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2013년도 3월이었다. 출근 첫날 우리 부서 회식이 있었는데, 옆자리에 있던 분이 내게 태어난 생년월일과 시를 물었다. 대답해 주었더니 혼자 막 중얼거리더니 이렇게 얘기해 준다. 


자기야, 마흔 넘어서 결혼하는 게 좋아. 연애도 마흔 넘어서 하는 게 낫겠어. 

그 전에 만나면 자기한테 안 좋아. 좀 더 기다려. 

식구 중에 가시가 있지? 힘들었을 거야.

하는 일마다 될듯 될듯 하면서 안 된 적이 많았을 거야. 사주에 파가 꼈어. 

태어난 날보다 시가 중요한데, 그 시가 안 좋아. 파가 꼈다는 건 방해를 받는다는 뜻이야.

그래도 계속 도전하면 결국은 될 거야. 힘내.


뭐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알고 봤더니 이분이 신내림이 왔는데 받지 않으려고 애를 쓰느라 무지무지 아파하시던 중이었다.

무병을 앓았나 보다. 지금은 어찌 지내시는지 알 수 없지만.


사주나 점을 본 적은 없지만 궁금하기는 했다. 하지만 내가 이런 걸 보면 너무 많이 휘둘릴 것을 알기 때문에 갈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안 풀리면 역시 파가 낀 거야.... 라며 혀를 차지 않겠는가. 


신경이 안 쓰이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마흔 넘을 때까지 연애금지!하며 살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2014년 새해가 밝았을 때 나의 계획은 이러했다. 

올해는 소개팅이 들어오면 무조건 나가보는 거다.(그 전에는 모두 거절했다. 많지도 않았지만.)

누군가 내게 관심을 보이면 적극적으로 만나보자. 

내 관심을 끄는 누군가가 나타났을 경우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못했다. 


마음가짐 때문이었을까. 2014년에 내가 만나본 남자는 셋이었다. 

첫번째 인물은 맨 마지막에 이야기하겠다.


두번째는 친한 언니의 남편의 친구의 사촌형이었다. 

내게 만나보라고 권한 건 언니였지만, 사실 이 언니도 그 사람을 만나보진 못했다.

그냥 남편이 좋은 형이라고 얘기해서 추천한 거였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시민권자인데 한국에 결혼할 여자를 찾으러 몇 개월째 체류 중이라고 했다. 

미국 들어가서 살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지만 그 해의 나의 계획은 일단 누구든 만나보는 거였으므로 만나기로 했다. 

나보다 여섯 살이 많다고 했고 키는 많이 작다고 했다. 

우린 현충일 즈음에 만났는데, 내가 가진 신발 중 가장 납작한 샌들을 신고 나갔다. 1.5cm 굽을 신고도 상대방은 나보다 많이 작았다. 둘 다 서로 놀라서 얼른 착석했다. 그 해에 내가 만난 세 남자는 모두 나보다 작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얘기를 해보니 알려준 것보다 나이가 더 많았다. 

언니가 73년 생이고, 언니의 신랑이 빠른 73인데, 그 친구는 그래서 72년생이고, 그 사촌형은 빠른 71년생이란다. 그러니까 사실은 70년생과 학교를 함께 다닌 거다. 나랑은 만으로 8년 차이가 났다. 좀 많게 느껴졌지만 사람이 마음에 들었더라면 극복될 나이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사이에는 극복될 수 없는 가치관의 차이가 있었으니, 그날 두시간 여 함께 있으면서 내가 느낀 건, 이 남자가 한국에서 살았더라면 새누리당을 지지하며 살았겠구나...였다. 그때가 지방선거 직후여서 우리가 정치 얘기를 좀 했다. 이 남자의 표정이나 말투에서도 두번 만날 일은 없겠구나라고 느끼는 것 같았다. 물론, 두 번 만나고 싶지 않았다. 당시 통성명을 했지만 이름도 기억이 나질 않고 전화번호도 서로 교환하지 않았다. 끝.


그 전까지는 남자를 만날 때 '종교'가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런 교육을 받고 내내 자라왔다. 그런데 이 남자를 만나고 나서 '정치적 성향'이 아주 중요하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랬더니 내 친구가 소개팅을 주선했다. 이번에는 친구 신랑의 직장 동료였다. 전교조 활동을 아주 열심히 하는 선생님이었다. 


