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토요일 황사가 온 하늘을 다 점령한 때에, 명동에서 친구와 만났다.
명동에서 보자고 했지만 딱히 어딜 가야 할지를 몰라서, 일전에 먹어본 적이 있는 라멘 집으로 갔다. 거길 내가 무사히 찾은 것에 혼자 막 감동하면서...
이름이 뭐였더라? 후루사또? 일본어로 '고향'이라고 들었다. (물어봤다.ㅎㅎㅎ)

여기서 돈까스가 들어간 라면을 세번째 먹어봤는데, 이전에 두번 먹을 때까지 무척 맛이었던 기억이 이번엔 별로였다. 배가 덜 고팠는지, 그날따라 주방장님이 뭔가 딴 생각을 하셨는지...
친구도 나랑 같은 것 시켰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 친구 원래 돼지고기 안 먹는다. 왜 이걸 시켰을까? 내가 다른 걸 먹어봤다면 다른 걸 추천했을 텐데, 지나고 보니 미안타. 여름에 가서 냉라멘을 꼭 한 번 먹어보리... 근데 지금 또 생각해 보니 빨게면이던가... 그 집 메뉴랑 좀 비슷하다. 육수랑 가격의 차이가 있지만...
2. 배가 불러진 우리는 명동 거리를 좀 걸었는데, 악세사리 가게 못된 고양이에서 막간 쇼핑을 했다.

시계 목걸이가 3천원 밖에 하지 않아서 냉큼 골랐는데, 알고 보니 3,900원이다. '9'가 거의'0'처럼 그려져서 못 알아봤다. 저걸 걸고 있음 수업이 언제 끝나나 싶어 학생이 뚫어져라 쳐다보지 않을까? 위치 선정으로 좀 곤란할 수 있겠다. 내가 에미도 아니고 말이지비...
고리 3개 달린 귀걸이도 3천원, 알파벳 귀걸이는 천 원. 내가 'e'를 고르고 친구가 'd'를 골랐는데 하나씩 나눠 갖기로 했다. 나름 독특한 아이템이라고 생각했지만 오늘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 없었음. 고리 3개 달린 녀석은 어제 어떤 학생이 예쁘다고 해줬는데... 그 친구는 내것보다 더 큰 피어싱을 하고 있었다. ㅎㅎㅎ
3. 아까 오전에 검정고시를 준비 중이라는 어느 고학생이 교무실에 물건을 팔러왔다. 칫솔 세 개에 만원, 양말 세 켤레에 만원, 방향제 두 개에 만원.

영업을 하러 오는 분들이 너무 많은 터라 대개는 관심 없다, 이미 있다, 돈이 없다 등등... 마다하곤 했는데, 여드름 송송 난 이 학생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 4월에 시험이라는데 잘 보기를... 세경이가 생각나네...
뜻하지 않은 방향제 덕분에 이금이 신작 소설은 다음 기회에....;;;;;;
(오늘은 중고샵에 새 리스트가 안 떠서 유혹을 좀 더 쉽게 이길 수 있었음!)
4. 점심 시간이 끝나고 5교시 시작을 알리는 종이 치는데, 무려 '추노'의 배경 음악이 나오는 게 아닌가. 그러니까 드라마가 끝나면서 자막 올라갈 때 임재범의 '낙인' 가사가 나오기 직전의 그 강렬한 충격음 말이다. 너무 신선해서 5교시 시작이 즐거웠다. 어느 학생 말이, 선생님들이 우리를 '쫓아'오나요? 한다. 하핫, 그렇게 들렸니? ㅎㅎㅎ
5. 어제 어떤 학생이 이번 지방 선거에서 이 사람 좀 뽑아달라고 명함을 한 장 내민다. 자기 아버지라고...
이번에 구청장 후보로 나가셨단다. 노무현 대통령 때 정책기획위 비서관을 지내셨고, 지난 국회의원 선거 때는 공천을 못 받았다는 얘기도 한다. 제법 잘 생긴 친구인데 아버지도 훈남이다. 이메일 주소에 블로그 주소, 트위터 주소까지... 참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내가 뽑겠다고 장담은 못하지만 적어도 절대 안 뽑을 사람은 아니었다.
6. 점심 먹고 나오는데 부장님이 부탁이 있다고 하신다. 뭔고 하니, 골든벨에서 교사들이 패자부활전을 해야 하는데 방석 빼기 시합에 선수라 참가할 수 있겠냐고 한다. 아니, 그런 건 가벼운 분에게 부탁을 하셔야죠... 하니, 가벼운 남자샘이 뛰고 나더러 방석 빼라고 하신다. -_-;;;;
흑, 풀 HD로 잡아도 제 얼굴이 화면에 다 안 나올지도 몰라요... 하고는 거절했다. 슬프다...흥!
7. 지난 토요일은 CA 조직 시간이었는데(시간이 자꾸 왔다갔다 하네...), 내가 맡은 역사 영화부에 신청 인원이 50명이 넘게 왔다. 한 반에 1-2명 신청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 1,2학년 모두 합하면 28학급이니 두 명씩만 와도 50명을 넘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한 교실에 의자가 그렇게 많지도 않고, 보통은 힘들어서 그렇게 학생 많이 못 받는다. 20명을 넘지 않는 선에서 마감인데 무려 30명을 덜어내야 하니 이게 쉬운가. 게다가 2학년의 어느 학급에서 무려 5명이 한꺼번에 몰려왔는데 면면을 살펴보니 끙 소리가 나는 친구들...
8. 작년에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인데 나로 하여금 처음으로 학생부 선생님께 SOS를 치게 했던 녀석과 그 친구들이다. 이 녀석들이 학년 올라가면서 선택과목을 모두 조정해서 한 반에 모두 몰려가버렸다. 수업 들아가시는 분들의 얘기로는 3명 빼고는 다 한 팀이라고... 담임 선생님께 애도를.....ㅜ.ㅜ
9. 암튼 인원을 조정하는데 한 반에 한 명 내지 두 명만 남겼는데도 30명은 훌쩍 넘었고, 그럼에도 이 5명은 해체할 생각을 않는다. 2명 빼고는 다른 반 가야 한다고 아무리 강조를 해도 먹히질 않는다. 그런데 좀 전에 수업 마치고 계단 내려오는데 모퉁이에서 누가 "우리 자르시면 가만 안 둘 거예요!"라고 말하고 지나가는 게 아닌가. 휙 지나가버려서 얼굴을 확인 못했는데 5명 중 하나라는 건 알겠다. 분노 게이지 급 상승! 3명은 반드시 다른 반으로 보내겠다. 불끈!
10. 오늘 드디어 도배랑 바닥 까는 작업 들어갔다고 한다. 일거리가 많으니 칼퇴근 하라는 모친과 언니의 전언. 우리 집에 힘 쓸 사람이 나밖에 없...;;;;
오늘 배송해달라고 요청했던 가스렌지 기사님은 오전에 전화주신다더니 아직 소식이 없고....
아무튼 황사 소식이 들리는 오후, 집에 가서도 먼지 좀 마셔야겠다. 어쨌든 오늘은 우리 집에서 잘 수 있겠지.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