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도난마 한국경제 - 장하준.정승일의 격정대화
장하준 외 지음, 이종태 엮음 / 부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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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부는 개혁을 부르짖는데 보수진영은 이를 반시장적이라 비판하고 노동계와 진보진영은 현정부가 이전 정부와 다를 바 없다고 비판한다. 정부는 서민을 위한 개혁에 힘쓰고 있다고 하는데 서민들의 경제생활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IMF 체제를 겪으면서 정부는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를 도입하면서 경제의 선진화를 열심히 추구해 왔는데도 우리 경제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현재 우리사회에는 이렇듯 서로 모순적인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와 같은 상황들의 공통점은 우리 경제가 나아가야할 방향이라고 믿는 쪽으로 열심히 해왔는데 상황은 점점 나빠진다는 것이다. 과연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영미식의 선진경제를 내재화하려는 노력이 부족하여 자유주의적 개혁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가?


그 반대라는 것이 장하준 교수와 정승일 교수의 지적이다. 우리나라의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 것은 자유주의적 개혁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고, 오히려 너무 충실히 개혁을 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당연한 결과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올바른 방향이라고 믿고 추진해온 경제정책들이 근본적으로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언가 정부가 열심히 경제정책을 시행해 왔고, 그것이 전세계적인 경향에 부합하는 것인데도 왜 결과가 좋지 않은가라는 막연한 의문을 품고 있던 나로서는 이 책을 읽는 순간 시야를 가리고 있던 안개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 우리는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굳게 믿고서...


신자유주의는 저성장주의다.

경제정책을 입안하는 사람들이 우리경제가 불가피하게 따라가야 할 길로 여기는 신자유주의. 신자유주의는 정부의 개입을 거부하는 극단적인 시장우선주의이고 대표적으로 정부통제를 벗어나게 된 것이 금융자본이다. 주주이익의 극대화라는 모토로 대변되는 금융자본은 투자와 이윤회수라는 자본의 본질상 기업의 장기적 성장보다는 단기적 이윤창출에 더욱 주안점을 두게 된다. 따라서 금융자유화의 영향력 하에 있는 기업들은 위험을 감수하면서 장기적 성장을 꾀하는 투자를 하기보다는 안정적이지만 단기적으로 수익성이 확실한 투자를 하게 되고 결국 이는 만성적인 저성장체제를 가져온다. 아직 선진국 대열에 올라서지 못한 우리나라이기에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휩쓸려서는 안되는 것이다.(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된 상태에서 신자유주의에 동조하는 것에 대한 가치판단은 유보한다 하더라도)


주주자본주의≠경제민주화

일반적으로 소수주주운동은 재벌총수의 지배주주의 권리남용으로 인한 폐해를 바로잡는 것으로서 경제민주화에 기여하는 운동으로 이해된다. 또한, 외국자본이 국내 대기업들의 지분을 인수하여 경영합리화 등의 요구를 하면 우리는 외국자본에 대한 경계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외국자본으로 인해 대기업의 경영이 합리화되고 주주의 이익이 충실하게 보장되어 그로 인하여 기업의 경쟁력이 강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부 사실인 측면도 있다. 그렇지만 소수주주운동이나 외국자본의 경영간섭 모두 본질적으로는 주주 즉 투자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일 뿐 결코 경제 민주화나 기업의 경쟁력 강화와는 관련이 없다. 주주이익의 극대화는 지금 우리 경제상황에서 볼 수 있듯이 경제의 저성장을 가져오고 저성장의 최대 피해자는 결국 서민과 노동자들이기 때문이다.


