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이 흐렸다. 비가 온다고 했는데 새벽에 쏟아부은 걸로 만족했는지 더 이상 내리진 않았고, 날이 탁하고 무척 더웠다. 사람이 많진 않았지만 그래도 적적하지 않을 정도로는 보였고,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여러 외국인들도 볼 수 있었다. 근데 정문에서 행사할 때는 영어랑 일본어로만 방송해 주더라. 중국에서 온 관광객이 많았는데 그 사람들 뿔났겠다...;;;;

바닥돌이 창덕궁에 비해서 인공 냄새가 덜 난다. 훨씬 자연스럽고 멋스럽다. 창덕궁은 보수해서 쫙 갈아 엎은 티가 너무 나서 많이 아쉬웠다.

안에까진 들어갈 수가 없어서 자세히 보이진 않지만, 저 병풍(일월오봉산도)에는 문이 있어서 열고 닫을 수 있다. 왕은 근정전 뒷문을 통해 들어와 병풍에 있는 문을 열고 그 앞에 있는 어좌에 앉았다고.... '경복궁에서의 왕의 하루'에 나온다.ㅎㅎㅎ
일월오봉산도는 병풍에 그려진 다섯 봉우리의 산과 해와 달을 뜻한다. 다섯 봉우리는 동악(금강산), 서악(묘향산), 남악(지리산), 북악(백두산), 중악(삼각산)을 뜻하고, 해는 왕, 달은 왕비를 나타낸다.
사진을 어찌나 훌륭히 찍어주었는지 초점도 안 맞지만 기울어지기까지...ㅜ.ㅜ

건물 측면에서 천장을 찍어 보았다. 밖에서 보면 2층 짜리 건물이지만 내부는 트여 있어서 천장이 높은 한 층짜리 구조다.
임금의 옷에는 오조룡이 그려져 있는데, 저 천장의 용 두 마리는 발톱이 일곱 개이다. 그럼 발가락도 일곱 개겠지?

근정문과 근정전에 비해서 사정문과 사정전은 거리가 꽤 가깝다. 우리 궁은 으리으리한 멋은 덜하지만 그래도 오밀조밀 단아한 멋이 있는 듯하다. 뭐, 다른 나라 궁을 직접 본 건 아니지만...(ㅡㅡ;;)

심지어 일월오봉산도 마저도 근정전에 비해서 훨씬 작다. 어좌 위의 용은 이마 이치코의 '백귀야행'에 나오는 아버지 요괴 표정이랑 닮았다. 이름이 뭐더라? 아오아라시였나? 늘 허기져서 허덕이는 그 웃긴 요괴 생각이 난다.^^

용마루가 없는 강녕전이다. 임금이 곧 '용'이니 용 위에 용을 둘 수 없다는 게 일반적인 의견인데 홈페이지에 가보면 정확한 정설은 없다고 말을 잘라놓았다. 암튼, 강녕전과 교태전은 임금과 왕비의 침전으로 둘 다 용마루가 없다. 1918년 창덕궁에 큰 불이 나면서 경복궁의 강녕전과 교태전을 가져다가 그곳 전각으로 사용했는데, 해방 후 다시 옮겨올 순 없었고 이 건물은 1995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내부를 찍어보았다. 가구가 없어도 방이 작으니 공간이 좀 답답하다. 밥상도 작은 것이, 사람도 체구가 지금보다는 많이 작았을 듯도 하고...

자경전 십장생 굴뚝이다. 보호막이 좀 안습...

경복궁 내에는 잔디밭이 너무 많다. 원래 조선의 조경 양식에는 집안에 잔디를 깔지 않건만 일제 치하의 잔재들이다. 책에서 보기를, 경복궁은 원래 있던 전각의 10% 정도만 남아있거나 복원되었다고...
하긴, 근정전이랑 편전, 침전, 대비랑 동궁전 등만 남아 있고, 그밖에 향원정이랑 경회루, 집옥재... 최근에 복원된 건청궁 정도만 언뜻 떠오른다. 한 나라의 정궁이라고 하기엔 남아있는 건물이 너무 적다. 필시 수발들던 나인들 처소나 창고, 그밖에 여러 부속 건물들은 다 소실된 채 복원하지 못하고 있는 터. 우리가 이런 건물들을 볼 수 있는 건 영화 속 그래픽의 힘을 빌릴 때 정도랄까...;;;;

향기가 멀리 퍼져나간다는 향원지와 향원정. 저 다리(취향교)를 건널 수 없는 게 아쉬웠다. 거기 건너가서 건청궁을 바라보면 명성황후가 된 기분이 들지 않을까...ㅎㅎㅎ

창덕궁에서 옮겨온 집옥재는 좀 특이한 건물이었다.

