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불량국가 - 국제금융기구와 외채에 관한 진실, 세계 밖의 세계
다미앵 미예.에릭 뚜생 지음, 조홍식 옮김 / 창비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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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외채라고 하면 부유한 국가가 개발도상국의 필요와 요청에 따라 빌려준 자금을 개발도상국이 경제성장 실패로 인하여 갚지 못하고 있는 채무하고 생각할 것이다. 돈이 없는 국가는 돈을 빌려야 하고 빌린 돈은 갚아야 한다. 갚지 못한 것은 빌려간 돈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채무자 책임이 아닌가? 하지만 외채 문제는 그와 같이 단순한 논리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도 구조적이고 복잡하며 악랄하다.


외채문제의 발생원인

제2차세계대전 이후 제3세계의 발전가능성이 국제금융질서에 완전히 종속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불평등한 교역조건과 교역조건의 악화로 예속의 굴레가 형성되었다. 즉, ①달러가치의 폭락과 유가의 폭등으로 인해 서방의 대규모 은행들은 갑자기 늘어난 달러를 잔뜩 보유하게 되었고, 선진산업국들은 넘쳐나는 달러를 제3세계국가들에 경쟁적으로 낮은 이자율로 차관을 제공했다. ②한편 미국은 경제위기를 탈출하기 위하여 이자율을 대폭 높이고 그 영향으로 세계적으로 이자율이 급격하게 상승하였다. 그 결과 변동이자율이 적용되었던 차관은 이자율의 상승과 높은 위험부담의 영향으로 하루아침에 돈을 3배나 더 갚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③남부 국가들은 자금을 상환하기 위하여 원자재 수출을 통하여 달러와 같은 경화를 벌어야 했는데, 남부국가들이 경쟁적으로 원자재 수출에 나서면서 원자재 가격은 1980년대 이래 폭락하였다. 소득은 줄어드는데 더 많은 돈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여 남부국가들은 외채 상환을 위하여 다시 외채를 더욱 비싸게 얻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p62-65)


차관의 쓰인 곳

그렇다면 남부국가들에 차관으로 제공된 자금은 어떻게 사용되었는가? 제공된 차관이 남부국가 주민들을 위하여 제대로 사용되었다면 차관도입의 명분이나마 세울 수 있겠지만, 불행히도 전혀 그렇지 않았다. 대부분의 차관은 북부 강대국들의 전략적 동맹국의 독재정권에 의해 도입되었고, 부패한 정권은 차관액의 상당 부분을 횡령했다.(자이레를 30년 동안 지배한 모부투 세세 세코의 사망당시 재산은 80억 달러였고 이는 자이레 외채의 2/3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일가의 재산은 400억 달러로 추산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횡령된 자금은 북부국가의 은행에 다시 예치되었다. 그나마 채무국에 도착한 자금은 현지주민의 일상적 삶을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남부의 천연자원을 수탈하여 세계시장에 좀 더 쉽게 공급하기 위한 것이었다.(p53-57)


악순환의 고리 -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

위와 같이 생성된 외채의 굴레를 고착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이다. 채권국가들은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을 통하여 채무국들에게 엄격한 재정적 규율을 강요하는데 이는 개발도상국의 산업을 발전시키려는 것이기보다는 이들을 세계시장에 통합시키고 개발도상국의 재정적 균형의 회복을 위해 더 많은 수출과 더 적은 지출을 그 주요 내용으로 한다. 이러한 계획들의 지속적인 추진으로 지난 20여 년간 고통 받은 것은 남부의 주민들이다. 지난 20여 년간 개발도상국들 사이에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빈곤이 확산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며 이러한 정책적 실패는 운이 없다거나 이해의 부족에 따른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정책을 의도적으로 적용한 데 따른 것이다.(p94-95)