박정희의 개발독재를 어떻게 볼 것인가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리지만 적어도 박정희 시대에 우리나라가 세계 역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을 이루어 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박정희 시대에 그런 경제성장이 가능했던 것은 정부가 시장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으로 단기간에 국가경쟁력을 극대화시켰기 때문이다. 즉, 자생적 산업발달의 토대가 부실했던 상황에서 정부가 주도하여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했고 그 덕분에 우리나라가 가봉 같은 나라에서 지금의 모습을 갖출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시 누가 권력을 잡았어도 그와 같은 경제성장을 이루어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다른 정권도 박정희와 같이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경제정책을 추진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장하준 교수는 민족주의 진영이 정권을 잡았어도 시장에 대한 통제를 했을 것이라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과연 어느 정도의 독재 없이(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희의 반민주적 독재는 어떤 것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정부개입적인 경제정책을 지속적으로 추구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의문도 든다. 결론적으로 박정희가 반드시 영웅적이어서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루어낸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으나(정승일 교수는 박정희가 영웅이라기보다는 단지 시대정신을 대변한 것이라고 한다) 박정희가 착취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획기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어낸 것만큼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박정희가 남기고 간 잔재

근현대사를 조금 읽다보면 박정희를 제외하고는 근현대사를 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가 우리나라 현대사에 미친 영향은 절대적이다. 독재와 잔인한 인권탄압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가 남기고 간 가장 큰 부정적 유산 중의 하나는 바로 무조건 박정희와 관련된 것에 대하여 반감을 갖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다는 사실이다. 이제 시대가 변하여 박정희에게 탄압받던 사람들이 정권을 잡기에 이르렀으나 그들은 박정희와 관련된 것에 대하여는 무조건적인 혐오감과 거부감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박정희 시대의 눈부신 경제발전도 인정하기 싫어한다. 그러한 맹목적인 반감과 외국자본의 부추김의 영향으로 IMF를 거치면서 IMF의 원인이 우리 경제의 구조와 체질을 왜곡시킨 박정희 시대의 개발독재에서 기인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되었고 그 결과 무조건 박정희 시대의 경제정책과 반대되는 경제정책을 추진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놀라운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시장이 제멋대로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인데 박정희에 대한 맹목적 반감으로 그와 반대되는, 시장지상주의적인 경제정책이 역설적으로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옳지 않은 방향이라는 징조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음에도...


재벌을 바라보는 시각

장하준 교수와 정승일 교수는 우리가 재벌을 바라보는 시각도 무조건적인 재벌에 대한 반감으로 왜곡되어 있다고 진단한다. 재벌총수의 공금횡령, 탈세로 인한 2세로의 경영승계, 부도덕한 사생활 등이 사회적으로 비판받고 그로 인한 폐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겠지만 재벌을 깨부순다고 노동자나 서민이 잘사는 세상이 도래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선진경영기법을 도입하여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켜 우리경제에 순기능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했던 외국자본의 국내진출이 기대와는 달리 과도한 배당과 주가부양을 위한 자사주 소각 등으로 인한 기업의 장기적 성장동력을 저해와 과도한 구조조정으로 인한 노동시장의 불안정을 낳고 있다는 사실은 이를 반증한다. 결국 재벌을 때려서 이익을 보는 것은 노동자가 아니라 외국자본을 포함한 금융자본이라는 것이다. 재벌의 항상적 과잉투자에 대한 비판에 대하여 재벌의 투자도 야구의 타율과 같은 개념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도 인상적이었다.


대안은 무엇인가

우리 경제를 둘러싼 여러 문제점들에 대한 대책으로 저자들은 북유럽식 사회적 대타협을 제시한다. 조금은 추상적이고 과연 우리사회에서 그와 같은 극적인 대타협이 가능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미국식 시장주의가 우리에게 최선의 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 국가의 시장에 대한 정책적 개입을 반드시 박정희 시대의 낡은 유산으로 치부하여 거부할 것은 아니라는 점 등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는 것만으로도 우리 경제가 다시 건전한 성장을 할 수 있기 위한 큰 발걸음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별다섯개에 왕별하나를 더 주고픈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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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덫
장하준 지음 / 부키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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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덫’은 장하준 교수가 1999년부터 2004년까지 신문과 잡지 등에 쓴 컬럼을 모아놓은 책이다. 그래서 각각의 글이 무척 짧아 내용이 깊게 들어가지 못하고 같은 내용이 중복되는 부분이 많기는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니 우리가 우리 경제 전반에 대하여 막연히 가지고 있는 생각이 얼마나 편향되고 맹목적인 것이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장하준 교수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핵심적인 내용은 우리가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있는 영미식 자유경제체제(또는 자유경제체제로 포장된 신자유주의)가 사실은 우리경제가 요즘 겪고 있는 많은 구조적 문제점들의 근본 원인이며 우리경제가 따라야할 만병통치약적인 제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영국과 미국도 선진국을 따라잡아야 하는 위치에 있을 때에는 강력한 보호무역과 유치산업보호정책을 펼치다가 자국의 경쟁력이 제일 강해진 다음에야 자유무역을 주장한 점이나, 실제 개발도상국들이 정부가 적극적으로 경제에 개입했을 때가 자유무역체제를 도입한 이후보다 경제 성장률이 훨씬 높았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영미가 주장하는 신자유주의는 다같이 잘살자는 것이 아니라 잘사는 자만 더 잘살겠다는 체제이고 아직 선진국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우리가 받아들일 제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물론 우리가 우리보다 경쟁력이 약한 후진국들에게 그러한 체제를 강요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밖에도 이 책이 담고 있는 시각은 장하준 교수가 말하듯이 우리의 기존 통념을 근본적으로 뒤엎는 것들이 많다.


