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무르
2013년의 첫번째 영화는 오락성보다는 좀 더 의미있는 영화를 고르고 싶었다. 그리하여 선택한 첫 영화는 '아무르'
평화로운 노후를 보내던 음악가 출신의 노부부에게 어느 날 위기가 닥쳤다. 아내 안느가 갑자기 마비 증세를 일으킨 것이다. 수술위험이 높지 않다고 했는데 안느는 오른쪽 마비로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되었다. 남편 조르주는 헌신적으로 아내를 돌보지만 본인도 노쇠해 기운이 달리는 입장에서 종일 아내를 돌보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다. 아내 역시 이부자리에 실례를 하는 자기 자신을 용납하기 어려웠고, 자신 때문에 남편이 지쳐가는 것도 견딜 수가 없다. 그러나 스스로 죽는 것도 쉽지 않은 일. 남편은 아내와 자신의 입장이 뒤바뀌었어도 마찬가지 아니였겠냐고 묻지만, 마음과 현실이 늘 일치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이들 부부의 선택을 이미 보여주고 시작했다. 그러니 관객은 이들이 어떻게 해서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천천히 따라가 보는 게 임무다. 초반에 음악회 씬을 빼고는 모든 장면이 이들의 아파트 안에서만 이루어진다. 주인공들이 모두 팔순을 훌쩍 넘은 노인분들이기 때문에 움직임도 아주 느리다. 영화도 전체적으로 아주 천천히 흘러간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몹시 지루하게 다가올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강풀 작가의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떠올랐다. 이쪽은 지극히 한국적 정서를 건드렸고, 아무르는 지극히 차갑고 사실적인 현실을 담았다. 선호하는 쪽은 있을 수 있어도 우열을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반세기라는 긴긴 시간을 함께 한 노부부에게 찾아온 삶과 죽음의 경계. 서로 극진히 사랑하고 아끼고 얼마든지 헌신할 마음도 있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었던 인생의 씁쓸함과 쓸쓸함이 진하게 느껴졌다. 무언가 더 할 말을 잇지 못하게 하는 묵직함이 영화 전반에 흐른다.
존엄사 문제도 떠올라서 영화 청원도 함께 생각났다. 같이 보면 두루두루 좋겠다. 느낌은 아주 극과 극으로 다르지만...
이자벨 위페르의 비중은 생각보다 많이 작았다. 그래도 마지막에 빈 집에서 가만히 대사 없이 앉아 있는 장면으로도 화면을 채우는 느낌은 충분했다.
★★★★☆
2. 로얄 어페어
포스터는 좀 별로다. '혁명가를 사랑한 왕비', '세상을 뒤흔든 치명적인 왕실비화'라는 광고 문구도 좀 별로다. 마치 '스캔들' 정도로만 얘기하는 것 같아서. 이 영화는 그 이상을 얘기한다. 아주 치열하게.
절대왕정이 무르익던 18세기 덴마크에 영국 공주가 시집을 왔다. 정략혼으로 시집 간 임금 크리스티안 7세는 편집증을 앓고 있고 지적이고 교양 넘치는 공주와 달리 무례하고 유치하고 경박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왕자를 낳음으로 자신의 도리는 다 했다고 여긴 왕비는 마음의 문을 닫고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갈 뿐이었다. 그런 왕실에 임금의 주치의로 독일인 의사 요한 스트루엔시가 들어온다. 계몽사상가이기도 했던 요한은 상처가 많은 임금을 어루만져주고, 그의 눈높이에 필요한 정서적 교감을 나눠준다. 나아가 개혁법안으로 기득권만 유지하려고 하는 귀족들을 몰아내고 그 과정에서 임금도 자신감을 얻고 덴마크에 새로운 시대를 열어갔다. 영국에서 이미 이런 개혁적 사고를 하고 있었던 왕비 역시 요한에게서 매력을 느낀다.
