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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한 위험 - 글쓰기에 대하여 철학의 정원 40
미셸 푸코 지음, 허경 옮김 / 그린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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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적인 자리에서 자신의 삶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푸코에게, 공적인 대담에서 글쓰는 이로서의 자기 삶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상당한 위험이었다. 하지만 이 위험한 지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연구자에게 글쓰기란 무엇인지가 드러난다.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세계와 자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이들, 글쓰기를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활용하는 이들에게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질문을 하는가의 문제이다. 즉, 연구자의 좋은 글은 좋은 질문에서 나온다. 그리고 좋은 질문이란 글을 쓰는 이의 실존으로부터 말미암는 것이면서, 또한 역설적으로, 글을 쓰는 이가 자신을 상실한 그 자리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진단을 내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의 작업은, 글쓰기라는 절개 자체를 통해, 죽어 버린 것의 진실일 무엇인가를 드러내는 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내 글쓰기는 죽음으로부터 삶으로 또는 삶으로부터 죽음으로의 옮겨 가는 축이 아닌, 죽음으로부터 진실로 또는 진실로부터 죽음으로 옮겨 가는 축 속에 존재합니다. 나는 죽음의 대체물은 삶이 아니라, 오히려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죽음의 무기력과 공백을 가로질러 우리가 되찾아야 하는 것은 삶의 잃어버린 기미가 아니라, 진실의 세심한 펼쳐짐입니다. 내가 진단을 내리는 사람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 P32

글쓰기란 본질적으로, 그것을 통해 그리고 그 결과로서, 내가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무엇인가를 찾을 수 있게 해줄 어떤 작업을 감행함으로써 실현됩니다. 내가 하나의 연구, 한 권의 책, 또는 또 다른 무엇이든, 어떤 것을 쓰기 시작할 때, 나는 그 글이 어디로 갈지, 어떤 곳에 다다르게 될지, 내가 무엇을 증명하게 될지, 정말 알지 못합니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바로 그 움직임 자체 안에서만, 내가 증명해야 할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치 글쓰기가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하던 그 순간에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을 정확히 진단하는 행위이기나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 P33

글을 쓴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우리가 종이 위에 쌓아 놓는 이 미세한 흔적들 안에서, 실존과 신체의, 모든 실체를 글쓰기와 펜이라는 신비한 운하를 따라 흘러가도록 만들려는 시도입니다. (...) 삶은 늘 종잇장 바깥으로 펼쳐질 것이고, 증식될 것이며, 결코 이 작은 직사각형 안에 고정되지도 않을 것이며, 신체의 무거운 부피 역시 결코 종이 표면 위에 펼쳐지기에 이르지도 않을 것이고, 우리가 2차원의 이 우주, 담론의 이 순수한 행렬로 옮겨 가는 일도 없을 것이며, 한 텍스트의 선형성에 다름 아닌 무엇인가가 될 만큼 우리가 충분히 가늘고 섬세할 수도 없을 것이지만,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 P53

나는 다만 즉각적으로 현존하고 있지만, 동시에 잘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려고 노력합니다. 나의 담론 계획은 노안을 위한 계획입니다. 나는 우리 시선에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오히려 우리에게 잘 안 보이는 것, 우리와 아주 가까운 거기에 있는 것, 그리고 우리가 볼 수 있게 된다면 아마도 다른 것들 역시 잘 볼 수 있게 될 어떤 것을 잘 보이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 P58

이런 의미에서, 나의 담론은 존재하지 않으며, 내가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의도도 자만도 전혀 갖고 있지 않다고 한 말은 바로 이런 점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나는 물론 내가 작품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이 거리를 재는 측량사이고, 나의 담론은 오직 차이와 거리두기의 체계를 측정하는 이 전적으로 상대적이고 연약한 담론의 미터법일 뿐입니다. 나의 언어작용이 수행되는 대상은 우리가 아닌 어떤 것과의 차이에 대한 측정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조금전 내가 당신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고유의 얼굴을 잃어버리는 일, 자기 고유의 실존을 잃어버리는 일이라고 말한 이유입니다. 나는 내 실존에 기념비적인 견고함을 부여하기 위해 글을 쓰지 않습니다. 나는 차라리 내 고유의 실존을 죽음과 분리시키는, 그리고 아마도, 바로 그 이유로 인해, 죽음으로 이끌어 가는 거리 속으로 서서히 흡수시키기 위해 글을 씁니다.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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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2-08-11 12:3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공쟝쟝이 좋아합니다.

공쟝쟝 2022-08-11 12:50   좋아요 5 | URL
ㅋㅋㅋㅋㅋㅋㅋ 날 너무잘 아는 잠자냥에게 오늘치 실존에 대한 사면을 허락합니다!

라파엘 2022-08-11 13:02   좋아요 4 | URL
푸코가 이야기하는 사면은 글쓰기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 그러므로 쟝님의 말씀은 자냥님 오늘치 글쓰라는 소리~ 😄

공쟝쟝 2022-08-11 13:17   좋아요 1 | URL
라파엘님 꼼꼼히 읽었군요? ㅋㅋㅋ

라파엘 2022-08-11 13:31   좋아요 1 | URL
저도 쟝님처럼 꼼꼼히 읽는 편이에요 😃

2022-09-14 18: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14 2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14 2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선善, 그리고 악惡의 논쟁 -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 한국국학진흥원 교양총서 오래된 질문을 다시 던지다 17
김근호 지음 / 글항아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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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사상사에서 선은 논의의 대상이기 보다는 삶의 지향점이자 실천의 대상으로 이해된다. 특히, 유학에서 선이란 곧 인간에게 본성으로 내재하는 인과 다름이 없으며, 좀 더 포괄적인 맥락에서 선이란 인으로 구체화된 덕의 실현을 의미한다. 즉, 선은 선험적 실재이며 선한 본성의 현실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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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는 것에 대한 동양적 성찰 - 무엇이 아는 것이고, 무엇이 모르는 것인가 한국국학진흥원 교양총서 오래된 질문을 다시 던지다 13
김종석 지음 / 글항아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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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앎을 통해 세상과 관계를 맺는다. 동양의 사상사에서 앎은 근본적으로 가치판단을 내포하고 있으며, 따라서 앎은 본질적으로 실천과 분리되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러한 앎의 논의에 누구나 접근할 수 있도록 동양의 대표적인 사상가들의 문헌을 통해 독자를 친절하게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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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3천년 동양을 지배하다 - 몸짓의 예술인가 억압의 기제인가 한국국학진흥원 교양총서 오래된 질문을 다시 던지다 3
박종천 지음, 한국국학진흥원 기획 / 글항아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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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는 사회의 정서적 공감대를 일정한 행위 양식으로 정형화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는 공감과 소통을 지향하는 몸짓이며, 공감하고 소통할 때 생물학적 사람은 비로소 관계적 인간이 된다. 다만, 이러한 예는 사용자의 의도에 따라 자기실현의 예술이 될 수도 있고 사회적 억압의 기제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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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의로움인가 - 의로움과 이로움의 갈림길에서 한국국학진흥원 교양총서 오래된 질문을 다시 던지다 12
임종진 지음 / 글항아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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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사상사에서 의로움이란 실천적 맥락을 내포하며 주로 이로움과 함께 다루어지는 개념이다. 경으로써 내면의 마음을 곧게 하고 의로써 외면의 행동을 바르게 한다고 할 때, 과연 의란 무엇인가. 이 책의 저자는 의에 관련된 다양한 원문을 통해 독자가 스스로 의의 개념에 도달하도록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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