유리를 쓴 것이야 나중에 지어진 건물이니 그럴 수 있지만, 그보단 분위기가 좀 달랐다.

저렇게 둥근 형태의 창이라니. 알고 보니 중국풍 양식을 썼단다. 외국 공사를 맞이하는 접견실로 썼는데 일부러 이국적 분위기를 냈다고 한다. 그런데 외국 사신을 만나는 자리나 더 우리만의 독특함을 보여주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 물론, 대부분이 지나치게 전통스러웠겠지만...

그리고 가장 기대했던 건청궁. 명성황후가 시해된 옥호루다. 정문으로 들어가지 못한 우리는 현판을 보지 못해서 이게 건청궁일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첫 인상이 한옥 스타일로 지어놓은 갈비집에 들어온 느낌이랄까....;;;;

원래도 이 건물은 이렇게 소규모로 지었던 게 맞다고 한다. 언뜻 창덕궁 안에 있는 연경당이 떠오르는데 단청이 없어서 더 그랬다. 안내하시는 분께 원래 단청이 없었냐고 하니,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한다. 남아 있는 그림에서 발견을 못한 탓도 있지만, 복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미처 못 그린 것일 수도 있다 한다. 몇 년 내에 다시 그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

내부의 화단도 원래 있었냐고 하니 그림들을 살펴보면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는데, 있는 그림을 바탕으로 조성했다고 한다. 흠...
경복궁 내에서는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해 있기는 하지만, 왕비가 이 자리에서 숨어 있었다고 하기엔 너무 작았다. 여기서는 도망쳐봤자 벼룩이었겠다는 생각. 아무튼, 역사의 비극을 증명하는 공간이 복원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긴 한데 너무 새 건물 티가 나서 영 부자연스러웠다.
우리나라에 전등이 가장 먼저 설치된 곳이 이곳 건청궁인데,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에서의 장면이 떠오른다. 국빈들 모신 자리에서 칼부림 씬이라니...ㅡ.ㅡ;;;;

건청궁을 나와 보니 왕과 왕비 행렬이 멀리 보였다. 궁금해서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사극을 보면 시각적 멋을 위해서 낮은 신분의 사람들 복장이 너무 화려하다. 특히 선덕여왕에서 궁녀들이 자색 옷을 입고 나오는 건 영 마뜩찮다. 물론, 가장 거슬리는 건 공주 마마들의 어깨에 늘어진 레이스(?)지만...

재밌는 건, 호위 무사 역을 맡은 이들은 모두 키가 훤칠했다. 중전마마 역을 하신 이는 얼굴이 조막만해서 이뻐 보였음.ㅎㅎ

경회루 정면 모습이다. 저 현판은 양녕세자가 썼다지?

시커먼 잉어들이 어찌나 크던지....
(사진 펑!)
무스탕님과 한 컷 찰칵! 모처럼 뽀샵질 안 한 사진. 가우시안 효과라도 좀 줬어야 했을까???
경회루 뒷편 의자에 앉아서 한참을 얘기하다가 자리를 옮겼다. 시원한 음료를 마시고 나서 아쉬운 작별을 고했는데, 무려 9시 시사회가 잡혀 있던 나는 혼자서 한참을 있어야 했다. 시간을 보낼겸 새로 조성된 광화문 광장을 가봤는데 조선왕조의 시작부터 1년씩 칸을 깔아두고 거기에 물이 흐르도록 한 게 인상적이었다. 다만 그걸 현재 시점까지 다 보려면 뒷걸음질로 와야 했는데 반대로 조성 했으면 전진하면서 봤을 것을...;;;;
시간 많던 나는 한 칸 씩 500년 넘는 그 구간을 다 보고 왔다. 은근 재밌더라. 다만 뒷걸음질이 힘들 뿐이지...

경복궁에 전등을 설치한 게 1887년인데,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에선 전등 점화식을 갖고 임오군란(1882)이 터진다. 허허헛...;;;

좌측통행을 실시한 게 1921년이구나. 아직 100년은 안 됐군. 요새 우측통행 엄청 홍보하던데, 지하철을 이용할 때마다 너무 헷갈린다...;;;;

다사다난했던 건국 즈음...
당시 남한 인구는 2천 만 명 규모...
북한은 그 절반도 안 되었다.

이 연표에는 '사망' 까지는 말하지 않는다. 누가 언제 왕이 되었는지, 대통령이 되었는지만 쓰고 있다.
그래도, 보니까 아프더라...

마지막으로 무스탕님이 선물해준 예쁜 칠기 거울. 이걸 들고 다니니 마치 귀부인이 된 기분이 들어버렸다.
호호홋, 무스탕님! 거울 자주 보면서 알흠다워지겠습니다. 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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