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참척慘慽을 당하고 가장 힘들었던 일은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는 원망을 도저히 지울 수 없는 거였다. 원망스럽기만 한 게 아니라 부끄러움까지 겹쳤다. 저 여자는 무슨 죄를 많이 지었기에 저런 일을 당했을까? 수군거리면서 손가락질들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세상이 나만 보고 흉보는 것 같아 두문불출하고 있어도 하늘이 부끄럽고 땅이 부끄러웠다. 슬픔보다 더 견딜 수 없는 게 원망과 치욕감이었다. 하늘도 부끄럽고 땅도 부끄러워 이 세상에서는 도저히 피할 곳이 없으니 차라리 죽고 싶었다.  

그때 만난 어떤 수녀님이 이상하다는 듯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당신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래, 내가 뭐관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을 나에게만은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된다고 여긴 것일까. 그거야말로 터무니없는 교만이 아니었을까.

 

 

 

 

 

 

 

 

 

 

 

 

 

 

https://blog.naver.com/lotr12/222154400838

(박완서가 남편, 아들과 찍은 사진을 볼 수 있음)

 

*

 

크고 작은 불행은 겪으면 누구나 던지게 되는 질문. 왜 하필 나야?! - 왜 너는 안 되는데? Why me? Why not? - 이렇다고 조 바이든 관련 글들에서 보이는 문구. 박완서는 큰 아픔을 겪은 사람(여자/엄마/작가)답게 그 이야기를 여기 저기에 많이 써놓았다. 아들 졸업 사진, 남편 아들과의 식사 등까지 남아 있고 (짐작컨대) TV 방송까지 나올 정도였으니, 정말이지 인기 작가였나 보다. 아마 혹자는 (정말이지 못됐지만 이 역시 우리 안의 본능일 터!) '샘통', 이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으리라.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더 큰 문학을 이룩한 것은 역시, 그녀의 힘. 여러 사람(+여자+엄마+작가) 기죽인다^^;

 

위의 인용문 중 특히 "저 여자는..."이라는, 가상의 타자들의 수군거림. 아직도 비틀거리는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감히 비유하자면, '니들도 한 번 당해봐라~'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다른 한편, 어떤 불행에 처한 사람을 보았을 때 '무슨 죄'를 지었겠지, 라고 생각하면, 우리 마음이 편해지는 측면이 있다. 그 '무슨 죄'를 짓지 않았더라면 그 불행은 없었을 테니까. 그래서 자꾸 원인을 찾으려는(흉을 보려는) 것이다. 가령, 노산이 아니었다면 다운증후군은 없고, 흡연 안 했으면 기형아 출산도 없고, 운전대를 안 잡았으면 교통 사고도 없고, 밤에 술자리에 안 갔으면 성추행도 안 당했고 등등. 하지만 대략 마흔(사람마다 다르겠지만)은 그런 나이인 것 같다.

 

과연 '무슨 죄'를 지어야 '벌-불행'을 받나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되고 또 일정 부분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다.

 

박완서는 작가지만, 즉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워할^^; 직업이 아니지만, 미모의 판사 출신 전 국회의원 정치인이라면 다르다. 많은 이들이 나경원과 다운증후군 딸을 '샘통'이라고 여겼을 법하다. 마치 의인의 타락을 기다리듯, 그런 마음으로. 얼마 전 인구에 회자된 방송을 얼핏 보며 든 생각. 아, 나경원은 정말이지 여자들, 엄마들, (특히) 장애아 내지는 아픈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을 기죽이는구나^^; 위의 글을 인용하자면, 출산과 동시에 자신이 장애아를 낳았음을, 혹은 내 첫 아이가 장애아임을 알게 된 그녀에게는, 이후에도, '슬픔'은 있었겠지만, '원망'과 '치욕감'(부끄러움)은 별로 없었으리라 생각된다. 물론, 왜 없었을까. 하지만 그녀 나름으로 그것을 중화(?)시키는 방법마저 터득했던 것이리라. 환갑도 멀지 않은 나이에 굳이 서울 시장 하고 싶을까? 이건 게을러터진 우리 같은 범인(보통 사람^^;)의 생각이고, 일반적이지 않게 태어난 아이를 저 정도로 키우고 자기 일까지 열심히 하는 그녀는, 정치적 입장을 떠나서, 진정한 위너, 이긴 하다. 