만나보니 확실히 정치적 성향이나 가치관은 많이 통했다. 그런데 그건 대화가 통한다는 것이지 그 자체로 매력이 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친구가 세번은 꼭 만나야 한다고 강조를 해서 한 번 더 만나기는 했다. 두번째 만남에서도 그다지 감정이 동하질 않아서 세번은 힘들겠다고 여겼다. 그런데 마침 그때 오션월드에 가서 핸드폰이 침수됐고, 다음 날이 광복절이었고, 이어서 주말이 끼어서 4일 동안 내 폰은 혼수상태였다. 상대는 2G폰을 쓰는 사람이어서 카톡 같은 건 할 수 없었고, 내게 어떤 문자를 보냈다 하더라도 나는 확인할 수 없었다. 내 짐작에는 문자를 보냈을 것 같은데, 답이 없으면 전화까지 해볼 정도의 적극성은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세번째 만남도 끝났다. 


자, 이제 첫번째 남자 이야기를 해보자. 사실 아무도 안 물어본 이야기를 굳이 이렇게 꺼낸 것은 이 남자 때문이다.

지금 나는, 아주 많이 화가 나 있다.


내가 '개새끼'라고 명명한 이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여전히 내 블로그에 올지도 모르겠다고 여겼다. 그래서 2014년 한해 동안은 알라딘에 뭘 쓰는 게 싫었다. 그게 반복되다 보니 자꾸 안 쓰게 되고, 2015년엔 앞서 말했듯이 너무 바빠서 서재 생활을 많이 못했다. 2016년에는 좀 달라져 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재를 뿌렸다. 본인도 알고 있다. 반가워하지 않으리라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렇게 흔적을 남긴 건 자기를 향해서 '개새끼'라고 했기 때문일 것이다. 설마 억울한가? 왜 개새끼라고 부르는지도 내가 써야 하나? 


우린 수영장에서 만났다. 이 사람이 1번으로 출발하고 내가 2번으로 출발했다. 당연히 출발 지점과 도착지점에서 기다리는 동안 얘기를 하게 된다. 수영장 근처 대학에 연구실이 있다고 해서 대학 교수라는 걸 알게 됐다. 이때가 1월이었는데 2월 말에 해외 연구소로 간다고 했다. 가기 전에 밥 한번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내가 대뜸 물었다. 데이트 신청이냐고? 상대가 당황하길래 수줍나? 했다. 아마도 내가 거절할 거라고 여겼나 보다. 하지만 난 이때 그해는 데이트를 향해 마음의 문을 열자!고 다짐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밥 먹으러 가던 길에 이 사람이 나보다 한살밖에 많지 않아서 놀랐다. 사실 난 마흔은 훌쩍 넘었을 줄 알았다. 못생기고 키작아서 공부만 하다가 여태 장가를 못 갔나? 뭐 이렇게 생각했다. 너무 솔직한가? 미안하다. 정말 그랬다. 


가는 길에 들어보니 학력 스펙이 장난이 아니었다. 왜 아니겠는가. 대학 교수인데. 반면 나는 당시 백수였기 때문에 더 비교가 되었다.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대화도 잘 통하고 즐거웠다. 책 이야기도 많이 했는데 이과 출신임에도 문학 얘기를 많이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애프터는 없었고 전화번호도 묻지 않았다. 내가 이름을 물었는데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래서 만나 보니 내가 영 별로였나 보다 싶어서 두번 묻지 않았다. 


이날이 일요일이었고, 월요일에 수영장에서 다시 만났다. 상당히 뻘쭘했는데 먼저 말을 걸어왔다. 전날 이야기했던 영화 '겨울왕국'을 보러 가자고. 그래서 수영 마치고 영화를 같이 봤다. 수요일에는 치맥을 했는데 서로 자뻑 모드가 되어서 학창시절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여전히 이름은 말하지 않는다. 자기가 워낙 유명해서 포털에서 검색하면 뜨는 사람이라나. 


