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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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에 막 접어든 싱글 여성인 오은수. 특별히 내세울 것도 없지만 특별히 어디가 빠지지도 않는 그녀의 일상적이지만 동시에 평범하지 않은 생활기가 이 소설의 주 내용이다.


원래 신문에 연재되는 소설은 왠만하면 잘 읽지 않는 편인데 ‘달콤한 나의 도시’는 일단 감각적인 삽화에 눈이 가서 연재된 소설을 읽다보니 재미가 있어서 사무실에 가지 않는 날을 제외하고는 거의 빠지지 않고 신문에서 읽었었다. 집사람 덕분에 책을 다시 알라딘에서 주문하여 또 읽기는 했지만, 읽으면서 또 내용이 새롭게 느껴지는 것을 보니 나도 기억력이 많이 떨어졌나 보다.


달콤한 나의 도시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주인공 오은수부터 영화같은 사랑을 꿈꾸지 않고 상대방을 결혼상대방으로서의 조건을 기준으로 따져볼 만큼 충분히 세속적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겪는 사랑은 그 자체가 드라마틱한 요소를 포함한다고 생각한다. 그 형식이 맞선 상대이든, 20대 초반에 폭풍처럼 찾아오는 사랑이든 말이다. 달콤한 나의 도시는 그러한 우리의 일상의 측면을 잘 포착하고 담아낸 것 같다.


이 소설의 주된 화두는 결혼이다. 결혼이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 들여져서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지지만 최근에는 독신주의자들도 꽤 많고, 결혼이라는 제도가 인위적인 제도고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다는 의견까지도 제시되고 있다. 제도에 의하여 우리 삶의 상당부분이 규정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지만, 이 소설에서 결혼에 실패하는 친구 000을 보면서도 느낀 것은 제도 만으로 우리 삶의 본질적인 부분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상대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결혼이라는 제도만으로 본인이 바뀌어 결혼생활을 지속할 수 있기에는 위에서 언급한 것 같이 결혼을 비롯한 우리사회 제도들의 권위가 벌써 너무 약해진 것이 아닐런지...


나는 여자도 아니고 미혼도 아니지만 주인공 오은수의 독백에 많은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는 작가 특유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듯한 심리분석(예컨대, 직접 통화를 하지 않고 문자를 보내는 사람들의 심리 같은 것) 덕분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는 이면에 감추어진 우리의 심리상태 - 때로는 굳이 그 심리를 분석하여 까발리고 싶어하지 않는 - 를 콕 집어 오은수의 독백으로 낱낱이 드러내 보이는 부분은 읽는 이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의 행동 이면의 심리를 훔쳐보는 듯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몇 안되는 등장인물로 결혼, 이혼, 혼전동거, 가족간 불화, 직장내 스트레스 등 일상적이지만 다양한 문제들을 모두 다루려다 보니 등장인물들의 상황 설정이 조금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면도 있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결혼이나 30대가 되어 느끼는, 혹은 더 근본적으로 평범한 현대인으로 살아가는 불안정함 등을 (비록 남자로서의 다른 측면에서 느끼는 것이긴 하지만) 나만이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오은수로 대표되는 평범한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일정 부분 공감을 받은 것 같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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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2-02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콤의 나의 도시 보시면서 재미 있으셨죠. 읽어 보려고 보관함에 넣어 두고 있습니다. 아주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말들을 하는데 손이 잘 가지를 않네요. 하루 속히 알라딘에다가 주문을 넣어 할 것 같습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잘 읽고 갑니다.

외로운 발바닥 2007-02-03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 전형적이기는 하지만, 재미있게 읽히는 소설입니다. 전 개인적으로 적나라한 심리분석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산타님도 주말 잘 보내세요~

우기부기 2007-02-05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었단 말가? 난 별로던데.. 주인공의 삶이 별로 공감가지 않음. 현대 여성을 대표하기에 그닥 정상적이지 못하던데.. 우리나라 소설을 보면 여성이 비뚤게 그려지는 거 같아서 기분이 별로야..