 

*

 

수필집이긴 하지만 박완서의 글을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니, 의외로 문장이 짧지 않다. 은근히 중언부언도 많고 고집스레 반복되는 어휘로 인해 문장이 꼬인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그건 좋은 문장이다. 역시 중요한 건 내용. 이른바 미문이 결코 좋은 문장인 것은 아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또 하나는 그녀의 소설이 거의 백프로 자전소설인데, 언제부터 가톨릭 신자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서유럽의 고백문학과 많이 닿아 있다는 것이다. 물론 고백의 대상이 주로 생활 속의 죄악^^, 속악이긴 한데 큰 맥락은 그렇다는 것이다. 

 

 

 

 

 

 

 

 

 

 

 

 

 

 

 

루소 역시 인간의 표본으로서 자신을 내세우며 미주알고주알 있는 얘기 없는 얘기를 다 늘어놓는다. 박완서는 생활 속에서 자신이 겪는 얘기들, 마주치는 사람들, 보고 들은 풍경들 등을 일일이, 역시나 미주알고주알 쓰고, 그것에 구조=형식을 부여한다. 후자는 물론 문학적 재능이고, 전자는, 작년 문단에서 화제가 된 작가의 표현의 자유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이야기를 쓰려면, 본의 아니게?! 타인의 얘기가 들어가게 되고, 그 타인에는 내가 만난, 들은 사람이 포함된다. 박완서는 어쩌면 낯뜨거운가, 아무튼 자신의 남편과 자식들, 친인척들 얘기도 거침 없이 쓰고, 가령 (지난 수필처럼) 어쩌다 마주친 택배기사(소년) 얘기도 가감없이 넣는다. 아니, 문학적 가감 있이(!) 넣는다.

 

또 하나. 나아가 비교적 가볍든 아주 무겁든, 이런저런 얘기를 쓰면서, 그렇게 씀으로써 그녀는 자신의 죄악을 스스로 용서하고 또한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른바 글쓰기 치료, 라고 할 만하다. 직업이 읽고 쓰고 (그것을 갖고) 떠드는 것인 나는, 요즘 더더욱 그것의 효과를 절감한다. 너무 아프고 힘들 때는 쓸 수도 없다, 다들 알지 않는가. 아픈 것, 힘든 것에 대해 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치료의 시작. 그리고 쓰면서 절반 이상 치료된다. 나머지 상처, 슬픔은  다음 쓸 거리를 위해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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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원의 언덕방과 인연을 맺은 지도 어언 6년이 된다. 내 생애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1988년 가을이었으니까. 나는 그때 나만 당하는 고통이 억울해서도 미칠 것 같았지만 남들이 나를 동정하고 잘해주려고 애쓰는 것도 견딜 수가 없었다. 남들은 물론 자식들까지 나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신경 쓰며 위해만 주는 게 내가 마치 고약한 부스럼딱지라도 된 것처럼 비참했다. 그렇다고 안 위해주고 평상시처럼 대해주었더라도 야속했을 것이다. 요컨대 나는 무슨 벼슬이라도 한 것처럼 내 불행으로 횡포를 부리고 있었다."(<언덕방은 내 방>, 72) 

 

저 수필집에 곧잘 나오는 말대로,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니, 나는 한 번도 못 봤다. 박완서가 저기서 말하는 수녀원은 부산 수영에 있(다)는 베네딕도 수녀원이다. 이해인 수녀이자 시인과의 인연으로 묵게 된 모양이다. 그러려니 하고 지나쳤을 것을, 문제의 1988년. 그해 가을-겨울(아마 11월쯤??) 중학교 2학년이던 나는 독후감대회에서 상을 받았고 시상식에 맞추어 서울에 올라갔다. 내 평생 첫 서울 구경. 그때 심사위원이 박완서였고 그날 그녀는 후레아(플레어) 스커트를 입고 단상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랬던 것으로 기억된다. 행사 진행하시는 분(아마 삼성생명 직원)이 이름을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당시 서양문학 고전이나 읽던 나로서는, 또 책은 읽어도 작가 얼굴은 잘 모르던 시절이었던지라, 박완서라는 존재를 영 모르고 지나쳤을 것이다. 아무튼 그때 박완서는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간을 이겨내는 중이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는 이미 이름 있는 소설가였는데 그 바쁜 와중에 코흘리개(!) 중학생들이 쓴 독후감 심사까지 하고 있었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아무 이유도 없을 수도 있다! 그것까지 포함) 그런 일은 거의 전적으로, 재능기부^^; 내지는... '엄마'로서의 책임감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지금 생각해본다.    