태어난 곳과 다른 곳에서 뿌리 내리고 살아가는 이들 외로운 혁명가들은 서로에게 깊이 탐닉했다. 위험할 만큼. 그리고 그런 이들의 행보는 개혁을 엎어버리고 싶은 이들에게 기회를 제공한다. 덴마크에서 쫓겨남과 동시에 자식들과도 생이별을 해야 했던 왕비는 죽음을 앞두고 아이들에게 긴 편지를 남긴다. 이 영화는 바로 그 편지 내용을 재연해내는 과정이 되겠다. 왕자의 생모인 전 왕비는 목숨을 부지했지만, 이방인 개혁가는 가차 없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다.
혁명을 통해 덴마크 국민들에게 새로운 삶을 주고 싶었던 요한의 진심은 외면되고 그들 민중은 어서 목을 치라고 소리를 높인다. 단두대로 끌려가는 이 남자의 심장은 배신감과 서러움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혁명과 개혁은 한순간에 엎어져 중세로 돌아가버린 덴마크.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 요한이 이루고자 했던 새 세상은 곧 다시 찾아왔고, 역사는 그 희생과 진심을 인정해 주었다.
혁명을 노래한 레미제라블이 아주 인기를 끌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쪽이 더 깊은 감동을 끌어냈다. 요한의 진심은 덴마크의 국민들에게 더 많은 자유와 복지를 제공하는 것이었지만, 거기에는 돈이 필요하고, 그 재원을 잡음 없이 끌어내려니 다시금 독재 스타일이 나오는 삐걱거림. 원칙을 고수하면서 개혁을 완수하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유혹이 도사리는가. 또 아무리 거창한 대의라 할지라도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서두르면 실패하기 쉽고 동지 없는 개혁은 더 힘들다. 지난 연말 대선 결과가 준 충격이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던 찰나에 이 영화는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혁명은 원래 피를 부르는 법이고, 언제나 희생을 강요해왔다. 그러나 목표가 올바르다면, 시간은 걸릴지언정 결국엔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었다.
또 한편으로 답답함을 느끼게 했던 것이 우리와의 차이점이었다. 진주 농민 봉기 당시 민란의 규모는 거의 전국적이었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수령을 직접 단죄한 일이 없다. 망신을 주는 정도에서 끝났던 것이다. 나라에서 보낸 나랏님 대신이라는 그 감투의 힘은 압도적이었다. 그렇게 억압받고, 그렇게 힘이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스스로 절대 권력을 끌어내리지 못했던 역사적 경험들은 좀 우울하다. 이게 다 공자 때문일까?
여주인공이 88년생인데, 남주인공 매즈 미켈슨은 65년생이다. 처음 요한이 등장했을 때 나이 차이가 지나치게 많이 나서 감정이입이 잘 안 되었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되면서 왕비가 빠져들 수밖에 없는 그 심정이 이해가 갔다. 몹시 매력적인 인물이다. 더 헌트도 얼른 보고 싶은데 자꾸 시간대가 안 맞아서 뒤로뒤로 밀리고 있다. 언능 보고 와야지...
★★★★★
3. 클라우드 아틀라스
매트릭스는 진정 혁명 같은 영화였다. 영화의 판도를 완전히 뒤엎어버린... 그런 영화들이 몇몇 있었다. 아바타도 그랬고 인셉션도 내게는 그랬다. 워쇼스키 남매와 '향수'의 톰 티크베어가 함께 연출을 맡고, 매력적인 배우 배두나도 주연으로 참여한다니, 여러모로 이 영화는 꼭 보고 싶은 영화였다. 세시간에 이르는 긴 영화라는 게 전날 잠을 잘 못 자고 간 내게는 치명적으로 작용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 영화를 내리기 전에 봤다는 것이 무척 다행스럽다. 비록 졸음을 못 이겨 중간에 좀 날리긴 했지만 그건 영화가 재미 없어서가 절대 아니다. 아직도 상영하는 곳이 있다면 나는 한번 더 보고 싶다.