외로운 발바닥 2007-02-06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만 비뚤게 나오는 건 아니지 뭐...약간 과장된 측면이 있는 건 인정~
 
그 섬에 내가 있었네 (반양장)
김영갑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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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쓴 책 한권으로 살짝 엿본 글쓴이 김영갑은 참으로 특이한 사람이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제주도에 1980년대 초반 홀로 건너가 특별한 생계수단도 없이 20여년을 사진만 찍으면서 산다.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고 홀로 자연과 벗삼아 지내는 것을 좋아한다. 가까운 지인은 물론 형제들과도 연락을 거의 끊고 지낼 정도로 철저하게 고독한 삶을 고집하지만 한편으로는 외로운 노인들과 섬마을 아이들과는 곧잘 친구가 된다. 제주도의 자연 속에서 새소리, 꽃한송이, 풀한포기, 바람 한줄기를 섬세하게 느끼면서 대자연 속에서 사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 그런 희열을 사진으로 남기고자 미친듯이 사진찍는 일에 몰입을 한다. 밥을 굶는 것은 아무렇지 않아도 필름이 없어 사진을 못 찍게 되면 미칠듯이 괴로워한다. 루게릭병에 걸려 카메라 셔터조차 누를 힘이 없는 상태에서도 폐교를 임대하여 제주도에 두모악이라는 사진 갤러리를 완성한다...


이 책은 이러한 기인 김영갑의 제주도에서의 삶, 사진가로서의 열정, 루게릭병과의 투병기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그가 찍은 제주도의 아름다운 자연을 찍은 사진들도 많이 들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글쓴이는 종교의 색채가 없는 사진가의 모습을 한 수도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속적 가치에 대한 초연함, 자연과의 일체성, 끊임없는 고독의 추구, 그리고 병마로 모든 것을 잃으면서도 결코 병마에 굴복하지 않는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깨우침을 주는 모습이 수도자와 너무나 유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짧은 글로 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글쓴이의 삶과 사진들을 통해서 잊고 지내왔던 대자연의 포근함, 우리 삶에서 진정 소중한 것들, 그리고 인간의 불굴의 의지를 느끼고 내 자신을 잠시나마 되돌아 볼 수 있었다. 각박한 도시에서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보내는 나에게 잠시나마 이처럼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신 배꽃님께 감사드린다.


이십여 년 동안 사진에만 몰입하며 내가 발견한 것은 ‘이어도’다. 제주 사람들의 의식 저편에 존재하는 이어도를 나는 보았다. 제주 사람들이 꿈꾸었던 유토피아를 나는 온몸으로 느꼈다. 호흡 곤란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을 때 나는 이어도를 만나곤 한다.....이젠 끼니를 걱정하지 않는다. 필름값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형편이 좋아졌다. 그런데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 없다. 병이 깊어지면서 삼 년째 사진을 찍지 못하고 있다. 끼니 걱정 필름 걱정에 우울해하던 그때를, 지금은 다만 그리워할 뿐이다. 온종일 들녘을 헤매 다니고, 새벽까지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하던 춥고 배고팠던 그때가 간절히 그립다. 그때는 몰랐었다. 파랑새를 품안에 끌어안고도 나는 파랑새를 찾아 세상을 떠돌았다. 등에 업은 아기를 삼 년이나 찾아다녔다는 노파의 이야기와 다를 게 없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이 낙원이요, 내가 숨쉬고 있는 현재가 이어도이다. 아직은 두 다리로 걸을 수 있고, 산소 호흡기에 의지하지 않고도 날숨과 들숨이 자유로운 지금이 행복이다. 이제 난 카메라 메고 들녘으로 바다로 떠돌기를 더는 꿈꾸지 않는다. 아직도 두 다리로 걸으며 숨을 쉴 수 있는 행복에 감사한다. 풍선 불기를 연습하지 않아도 호흡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p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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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17 1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유 2007-01-18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공호흡기에 의지하지 않고 이렇게 스스로 숨쉴수 있다는게 행복이며 자유라는 것 조차도 잊고 살때가 너무 많았어요..알라딘이 아주 어수선 했었네요..행복한 발바닥님은 잘 지내시지요??