 

 

 

 

 

 

 

 

 

 

 

 

 

 

지난 주인가, 더 지난 주던가 <알라딘> 메인 화면에 반가운 책(들)이 뜨기에 별 생각 없이 주문하고야 타계 10주기임을 알았다. <모래알만한...>은 (아이에게 독서를 강요한 다음^^;) 쉬엄쉬엄 뒤적이고 있고, 얼마 전 아이의 '기저질환'을 생각하며 주문한 <한 말씀만 하소서>는 일단은 쟁여만 놓았다. <엄마의 말뚝>은 제대로 읽지 않은 것 같은데도 줄거리만 봐도, (<알릴레오>) 방송을 조금만 들어도 어째 읽은 것 같은 생각이, 착각이 든다. 요컨대, 박완서 소설은 이미 문학사(=고전)다. 덧붙여, (톨스토이의 경우처럼) 대부분 자전 문학이기 때문에 '베이스'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수필집(에세이)을 읽으며 반복적으로 든 생각. 박완서는 소설가-작가이기에 앞서 그 시대의 여자-사람으로서 충실한 삶을 살았던, 아이 다섯을 둔 '아줌마'(아마 당시 용어로는 선생도 자주 사용하는 '주부')였다. 그렇기에 생활밀착형 소설이 가능했을 것이다. 생활(=살림)의 주체는 예나 지금이나 여자이기 때문이다. 이게 항상 신기한데, 판사 주부도 교수 주부도 집에 들어오면 일단 부엌부터 가거나 방부터 닦는다. (혹은 가사도우미가 일을 제대로 했는지 확인한다^^;)  성장기에도, 또 그 이후에도 그녀의 삶이 마냥 순탄했다곤 할 수 없을 텐데, 그렇기에 더더욱 그녀가 이른바 '역경'에 대응하는 방식과 그것을 기록한 언어 구조물이 더 감격스럽게 읽히는 것 같다. 모든 점에서 은근히 '보통(사람/아줌마)'인 척하지만, 실은 천재였던 것이다, 흑 ㅠㅠ  

 

 

아마 이게 시작. 그리고 넷을 더 낳고 키우며 저만큼의 글을, 소설을 쓰려면 시간을 어떻게 쪼개고 또 몸과 마음의 건강 관리를 어떻게 했을까. 사소한 것이지만, 수필을 보니, '파출부'는 쓰셨더라.(사실 요즘 식으로 가사도우미 - 청소연구소^^; - 를 쓰더라도 그 인력을 관리하고 시간을 맞추는 일도 쉽지 않다.) 아이들이 자란다고 살림의 규모가 딱히 줄지도 않는데(연로한 부모님을 돌보는 일이 붙기 때문에) 필력은 더 왕성해지셨던 것 같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 얼핏 보면 신선놀음 같지만 사실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 집중도를 요하는 것이다. 그것을 생활 속에서, 생활과 더불어 해야 하니, 여성-아줌마- 작가가 감당했을 노동량은 실로 엄청났을 법하다. 어지간한 체력과 정신력이 아니고서야. 아줌마임과 동시에 상당히 매니쉬^^;한, 심지어 중성적인 느낌, 참 좋다. 

 

 

박경리와 함께. 사진이 옮겨지질 않아  찍어서 올리는데, 블로그가 사라졌다 ㅠ 두 분 다 은은하니 너무 아름답게 나왔다. 중장년은 소설을 쓰기에는 딱 좋은 나이다, 건강하기만 하면.

