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가 정말 바쁘게 흘러간다. 하루도 아주아주 빠르게 지나간다. 오늘은 아침 일찍 컴퓨터를 켜놓고는 다시 컴퓨터 앞에 앉기까지 만 12시간 이상 걸렸다. 꺼놨어야 했는데 컴퓨터 생각도 하지 못했다. 


엄마가 입원하시고 집안 일에 정신이 없다. 첫번째로 세탁기를 돌린 날은 큰 시스터가 자기 빨래를 잔뜩 넣어놓고 가는 바람에 갑자기 세탁기가 꽉 찼다. 한시간 불리고, 한 시간 돌리고, 다시 30분 널고... 그래서 내방으로 돌아온 시간이 밤 12시였다. 그 이튿날은 냉장고를 정리하느라(다 못했다!) 12시에 돌아왔고, 그 다음 날은 대청소를 하느라 역시 12시. 뭐 매일 이런 코스다. ㅎㅎㅎ


우야튼 먹고 살아야 하니 요리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집에서 내가 해먹는 음식이란 것은 고작해야 이런 수준이었다. 


 


홈쇼핑에서 광고 보고서 사고 싶어 안달 났던 에그 쉐프롤. 이 녀석을 쿠팡에서 3만원 주고 샀는데, 그 다음주에 2만원 대로 떨어지더니 최근에는 1만원 대까지 떨어진 걸 보았다. 하하핫...(ㅡㅡ;;;;)


암튼! 달걀에다가 햄과 깻잎, 당근을 썰어 넣고 통에 넣으면 5분쯤 뒤 저렇게 핫바같이 생긴 애가 올라온다. 그걸 꼬치에 꿰어 먹는 건데... 이게 문제가 많다. 윗부분이 잘 안 익어서 반대로 집어넣어 한번 더 익혀줘야 먹을 만하다. 게다가 하나에 5분인데, 양쪽 반복해서 조리하면 10분. 식구가 여러 명이면....;;;;;


그래서 나도 이제껏 딱 두번 해봤다. 광고에 보면 밥도 넣고 고기도 넣고, 아주 다양한 재료를 응용하던데, 익는 것 기다리는 게 일이어서 손이 잘 안 간다. 이것도 여유 있을 때 해야 할 듯!


저 정도는 간식거리고... 나는 국이 필요했다. 마침 냉장고에는 순두부 팩이 들어 있었다. 순두부 레시피를 뽑아 봤다. 어간장을 넣으란다. 어간장? 어간장이 대체 뭐지??? 주변에 물어봐도 아무도 정체를 모른다. 단순 오타인가?? 어디서 오타가 나야 어간장이라는 말이 나오려는지...;;;


암튼! 내가 뽑은 레시피에서는 육수도 따로 만들던데, 번거로워서 보다 간단하게 만들기로 했다. 울 엄니의 설명에 따르면 김치와 양파를 잘게 썰어서 볶고, 순두부 투척 후 소금으로 간을 맞추면 되는, 아주 초간단 요리라고 했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했다. 양파를 썰다가 눈물을 잔뜩 쏟았지만 꿋꿋하게 이겨냈고, 바닥을 보이는 신 김치통을 비워서 잘게 썰었다. 잠시 볶다가 순두부 투척! 


사실 나는 간장을 넣고 싶었다. 엄니는 소금을 넣으라 했고, 레시피는 간장을 넣으라고 했는데, 간장 쪽이 더 끌렸던 것이다. 레시피는 '진간장'을 넣으라고 했다. 찬장을 열어 보니 여러 개의 간장이 보인다. 조선간장, 국간장, 양조간장......


아, 고민되네. 이 중에 어느 게 진간장이란 말인가????


결국 소금으로 갈아탔다. 설마 맛소금은 아니겠지?? 대충 굵은 소금을 조금 넣고 끓였다. 근데 좀 이상하다. 왜 이렇게 걸쭉하지???? 살짝 맛을 보니 열라 짜다. 으퉤퉤!!! 결국 물을 넣었다. 엄니가 물 넣으란 소리 안 하셔서 안 넣었는데, 레시피에는 육수 준비하라고 했으니 사실 물이 들어가야 마땅했던 걸 몰랐던 것이다. 


결국 물을 넣고 뚝배기에서 팔팔 끓였다. 마지막에 계란 넣고 파도 넣었는데, 파는 넣는 게 아니라는 의견을 들었다. 어느 게 맞으려나??? 암튼 그리하여 나온 완성품은 이렇다.


 

 


 

마지막 사진이 찬밥 위에 순두부찌개를 부은 국밥 되겠다. 얼핏 보면 라면에 밥 말은 비쥬얼이다. 