외로운 발바닥 2007-01-19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 배꽃님께 정말 감사했답니다. 집사람 심부름(?)으로 음식점에 음식 테이크아웃 하러 갔다가 음식 나올때까지 이 책을 읽었는데 음식 가지고 나오면서 강남역에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을 보고 순간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답니다. 저도 배꽃님처럼 조금이라도 자신을 더 자주 돌아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중독재의 영웅 만들기
권형진, 이종훈 엮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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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위인전을 읽는 것이 무척 장려됐었다. 나를 포함한 수많은 어린이들이 이순신 장군이나 그 밖의 많은 위인들의 전기를 읽으며 나도 그분들처럼 국가와 민족을 위해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다짐을 수없이 했을 것이다. 어린이가 훌륭한 사람들의 삶을 읽으며 이를 모범으로 삼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읽는 위인전, 또는 우리 생활이나 역사 속에서의 위인이나 영웅이 우리에게 보여지는 모습 그대로의 인물이었냐 하는 것이다. 나아가 그 인물을 어느 누군가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각색하여 우리에게 제시한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문제의식을 화두로 쓰여졌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에서는 대중 민주주의가 발달한다. 대중의 지지가 정치권력 획득의 기반이 됨에 따라 정치권력은 대중의 지지를 얻어 권력을 획득하고 나아가 권력을 획득한 이후에는 대중을 권력이 지배하는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상으로 만들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영웅’을 만들어낸다. 영웅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책에는 다양한 사회에서의 영웅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등장한 시대나 장소는 모두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체주의적인 독재사회에서 정치권력이 의도적으로 만들어내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영웅의 탄생과 관련된 사실관계가 전부 조작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영웅들 중에는 실제로 탁월한 도덕성이나 성실성을 바탕으로 범인과 구별되는 ‘영웅성’을 가진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부인할 수 없는 점은 어떤 영웅도 정치권력의 의도적 편집과 각색이 없었다면 대중들의 삶의 일부가 될 정도의 영웅의 위치에는 오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논문을 엮은 것이기 때문에 역사적 고증이 주 내용을 차지한다. 그래서 특히 익숙하지 않은 독일 나치시대, 소련․중국․북한(우리가 북한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놀랄 정도로 북한의 무지에 익숙해져버린 것 같다)등 공산주의사회, 프랑스의 비시정권, 스페인의 프랑코 체제 - 사실 익숙했던 것은 우리나라의 영웅, 이승복과 이순신 장군 밖에는 없었다. ;; - 에서의 영웅 이야기는  역사적 배경지식의 부족으로 인하여 이해와 흥미가 좀 떨어졌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프랑스 비시정권이 괴뢰정권이었다는 단순한 통념과 달리 초기에는 프랑스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었다는 점이나 현대에도 정치적 권력과 종교가 ‘영웅’이라는 매개체로 융합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은 무척 신선하게 느껴졌다.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독일의 비스마르크가 신화화되고 바이마르 시대를 거쳐 히틀러의 나치정권이 집권할 때까지 대중독재의 영웅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 반작용으로 영웅이 대중들의 삶을 어떻게 규율했는지도 엿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엮은이의 말에 이런 말이 나온다. ‘오늘날 대중의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은 타의적이고 동시에 자의적인 의지들에 의해 혼합되고 있다.’ 이 책에 나온 대중독재의 영웅들은 그런 면에서 정치권력의 의지에 의하여 대중이 소비하도록 만들어졌고, 대중이 그러한 영웅들을 소비하면서 대중의 자의적인 의지가 가미되어 대중의 사적공간을 지배하는 경지에 이르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대중은 언제나 영웅을 원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영웅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으면서 자라났고 지금도 우리 주위에는 많은 영웅들이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매스미디어 시대인 요즈음 어찌 보면 어느 때보다도 많은 영웅들- 연예인들이나 스포츠 스타들, 정치적 지도자들, 스타 과학자(-0-;;), 그리고 수많은 시민 영웅들 -이 어느 때보다도 빠른 속도로 명멸을 거듭하고 있고 그들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무척 크다고 할 수 있다.