 

 

마치 도스토-키와 톨스토이처럼 박경리와 박완서를 비교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작품 속 연대 탓에 두 사람의 연배가 멀게 느껴지지만, 실은 별로 그렇지가 않다. 박경리 1926년생, 박완서 1931년생이다. 둘다 걸출한 '여성'작가라는 타이틀이 붙었지만 이제는 그냥 '작가'로 자리매매김되는데, 뭣 때문인지(어쩌면 아이 숫자가 적어서?^^;) 박경리 소설에는 여성성(=낭만성)이 꽤 많이 느껴지는 것 같다 등등. 박경리는 단편이 다소 부실하고 걸작인 <토지>는 너무 길어서 유감이다. 그에 반해 박완서는 잘 쓴 단편부터 적절한(!) 분량의 장편까지 재독, 삼독을 하기에도 무리가 없는 책들이 많다. 아마 이런 분량 감각 역시 그녀가 많은 아이를 키운 아줌마인 것과 무관하지 않을 법하다. 애 다섯 키우면서, 입시 준비 시키면서, 또 친정 엄마와 시부모 돌보면서, 남편 병간호하면서 대하소설을?! 어림도 없었을 법하다. 장르(길이) 역시도 생활에 의해 선택된 측면이 있을 터.

 

*

 

아주 오래 전 읽은 박완서 수필에서 그녀의 아들 얘기가 생각난다. 두 가지다. 하나는 서울대 의대를 다니는 아들이 전공으로 '마취과(학)'를 선택하기로 한 이야기. 내심 서운해하며 그 이유를 묻는 엄마에게 아들이 던진 답이 유명하다. "쓸쓸해서." 그다음 기억나는 수필은 로버트 알트만 영화의 한 에피스드이자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으로 시작되는 얘기.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그러고서 아들 장례식을 언급한다. 저 많은 딸들 중 하나가 죽지 않고 하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죽었다고(?), 라는 식의 솔직한 말. 이런 솔직함이 박완서 소설의 매력 중 하나인 것 같다. 아니, 어떻게 그런 말을?!- 이라고 할 법한 말을 박완서는 꽤 잘 쓰고 그것을 미주알고주알 묘사하고 분석하고, 마지막엔, 우리의 윤리 감각, 도덕 감각을 환기한다. 대개 이런 건 생활 속에서 일어나기 때문에(저 수필집에서 앳된 택배기사 고생시키는 예 같은)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듯하다. 자식에 관한 한, 죽음이야 지나치게 극단적인 것이지만, 크고 작은 질병 사고는 워낙 많기 때문에, 이 역시 누구나 공감하리라. 나도 아이의 발달상태가 일반적이지 않음을 인지한 대략 그 시점부터 제법 힘들게 사는데,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경련이 재발한 작년에는 아주 더 그렇게 되어버렸다. 문제는 언제부터인가 이런 상황을 무슨 "벼슬"(!!!)처럼 생각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는 것. 뜨끔하는 문장, 다시 한 번 옮겨본다.   

 

 "(...) 요컨대 나는 무슨 벼슬이라도 한 것처럼 내 불행으로 횡포를 부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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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2021-01-27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젊은 박완서는 다소곳해 보이고, 예쁘네요 ㅎ 엄마를 보는 듯한.

푸른괭이 2021-01-27 10:52   좋아요 0 | URL
‘젊은‘ 정도가 아니라 ‘어린‘ 나이였을걸요?^^; 막내인 아들도 늦둥이라고 해도 삼십대 중반에는 낳았을 겁니다. 요즘과는 다르죠 ㅋ

별족 2021-01-27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완서 님의 글은, 왜 내내 지방으로만 떠돌던 건설회사 다니는 남편이 가까운 곳에 발령받아 작업복입고 출근하는 걸 미워했던 소설이 생각납니다. 뭔가 내가 투덜거릴 때 맞장구만 쳐주지는 않을 것 같은 차가운 친구,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래서 좋아요.

푸른괭이 2021-01-27 10:54   좋아요 1 | URL
맞장구 쳐주는 척하다가 뼈 때리는 한마디 투척하는 오랜 친구^^; - 저 수필집에 나오는 표현대로 ‘보통‘ 얘기를 ‘보통‘ 화법으로 쓰는데, 그게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거든요.

blanca 2021-01-27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들이 너무 좋아요. 특히 저 박경리와 박완서의 사진 정말... 박완서는 누구나 느끼는 복합적인 감정을 정말 적나라하게 너무 잘 그리는 것 같아요. 지금 오디오북으로 <저문날의 풍경> 듣고 있는데 여전히 참 좋네요.

