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은 본의 아니게 뮤지컬을 많이 보게 되었다. 첫 시작은 위키드가 열었다. 작년 어느 때쯤, 충동적으로 예매한 작품이었다. 일년 사이 옥주현에 대한 호불호가 완전히 바뀌어 버렸고, 지난 번 갈라쇼에서 박혜나 버전의 위키드가 그다지 감동이 없었기 때문에 나의 선택은 당연히 옥주현이었다. 그런데 오 갓! 도착해서 보니 박혜나 주연이 아닌가. 응? 출연진 바뀌었나? 알아보니 원래 박혜나란다. 그러니까 그 말은, 내가 예매를 잘못한 거였다. 삽질... 안타까운 삽질..ㅜ.ㅜ 그 옛날 뮤지컬 하루를 오만석 주연으로 예매하고 석달 간 두근두근 기다렸는데, 막상 가보니 최성원 주연이었지. 그날의 황망함이 재연되는 순간이었다.
박혜나의 엘파바는 옥주현의 아이다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 있고 오버하는 연기. 그래서 캐릭터에 몰입이 안 되고, 주인공의 슬픔과 기쁨에 공감이 가지 않는... 오히려 미운 캐릭터가 됐을 수도 있던 글린다의 김보경이 훨씬 좋았다. 김보경 주연 작품을 여럿 접했지만 이 작품이 본인의 목소리 톤과 가장 잘 어울렸다. 특히 봉을 휘두를 때의 박력이란!
인어공주의 슬픈 엔딩이 안타까워서 디즈니의 인어공주가 나온 것처럼... 오즈의 마법사에서 나쁜 마녀로 낙인 찍힌 서쪽 마녀에게 사실은 이런 사정이 있었다~라는 상상력은 즐겁다. 권교정 작가가 백설공주의 계모에 관한 메르헨~을 썼던 것처럼.
최근 야곱은 공연 관련 잡지를 교정 봐주고서 뮤지컬 티켓을 선물 받았다. 그리하여 가게 된 첫번째 공연은 '아이 러브 유 비코즈'였다. 대학로였고, 공연도 나쁘지 않았는데, 쓸데 없이 피곤했던 나는 초반에 좀 많이 졸았다. 내 머리가 어찌나 무겁던지...ㅜ.ㅜ
작품에서 가장 좋았던 대목은 주제곡의 가사 한부분이었다. '그래도 사랑해. 아니, 그래서 사랑해.'
이건 마치 신의 사랑처럼 조건이 없고 대가가 없는 일방적 사랑이 아닌가.
근래에 나는 나의 신앙과 신의 임재와 기타 등등 여러 종교적 고민에 휩싸여 있었다.
내가 엄마에게 갖고 있는 불만 혹은 서러움의 종류는 꽤 많지만, 그 중에서 탑 오브 탑은 왜곡된 신앙관이었다.
한국 교회에서 흔히 목격하게 되는 십일조 감사헌금 많이 해야 복받는다고 믿는 기복신앙도 질렸지만, 그보다 더 나빴던 것은 하나님의 존재 근원을 '사랑'이 아닌 '징계'와, '질투', '분노'의 대상으로 인식시켰다는 점이다. 나의 모든 불행과 불우함의 원인을 세상적으로 살아서, 세상 밖으로 나가서 방탕하게 살았다고 지적해 오셨다. 엄마의 시선으로는 영화 보는 것도 우상 섬기는 것이고 이승환에게 열광하는 것도 우상 숭배고, 친구 만나러 나가는 것도 지극히 세상적인 일이다. 아니, 나더러 수도원에 들어가라는 건가, 무인도에 가서 살라는 건가.....(ㅡㅡ;;;)
나꼼수 이후 내가 열심히 듣고 있는 팟캐스트 방송이 꽤 되었지만, 그 중 나를 가장 자유케 만든 것은 민호기의 헬로우 굿바이 1990이다. 90년대 가요를 중심으로 애정과 입담을 잔뜩 쏟아내는 진행자는 CCM 가수이면서 현직 목사님이시다. 그런 사람이 자신의 음악 삼위일체는 이승환, 신해철, 조규찬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아, 내가 받은 정신적 충격이란! 목사님도 개인적 취향이라는 게 있고, 취미 생활도 있는 것인데, 내가 살아왔고 강요받아왔던 세계 안에서는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뒤늦게, 1999년도에 처음으로 접했던 이승환의 콘서트에서 내가 받았던 문화 충격과 감동이 되살아 났다. 맞아. 그렇게 살아도 되는 거였어. 즐거워도 되는 거고 좋아해도 되는 거였지. 그걸로 내가 죄책감 가질 일이 아니었지. 이걸 머리로는 아는데, 내 마음에도 죄의식 없이 인정하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났던가. 공연이라도 한번 볼라치면 며칠 연속 악몽을 꾸던 가엾고 한심한 내가 떠올랐다. 엄마도 엄마였지만, 내가 공연 갈 때마다 미리 감시하고서 엄마한테 홀랑 일러바치던 둘째 시스터의 만행도 함께 떠오르는구나...(ㅡㅡ+++)