이 영화에는 여섯 개의 시간대가 동시에 흐른다. 1849년 태평양을 항해중인 상선 위. 누군가 남자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 적은 가까운 곳에 있다. 그리고 1931년. 살아서는 허락되지 않는 지독한 사랑이 뜨겁게 타올랐다. 아름다운 심포니 '클라우드 아틀라스 6중주'가 탄생하기까지의 강렬한 욕망과 로맨스! 그리고 1973년. 핵발전소를 둘러싼 비리와 진실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린 여기자가 있다. 그녀를 뒤쫓는 숨막히는 추격이 긴장감을 늦출 새 없이 따라붙는다. 그리고 2012년, 감옥 같은 요양원에서 끔찍한 나날을 보내는 티모시의 자유를 향한 갈망! 이 영화에서 '개그'를 담당하는 시간 되겠다. 그리고 2144년. 나라의 경계가 무너지고 언어와 문화가 뒤섞인 미래 세계 '네오 서울', 클론 손미가 여기서 나온다. 손미 역을 맡은 배우가 바로 배두나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 시간이 2321년의 미래. 식인종 '코나족'에게 가족을 잃고, 악마 올드 조지의 환청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자크리와 다른 행성에서 온 '프레션트족 메로'가 만났다. 톰 행크스와 할 베리가 이 파트의 주인공이다.
영화는 아주 재밌게도, 이 다섯 개의 시간대에 어마어마한 배우들이 중복해서 출연한다. 자신들이 주인공인 파트가 있고, 또 아닌 곳에서는 재미난 분장을 하고서 조연으로 출연한다. 각 배우당 1인 5,6역을 거뜬히 소화해내는데, 영화의 말미에는 이들이 어떤 역으로 나왔는지를 '깜짝선물'로 보여준다. 몇몇은 충분히 찾아낼 수 있었는데, 어떤 분장은 너무 놀라워서 정답을 보고서야 알아차리기도 했다.
휴 그랜트, 짐 스터게스, 휴교 위빙(여자 간호사 역), 톰 행크스다.
위아래 모두 여자는 배두나다. 아래쪽 역할은 정말 못 알아봤다. 뒤에 한글 적힌 상자도 보인다. ㅎㅎㅎ
주인공 파트너는 주연으로 나올 때나 조연으로 나올 때나 상대 배역은 같다. 그러니까 다른 시간대에서도 결국은 파트너로 나온다는 것이다. 이 남자가 저 위 인조인간스런 얼굴의 남자라고 잘 연결이 되지 않는다. 2144년의 시간대에서 손미는 클론이지만 가장 인간적인 얼굴을 가졌고, 진짜 인간인 혜주는 아주 부자연스럽고 무서울만큼 기계적인 얼굴로 나온다. 그 극적인 대조와, 그럼에도 이들이 뜨겁게 사랑하게 되는 숙명적인 인연이 무척 벅차게 다가왔다.
'서울'이란 지명이 'soul'과 닮아서 미래세계의 배경으로 골랐다는 워쇼스키 남매의 설명이 흥미로웠다. 과연 이 도시는 진정 영혼을 갖고 있는지 좀 생각하게 되지만...
밴 위쇼는 캐릭터가 참 좋다. 이 배우는 과학자로 나와도 어울리고(007 스카이 폴) 이 작품처럼 예술가로 나와도 잘 어울리고, 향수 때처럼 광기 어린 모습도 아주아주 잘 어울린다. 게다가 이 뒷태를 보시라.
난 여자 뒷모습인 줄 알았다. 어휴, 이 남자의 저 실루엣을 보시라. 코피 터질 뻔했다. ;;;;
별똥별이 떨어지는 모습의 문신은 여주인공에게서 계속 나왔다. 배두나도 나왔고 할 베리도 있었다. 그러니까 저 시대에서는 그 역할을 벤 위쇼가 한 것이다. 이 커플들은 생을 거듭해서 다시 태어나고 또 사랑했지만, 그 커플을 연기한 배우가 꼭 같지는 않다. 지금은 이 게이 커플이 미래 사회에선 배두나가 연기한 손미와 혜주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영화는 무려 500년에 걸친 이야기를 여섯 개의 시간대로 나누어 설명하기 때문에 무척 방대하고 어지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 안에서 일관되게 노래하는 사랑과 갈망, 모험과 도전, 음모와 희생이 저릿저릿하기만 하다. 장점이 많은 영화지만 최고 공로상은 각각의 캐릭터를 구별시키는 배우들의 빼어난 연기력과 제작팀의 분장 능력에 있지 싶다. 대작이다.