푸른괭이 2021-01-27 15:30   좋아요 0 | URL
오히려 지금 더 잘, 많이 읽히는 것 같습니다. 생활 냄새도 생생하거니와(나중에 역사학자나 문화사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이 인용할 듯요) 기본적으로, 작가들이 흔히 갖는 허영이 없어서인지, 정신 세계가 너무 멀쩡(!)하신 분이셨던 것 같아요. 그냥도 배울 점이 많습니다. 반면, 박경리 소설은, 너무 청승^^;맞아서인지, 오히려 덜 읽히는 것 같고요.
 

 

 

영도구의 위엄

 

 

 

 

1

 

2021년 신축년 구정을 맞이하여 

우리는 어김없이 서울역에 갈 것이다

서울역은 싸늘하겠지만 우리는 서울역의 거지와

햄치즈 샌드위치와 바닐라향 뜨거운 커피에 감동할 것이다

 

우리 열차는 지금 종착역인 부산역에 도착하겠습니다

부산역에서 내리시는 손님 잊으시는 물건 없이 안녕히 가십시오!

부산역은 심드렁하겠지만 우리는 부산역의 화장실과 

메마른 거지와 기름진 비둘기의 조합에, 왁자지껄한 지하철이나 괴팍한 택시에 열광할 것이다  

 

우리는 황령산 자락, 부산진구 전포교회 아래

다락방이 딸린 2층짜리 주택에 머물 것이고

그렇다, 태종대 근처 영도구에도 갈 것이다

 

 

2

 

1926년생 제동댁 김점순은 영도구에서 아흔여섯번째 해를 맞이하고 있다

 

그녀는 145cm 40kg 정도의 체구에 건더기 없는 된장국과 김치만 먹고 살았다 

온순한 그녀가 괄괄한 유씨 남자와 낳은 아이 중 총 일곱 명이 성년에 이르렀다

장남 은율은 알코올 의존증이 유발했을 치매와 공황장애에도 불구하고 잘 살고

장녀 숙이는 암 투병 중인 남편과 부전시장에서 과일과 유자차 떼다 팔며 잘 살고

차남 종율은 환갑에 애 딸린 여자와 결혼해 '하나님' 안에서 알콩달콩 잘 살고

차녀 을이는 시집 간 직후 양잿물 마시고 친정까지 기어와 시름시름 앓다 죽고

삼녀 정이는 아들 딸 남겨둔 채 마흔도 넘어 술병으로 간이 붓고 복수가 차 죽고

삼남 성율은 쉰 살에 뇌경색, 목숨도 건지고 산재보험도 건져 얼씨구나 잘 살고

사녀 득이는 요양보호사에 무자식이 상팔자, 노모 돌보며 착하게 잘 살고 있다

 

영도구의 위엄은 그 덕분에 유지된다

좁다란 임대 아파트와 모진 슬레이트 집들

그리고 사람들, 오 가난한 사람들!

오 굴욕과 상처 가득한 무참한 사람들!

오 달동네 옥탑방과 지하방, 죽음의 집에서 부활하라! 

 

3

 

부산행 KTX 열차 안에서 우리는 터널 안팎을 드나들며

간밤에 잠자리에서 나눈 대화를 변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어머니, 왜 사람은 태어나고 병들고 죽는 것일까요?

- 오 아들아, 그런 멋진 말은 어디서 배웠느냐?

- <원효대사 해골물>에서요

- 오 꿈에서 원효대사를 만나거라, 일체유심조를 배우거라

 

아흔해가 넘도록 잘 살고 있는 사람은

어딘가 초월적인 데가, 신의 관념과 형상을 닮은 데가 있다 

우리의 제동댁 김점순 여사는 백살을 넘길 것인가

'신'이라는 낱말에서는 인육 냄새가 너무 많이 난다

 

 

*

 

도-키, <가난한 사람들>, <학대(상처) 받은 사람들>(The Insulted(Humiliated) and The Injured)), <죽음의 집의 기록>

나보코프 <절망>: 신이라는 관념에서는 인육 냄새가... (?)