구성애의 아우성을 듣고 주철환 피디도 해방감을 느꼈다고 했다. 청소년 시절 다락방에서 몰래 자위하던 것이 오래오래 죄책감으로 남았다고. 심지어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고 나이를 한참 더 먹은 뒤까지도. 그런데 아우성을 듣고 나서 자신의 행위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지 죄의식 가질 일이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고. 내게 민호기의 헬로우 굿바이 방송이 그랬다. 방송 자체도 아주 재밌었지만, 나에게 오랜 죄의식을 벗어나게 해주어서, 괜찮다고 토닥여 준 것 같아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러니까, 다시 신앙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은 '그래도 사랑해'가 아니라 '그래서 사랑해'라는 것. 뮤지컬을 보고 나오면서 그걸 다시 되짚게 되었다. 상기시켜준 나의 야곱에게 고마움의 포옹을 전한다.
이기적 유전자나 만들어진 신을 사두고 읽지 못했다. 궁금해서 샀는데, 두꺼워서 읽을 엄두가...;;;; 게다가 다소 겁도 나긴 했다. 안 그래도 흔들리는 내 신앙이 더 무너져 내릴까 봐. 이깟 책에 무너질 신앙이면 애초에 기반이 없는 거겠지. 조금은 더 용기가 났다. 뭐, 그렇다고 당장 읽겠다는 건 아니지만 암튼! 부활논쟁은 얇아서 조금 더 읽을 마음이 생겼다. 아직 구매 전이지만 조만간 장바구니로 갈 듯.
세번째 뮤지컬도 역시 야곱과 함께 보았다. 카.르.멘.
사실 지난해 연말에 류정한 차지연 콤비로 이미 본 작품이다. 이번엔 신성록, 바다 주연으로 보았는데, 두 배우의 케미만 따진다면 신성록-바다 쪽이 낫다. 신성록도 류정한처럼 안 어울렸지만, 적어도 차지연보다는 바다가 카르멘 역에 더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연기의 문제가 아니라 색깔의 문제다. 똑같이 집시 역할이지만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에스메랄다 역을 맡았던 바다도 사실 별로였기 때문이다.
신성록은 몬테크리스토 때는 노래가 무척 좋았는데 이번에는 영... 이건 배우보다 작품과 캐릭터가 별로여서 그런 것 같다. 류정한 때도 그리 느꼈으니 말이다. 게다가 신성록은 요새 별그대에서 소시오패스 역으로 혼연일체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라 순정남자 호세 역을 하기엔 관객들이 몰입하기 힘들었다. 저러다가 카르멘 목을 조를 것만 같아...;;;;;
내가 워낙 기대치를 낮춰놨기 때문에 야곱은 1막을 그런대로 괜찮게 보았더랬다. 그렇지만 2막 끝까지 다 보고 나오더니 역시 아쉬움이 크다며 혀를 차버렸다. 그러게 내말이...ㅜ.ㅜ 요새는 아크로바틱을 워낙 많이 사용하지만, 카르멘에서는 서커스 장면이 나오니 역시 필요하긴 하지만, 필요해서 썼다기 보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소재를 가져온 느낌을 주었다. 주객이 전도된. 작품의 내용과 노래로 승부를 봐야 하는데, 곁다리로 변죽만 올린 모양새다. 창작 뮤지컬인데 굳이 외국 작품을 소재로 한 것도 아쉽고, 건질 노래도 없고, 내용은 더 형편 없고... 여러모로 규모와 배우 동원한 것에 비해서 실망스러웠다. 한번 했던 실망이니 더 보탤 것도 없었지만.