배우들의 얼굴을 어지럽게 박은 포스터보다 이쪽이 더 많은 것을 함축한 것처럼 보인다. 마음에 드는 포스터다.
★★★★★
4. 잭 리처
원작 소설이 있는 줄 몰랐다. 그래서 주인공이 탐 크루즈가 되었을 때 말이 많았다는 것도 당연히 몰랐다. 사전지식 아무 것도 없이 그냥 봤다. 본 시리즈나 미션 임파서블과 비교하는 것은 좀 무리라 생각하지만 탐 크루즈는 여전히 원톱으로도 액션 영화를 소화해내는 저력이 있는 배우라는 생각을 했다. 탐 아저씨 근육은 멋있어 보이지 않지만 '진짜'라는 느낌은 주는 배우임에 틀림 없다.
도심 한복판에서 6발의 총성과 함께 5명의 시민이 무차별적으로 살해되었다. 현장의 모든 증거들이 한 남자를 용의자로 지목하지만 그는 자백을 거부한 채 '잭 리처'를 데려오라는 메모만을 남긴다. 그러나 전직 군 수사관 출신의 잭 리처가 도착했을 때 용의자는 이송 과정에서의 구타로 혼수상태가 되어 있었다. 지문도 없고 흔적도 없고 신분도 남기지 않는 잭 리처가 사건의 진상을 파헤쳐 가고 숨겨져 있던 더 큰 음모가 마침내 드러난다. 연기자들은 모두 강렬한 포스를 남기며 열연을 보이지만, 그래도 싱거웠던 것은 배후의 배후로 나오는 인물의 범행 동기에 대한 개연성 부족이다. 반전은 보여줬지만, 그 반전의 설득력은 좀 떨어졌다. 또 첫번째 용의자의 변심도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좋았던 점은 잭 리처라는 인물의 캐릭터다. 법의 한계를 뛰어넘어 심판을 내리는 그는, 그 바람에 자신의 자유와 안전을 포기했고 대신 '정의'라는 가치를 지켜냈다. 이런 단호한 인물이 주는 영웅적 고뇌와, 또 특별한 능력으로 펼쳐내는 수사과정들은 무척 재밌었다. 근데 이거 2편도 나오려나? 책은 시리즈가 무척 길던데... 앗, 지금 검색해 보니 변호사 역으로 나온 여주인공 로자먼드 파이크는 무척 나이가 들어보였는데 79년 생이다. 오, 이게 제일 큰 반전인가!
★★★☆
5. 라이프 오브 파이
이 영화를 보기 위해서 수년 동안 묵혀 두었던 원작 소설을 읽었다. 그리고 부커상의 위용을 확인했다. 아, 원작 소설 정말 좋았다. 감탄에 또 감탄!!!
그래서 아무래도 영화는 매력이 덜했다. 아주 화려한 CG를 선보였지만 이 화려한 볼거리들 속에서는 원작 소설의 명문을 고스란히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이런 영상들은 확실히 압권이었다. 아이맥스 3D로 보길 잘했다.
수영장에서 촬영했다고 하던데 그래도 그 수영장이 꽤 컸겠지? 물도 엄청 쏟아부었을 것이고... 영화 기술은 정말 빠르게, 아주 가파르게 발전하는구나.
고백하자면, 나 이 영화 보면서도 살짝 졸았다. 아이맥스 시간대를 맞추려고 좀 일찍 일어났더니 살짝쿵 피곤해서리...;;;;
태평양 위에서 호랑이와 함께 227일을 버텼던 인도 소년의 고달픈 생존기. 소년이 마주해야 했던 폭우와, 굶주림과, 식인섬의 공포까지... 모두 어마어마한 모험이며 절박한 투쟁이었다. 진짜 싸움은 소년의 내부에 있었기에 더 가혹했다.