예컨대, 정부주도 경제는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계획경제체제여서 현시대에는 적합하지 않으며 이제는 시장의 자율적인 기능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고 경제상황이 변했어도 정부의 산업정책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는 주장이나,(p71~)


국영기업의 민영화가 무조건적인 절대선은 아니며 아직도 성공적으로 국영기업체제를 실현하고 있는 국가들도 있고 섣부른 민영화는 부작용이 더 크다는 주장,(p91)


공적자금으로 살린 국내기업들을 공적자금을 회수하기 위하여 서둘러 해외자본에게 매각하는 것은 정부의 직무유기라는 주장(p95),


한국의 재벌체제가 여러 부작용도 있지만 반드시 타파해야만 하는 비효율, 무능력한 체제만은 아니라는 주장(p99)


중국의 성장 앞에서 우리나라는 제조업보다는 서비스업에 치중해야 한다는 주장의 허구성을 지적하거나(p181)

 

주주이익을 최우선시하는 것이 가장 선진적인 제도는 아니라는 주장(p189) 등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시각이나 소위 보수나 진보에서 주장하는 내용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적어도 경제 전문가가 아닌 우리 대부분이 너무 막연하고 단순한 논리에 기초하여(예컨대 재벌의 부도덕한 측면만을 보고 재벌체제는 무조건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이나 공기업은 이윤추구의 동기가 약하고 비효율적이어서 민영화를 하는 것이 효율적이다는 생각 등) 우리 경제를 둘러싼 많은 문제들에 대하여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 자문을 하게 된다.(불행하게도 우리 경제정책을 이끄는 소위 시장제일주의자들은 어떤 면에서는 지식에 기초한 더욱 견고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장하준 교수가 수년 전부터 일관적으로 이야기하던 것들이 그 수년 동안 그대로 현실화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면에서 2003년에 쓴 FTA에 관한 컬럼(경쟁력이 차이가 나는 국가간 FTA의 체결은 장기적으로 경쟁력이 약한 국가에 도움이 되지 않고, 미국과의 투자협정체결은 미국의 국익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우리나라에는 반드시 이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내용 -p38~, p147~)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아직도 늦지는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나라의 경제정책을 추진하는 소위 개혁론자, 시장주의자들이 현실을 직시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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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의 기술 (dts 2disc) : 아웃케이스
신한솔 감독, 백윤식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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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나쁜 놈들을 멋진 싸움실력으로 응징하는 상상을 해본 일이 있을 것이다. 크고 작은 사회적 불의를 보고도 힘(물리적인 힘)이 없어 주저하거나 부당한 일을 당해도 싸움을 못하여 계속 당하고만 있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싸움의 기술은 바로 그러한 내면의 욕구를 대리만족시켜주는 영화가 아닌가 싶다.


항상 학교에서도 맞고만 다니는 병태는 계속 맞는 것에 이골이 나서 싸움을 배우고자 한다. 그러던 중 독서실에서 싸움의 고수 오판수를 만나게 되어 그에게서 싸움의 기술을 전수받고 자신을 괴롭히던 나쁜 넘들을 통쾌하게 박살내준다는 것이 이 영화의 줄거리다.