  

반드시 모든 영웅들을 비뚤어진 시각으로 볼 것까지는 없다. 하지만, 때로는 불순한 목적을 가진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영웅을 만들어 내고, 그렇게 만들어진 영웅이 우리의 삶을 일정부분 규율할 수 있음은 인식하고 있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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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1-04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대 속에서 만들어진 영웅들은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외로운 발바닥 2007-01-06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웅 모두가 만들어졌다고는 볼 수 없겠죠. 그리고 영웅을 바라보는 모든 시선을 부정적인 것으로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만들어진 영웅에 대한 문제의식만 갖고 있으면 되겠죠. 최근 황박사 사건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도 듭니다.^^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dts-es 2disc) - 할인행사
제임스 웡 감독, 크리스 렘체 외 출연 / 스타맥스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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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지편집부인 웬디는 친구들과 함께 놀이공원에 가서 교지에 싣기 위한 사진을 찍는다. 그런데 그 날 롤러코스터를 타려던 웬디는 사고를 예감하고 출발직전 열차에서 내리지만 남자친구인 제이슨은 미처 내리지 못하고 결국 롤러코스터는 웬디의 예감대로 탈선하여 전원이 사망하는 끔찍한 사고가 나고 만다. 그 이후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씩 불의의 사고로 끔찍하게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웬디는 자신이 그날 찍은 사진에 나오는 친구들이 차례차례 죽음을 맞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케빈과 함께 추가적인 사고를 막으려고 하는데...


어떤 사고로 죽을 사람이 그 사고를 피하여 죽음을 모면하더라도 결국 어떻게든 죽음이 찾아온다는 설정의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시리즈. 비행기 참사를 피한 주인공과 관련된 1편은 텔레비전에서 본 기억이 나는데 처음 영화를 보고서 상당히 참신하면서도 무서운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2편은 케이블을 통해서 보았는데 주인공들이 상당히 과격하게(?) 죽음을 맞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이번 3편은 적어도 죽음을 맞는 장면만 놓고 본다면 1, 2편의 잔혹성을 훨씬 능가하는 것 같다. 선탠기계에 갇힌 채 죽음을 당하는 장면, 그리고 작업장에서 *질 당하여 죽는 장면은...정말로 끔찍하다. 그리고 약간의 스포일러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3편에서 죽는 대부분의 주인공들은 정말 바닥에 던져진 홍시와 같은 모습으로 죽는다. -0-;; 미리 마음의 준비는 좀 해야 할 듯하다.


원래 공포영화를 즐겨보지 않는 차에 여자친구의 손에 이끌려 보게 된 영화라서 주인공들이 반액체상태로 죽음을 맞는 장면을 볼 때마다 고개를 돌리게 되었지만, 전반적으로 시간을 때우기에는 꽤 괜찮은 영화였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죽음이 다가온다는 점에서 오는 긴장감, 또는 단순히 관객의 입장에서 영화 속에서 곧 비참하게 죽을 것 같은 등장인물이 정확히 어떤 순간에 어떤 방식으로 죽게 될까에 대한 호기심과 긴장감이 이 영화의 묘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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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1-03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외로운 발바닥 2007-01-03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타님도 행복한 하루 되셨기를...
 