영화 말미에 육지에 다다른 주인공의 초췌한 모습이다. 저 굶주리고 지친 얼굴의 효과는 뭘까나? 정말 굶었나, 아니면 CG인가??? 이 순간 그게 무척 궁금했다. 휴 잭맨은 레미제라블의 첫 씬을 위해서 36시간 동안 물을 마시지 않고 갈증난 상태를 만들었다고 하던데, 이 얼굴도 그런 준비를 했던 게 아닐까 문득 궁금해졌다.
영화가 원작보다 좋았던 것은 '힌두교'의 상징과 메시지들을 영상으로 잘 표현해냈던 점이다. 또 미어캣 섬의 전체 형상까지도 무척 절묘했다는 것!
리처드 파커가 가장 크게 잡힌 왼쪽 포스터가 마음에 든다. 색감도 좋고. 오른쪽 미어캣들은 귀엽게 생겼지만 좀 섬뜩하게 느껴진다. 섬의 비밀 때문일 것이다.
나야 소설을 먼저 보았으니 영화가 덜 재밌었지만,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보아도 아주 맛날 것 같은 영화이긴 했다. 소설을 두번 읽는 경우는 무척 드물지만, 이 책 '파이 이야기'는 나중에 한 번 더 읽고 싶다. 영화도 기회된다면 다시 봐도 좋을 듯! 그리고 읽고 싶은 부커상 수상작도 몇 개 보관함에 담아놨다. 후후훗!!!
★★★★☆
6. 7번 방의 선물
좀처럼 영화 재밌다는 소리를 하지 않는 울 언니가 꼭 보라고 극찬을 해서 보게 되었다. 영화는 어느 정도 뻔할 거라고 예상했고, 분명히 눈물을 짜낼 거라고 예상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영화의 진행은 많이 식상했고, 배우들도 모두 연기를 잘 하는 이들이지만 비슷한 역을 많이 맡아왔기 때문에 역시 좀 식상한 감이 있었다. 그리고 울라고 울라고 너무 강요를 해서, 정말 눈물이 나긴 했지만 그게 감동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그냥, 저런 억울한 죽음과 억압이 많다라는 생각에 마음이 힘들어서 감당하기 어려웠을 뿐...
어린 예승이는 정말 사랑스러웠다. 이 아이를 위해서 무엇이든 내던질 수 있는 아빠의 마음도 충분히 공감이 가고, 또 그랬기 때문에 이런 딸을 두고 어찌 떠날 수 있을까 싶어 마음이 아팠다. 류승룡은 무척 좋아하는 배우이지만, 이 영화에서의 연기는 좀, 아쉬운 부분이 있다. 여섯 살 지능을 연기하느라 목소리가 너무 작위적인 느낌이 났다는 것.
아주 어릴 때부터 지켜봐오던 신혜 양은 이제 완전히 숙녀가 되었다. 아름답게 자랐다. 괜히 내가 다 흐뭇했다. 이 장면에서 속눈썹이 어찌나 예쁘던지......
★★★☆
1월에는 미국 인상주의 특별전을 다녀왔다. 전시회 자체는 크게 기억에 남질 않았다. 그래도 다녀왔으니 사진만 몇 컷!
전시회보다 기념품 매장에서 산 애들이 더 좋았다고 한다면 쪼오끔 미안하긴 하다.
앗, 근데 저 머리끈을 어디다가 두었지? 사놓고 한 번도 안 썼는데....;;;;
셋째 주에는 조카들을 데리고 언니와 함께 북촌 한옥 마을을 다녀왔다. 날이 비교적 따뜻했던 주말이었는데, 사진 찍으러 나온 사람이 아주 많았고, 외국인도 제법 많았더랬다.
동네 주민들은 구경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소음 때문에 꽤 몸살을 앓을 것 같다. 조심하긴 했는데 그래도 사는 사람들은 스트레스 엄청 받을 듯...
치과 간판이 재밌다. ㅎㅎㅎ 아기자기 벽화들도 눈길을 끈다.