안 먹는 건 많아도, 맛에는 별 까탈스럽지 않은 나답게 맛있게 먹을 만했다. 이걸, 오늘까지 먹었다. 정확히 일주일 동안.... 줄지를 않아...ㅜ.ㅜ


사실 그동안 병원 밥이 많이 부실해서 엄니의 불만이 하늘을 찔렀다. 내가 봐도 심하게 음식이 짰다. 요리 하시는 분이 할머니여서 그런가... 원체 짜게 드시는 울 엄니도 매번 국물에 뜨거운 물 말아서 드신다...;;;;;


그동안 간식을 많이 사다 드렸다. 식구들이 돌아가면서 이 간식 저 간식을 공수했는데, 나는 요리란 걸 직접 해보고 싶었다. 순두부 찌개로 급 자신감 상승! 그리하여 내가 도전하게 된 품목은 이름하여 잡채!!!!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운 게 잡채라고... 누가 그러더군. 암튼 어제 장을 봐갖고 돌아왔다. 혹시 실패할지도 몰라서 고기는 사지 않았다. 고기까지 볶았는데 실패하면 너무 속이 쓰릴 것 같아서....;;;;;;


먼저 야채를 썰었다. 집에 있던 빨간 파프리카를 썰고, 당근과 양파를 썰고, 표고버섯은 데쳐서 줄기 떼어내고 잘게 썰었다. 그 사이 당면을 찬물에 담가놨다. 시금치를 다듬어서 살짝 데친다는 게, 너무 데쳐서 시금치는 거의 못 쓰고 버려야 했다. 찬물에 바로 안 헹궈서 그런가...;;; 살짝 데치라는 '살짝'의 의미가 얼마만큼인지 모르겠다. 그냥 몇 분이라고 알려주지...;;;;;


레시피들은 당면 200g이나 300g 정도가 기준이었는데, 내가 산 당면은 1kg짜리였다. 그중 700g 정도를 삶은 것 같다. 간장과 설탕과 참기름으로 간을 하라고 하는데 얼마만큼 넣어야 할지 모르겠네...;;; 계속 한수저 씩 넣으면서 간을 봤다. 아무리 넣어도 싱거워... 역시 다시다의 도움을 받아야 하나.....;;;;;;


그렇게 온 부엌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그릇이란 그릇은 다 꺼내쓰고 허리 아프다... 할 때 쯤 잡채가 완성되었다. 종합 세시간 걸렸다. 따뜻할 때 드시게 한다고 부랴부랴 병원으로 날아갔다. 그.런.데....


엄니가 안 계시다. 응? 화장실 가셨나?? 그때 집에서 전화가 왔다. 둘째 시스터다. 엄니가 집에 오셨다고... 읭????

이 무슨 황당한 이야기인가!!


그러니까 사건은 이렇게 전개되었다. 너무너무 병원이 답답했던 엄니는 옆 침대 아줌마 따라서 잠시 바깥으로 나가셨다. 기분에 이대로 집에까지 가도 될 것 같았다고 하신다. 그래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셨다고...;;;; 병원에서 집까지는 네정거장이다. 엄니는 버스에서 두번이나 쓰러질 뻔했다고 고백하셨다. 아, 정말 이 주책바가지!!!!


결국 집에 도착하자마자 헤롱대던 엄니를 형부가 병원으로 다시 모셔왔다. 엄니는 딸내미들에게 돌아가며 욕을 잡수시고;;;;;; 그 다음에 잡채를 드셨다. 


병실은 4인실인데 한명이 외출했고, 손님이 두분 있었다. 난 그분들께도 내 잡채를 모두 권했다. 음하하하핫! 모두들 이렇게 말씀하셨다. 


맛있네. '처음치고는'


하하핫... 그렇다. 내 잡채는 처음 치고는 괜찮았다. 처음 치고는...;;;; 따뜻할 때는 그나마 괜찮았는데 왜 식으니까 더 싱거워졌는지.... 환자들에게는 싱거운 음식이 좋은 거라고 애써 합리화시켰다. 그러고도 성에 안 차서 큰 시스터도 집으로 불러서 기어이 잡채를 제공했다. 음하하핫!!!


사진을 딱 한컷 찍었는데, 아까 핸드폰이 작동을 안 해서 리셋 버튼을 눌렀더니 사진이 날아갔다. 세시간 걸려서 만들고, 두시간 걸려서 치웠던 내 소중한 잡채가 한장 사진도 없이 사라지다니... 안타깝다..ㅜ.ㅜ


생각해 보니, 요리라는 건 스무살 시절에 알바하던 곳에서 점심을 늘 만들어 먹어야 해서 끓여보았던 김치찌개와 떡볶이 정도가 다였고, 그후 십수 년 간 간식 거리 외에는 해본 게 없는 것 같다. 김밥도 올해 처음 만들어 보았고.... 몇 해 전에 빵 만든답시고 부엌을 초토화 시켜서 밀가루 언제 떨어지냐는 질문을 계속 받았던 게 전부였다. 


그래서, 이참에 장금이로 거듭나 보려고 한다. 둘째 시스터에게 요리 책이 많으니 몇몇 가지 도전해 봐야지. 일단 가장 쉬운 카레라이스부터??? 순두부 팩이 두개 더 남아서 엄니 좀 해서 갖다드릴려고 했는데 엄니가 거절하셨다. 내 순두부 찌개 먹을 만하다니까 그러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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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3-11-11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순간 다락방님 서재인줄 알았다는 푸하하하

요리도 할수록 더 잘하게 되는것 중에 하나 인거 같아요.
처음 자취할땐 이것저것 해먹느라 꽤 괜찮게했는데
지금은 전혀 안하니까 이젠 아예 엄두가 안나네요.