신용불량국가 - 국제금융기구와 외채에 관한 진실, 세계 밖의 세계
다미앵 미예.에릭 뚜생 지음, 조홍식 옮김 / 창비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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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외채라고 하면 부유한 국가가 개발도상국의 필요와 요청에 따라 빌려준 자금을 개발도상국이 경제성장 실패로 인하여 갚지 못하고 있는 채무하고 생각할 것이다. 돈이 없는 국가는 돈을 빌려야 하고 빌린 돈은 갚아야 한다. 갚지 못한 것은 빌려간 돈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채무자 책임이 아닌가? 하지만 외채 문제는 그와 같이 단순한 논리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도 구조적이고 복잡하며 악랄하다.


외채문제의 발생원인

제2차세계대전 이후 제3세계의 발전가능성이 국제금융질서에 완전히 종속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불평등한 교역조건과 교역조건의 악화로 예속의 굴레가 형성되었다. 즉, ①달러가치의 폭락과 유가의 폭등으로 인해 서방의 대규모 은행들은 갑자기 늘어난 달러를 잔뜩 보유하게 되었고, 선진산업국들은 넘쳐나는 달러를 제3세계국가들에 경쟁적으로 낮은 이자율로 차관을 제공했다. ②한편 미국은 경제위기를 탈출하기 위하여 이자율을 대폭 높이고 그 영향으로 세계적으로 이자율이 급격하게 상승하였다. 그 결과 변동이자율이 적용되었던 차관은 이자율의 상승과 높은 위험부담의 영향으로 하루아침에 돈을 3배나 더 갚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③남부 국가들은 자금을 상환하기 위하여 원자재 수출을 통하여 달러와 같은 경화를 벌어야 했는데, 남부국가들이 경쟁적으로 원자재 수출에 나서면서 원자재 가격은 1980년대 이래 폭락하였다. 소득은 줄어드는데 더 많은 돈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여 남부국가들은 외채 상환을 위하여 다시 외채를 더욱 비싸게 얻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p62-65)


차관의 쓰인 곳

그렇다면 남부국가들에 차관으로 제공된 자금은 어떻게 사용되었는가? 제공된 차관이 남부국가 주민들을 위하여 제대로 사용되었다면 차관도입의 명분이나마 세울 수 있겠지만, 불행히도 전혀 그렇지 않았다. 대부분의 차관은 북부 강대국들의 전략적 동맹국의 독재정권에 의해 도입되었고, 부패한 정권은 차관액의 상당 부분을 횡령했다.(자이레를 30년 동안 지배한 모부투 세세 세코의 사망당시 재산은 80억 달러였고 이는 자이레 외채의 2/3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일가의 재산은 400억 달러로 추산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횡령된 자금은 북부국가의 은행에 다시 예치되었다. 그나마 채무국에 도착한 자금은 현지주민의 일상적 삶을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남부의 천연자원을 수탈하여 세계시장에 좀 더 쉽게 공급하기 위한 것이었다.(p53-57)


악순환의 고리 -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

위와 같이 생성된 외채의 굴레를 고착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이다. 채권국가들은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을 통하여 채무국들에게 엄격한 재정적 규율을 강요하는데 이는 개발도상국의 산업을 발전시키려는 것이기보다는 이들을 세계시장에 통합시키고 개발도상국의 재정적 균형의 회복을 위해 더 많은 수출과 더 적은 지출을 그 주요 내용으로 한다. 이러한 계획들의 지속적인 추진으로 지난 20여 년간 고통 받은 것은 남부의 주민들이다. 지난 20여 년간 개발도상국들 사이에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빈곤이 확산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며 이러한 정책적 실패는 운이 없다거나 이해의 부족에 따른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정책을 의도적으로 적용한 데 따른 것이다.(p94-95)


