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내가 있었네 (반양장)
김영갑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그가 쓴 책 한권으로 살짝 엿본 글쓴이 김영갑은 참으로 특이한 사람이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제주도에 1980년대 초반 홀로 건너가 특별한 생계수단도 없이 20여년을 사진만 찍으면서 산다.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고 홀로 자연과 벗삼아 지내는 것을 좋아한다. 가까운 지인은 물론 형제들과도 연락을 거의 끊고 지낼 정도로 철저하게 고독한 삶을 고집하지만 한편으로는 외로운 노인들과 섬마을 아이들과는 곧잘 친구가 된다. 제주도의 자연 속에서 새소리, 꽃한송이, 풀한포기, 바람 한줄기를 섬세하게 느끼면서 대자연 속에서 사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 그런 희열을 사진으로 남기고자 미친듯이 사진찍는 일에 몰입을 한다. 밥을 굶는 것은 아무렇지 않아도 필름이 없어 사진을 못 찍게 되면 미칠듯이 괴로워한다. 루게릭병에 걸려 카메라 셔터조차 누를 힘이 없는 상태에서도 폐교를 임대하여 제주도에 두모악이라는 사진 갤러리를 완성한다...


이 책은 이러한 기인 김영갑의 제주도에서의 삶, 사진가로서의 열정, 루게릭병과의 투병기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그가 찍은 제주도의 아름다운 자연을 찍은 사진들도 많이 들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글쓴이는 종교의 색채가 없는 사진가의 모습을 한 수도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속적 가치에 대한 초연함, 자연과의 일체성, 끊임없는 고독의 추구, 그리고 병마로 모든 것을 잃으면서도 결코 병마에 굴복하지 않는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깨우침을 주는 모습이 수도자와 너무나 유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짧은 글로 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글쓴이의 삶과 사진들을 통해서 잊고 지내왔던 대자연의 포근함, 우리 삶에서 진정 소중한 것들, 그리고 인간의 불굴의 의지를 느끼고 내 자신을 잠시나마 되돌아 볼 수 있었다. 각박한 도시에서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보내는 나에게 잠시나마 이처럼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신 배꽃님께 감사드린다.


이십여 년 동안 사진에만 몰입하며 내가 발견한 것은 ‘이어도’다. 제주 사람들의 의식 저편에 존재하는 이어도를 나는 보았다. 제주 사람들이 꿈꾸었던 유토피아를 나는 온몸으로 느꼈다. 호흡 곤란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을 때 나는 이어도를 만나곤 한다.....이젠 끼니를 걱정하지 않는다. 필름값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형편이 좋아졌다. 그런데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 없다. 병이 깊어지면서 삼 년째 사진을 찍지 못하고 있다. 끼니 걱정 필름 걱정에 우울해하던 그때를, 지금은 다만 그리워할 뿐이다. 온종일 들녘을 헤매 다니고, 새벽까지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하던 춥고 배고팠던 그때가 간절히 그립다. 그때는 몰랐었다. 파랑새를 품안에 끌어안고도 나는 파랑새를 찾아 세상을 떠돌았다. 등에 업은 아기를 삼 년이나 찾아다녔다는 노파의 이야기와 다를 게 없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이 낙원이요, 내가 숨쉬고 있는 현재가 이어도이다. 아직은 두 다리로 걸을 수 있고, 산소 호흡기에 의지하지 않고도 날숨과 들숨이 자유로운 지금이 행복이다. 이제 난 카메라 메고 들녘으로 바다로 떠돌기를 더는 꿈꾸지 않는다. 아직도 두 다리로 걸으며 숨을 쉴 수 있는 행복에 감사한다. 풍선 불기를 연습하지 않아도 호흡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p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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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17 1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유 2007-01-18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공호흡기에 의지하지 않고 이렇게 스스로 숨쉴수 있다는게 행복이며 자유라는 것 조차도 잊고 살때가 너무 많았어요..알라딘이 아주 어수선 했었네요..행복한 발바닥님은 잘 지내시지요??

외로운 발바닥 2007-01-19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 배꽃님께 정말 감사했답니다. 집사람 심부름(?)으로 음식점에 음식 테이크아웃 하러 갔다가 음식 나올때까지 이 책을 읽었는데 음식 가지고 나오면서 강남역에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을 보고 순간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답니다. 저도 배꽃님처럼 조금이라도 자신을 더 자주 돌아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