줄거리는 뻔하다. 하지만 강자 앞에서는 약하고 약자 앞에서는 군림하려 하는 나쁜 넘들이 싸움의 고수로 변신한 병태와 초절정 싸움 고수인 오판수 앞에서 통쾌하게 얻어 터지며 비겁함을 보이는 모습 - 특히 병태를 괴롭히던 비린내가 빠코를 박살낸 병태를 의자로 찍으려다 쫄아서 의자를 놓고 엉거주춤하게 앉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 은 영화의 줄거리를 알고 본다고 해도 충분히 유쾌하다. 더불어 무언가 엇박자 같은 백윤식의 연기도 나름대로 인상적이다.

 


자신을 항상 괴롭히던 빠코와 드디어 맞짱을 뜨는 병태

 

병태에게 쫄아버린 비린내...이 장면이 유난히 통쾌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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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6-08-07 0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래도 저래도 참고 있다가
가끔 힘이 없어서 참아주는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오면 정말 통쾌해요.
이 영화도 보고 싶네요..

외로운 발바닥 2006-08-07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에서는 힘이 없다가 힘이 생겨서 혼내주는 설정이 많죠. 평소에 특별히 당하고 사는 것도 아닌데 그런 장면에 유난히 통쾌해하는 것 보면 저도 은근히 쌓인 것이 있었나봐요. ^^ 조금 억지스런 장면도 있지만 이 영화를 보시면 통쾌함만은 확실히 느끼실 겁니다. ~
 