카르멘을 보고 온 다음 날은 설 전날이었다. 이렇다 할 음식을 많이 하지 않는 집이지만 전 부치기는 꼬박꼬박 했는데, 엄니 어깨 상태를 고려해서 이번엔 제발 한접시만 사다 먹고 하지 말자고 했지만! 기어이 엄니는 전을 부치기로 결심하셨다. 그나마 뜯어말려서 동그랑땡은 냉동식품으로 사왔다. 정말 모양다리 없는 (오양맛살과 파가 전부인) 산적과 동태전, 그리고 냉동 동그랑땡을 전기 프라이팬에서 부쳤다.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자세상 피곤하기도 했고, 전날부터 몸살이 오는지 상태가 메롱이었다. 하지만 알라딘 B님이 못 가게 되었다며 가겠냐고 물어온 '맨 오브 라만차'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후다닥 기름 냄새를 빼고서 외출했다. 전날과 비슷한 기온이었지만 바람이 불어서 많이 추웠다. 그러나 출연 배우가 조승우라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추위 따위!!!
조승우의 공연은 방송으로만 보았지 라이브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아우, 역시 명불허전! 정말, 정말 좋았다. B님 고마워요!(>_<)
맨 오브 라만차는 이미 검증된 작품이고, 나 역시 류정한 전관 공연으로 이미 관람해본 작품이어서 새삼 놀랄 것도 없건만, 감동이 사무치는 작품이었고 열연이었다. 조승우 이외의 캐릭터도 다 훌륭했다. 김선영은 그냥 그랬지만...^^
류정한과 조승우가 더블 캐스팅이라면, 나의 애정도로 보건대 류정한 표를 사겠지만.... 정성화와 조승우의 더블 캐스팅이라면 나는 기꺼이 조승우 표를 사리라(매진만 아니라면!). 정성화 미안!
맨 오브 라만차의 감동이 식기도 전에 그 다음 날, 그러니까 설날에도 뮤지컬을 보게 되었다. 야곱에게 온 표가 분산되어 있지 않고 날짜가 모두 몰려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보게 된 작품은 '해를 품은 달'이다.
원작은 훌륭했지만 드라마가 워낙 욕을 먹었으므로, 뮤지컬에 대한 기대가 없었다. 그리고 작년 초연 당시 주인공이 김다현이었는데, 그 무렵 '아르센 루팡'으로 엄청시리 실망을 했으므로 해품달에 대한 기대도 내려놓았더랬다. 이번에는 전동석, 정재은, 조휘 주연이었는데, 전동석은 엘리자벳의 토드 역할이 별로였기 때문에 역시 기대치가 내려가 있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대박! 아, 1월에 뮤지컬만 다섯 편을 보았는데 그중 가장 재밌었다. 심지어 전날 본 맨 오브 라만차보다도!
그리하여 내린 결론. 작품 감상의 가장 큰 방해 요소는 '기대치'인가 보다. 맨 오브 라만차보다 더 잘만든 작품이라고 말하긴 어려운데, 기대치가 아예 없던 상태에서 뜻밖에 작품이 괜찮다 보니 즐거움이 마구 상승했다.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은 무대가 깊어서 층을 만들기도 좋고, 동작이 큰 군무를 연출하기에도 아주 적당하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만큼 옛스러운 느낌의 무대를 만들었지만 촌스럽지도 않고 세련되게 연출했으며, 의상도 예뻤더랬다.(관복에 허리띠만 둘렀어도 더 좋았겠는데 펑퍼짐하게 입혀 놔서 살짝 엔지!) 무엇보다 노래가 좋았다. 특히 연우 역을 맡은 배우의 목소리가 아주 고왔는데, 오버스러웠던 훤의 연기와 노래의 단점을 잘 덮어주었다. 전동석은 키가 186이나 되는데, 정재은은 아주 자그마해서 품에 안기니 그림이 그렇게 이쁠 수가 없었다. 음, 좋아좋아.