부의 이전

일반적으로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 차관을 제공하므로 자금은 북부에서 남부로 이동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개발도상국에서 자금이 빠져나가 북부로 흘러들고 있다. 1998년 이후 동남아와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위기 이후 4,400억 달러가 남부에서 북부로 이전되었다. 공공외채에 관하여 본다면 남부국가들이나 국가가 부채를 보장하는 기관들이 북부로 이전시킨 금액은 1995년부터 2001년까지 2,480억 달러에 이른다. 이런 수치에는 남부 지배층의 자본도피, 다국적 기업의 이윤회수, 민영화 과정에서 저렴하게 팔린 남부 기업들이 북부 지배층 소유로 넘어간 것, 남부 국민들이 생산한 원자재 가격의 하락, 브레인의 탈출, 유전적 자원의 파괴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 결과 개도국들은 100의 돈을 빌려 이미 750을 상환하고도 현재 450의 빚을 지고 있는 상태에 처해 있다. (p132-135)


상식의 전환

외채의 악순환을 보면서 다음과 같은 상황이 떠올랐다.

한 가정에 망나니 가장이 있었다. 매일 술을 마시며 가족들을 폭행하고 가족들이 일해서 모아온 돈을 노름으로 날리고 큰 빚을 지고 잠적해 버렸다. 가족들은 돈을 만져보지도 못한 채 하루아침에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었다. 그러자 채권자들은 수시로 집에 찾아와서 사사건건 가정 일에 간섭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는 학업을 당장 그만두고 굶어죽지 않을 정도로만 먹으면서 공장에 가서 돈을 벌어오라고 한다. 그러면서 채권자들은 선심 쓰는 척 돈을 갚을 수 있도록 자기가 돈을 꾸어준다. 자기의 지시에 잘 따르는 것을 조건으로...그리하여 가족들은 죽어라 일을 하면서도 항상 굶주리며 빚은 계속해서 늘어만 갔다...


돈을 빌렸으면 이자까지 쳐서 갚아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며 자본주의의 원칙이다. 이를 원칙으로 여기는 것은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면 채무자들은 돈을 갚지 않을 것이고 채권자들은 돈을 빌려주지 않아 자금의 흐름이 끊길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개도국들은 어떻게든 외채를 상환하는 것이 원칙에 맞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독재자가 빌려 횡령한 돈을 국민 전체가 부담하는 것이 상식에 맞는가? 독재자의 부채 상환을 위하여 수많은 국민들이 굶어 죽고 있는데도 그 국가의 독재자가 빌렸으니 해당국가 국민들이 무조건 갚아야 한다는 것이 상식에 맞는가? 게다가 남부는 이미 원금의 7.5배를 갚지 않았는가.


우리는 1997년의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어찌보면 외채 문제를 몸소 체험했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는 단기간에 외채의 굴레를 벗어난 극히 예외적인 예에 속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우리 경제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IMF가 강요한 조치들로 인하여 양극화 심화, 기업들의 헐값 매각, 빈곤층의 증대 등 수많은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대다수 개도국의 예를 보면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의 정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는 너무도 분명하다. 그들의 정책은 총체적 실패를 가져왔다! 그들의 주장이 허구인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해당 국가가 그들의 정책을 제대로 시행하지 못하고 국민들의 노력이 부족해서 원래 의도된 성과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말만으로 책임을 전가한다.


20여 년간 시행한 정책이 실패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책임을 정책을 시행한 대상에게 전가하는 것이 비상식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최소한의 영양분도 섭취하지 못하여 굶어죽고 있는 나라에서 외채의 상환이라는 명목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과도한 영양섭취에 따른 비만으로 각종질병에 걸리는 나라로 자금을 이전시키는 것이 비상식이다. 독재자를 비호하며 차관을 제공하고 독재자가 횡령한 자금을 예치하는 금고를 제공한 자들이 독재의 피해자인 국민들에게 독재자에 대한 차관의 상환을 요구하는 것이 비상식이다. 그러한 부채가 개도국들의 외채라면, 그것은 전액 탕감하는 것이 상식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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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1-02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위 정치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상식과 비상식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정말 궁금하네요.

외로운 발바닥 2007-01-03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은 무엇이 상식이고 무엇이 비상식인지 헷갈리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