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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도난마 한국경제 - 장하준.정승일의 격정대화
장하준 외 지음, 이종태 엮음 / 부키 / 2005년 7월
평점 :
현정부는 개혁을 부르짖는데 보수진영은 이를 반시장적이라 비판하고 노동계와 진보진영은 현정부가 이전 정부와 다를 바 없다고 비판한다. 정부는 서민을 위한 개혁에 힘쓰고 있다고 하는데 서민들의 경제생활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IMF 체제를 겪으면서 정부는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를 도입하면서 경제의 선진화를 열심히 추구해 왔는데도 우리 경제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현재 우리사회에는 이렇듯 서로 모순적인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와 같은 상황들의 공통점은 우리 경제가 나아가야할 방향이라고 믿는 쪽으로 열심히 해왔는데 상황은 점점 나빠진다는 것이다. 과연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영미식의 선진경제를 내재화하려는 노력이 부족하여 자유주의적 개혁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가?
그 반대라는 것이 장하준 교수와 정승일 교수의 지적이다. 우리나라의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 것은 자유주의적 개혁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고, 오히려 너무 충실히 개혁을 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당연한 결과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올바른 방향이라고 믿고 추진해온 경제정책들이 근본적으로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언가 정부가 열심히 경제정책을 시행해 왔고, 그것이 전세계적인 경향에 부합하는 것인데도 왜 결과가 좋지 않은가라는 막연한 의문을 품고 있던 나로서는 이 책을 읽는 순간 시야를 가리고 있던 안개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 우리는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굳게 믿고서...
신자유주의는 저성장주의다.
경제정책을 입안하는 사람들이 우리경제가 불가피하게 따라가야 할 길로 여기는 신자유주의. 신자유주의는 정부의 개입을 거부하는 극단적인 시장우선주의이고 대표적으로 정부통제를 벗어나게 된 것이 금융자본이다. 주주이익의 극대화라는 모토로 대변되는 금융자본은 투자와 이윤회수라는 자본의 본질상 기업의 장기적 성장보다는 단기적 이윤창출에 더욱 주안점을 두게 된다. 따라서 금융자유화의 영향력 하에 있는 기업들은 위험을 감수하면서 장기적 성장을 꾀하는 투자를 하기보다는 안정적이지만 단기적으로 수익성이 확실한 투자를 하게 되고 결국 이는 만성적인 저성장체제를 가져온다. 아직 선진국 대열에 올라서지 못한 우리나라이기에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휩쓸려서는 안되는 것이다.(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된 상태에서 신자유주의에 동조하는 것에 대한 가치판단은 유보한다 하더라도)
주주자본주의≠경제민주화
일반적으로 소수주주운동은 재벌총수의 지배주주의 권리남용으로 인한 폐해를 바로잡는 것으로서 경제민주화에 기여하는 운동으로 이해된다. 또한, 외국자본이 국내 대기업들의 지분을 인수하여 경영합리화 등의 요구를 하면 우리는 외국자본에 대한 경계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외국자본으로 인해 대기업의 경영이 합리화되고 주주의 이익이 충실하게 보장되어 그로 인하여 기업의 경쟁력이 강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부 사실인 측면도 있다. 그렇지만 소수주주운동이나 외국자본의 경영간섭 모두 본질적으로는 주주 즉 투자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일 뿐 결코 경제 민주화나 기업의 경쟁력 강화와는 관련이 없다. 주주이익의 극대화는 지금 우리 경제상황에서 볼 수 있듯이 경제의 저성장을 가져오고 저성장의 최대 피해자는 결국 서민과 노동자들이기 때문이다.
박정희의 개발독재를 어떻게 볼 것인가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리지만 적어도 박정희 시대에 우리나라가 세계 역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을 이루어 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박정희 시대에 그런 경제성장이 가능했던 것은 정부가 시장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으로 단기간에 국가경쟁력을 극대화시켰기 때문이다. 즉, 자생적 산업발달의 토대가 부실했던 상황에서 정부가 주도하여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했고 그 덕분에 우리나라가 가봉 같은 나라에서 지금의 모습을 갖출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시 누가 권력을 잡았어도 그와 같은 경제성장을 이루어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다른 정권도 박정희와 같이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경제정책을 추진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장하준 교수는 민족주의 진영이 정권을 잡았어도 시장에 대한 통제를 했을 것이라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과연 어느 정도의 독재 없이(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희의 반민주적 독재는 어떤 것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정부개입적인 경제정책을 지속적으로 추구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의문도 든다. 결론적으로 박정희가 반드시 영웅적이어서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루어낸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으나(정승일 교수는 박정희가 영웅이라기보다는 단지 시대정신을 대변한 것이라고 한다) 박정희가 착취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획기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어낸 것만큼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박정희가 남기고 간 잔재
근현대사를 조금 읽다보면 박정희를 제외하고는 근현대사를 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가 우리나라 현대사에 미친 영향은 절대적이다. 독재와 잔인한 인권탄압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가 남기고 간 가장 큰 부정적 유산 중의 하나는 바로 무조건 박정희와 관련된 것에 대하여 반감을 갖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다는 사실이다. 이제 시대가 변하여 박정희에게 탄압받던 사람들이 정권을 잡기에 이르렀으나 그들은 박정희와 관련된 것에 대하여는 무조건적인 혐오감과 거부감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박정희 시대의 눈부신 경제발전도 인정하기 싫어한다. 그러한 맹목적인 반감과 외국자본의 부추김의 영향으로 IMF를 거치면서 IMF의 원인이 우리 경제의 구조와 체질을 왜곡시킨 박정희 시대의 개발독재에서 기인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되었고 그 결과 무조건 박정희 시대의 경제정책과 반대되는 경제정책을 추진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놀라운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시장이 제멋대로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인데 박정희에 대한 맹목적 반감으로 그와 반대되는, 시장지상주의적인 경제정책이 역설적으로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옳지 않은 방향이라는 징조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음에도...
재벌을 바라보는 시각
장하준 교수와 정승일 교수는 우리가 재벌을 바라보는 시각도 무조건적인 재벌에 대한 반감으로 왜곡되어 있다고 진단한다. 재벌총수의 공금횡령, 탈세로 인한 2세로의 경영승계, 부도덕한 사생활 등이 사회적으로 비판받고 그로 인한 폐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겠지만 재벌을 깨부순다고 노동자나 서민이 잘사는 세상이 도래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선진경영기법을 도입하여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켜 우리경제에 순기능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했던 외국자본의 국내진출이 기대와는 달리 과도한 배당과 주가부양을 위한 자사주 소각 등으로 인한 기업의 장기적 성장동력을 저해와 과도한 구조조정으로 인한 노동시장의 불안정을 낳고 있다는 사실은 이를 반증한다. 결국 재벌을 때려서 이익을 보는 것은 노동자가 아니라 외국자본을 포함한 금융자본이라는 것이다. 재벌의 항상적 과잉투자에 대한 비판에 대하여 재벌의 투자도 야구의 타율과 같은 개념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도 인상적이었다.
대안은 무엇인가
우리 경제를 둘러싼 여러 문제점들에 대한 대책으로 저자들은 북유럽식 사회적 대타협을 제시한다. 조금은 추상적이고 과연 우리사회에서 그와 같은 극적인 대타협이 가능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미국식 시장주의가 우리에게 최선의 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 국가의 시장에 대한 정책적 개입을 반드시 박정희 시대의 낡은 유산으로 치부하여 거부할 것은 아니라는 점 등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는 것만으로도 우리 경제가 다시 건전한 성장을 할 수 있기 위한 큰 발걸음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별다섯개에 왕별하나를 더 주고픈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