1막에서 어린 세자빈 연우가 저주를 받아 궁에서 나가 살아있되 죽은 목숨으로 사라지는 대목까지 진행을 시켰다. 분량 조절이 살짝 아쉬웠다. 덕분에 2막은 아주 급하게 진행시켜야 해서 마무리가 좀 다급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꽤 만족스러운 창작뮤지컬이 아닌가. 국악도 적절히 조화를 시켰고, 격자무늬 창과 무대 막은 격조가 높았으며, 해를 품어 안는 영상도, 꽃무늬 아롱지는 조명도 모두 마음에 들었다.
기본 토대는 원작에서 가져오되, 드라마에서 사용한 장면들도 여럿 가져왔다. 그래서 진지해야 할 때 빵 터져서 웃기긴 했지만... 그 정도야 애교로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드라마 해품달의 주제곡을 린이 불렀는데, 별그대의 주제곡도 린이 불렀네. 린이란 가수는 무척 유머러스한 감각을 지녔지만, 음색은 발라드 맞춤형 같다. 애잔한 느낌으로 노래를 부른다. You're my destiny...
레드문에서 가장 멋졌던 캐릭터는 당연히 사다드였지만, 가장 사랑스러웠던 캐릭터는 데스티노였다. 정식 이름은 데스티노 데스티니. 사다드의 엄마 에스텔라를 사랑했고, 그래서 자신이 존경하던 그녀의 남편을 모함으로 죽게 했고, 그들의 아들 사다드를 미워하지만 동시에 그녀를 떠올리게 해서 제거하지 못했던, 끝내는 그와 함께 일하게 된 데스티노.
시그너스의 공전주기는 4년이다. 4년에 한번 한살 나이를 먹다니... 이 얼마나 완벽한 시간인가! 2014년이 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달이 후딱 지나갔다. 당황스러울 따름이다.
윤태영을 만나기 위해서 5년을 기다렸던 지화에게 태영이자 시그너스의 태양인 필라르는 루나레나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20년을 기다렸어."
시그너스의 일년이 4년이기 때문에 나온 계산이겠지만... 지구 시간으로 5년이었으니 시그너스 시간으로 일년 남짓이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셈이 더딘 나의 머리를 마구 혼란스럽게 한다.
심각한 정치 팟캐스트 틈 속에서 모처럼 쉬어갈 틈을 준 방송은 탁피디의 여행 수다였다. 여행계의 간증집회. 최근 방송 분에서 호주에서 워킹 홀리데이를 다녀온 부부가 출연했다.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호주로 가서, 거기서 워킹 홀리데이를 하고 왔다는 것이다. 1차 산업이 주력이라는 거대한 땅덩어리의 호주. 한반도의 35배 크기이지만, 인구는 남한의 절반도 되지 않는 그런 넓디 넓은 나라에서 사람의 노동은 아주 귀한 자원이다. 도축된 양을 포장하는 작업을 했다는데, 작업량이 지나치게 많으면 노동자들이 벨을 눌러서 작업을 중지시킨다고 한다. 그러면 수퍼바이저가 사색이 되어서 달려오고, 노동자는 지금 장난하는 거냐!며 드러눕는다고. 후아... 사람 값이 헐값인 대한민국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게 너무 많은 이 나라. 역시 바깥으로 나가봐야 원 안의 사정이 제대로 보이는가 보다.
