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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지구를 지켜줘 10 - 애장판
히와타리 사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들은 달 기지에서 파견근무를 하다가 우주 전쟁으로 모성(母星)이 전멸되고 극도의 혼란을 겪었다. 게다가 전염병까지 돌아 7명 생존자가 차례로 목숨을 잃었다. 4명이 죽고 3명이 남았을 때, 한 친구가 백신을 개발했으나 애석하게도 본인은 이미 감염된 상태였다.(그는 1인분이었던 그 백신을 본인이 먹을 생각이었다.) 자신은 곧 죽을 운명이고, 남은 사람은 사랑하고 동경하던 모쿠렌과, 그녀의 약혼자 시온이었다. 시온이라는 인물은 전쟁 고아로 태어난 초능력자였고, 살아남기 위해서 살생도 해야 했던, 오로지 생존만을 추구하며 거칠게 살아온 인물이다. 그는 따뜻한 배려와 사랑, 포옹... 이런 것들에 굶주려 있었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일에 익숙해지지 못했다. 본심과 달리 거친 편이었고, 모두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모쿠렌의 마음을 가짐으로써 더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백신을 만든 인물은 모쿠렌이 이미 백신을 먹었다고 속인 채 시온에게 백신을 주었다. 그 결과 최후의 생존자는 시온이 되어버린다. 모쿠렌은 환생해서 내세에서 만나고 싶은 갈망에 시온에게 절대로 자살만은 안 된다고 다짐을 두고 죽었다. 우주에서 홀로 살아남은 시온은, 그렇게 무려 9년이나 방치된 채 살아남는다. 마침내 발병되어 죽을 때까지 견디어낸 9년의 세월. 그 시간 동안에 시온은 폭주를 하고 결국 미쳐버린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지구에서 다시 태어났다. 시온만이 9년 어리게. 게다가 외모마저 바뀌어 있어 모쿠렌의 환생인 앨리스는 옆집 소년 링이 시온의 환생임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작품은 초반보다 뒷심이 더 강한 편이었다. 전생과 현생의 동일한 인물의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서로가 기억하는 그들의 과거는 미묘하게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서로의 기억을 짜맞춰 조각을 완성시키는 작업이 필요했는데, 그 과정에서 알아가는 각자의 진심이 안타까웠다. 지독히 외롭고 가련한 운명을 겪은 시온의 진심을 말할 때 작가는 가장 공을 들인 듯하다. 아마도 작가 자신도 무척 연민에 빠졌을 것이다. 모쿠렌 또한 무척 의외였다. 무려 주인공이면서 작품의 70%가 진행이 되어서야 각성을 한다. 그것도 반쪽짜리 각성으로 진짜 중요했던 진심의 정체는 깨우치지 못한 채. 그 모든 것은 완결편에 가서야 마무리 되어진다. 그래서 무척 정교한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좀 거칠게 묘사된 것이 아쉽다. 좀 더 잘 다듬었으면 아주 완벽했을 텐데...
이를테면, 지구에서 다시 태어난 링이 달의 기지를 움직일 수 있는 키워드를 모으는 진짜 목적이 제시되었을 때의 낯설음 같은 것이 아쉽다. 그가 비록 전쟁 고아로 태어나 전쟁의 참혹함을 알고 있는 인물이며 또 그래서 자신의 고향으로 여긴 지구의 평화를 갈망한다는 설정은 이해할 만하지만 그걸 작품 속에서 자연스럽게 풀어내질 못했다. 대사로 던져주었을 때에야 비로소 그의 마음을 알 수 있게 된 거니까. 제목에서의 '나의' 지구는 모쿠렌의 지구로 생각했는데 그보다는 '시온'의 지구가 더 강렬하게 들린다. 나아가 그들 지구에서 다시 환생한 이들 모두의 갈망, 그리고 이 지구에서 살아가는 모두의 갈망이 되기도 하지만...
전생의 아픈 기억과 상처를 현생에서 함께 품고 살아가지만, 현명하게도 이들은 미래로 나아가야 할 지금 이 순간이 더 중요함을 깨닫는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무척 미숙했고 불완전했고, 때로 미움받아 마땅한 행동들도 했지만, 반성하고 있고, 그 과거를 딛은 채 앞으로 나아가려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니 그들의 지구는 여전히 '안녕'할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모두의 지구는 안녕해야 한다.
이 작품의 애니가 별로라는 평을 들었던 건, 앞부분만 봐서는 전체의 얼개를 알수가 없어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서 나온 평가가 아닐까 짐작해 본다. 지금 느낌으로는 애니로 표현할 수 있는 강점들이 분명 보인다. 기회가 되면 애니로도 보고 싶다.
찾아보니 후속 작품도 있는데 앨리스와 링의 아들의 성장이야기란다. 그래, 9살 나이 차이 문제 없어!
전작이 너무 뛰어나면 그를 뛰어넘는 다음 작품이 나오기 힘들지만, 작가님이 그걸 뛰어넘어 더 멋진 작품으로 독자를 찾아주었으면 한다. 그림 실력도 좀 늘었으면 좋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