분단시대의 피고들 범우 한국 문예 신서 19
한승헌 / 범우사 / 199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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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인권변호사 한승헌 변호사의 환갑을 기념하여 한승헌 변호사가 변론을 담당한 주요 사건의 피고인들이 당시 사건을 되새기며 쓴 글을 모아놓은 책이다. 한승헌 변호사가 담당한 사건이 주로 공안사건이었기 때문에 이 책에 원고를 제출한 사람들은 모두 공안사건의 피고인들이다. 그렇기에 이 책의 제목 ‘분단시대의 피고들’은 정말로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기 전부터 한승헌 변호사에 대하여 잘 알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권문제나 반독재투쟁과 관련하여 이분의 성함은 몇 번 들어보았던 것 같다.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과거 우리사회에서 반정부투쟁(민주화 운동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을 한 사람들에 대하여 정권이 어떤 식으로 탄압을 했으며 그러한 탄압에 법조계가 어떤 식으로 대응해 왔는가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과거 독재정권 하에서 공안사건의 피고인으로 형사절차를 온몸으로 체험한 사람들이 직접 당시 상황을 기억하며 쓴 책이다. 따라서 기억이 일부 왜곡되었거나 서술이 주관적인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이 책에 실린 모든 글에 내가 공감한 것도 아니었다(어떤 글은 자신의 민주화운동 치적만을 과시한 듯한 느낌을 주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다르다는 말을 실감하게 한 경우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 책에 원고를 낸 사람들이 직접 겪은 공안사건들이 지금은 대부분 역사적으로 당시의 법적인 단죄와는 정반대의 입장에서 재조명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고, 이 책에 실린 글을 쓴 사람들이 당시에 가졌던 민주화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당시에 겪었을 상상하기 힘든 고초를 고려하면 그 정도의 흠결을 트집 잡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책을 읽다 보면 웬만한 공안사건의 피고인들은 죄다 등장한다. 그만큼 한변호사가 민주화 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다는 반증도 되리라.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 가장 큰 인상을 남긴 것은 과거의 독재정권이 얼마나 무자비하고 비열한 방법으로 국민들을 억압했으며 검사, 판사로 대변되는 법조계가 얼마나 충실하게 권력의 주구(약간은 과격한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노릇을 했는가 하는 것이었다. 대학에서 배운 온갖 법원칙들을 주장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나 인권보호가 기본적 책무라는 검사가 공안당국이 짜놓은 틀에 맞추어 그것을 기소하여 유죄판결을 받는 것에만 온힘을 쏟는 모습이라든지(책 중간 중간에 실린 국가보안법위반 사건의 공소사실을 보면서 씁슬한 미소를 띠게 되는 것은 왜인지...) 공안당국(사실 여기에는 공안검사도 포함된다고 볼 수도 있겠다)의 논리를 그대로 수용하는 판사의 모습을 보면서 법조계의 어두운 과거를 생생하게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면을 떠올리면 지금 현 법조계의 일부 폐습도 이해할 수 있었다(법조계의 인적 구성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내가 당시 공안사건의 검사나 판사가 되었다면 과연 공정한 판단과 그에 따른 소신있는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평소에 투철한 신념과 끊임없는 수련이 없이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 나온 피고인들과 한승헌 변호사가 더욱 존경스럽게 느껴진다. 내 자신이 그러한 상황에 있지 않음에 감사하면서 그러한 상황이 닥쳐올 때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평소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이 나온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동안 정권도 바뀌고 해서 이 책에 피고인으로 나온 사람들이 이제는 여권에 있는 사람도 있고 야당의 지도자로 있는 사람도 있다. 또한 이 책에 나온 피고인들과 공안검사로 악연을 맺은 사람들 중에도 이한동, 최연희 등 낯익은 이름이 꽤 많다. 과거 정권시절 공안사건의 피고인과 공안검사의 위치에 있던 사람들, 그리고 심지어 그 주요한 원인을 제공한 사람의 딸(-.-;;)의 현 위치와 그들의 활동을 보면 그래도 우리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는 가고 있다는 생각과 함께 아직도 어두운 과거의 그림자를 떨쳐 내려면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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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식민지, 한미 FTA
이해영 지음 / 메이데이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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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참 한미 FTA가 화제가 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한미 FTA를 통하여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한단계 도약할 것이라고 선전하면서 반드시 한미 FTA를 체결해야한다고 주장하고 한편에서는 한미 FTA가 양극화를 심화시키며 궁극적으로 우리경제의 대미 종속화를 가져올 것이라며 한미 FTA 저지를 위한 결사항전도 불사할 것이라고 하고 있다. 한미 FTA의 찬반 양측 모두 한미 FTA가 향후 우리경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점은 부인하지 않는다. 국가의 명운이 걸린 중대한 문제에 관하여 이와 같이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두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는 사실은 만약 잘못된 방향으로 우리나라가 나아갈 경우 그 피해가 측정하기 어려울 정도이기 때문에 많은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한미 FTA를 찬성하는 쪽 주장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전세계적으로 경제개방이 대세이며 미국이 전세계의 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먼저 미국과 한미 FTA를 체결하여 국가경제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한미 FTA를 통하여 미국의 선진적인 금융제도, 서비스 산업의 노하우를 우리나라가 접하여 해당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꾀할 수 있고, 세계 경제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미국시장에서 우리나라가 다른 국가들에 비하여 선도적인 위치에서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장밋빛 청사진을 본다면 한미 FTA가 우리경제의 도약을 위하여 필수불가결한 것처럼 느껴진다. 거기다가 한미 FTA 협상이 결렬되면 한미동맹에 심각한 균열이 생겨 우리나라에 큰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는 맹목적 친미주의자들의 은근한 부추김도 일반 국민들에게 한미 FTA는 어쨌든 꼭 체결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한미 FTA는 절대로 체결해서는 안된다는, 혹은 적어도 무척 신중하게 판단하여 우리나라의 이익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도록 철저한 검증을 거친 뒤에 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무엇보다 정부의 장밋빛 청사진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이루어진 바 없고(선진문물을 접하면 우리도 선진화된다는 식의 막연한 낙관론이 대부분이다), 정부의 주장과 반대되는 비관적 전망을 밝히는 연구도 많은 지금 상황에서 한미 FTA 체결을 현정부 임기내 반드시 달성해야 할 과제로 밀어붙이는 것은 우리나라의 운명을 걸고 도박을 하는 것과 같은 행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분명한 것은 미국은 오래전부터 철저한 계획을 세워 자국에 이익이 되리라는 판단하에 한미 FTA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에 반하여 우리나라는 철저한 준비없이 미국에 이끌려 한미 FTA 체결만을 위하여 협상을 서두른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백번 양보하여도 우리나라가 세계 최강 미국(최근들어 안 그런 척도 하지 않고 노골적으로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과의 협상에서 미국의 양보를 이끌어내 우리나라에 유리한 결과를 가져올 것 같지도 않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책에서 지적하듯이 이행의무강제금지(p150)와 투자분쟁해결절차(p157) 등을 통하여 정부가 공공복리를 위하여 우리 경제에 대하여 법적 규율을 하는 것이 한미 FTA로 인하여 무력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저자가 지적하듯이 위헌성의 문제도 있지만 일단 한미 FTA가 체결된 이후에는 미국의 투자자가 우리정부가 한미 FTA에 위반되는 부당한 규제를 하였다는 이유로 제3의 중재기관에 제소하여 우리나라가 천문학적 배상금을 물게 되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투자자의 이익보존을 위하여 정부가 국내법적 규율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는,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미국의 투자자에게 우리나라 주권의 상당부분을 좌지우지할 수 있도록 만드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그런데 이 점에 관하여 우리 정부는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는다...)