하여간, 호주 이야기를 하다 보니 굿바이 미스터 블랙이 떠올랐다. 내게 처음으로 호주라는 나라를 알게 한 나라였지. 어릴 적에는 들장미 소녀 제니도 재밌게 보았다. 캥거루가 뛰어노는 푸른 들판은 들장미 소녀 제니의 낙원 팔목에는 비밀 담긴 의문의 팔찌 땅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웃고 하늘에는 산들바람 속삭이네요 귀여워요 명랑해요 들장미 소녀 토끼랑 타조랑 모두모두 친구 들장미 소녀 사랑스런 제니~
뭐 이런 가사다. 조금 틀렸을지 모르지만 굳이 확인하지는 않겠음. 국내 방영은 조기 종영되었다고 알고 있다. 일본 원작에 따르면 근친혼도 나오고 내용이 결코 아동물이 아니라는 소문을 들었다. 제목부터가 들장미 소녀 캔디의 짝퉁 같은 느낌인데, 그건 한국에서 붙인 제목이겠지?
굿바이 미스터 블랙을 작년에 중고로 팔고는 뒤늦게 후회했다. 새삼 아깝다고 느꼈는데 이럴 수가! 개정판이 나왔다. 두권짜리로! 오, 예! 두권 같이 사면 작가님의 친필 사인 보드 추첨에 응모할 수 있다. 1일은 신한카드 6% 할인 되는 날이기 때문에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결제를 하려는 찰나! 언니의 요청으로 점검 하나 하다가 그만 12시를 넘기고 말았다는 슬픈 이야기...;;;;
뭐, 적립금으로 사면 되지. 최근에 리뷰 대회 상금으로 알사탕 오만원 어치 받았다. 그 전에 알사탕 '10개'도 상품으로 받았는데, 1,000개가 5천원이니까, 10개면.... 50원인가? 알라딘 나한테 상금으로 50원 준 거야? 으하하핫, 완전 빵터졌음. 틀린그림(사실은 다른 그림)찾기로 구색 맞춰서 써먹어야지.
내친 김에 1월에 본 영화도 몇 편 더 정리해 보자.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제목이 제일 마음에 안 들었다. 영어 발음 그대로 한글로 표기하는 것 참 매력 없다. 월스트리트의 늑대나 월가의 늑대 정로도도 충분했을 텐데. 고스트가 사랑과 영혼이 된 것처럼 더 멋지게 의역할 수도 있고, 아니더라도 한글을 무시하는 것같은 관행은 좀 줄었으면 한다. 영어 발음으로 쓴다고 더 있어 보이지도 않구만...
영화는 1분 모자란 3시간 짜리였다. 워낙 길기 때문에 작정하고 봐야 했고, 실제로 그런 각오로 감상했다. 다행히 평점과 달리 3시간을 앉아 있는 게 힘들지 않았다. 극장에서 난방을 지나치게 해버려서 얼굴이 아주 건조했던 것만 빼고는...
돈을 향해 마친 듯이 달려드는 조던(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과 그를 비롯한 무수한 사람들의 욕망을 아주 적나라하게 그려냈다. 시작부터 끝까지.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훌륭했다. 이제 그만 아카데미도 그의 손을 들어줬으면 한다. 아카데미가 잘생긴 배우에게는 유난히 인색하다는 퉁을 좀 안 들었으면...
마틴 스콜세지와 디카프리오가 함께 만든 작품이 꽤 된다. 왕가위 감독에게 양조위가 그러하듯이.
작품의 실제 주인공인 조던 벨포트는 형기를 마친 뒤 강연회를 돌면서 그 수익금으로 빚 갚는 중이라고... 근데 그걸로 갚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닐 것 같은데...;;;;
수상한 그녀와 겨울왕국 이야기는 이미 했고, 블라인드 시사회는 개봉하기 전에는 언급하지 말라고 했으니 패쓰!
황정민 주연의 '남자가 사랑할 때'를 보았다. 황정민 표 순애보는 '너는 내 운명'에서 이미 한 번 보았으니 새삼스러울 것 같지 않았는데 이번에도 색깔이 달랐다. 건달이라는 점에서 '달콤한 인생'과 '신세계'가 떠오르지만 그 작품과도 또 인물이 다르다. 매번 다른 모습으로 연긴 변신을 하는 놀라운 배우다. 그게 악역이건 좋은 역이건 관객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는 힘이 있다. 오랜만에 들은 이문세 노래도 좋았다. 멜로와 이문세의 목소리는 참 잘 어울리지.
