비 김종서...
생각해 보니, 김종서가 영리했다. 전설로 나오면 1회 출연하고 말지만, 출연 가수로 나오면 매주 나올 수 있고 매주 새 무대를 보여줄 수 있다. 무대에 목마른 가수라면 이편이 더 낫다.
한참 잘나가던 때의 그의 인터뷰를 보면 정말 프라이드가 하늘을 찔렀더랬다.
그러나 90년대 가수들이 그 좋은 시절을 켜켜이 묻고 찬밥 신세가 되고 얼마나 긴 암흑기를 보냈던가.
과거 잘 나가던 로커 시절엔 샴푸 광고 모델을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섭외 들어오면 당연히 하겠다는 그의 솔직한 반응이 짠하면서도 격려의 박수를 주고 싶다.
허세도 내려놓고, 불필요한 자존심도 내려놓고, 이제는 온전히 음악에만 집중하는 듯 보인다.
얼마 전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나와서는 크로스 오버 장르에 대한 도전을 이야기했다.
과거 오페라스타에 나왔을 때 비교적 초반에 떨어졌었는데, 그후 성악 장르에 대한 큰 관심이 생겼나 보다.
이날 카루소를 불렀는데 정말 훌륭했다. 아, 역시 김종서다!
그리고 지난 주, 작사가 박건호 편에 바이브의 윤민수가 나왔다.
그 전엔 잘 모르던 가수였는데 '나는 가수다' 때 많이 반했다. 내가 이런 목소리를 좀 좋아한다.
흐느끼듯 노래를 부르면 애절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그런 의미로 내가 이승환을 좋아하나?
이날 윤민수는 민해경의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를 불렀다.
아, 굉장히 유명한 곡이라고 하는데 나는 처음 들었다.
그리고 완전 반했다! 올해의 불후의 명곡은 일단 윤민수의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로 점 찍어둔다.
확실히 오케스트라가 같이 나오면 소리가 풍성해진다. 성악 군단의 코러스도 훌륭했다.
여가수 미가 나온 것도 좋았다.
내친 김에 원곡도 찾아보았다. 아, 크게 바꾸지 않았구나. 원곡도 좋다. 그렇지만 나를 반하게 만든 건 윤민수 버전.
가사가 정말 훌륭하다.
우~내 인생에 반은 그대에게 있어요그 나머지도 나의 것은 아니죠그대를 그대를 그리워하며 살아야 하니까그대를 만날 때면 이렇게 포근한데이룰 수 없는 사랑을 사랑을 어쩌면 좋아요내 인생에 반은 그대에게 있어요그 나머지도 나의 것은 아니죠그대를 그대를 그리워하며 살아야 하니까이 마음 다 바쳐서 좋아한 사람인데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사랑을 어쩌면 좋아요내 인생에 반은 그대에게 있어요그 고마운 마음 감사하며 살게요그 나머지도 나의 몫은 아니죠늘 감사하며 잊지 않고 살게요윤민수)그대를 미)그대를 윤민수)그대를 미)그대를 윤민수) 그리워하며 같이) 살아야 하니까내 인생에 반은 그대에게 있어요
그 나머지도 나의 것은 아니죠그대를 그대를 그리워하며 살아야 하니까(내 인생에 반은 그대에게 있어요그 나머지도 나의 것은 아니죠)이룰 수 없는 사랑을 사랑을이룰 수 없는 사랑을 사랑을이룰 수 없는 사랑을 사랑을 어쩌면 좋아요내 인생에 반은 그대에게 있어요
내 인생의 절반은 너라고, 나에게 말해주었던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스무살을 갓 넘겼고, 세상이 우리에게 절대로 녹록치 않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늦은 밤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오는 어느 길목에서 친구가 그렇게 말해 주었다. 학교는 기약 없이 휴학 중이었고, 버는 족족 집으로 몽땅 갖다 주어도 늘 마이너스이기만 했던 인생이었다. 대학생이 되었다는 낭만 따위는 애초에 없었고 자린고비 고용주의 등쌀에 시달리면서도 일을 때려치우지 못하며 허덕이던 지친 나에게 친구가 해줬던 한마디는 최고의 선물이었고 자양강장제였다.
친구는 일찌감치 결혼을 했고, 이제 큰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한다. 이제 친구 인생의 절반은 내가 차지할 수 없다. 그렇게 된지 이미 오래 되었지만, 결코 섭섭하지 않다. 한때 누군가의 인생에 절반을 차지했었던 나를 기념하고 축복할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친구를 가진 나는 부자다. 좋은 노래 덕분에 친구 생각이 떠올라 오랜만에 하뭇하게 웃을 수 있었다.
친구는 노래를 무척 잘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 합창단에도 들어갔는데, 그날 배운 노래를 저녁이 되면 같이 손잡고 동네 한바퀴 돌면서 나에게 들려 주었다. 가끔 노래방을 가게 되면 친구가 곧잘 부르던 이문세의 옛사랑을, 이문세보다 더 잘 불렀다. 그렇지만 친구 목소리는 유튜브에 없으니 이 노래로 대신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