한미 FTA는 궁극적으로 투자자의 권리장전의 성격을 지니는 것 같다. 양국간에 자유로운 투자가 이루어진다면 양국 경제 모두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대전제하에 원활한 투자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투자자가 예측하지 못한 손해를 입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데 그 핵심이 있기 때문이다. 한미 FTA 체결로 일부 우리 경제에 득이 되는 면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미 FTA로 이익을 보는 집단이 우리나라에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또한,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경제에서 국가간 FTA체결을 우리나라만 언제까지나 거부하고 있을 수 없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한미 FTA를 체결하는 것이 우리경제에 도움이 되는지, 또한 우리나라의 더 많은 사람들의 삶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오는지에 관하여 정말로 철저하고 완전한 검증을 거친 후에야 한미 FTA 체결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과 같이 성급하게 한미 FTA 체결을 추진하는 것은 만에 하나 결과가 좋지 않을 때의 피해가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책에 관하여) 한미 FTA 체결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쓰여진 책이라서 한미 FTA의 긍정적 효과에 대한 인정이 거의 없는 것과 반미주의적 시각이 아주 조금 드러나는 부분이 있는 점이 약간 설득력을 약화시키는 면이 없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 한미 FTA의 문제점과 핵심 쟁점에 관하여 개관하는 데 무척 잘 쓰여진 책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통계자료와 문서자료가 책의 신뢰를 높여준다. 무엇보다도 한미 FTA 관련 시사토론에 체결반대쪽 패널로 저자가 빠지지 않는 점을 보면, 저자가 한미 FTA 체결의 반대쪽 입장을 대변하는 최고 권위자 중의 한명임은 의심치 않아도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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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은하단과 행성 2006-07-21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미FTA의 체결이 한국내 소수의 정치경제적 강자들에겐 이득이 될 테니 그 사람들이야 체결을 원하겠지만, 다수의 서민들에겐 오히려 더 힘든 삶이 기다리고 있으니 반대하는 것이 현명해 보입니다. 다수결주의가 민주주의의 전부는 아니지만 숫적으로 보면 다수의 이익에 반대되는 이걸 저지하는 것 여부가 한국민주주의의 수준을 가늠할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외로운 발바닥 2006-07-22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분명히 한미FTA 체결로 이익을 보는 국내 집단도 있겠지만 대다수 국민의 삶이 전보다 어려워질 것은 거의 분명해 보이네요. 무한경쟁체제에서 우리나라만 뒤쳐질 수는 없겠지만, 미국이 짜놓은 그물 속으로 전세계가 빠져들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 같아 아쉽습니다.

우기부기 2006-07-24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다 봤어? 나도 빌려주삼..

외로운 발바닥 2006-08-06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있남? 잘 쓴 책이데이~

무히끄 2007-07-24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ㅎㅎ 댓글이 재미나네요. 저도 한마디 하고 갑니다. 메이데이에서 만들었데이~

외로운 발바닥 2007-07-27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무힉님. 집사람과 사투리로 댓글에 남긴 것인데 재미있게 봐 주셨다니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