금요일에는 (아마도)라면과 김밥을 먹었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고, 만화책 이야기를 하다가 해당 책을 내가 빌려주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 집앞까지 갔다. 일요일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회를 봤다. 박물관 안에 있던 한정식집을 들어갔다가 비싸다며 나오자고 한 것도 추가로 이야기하자. 


월요일에는 이 남자가 1박2일로 스키장을 갔다. 스키장 가본 적 없다고 했더니 같이 가잔 말도 했다. 미쳤냐? 

수요일에는 내가 뮤지컬을 보러 가서 수영을 빠졌다. 

금요일에도 뮤지컬 표가 생겨서 수영을 빠졌다.

그날 12시가 넘어서 집에 돌아와 보니 대문에 포스트 잍이 붙어 있었다. 

이 남자가 우리 집 앞 카페에서 오랜 시간 기다리다가 간 것이다. 

참고로, 이 날은 설날 당일이었다.


다음 날, 토요일에도 대문에 포스트 잍이 붙어 있었다. 우리 집 앞 카페에 앉아서 논문을 보고 있었다.

차를 한잔 마시고 영화를 보러 갔다. 피끓는 청춘을 보고 나니 짜장면이 먹고 싶어져서 홍콩반점에 갔다. 

탕수육 하나에 짜장 하나였던가? 요리를 하나 시켜서 좀 놀랐다. 먹어보니 모자라지는 않았지만.


이어서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우리가 만난지 정확히 2주가 된 시점이었다.

한참 재밌게 이야기하다가 이름을 물었다. 이건 '예의'의 문제라고. 

엄청나게 고민하더니 도저히 말 못하겠단다. 헐!

그래서 그만 보자고 했다. 

이쯤 되면 누군가는 벌써 눈치를 챘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몰랐다. 전혀 상상도 못했다. 

내 상식과 내 양심으로는 그랬다. 


다음 날 오후에 이 남자가 다시 집 앞 카페에 왔다.

제일 먼저 신분증을 보여줬다. 정말 한 살 차이였구나. 나이를 속였나 싶었는데 나이는 맞았다.

교수 신분증도 보여줬다. 이것도 정말이구나. 

그래서 나도 내 이름을 알려주려고 했더니 이미 알고 있단다. 응??


전날 영화 표 찾을 때 열었던 내 지갑에서 이름을 보았고, 그래서 싸이월드에서 78년 12월생 내 이름을 찾았더니 한명이 떴고,

그 이름으로 구글링을 해보니, 알라딘 서재 뜨고, 내 개인 홈페이지 뜨고, 트위터 계정 뜨고, 기타 등등....

내 신상 다 털렸다. 헐. 2차 멘붕.


그리고 하일라이트. 짐작되는가? 많이들 짐작했을 것처럼 이 남자는 유부남이었다. 그것도 애 둘이나 딸린. 


내가 이 타이밍에서 막장 연속극처럼 물세례라도 뿌려야 했던가? 우리가 어떤 사이였다고? 

굉장히 화가 났고 어이가 없었지만 여기서 얼굴색이 변하는 건 도저히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았다. 

그래서 뭐뭐뭐 거짓말 했냐고 물었다. 신나게 이야기하더라. 이러저러한 트릭을 썼다, 이러저러하게 조심했다 등등.


여기서 끝났으면 그냥 해프닝이 되었을 것이다. 

굉장히 재수 없는 일이고 아씨 똥 밟았다! 라고 생각하겠지만 지금처럼 화가 나진 않았을 것이다. 

근데 이 남자가 그 후로 해외로 뜰 때까지 2주간 스토커처럼 들러붙었다. 

수영 시간은 옮겨갔는데 나중에 나 수영 끝날 때 기다리다가 집까지 따라오고, 

괜히 집 앞 카페에서 앉아 있고, 알라딘 서재에 댓글 달고, 내 홈페이지에 회원가입 하고 등등...


그래서 내가 알아듣게끔 페이퍼도 썼다. 지랄 총량의 법칙까지 들먹이면서. 

당신이 하는 짓이 얼마나 큰 폭력인지 강조하면서.

내 안목 없음은 스스로 반성할 터이니 당신 아내한테나 미안해하라고 말을 했건만 끝까지 진상을 떨다가 한국을 떠났다.