부의 이전

일반적으로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 차관을 제공하므로 자금은 북부에서 남부로 이동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개발도상국에서 자금이 빠져나가 북부로 흘러들고 있다. 1998년 이후 동남아와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위기 이후 4,400억 달러가 남부에서 북부로 이전되었다. 공공외채에 관하여 본다면 남부국가들이나 국가가 부채를 보장하는 기관들이 북부로 이전시킨 금액은 1995년부터 2001년까지 2,480억 달러에 이른다. 이런 수치에는 남부 지배층의 자본도피, 다국적 기업의 이윤회수, 민영화 과정에서 저렴하게 팔린 남부 기업들이 북부 지배층 소유로 넘어간 것, 남부 국민들이 생산한 원자재 가격의 하락, 브레인의 탈출, 유전적 자원의 파괴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 결과 개도국들은 100의 돈을 빌려 이미 750을 상환하고도 현재 450의 빚을 지고 있는 상태에 처해 있다. (p132-135)


상식의 전환

외채의 악순환을 보면서 다음과 같은 상황이 떠올랐다.

한 가정에 망나니 가장이 있었다. 매일 술을 마시며 가족들을 폭행하고 가족들이 일해서 모아온 돈을 노름으로 날리고 큰 빚을 지고 잠적해 버렸다. 가족들은 돈을 만져보지도 못한 채 하루아침에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었다. 그러자 채권자들은 수시로 집에 찾아와서 사사건건 가정 일에 간섭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는 학업을 당장 그만두고 굶어죽지 않을 정도로만 먹으면서 공장에 가서 돈을 벌어오라고 한다. 그러면서 채권자들은 선심 쓰는 척 돈을 갚을 수 있도록 자기가 돈을 꾸어준다. 자기의 지시에 잘 따르는 것을 조건으로...그리하여 가족들은 죽어라 일을 하면서도 항상 굶주리며 빚은 계속해서 늘어만 갔다...


돈을 빌렸으면 이자까지 쳐서 갚아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며 자본주의의 원칙이다. 이를 원칙으로 여기는 것은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면 채무자들은 돈을 갚지 않을 것이고 채권자들은 돈을 빌려주지 않아 자금의 흐름이 끊길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개도국들은 어떻게든 외채를 상환하는 것이 원칙에 맞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독재자가 빌려 횡령한 돈을 국민 전체가 부담하는 것이 상식에 맞는가? 독재자의 부채 상환을 위하여 수많은 국민들이 굶어 죽고 있는데도 그 국가의 독재자가 빌렸으니 해당국가 국민들이 무조건 갚아야 한다는 것이 상식에 맞는가? 게다가 남부는 이미 원금의 7.5배를 갚지 않았는가.


우리는 1997년의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어찌보면 외채 문제를 몸소 체험했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는 단기간에 외채의 굴레를 벗어난 극히 예외적인 예에 속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우리 경제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IMF가 강요한 조치들로 인하여 양극화 심화, 기업들의 헐값 매각, 빈곤층의 증대 등 수많은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대다수 개도국의 예를 보면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의 정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는 너무도 분명하다. 그들의 정책은 총체적 실패를 가져왔다! 그들의 주장이 허구인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해당 국가가 그들의 정책을 제대로 시행하지 못하고 국민들의 노력이 부족해서 원래 의도된 성과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말만으로 책임을 전가한다.


20여 년간 시행한 정책이 실패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책임을 정책을 시행한 대상에게 전가하는 것이 비상식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최소한의 영양분도 섭취하지 못하여 굶어죽고 있는 나라에서 외채의 상환이라는 명목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과도한 영양섭취에 따른 비만으로 각종질병에 걸리는 나라로 자금을 이전시키는 것이 비상식이다. 독재자를 비호하며 차관을 제공하고 독재자가 횡령한 자금을 예치하는 금고를 제공한 자들이 독재의 피해자인 국민들에게 독재자에 대한 차관의 상환을 요구하는 것이 비상식이다. 그러한 부채가 개도국들의 외채라면, 그것은 전액 탕감하는 것이 상식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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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1-02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위 정치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상식과 비상식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정말 궁금하네요.

외로운 발바닥 2007-01-03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은 무엇이 상식이고 무엇이 비상식인지 헷갈리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