변호인에서 악질 형사 역을 맡은 곽도원은 이 작품에서 황정민의 이발사 형으로 나온다. 입과 마음이 따로 노는, 강퍅해 보이지만 사실은 마음 약한 소시민의 모습을 아주 잘 표현했다. 연기파 배우 참 많구나. 좋아, 좋아!
살면서 일탈이라는 걸 별로 해보지 못했다. 영화 보러 극장 가고, 콘서트 보려 공연장 가는 것도 일탈로 취급되는 집에서 살아온 터라 검은색 매니큐어를 바르는 정도도 내가 해본 제법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탈이라면 일탈이랄까. 김두식은 욕망해도 괜찮아에서 '지랄 총량의 법칙'을 이야기 했다.
중년 남성의 내면에 남아 있는 소년은 ‘지랄총량의 법칙’으로 알려진 ‘지랄’이기도 하고, ‘에너지’이기도 하며, ‘청춘’이기도 하고, 프로이트가 말하는 ‘이드’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색(色)’, 즉 욕망의 영역에 속한 힘이죠. 10대 중반부터 20대 후반까지 소년은 남성의 내면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춥니다. 조물주의 설계에 따르자면 바로 그 즈음에 가장 자연스럽게 분출되어야 하는 에너지입니다. 이몽룡과 성춘향이 그랬던 것처럼 주로는 섹스를 통해서 말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습니다. 욕망을 찍어누른 사람만이 성공이란 달콤한 열매를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섹스를 통해 분출되어야 할 에너지는 엉뚱하게도 도서관, 고시원, 영어학원에서 대부분 소비됩니다. 그런 에너지 소비가 ‘건강한’ 것으로 권장되기도 합니다.
남녀 불문하고 다들 비슷한 형편이라 어차피 연애할 상대방도 시간도 공간도 찾기 어렵습니다. 취직, 고시, 유학 준비에 몰두하며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과정에서 젊은이들은 더욱 ‘계’에 속한 인간으로 변해갑니다. 그런 극심한 경쟁을 거쳐서 겨우 결혼할 여유를 갖게 되었을 때, 상대방을 고르는 기준도 ‘색’보다는 ‘계’에 속한 것들입니다. -89쪽
이제 초등6학년에 올라갈 나이가 된 큰 조카는 요새 심심찮게 반항을 한다. 사춘기 그놈이 올 시기다. 이른 녀석들은 이미 맞닥뜨렸겠지만. 부디 너의 지랄 총량이 너무 늦은 시기에 합이 맞춰지지 않고, 적당한 때에 적절히 분산되어서 잘 해소되기를!
나의 일탈답지도 않은 일탈은 엄마 몰래 맥주 마신 것? 그것도 서른 넘어서 가능했으니 일탈의 'ㅇ'도 부끄럽다.
설날 당일에 문을 연 식당이 없었다. 별다방 샌드위치와 커피로 이른 저녁을 먹고, 뮤지컬을 보고 난 뒤 아쉬운 마음을 생맥주로 달랬다. 이날의 첫잔은 아주 시원했다. 그리고 나는 토요일 저녁에 아주 힘없이 집으로 돌아왔고 몇 번은 주저앉을 뻔했다. 편의점에서 휴지 한통을 샀고, 뒤늦게 맥주 한캔 살걸 그랬나 싶었지만 다시 들어가지는 않았다. 길거리에서 마시기엔 좀 추웠으니까.
그리고 어제도 사실은 술이 필요한 날이었다. 어쩌면 나의 주사를 확인할 수 있는 날이었을 수 있었지만, 술은 마시지 않았다. 지금 이 시간. 한낮에 술이 땡기네. 속에서 열불이 나서 말이지. 마신다고 재워지지 않을 걸 아니까 굳이 마시지 않는다. 난 늘 내 삶이 평범하기를 원해 왔는데, 평범보다 못한 특별함으로 삶은 나를 놀래켜왔다. 영화 속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것 아니니까 막장 드라마 속 주인공도 만들지 말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