그런데 잊을만 하면 엽서를 보내는 거다. 첫번째는 주소 없이 왔는데 두번째는 주소도 남겼다.

헐, 뭐하자는 거야?


무시하고 지냈다. 여전히 생각날 때마다 짜증이 솟구치고 화가 났지만 쓸데 없이 에너지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알라딘에 뭘 쓰는 건 찝찝했다.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우습지도 않은 자기검열이 왔다.

그러다 보니 아무 것도 쓰기 싫었다.

그래서 8년 동안에 알라딘에 쓴 모든 페이퍼를 다 열어서 내 사진을 모조리 삭제했다. 2박3일 걸렸다.

내 개인 홈페이지에는 회원 등급 조절을 해서 게시판 열람을 못하게 막아놨다. 

싸이월드는 계정탈퇴했다. 위치를 알려주던 어플을 썼는데 그것도 삭제했다. 

트위터도 거의 하지 않는다.

소름 끼치게 싫었다. 


자, 이제 내가 저 위에서 그냥 보면 평범한 안부 인사 같은, 새해 덕담같은 댓글에 이리 분노의 페이퍼를 쓰는지 이해가 가는가?


자, 내가 개새끼라고 명명한 양반아. 

내가 당신의 출신 학교를, 근무했던 학교를, 다녔던 교회를, 당신의 이름을 공개해야 하는가?


세상은 좁다. 이 정도만 써도 분명히 누군가는 당신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다. 

당신이 한국에 있는지 없는지 나는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다. 

당신이 마션을 재밌게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나에게 알려주려 하지 마라. 

이 남자는 툭하면 내 행복을 비는 마음은 진심이라고 강조한다.

내 행복은 내가 챙길 테니 제발 내 삶의 영역에서 꺼져라. 

백번 양보해서 정말 순수하게 아무 의도 없이 댓글을 남겼다 하더라도 당신은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당신 때문에 지난 며칠 나는 아주 기분이 더러웠고, 

빌어먹게도 이게 새해 첫날 쓰는 첫 페이퍼가 되고 말았다. 

며칠 전에 친구들과 찌질한 전남친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 당신은 내 전남친도 아니지 않은가?

그냥 당신은 아주 찌질한 진상남일 뿐이다. 

경고하는데, 꺼져!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마흔 넘을 때까지 연애를 피할 생각은 없었지만 본의 아니게 마흔이 아주 가까워졌다. 

그때 그 직장 동료는, 정말 신기가 있었나 보다. 사실, 그때도 그걸 의심한 건 아니지만.


정초부터 이런 글을 올려서 민망하고 불편하다. 

이 글은 읽어야 할 사람이 읽었다고 판단되면 지울 예정이다. 

나의 불편한 심기와는 별개로, 2016년에 알라딘의 많은 지기님들은 복 듬뿍듬뿍 받으시기를.... 이 또한 진심입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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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8 0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0 2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억의집 2016-02-08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후 빡쳐 별 미친놈 다 보겠네....진짜.

마노아 2016-02-10 20:47   좋아요 0 | URL
깊은 빡침이 이 글을 쓰게 만들었어요.;;;

moonnight 2016-02-08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이런 ㅠㅠ;

마노아 2016-02-10 20:47   좋아요 0 | URL
오 마이 갓입니다.

책읽는나무 2016-02-08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한심한ㅜㅜ
우리 마노아님 근처 접근금지!!
싫은건 싫은겁니다!!!

마노아 2016-02-10 20:48   좋아요 0 | URL
좋게 말해선 말귀를 못알아듣네요. 머저립니다.

2016-02-08 17: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0 2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08 17: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0 2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6-02-09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요를 누르는 건 어울리지 않지만 응원하는 마음으로 눌렀어요. 쉽지 않았을텐데 쓰느라 고생했어요. 고생 많았어요. 이제 제발 그 사람이 마노아님을 가만히 내버려두었으면 좋겠어요.

마노아 2016-02-10 20:50   좋아요 0 | URL
고마워요, 다락방님. 큰힘이 되었어요. 내게 똥물 안 튀기고 버럭할 수 있는 방법을 못 찾겠더라구요. 지금도 머리에서 스팀이 올라와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