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가 "왜 철학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우리 또한 질문으로 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 욕망하는가? 왜 타자를 찾는 동일자의 움직임이 도처에 존재하는가?"라고 말이지요. 그리고 지금으로서는 늘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것이 욕망하기 때문에 우리는 철학을 한다." - P47
"왜 철학을 하는가?"라는 우리의 물음에 완전히 명쾌한 답이 주어졌군요. 통일성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철학의 욕구가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철학의 기원은 일자(一者)의 상실, 의미의 죽음입니다. - P49
이 단편들은 한편으로 통일성이나 신을 다양성 아닌 다른 곳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요. 통일성은 다양성의 규칙, 규약이기 때문입니다. 이것들은 결국 변증법, 다시 말해 분열의 초월을 말합니다. - P64
통일성의 연속적인 상실을 통해서 철학은 다각화되고 불연속적인 것이 됩니다. 과거의 분리는 오늘날의 분리입니다. 과거와 오늘은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분리는 과거와 오늘의 유일한 주제가 될 수 있습니다. 통일성에 대한 욕망은 부재하는 통일성을 증명하지만 그 통일성의 현존을 증명하는 것은 욕망의 통일성입니다. - P75
역사는 이러한 추구가 자기 뒤에 남기는 흔적이자 자기 앞에 열어놓는 기다림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차원과 미래의 차원, 이 두 차원은 현재라는 차원이 충만하지 않을 때, 현재가 그 영원한 현행성 속에서 부재를 드러낼 때, 현재가 자기 자신과 일체성을 갖지 못할 때에만 그 현재의 양쪽으로 뻗어갑니다. 프루스트가 사랑은 마음으로 감지하게 된 시간(그리고 공간)이라고 말했지요. 역사의 폭을 넓히는 것은 통일성에 대한 결핍의 통일성입니다. 여러분은 그래서 철학이 역사라는 것을 이해하겠지요. 게다가 우연히 그렇게 된 게 아니라 구성에 의해서 그런 거예요. 그런 점에서 철학과 역사는 모두 의미의 탐색입니다. - P78
철학의 말은 신앙의 말이 아닙니다. 그 말은 과학의 말도 아닙니다. 그 말은 모든 것이 기호인 상징계 안에서, 은유의 논리 안에서 동일한 수준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철학의 말은 의미작용이 순전히 자기 책임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실험실의 과학자처럼 자기가 질문과 대답을 동시에 해야만 한다고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 P108
철학의 말이 명시적으로 겨냥하는 진리, 그 진리가 그 말에는 없습니다. 철학의 말은 자기가 말하는 것에서 빗나가 있을 때에, 빗겨나서 말할 때에 참된 것입니다. - P114
철학의 현실성은 오로지 현실의 비현실성에서 나온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철학은 현실에서 체험되는 결핍에서 비롯됩니다. 다른 것에 대한 욕망, 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람들 사이의 다른 관계 조직에 대한 욕망이 낡은 사회적 형식들을 뛰어넘지 못하는 데서 철학의 현실성이 나와요. 인간 세계가 실제로 결핍에 시달리기 때문에, 그 안에 욕망이 있기 때문에, 그 결핍 속에 철학은 비인간적인 세계, 형이상학의 세계, 다른 세상, 내세 따위를 건설할 수 있습니다. - P128
세계에 귀를 기울임으로써만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철학이 노후한 장식품, 양갓집 규수의 소일거리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철학은 그런 것일 수 있고, 실제로 그렇기도 합니다. 그래도 철학이 현실 속의 욕망이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는 바로 그 순간이라는 점, 혹은 그런 순간일 수 있다는 점은 변치 않습니다. 우리가 개인으로서나 집단으로서나 겪는 결핍이 명명되는 동시에 변화되는 순간 말입니다. - P146
철학을 하는 이유는 바로 이겁니다. 욕망이 있기 때문에, 현존 속에 부재가 있기 때문에, 생체 안에 죽음이 있기 때문에, 또한 아직 권력이 아닌 우리의 권력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얻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소외되고 상실됨으로써 사태와 행위, 말해진 것과 말하기 사이가 벌어지고 말았기 때문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말을 통하여 결핍의 현존을 증명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사실 말해서, 어떻게 철학을 하지 않을 수 있답니까?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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