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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독재의 영웅 만들기
권형진, 이종훈 엮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8월
평점 :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위인전을 읽는 것이 무척 장려됐었다. 나를 포함한 수많은 어린이들이 이순신 장군이나 그 밖의 많은 위인들의 전기를 읽으며 나도 그분들처럼 국가와 민족을 위해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다짐을 수없이 했을 것이다. 어린이가 훌륭한 사람들의 삶을 읽으며 이를 모범으로 삼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읽는 위인전, 또는 우리 생활이나 역사 속에서의 위인이나 영웅이 우리에게 보여지는 모습 그대로의 인물이었냐 하는 것이다. 나아가 그 인물을 어느 누군가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각색하여 우리에게 제시한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문제의식을 화두로 쓰여졌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에서는 대중 민주주의가 발달한다. 대중의 지지가 정치권력 획득의 기반이 됨에 따라 정치권력은 대중의 지지를 얻어 권력을 획득하고 나아가 권력을 획득한 이후에는 대중을 권력이 지배하는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상으로 만들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영웅’을 만들어낸다. 영웅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책에는 다양한 사회에서의 영웅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등장한 시대나 장소는 모두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체주의적인 독재사회에서 정치권력이 의도적으로 만들어내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영웅의 탄생과 관련된 사실관계가 전부 조작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영웅들 중에는 실제로 탁월한 도덕성이나 성실성을 바탕으로 범인과 구별되는 ‘영웅성’을 가진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부인할 수 없는 점은 어떤 영웅도 정치권력의 의도적 편집과 각색이 없었다면 대중들의 삶의 일부가 될 정도의 영웅의 위치에는 오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논문을 엮은 것이기 때문에 역사적 고증이 주 내용을 차지한다. 그래서 특히 익숙하지 않은 독일 나치시대, 소련․중국․북한(우리가 북한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놀랄 정도로 북한의 무지에 익숙해져버린 것 같다)등 공산주의사회, 프랑스의 비시정권, 스페인의 프랑코 체제 - 사실 익숙했던 것은 우리나라의 영웅, 이승복과 이순신 장군 밖에는 없었다. ;; - 에서의 영웅 이야기는 역사적 배경지식의 부족으로 인하여 이해와 흥미가 좀 떨어졌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프랑스 비시정권이 괴뢰정권이었다는 단순한 통념과 달리 초기에는 프랑스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었다는 점이나 현대에도 정치적 권력과 종교가 ‘영웅’이라는 매개체로 융합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은 무척 신선하게 느껴졌다.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독일의 비스마르크가 신화화되고 바이마르 시대를 거쳐 히틀러의 나치정권이 집권할 때까지 대중독재의 영웅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 반작용으로 영웅이 대중들의 삶을 어떻게 규율했는지도 엿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엮은이의 말에 이런 말이 나온다. ‘오늘날 대중의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은 타의적이고 동시에 자의적인 의지들에 의해 혼합되고 있다.’ 이 책에 나온 대중독재의 영웅들은 그런 면에서 정치권력의 의지에 의하여 대중이 소비하도록 만들어졌고, 대중이 그러한 영웅들을 소비하면서 대중의 자의적인 의지가 가미되어 대중의 사적공간을 지배하는 경지에 이르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대중은 언제나 영웅을 원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영웅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으면서 자라났고 지금도 우리 주위에는 많은 영웅들이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매스미디어 시대인 요즈음 어찌 보면 어느 때보다도 많은 영웅들- 연예인들이나 스포츠 스타들, 정치적 지도자들, 스타 과학자(-0-;;), 그리고 수많은 시민 영웅들 -이 어느 때보다도 빠른 속도로 명멸을 거듭하고 있고 그들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무척 크다고 할 수 있다.
반드시 모든 영웅들을 비뚤어진 시각으로 볼 것까지는 없다. 하지만, 때로는 불순한 목적을 가진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영웅을 만들어 내고, 그렇게 만들어진 영웅이 우리의 삶을 일정부분 규율할 수 있음은 인식하고 있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