어머님~~~답답하셔도 좀 참으셔요. 날도 추워졌는데 그러시다 더 큰일나면 어쩌시려구요~

마노아 2013-11-11 13:13   좋아요 0 | URL
제가 다락방님께 공감하셨듯이 다락방님도 그러지 않을까요.ㅎㅎㅎ
김치찌개 해본지도 십수년이 지나서 다시 되려나 모르겠어요.
역시 안전하게 레시피를...ㅎㅎㅎ
울 엄니 병원에서 탈출을 감행하시다니...;;;;
정말 날도 추운데 큰일 날 일을 하셨어요. 단단히 주의를 주었습니다.^^

바람돌이 2013-11-11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님이 아프신가봐요. 어떡해요. 걱정이 많으시겠어요.
모쪼록 빨리 쾌차하시기를....
요리도 하다보면 늘어요. 특별한게 아니면 요리도 어차피 다 거기서 거기. 어디에 뭐가 들어가고가 대충 보이거든요. ㅎㅎ
어간장이 뭔지는 저도 잘 모르겠는데 저는 가끔 국물 요리 낼때 참치진액이라고 있어요. 마트에 파는데 요걸 간장 대신 쓰거든요. 왠만큼 맛이 잘나는데 그걸 말하는건가? ^;;
잡채는 저도 아직 어렵던데.... 맛있다 소리 들으셨으면 요리에 소질있으신거예요. ^^

마노아 2013-11-11 13:14   좋아요 0 | URL
교통사고로 인한 골절 환자거든요. 뼈 붙지도 않았는데 위험천만한 외출을 하셨어요.ㅜ.ㅜ
참치진액이라는 게 있군요! 국 끓이는 게 일인데 도전해 봐야겠어요.
잡채는 맛보신 분들의 측은한 마음을 담아 맛있다 소리 들었네요. 하하핫...
먹을 정도는 됐지만 썩 맛있지는 않았어요. 솔직히...;;;;
그렇지만, 아예 버릴 음식 안 되어서 다행이었어요. 이제 장금이로 거듭나겠습니다.^^

웽스북스 2013-11-11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간장 있어요~ ㅎㅎ 한살림에서 파는 제주어간장 있는데 생선 베이스로 우린 간장... 한살림 말고 다른 데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ㅎ
http://shop.hansalim.or.kr/im/im/pd/IMPD0201.do?GDS_CD=090401012

어머니가 거절하셨다니 눈물나네요. ㅠ

마노아 2013-11-11 13:15   좋아요 0 | URL
오오오, 어간장의 비밀을 풀어주셨군요. 주변에 생협 이용하는 사람이 없어서 다들 몰랐나봐요.
상품 보고 왔는데 호감이 갑니다.
울 엄니께는 순두부 말고 다른 걸 안겨 드리겠어요.ㅎㅎㅎㅎ

하늘바람 2013-11-11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님 아프신대도 이리 재미난 페이퍼를 쓰시다니 대단혀요 근대 요리 솜씨 타고 나셨나봐요 넘 맛나겠어요

마노아 2013-11-11 13:16   좋아요 0 | URL
어휴, 나이만 먹었지 이리 요란을 떨어서 민망했답니다.
뭐 이러면서 나아지겠지... 하고 여기고 있어요.
시간이 넘 많이 걸려서 힘이 드는데, 그래도 나름 재밌더라구요. ^^

다락방 2013-11-12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시간이 넘 많이 걸려서 힘들고 나름 재미도 없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마노아 2013-11-12 13:10   좋아요 0 | URL
지난 밤에 드디어 된장찌개를 끓여보았어요. 오늘 아침에 맛있게 먹었답니다. 홍장금이라고 불러주세요.ㅎㅎㅎ
지난 주 토요일에 친구네 집들이 다녀왔는데, 집이 굉장히 깨끗하고 예뻤어요. 무척 부러웠거든요.
어제 문득, 돈 안 벌어도 되면 살림만 하는 것도 취향에 아주 안 맞지 않겠다... 생각이 들었지 뭐예요.
뭐, 돈도 벌면서 다 하기엔 정말 시간이 넘 많이 걸리고 힘도 들고....ㅠㅠㅠㅠㅠㅠㅠㅠ

순오기 2013-11-18 0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홈쇼핑에서 에그핫바 보고 사고 싶었는데 우리식구들 반응이 시큰둥해서 안 샀어요.
광고를 보면 정말 기막히게 좋아 보인던데....

어머님의 쾌유를 빌고, 마노아님의 요리도전기에 박수를 보내요!!

마노아 2013-11-21 08:14   좋아요 0 | URL
두개를 동시에 만들 수 있게 만들어놨다면 좋을 뻔 했어요. 실용성이 많이 부족해요. 재미는 있지만요.^^

새로운 요리에 도전해야 하는데 이번주는 병원이 멀어져서 좀처럼 짬이 안 나네요. 조만간 새로운 걸로 찾아뵙겠어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