간판들이 예뻐서 찍어봤다. 정감 어린 글씨들이다. 에그 간판은 이승환 7집 앨범이 떠올라서 기분 좋아 찍었다. ㅎㅎㅎ
스마트폰 용 장갑을 세켤레 사고, 다현양 장갑도 한켤레 샀다. 다현양 머리핀과 내 머리끈도 샀는데, 저 머리끈은 한번 쓰고 망가져서 꿰매야 했다...;;;;
한 주 뒤에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덕혜옹주 특별전을 역시 조카들과 함께 보고 왔다.
로비에 있던 화분이 예뻐서 한컷 찍었다. 오른쪽이 전시장 입구인데 내부 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 밖에서 한 장 찍었다. 저 동그라미 안에 덕혜 옹주가 앉아 있는 것처럼 연출을 해놨는데 입구에 사람이 많아서 좀처럼 찍기 어려웠다. 아쉬운대로 저렇게만 분위기를 전해 본다.
지난 한달 간 조카들 데리고 이곳저곳을 많이 갔는데 덕혜옹주전이 가장 반응이 좋았다. 국립고궁박물관도 볼 거리가 많았고, 무엇보다 실내여서 가장 고생을 덜했다. 그밖의 곳들은 추위와의 싸움에 무참히 패배하곤 했기 때문이다.(어제가 최악!)
1월의 마지막 주 일요일에는 뮤지컬 '레베카'를 보고 왔다. 내게는 멀리 진주에서 뮤지컬 보러 때마다 서울 오는 친한 언니가 있는데 우리 둘 다 류정한과 임태경을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같이 볼 때가 많은데 이번엔 류정한 주연의 레베카다.
작품은, 아.... 정말 좋았다! 영화 레베카는 무려 70년도 더 전의 작품인지라 많이 촌스러웠다. 그런데 그 고전을 옮긴 뮤지컬은 장점만 가져오고, 단점은 강점으로 덮어버린 아주 훌륭한 무대였다. 영화를 보면 덴버스 부인이 주인공인 게 확 티가 났는데, 뮤지컬은 아무래도 남주인공에 힘을 좀 실어주었고, 막심 드 윈터 부인은 영화보다 더 강단 있는 인물로 변화시켜서 역시 좋았다. 내가 본 작품에선 류정한, 신영숙, 김보경 주연이었는데, 캐스팅을 아주 잘 선택한 것 같아서 만족도가 높았다. 류정한은 늘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으니 두말하면 잔소리고, 미스 사이공 때 기대를 갖게 했던 김보경의 목소리도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옥주현을 걸러내고 고른 신영숙이 대박이었다. 아, 무대를 압도하는 이 어마어마한 카리스마와 장악력! 신영숙 무대를 보아온지 10년이 넘었는데 이제껏 보았던 중 가장 비중도 높았고, 솜씨를 제대로 보여준 것 같아서 역시 즐거웠다.
작품의 제목은 '레베카'이지만, 막심의 전처 레베카는 사실 작품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막심의 새 부인은 그저 '나'라고 표현될 뿐 이름이 없다. 이 절묘한 조화가 이 음산한 작품의 각별한 매력으로 작용한다. 영화는 워낙 옛날 작품인지라 배경처리가 아주 미숙했는데, 뮤지컬은 제한된 공간을 장막 위에 그림을 그리는 영상 기법으로 3차원적 공간감을 잘 표현해냈다. 무대장치의 진화가 아주 가파르다. 옥주현 버전으로 보고 온 관객들도 만족도가 높던데, 나는 기존에 옥주현 주인공의 작품들에서 그녀만 아쉬웠던 적(아이다, 엘리자벳)이 있었기에 신영숙을 고집했다. 한 번 더 본다면 옥주현 버전도 고려해볼 생각이지만.
(사진 펑!)
주연 배우들 사진이 기둥에 박혀 있다. 선호하는 배우 앞에서 사진 찍는 건 당연한 일!
애석하게도 음반이 발매되지 않았다. 저작권 문제가 해결이 나지 않았나? 당연히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많이 아쉽다.ㅜ.ㅜ
국내 초연이어서 작품이 어떨지 조금 고민이 되었는데 대박 작품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좋은 좌석에서 볼 것을....
하여간 올해의 첫 뮤지컬로 아주 적절한 선택이었다. 레베카, 롱런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