 

*

 

 

작년 1월 1일에 부산에 있었으나 아이가 급-아픈 바람에(진짜 또 영화 한 편 찍었다) 가지 못했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아무래도 힘들지 않을까 한다. 그녀는 아무튼,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 들 중 유일한 생존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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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만날 뻔한 인연이 있었으나 그렇게 되지 못했다. 하지만 '-뻔한' 것도 인연이라 시집을 구입해서 읽어보았다. 지난 학기에는 한 학생이 이수명 시를 무척 좋아한다고 하여 다시 한 번 시도 했으나 나에게는 너무 우아한 당신(?), 이런 느낌이었다.

 

 

 

 

 

 

 

 

 

 

 

 

 

 

 

 

이번에 문동의 복간본(재간본) 시집을 째려^^; 보던 차에 제목이 아주 마음에 들어 주문해 보았다. 시집의 형식(모양새)도 썩 나쁘지 않다. 겸사겸사 시론도 낸, 아주 부지런하고 성실한 시인이다. 흑, 역시 서울대, 라고 하면 욕 먹으려나^^;

 

 

 

 

 

 

 

 

 

 

 

 

 

 

 

 

 

그런데 저 제목의 시는 없고, <화물차>라는 시 안에 저 대목이 나온다.

 

 

화물차

 

빈 화물차가 지나간다. 나는 가방 속을 뒤지고 있었다. 쏟아지는 책갈피 사이를 정신없이 뒤지고 있었다. 인쇄되어 있는 나의 이단은 나의 오독에 불가했다. (....) 나는 벌써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나에겐 새로운 이단이 남아 있지 않았다. 빈 화물차가 지나갔다. 내 앞을 서서히 지나가고 있었다. 새로운 오독이 거리를 메웠다.

 

 

한 예각 속으로

 

돌아올 때면

이만큼 물러서버린 내 집을 발견한다.

보이지 않는 한 예각 속으로 점점 들어가는

빠져나올 수 있을까

한사코 방향 틀어버린

아름답게 뒤집힌 은사시나무 잎들 속에서

(....)

 

 <토요일 오후> 이런 것도 반복해서 읽고 싶다. 예전에 읽은 이수명 시들과 달리, <새로운 오독이...>는 아마 시인이 젊었던(어렸던?) 까닭이었을까, 상당히 도발적인 데가 있다. 마음에 든다! 대단히 산문적인 느낌이 들고 말이 굉장히 많은 것도 마음에 든다. 다른 시들도 눈에 들어오는데 더 옮길 여유가 없는 것이 유감이다. 

 

곁들어 문동의 이 시리즈 중 사서 읽고 싶은 시집이 꽤 되는데, 아마 다음 학기에는 (강의를 받지 못해 ㅠㅠ) 한국 시와 소설을 읽을 시간을 내기는 힘들겠다. 이문재의 <...젖은 구두...>도 예쁘게 단장해서 나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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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이 맞다면,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이 어느 출판사에서 나왔던 것 같다. 고려원? 아무튼 헌 책방에서 그의 책을 사서 읽은 것 같은데 대표작인 <희랍인(그리스인) 조르바>보다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이 나는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고교 시절에 이어 도스토-키에 빠져 살던, 여기에 카프카와 카뮈를 덧붙이던 시절이라. 검색해보니 안정효 번역의 <최후의 유혹>이 뜨는데, 비교적 나이 들어 (다른 작품 번역으로) 다시 읽어도 안정효는 당대 최고의 번역가이다.

 

 

 

 

 

 

 

 

 

 

 

 

 

 

 

한편 나의 친구는 <...조르바>를 좋아했다. 특유의 약간 멍하면서도 사색에 잠긴 듯한, 굉장히 심오한(-하다고 느껴진, 당시에는) 눈빛으로 "조르바 같은 인간 있잖아, 그렇게 살면 좋겠는데..."라는 식의 말을 했다. 돌이켜보건대, 여기에는 낭만주의 이래 아주 케케묵은 이분법이 도사리고 있다. 천재 vs. 천중(대중), 지식인(인텔리겐치아, 엘리트) vs. 민중, 문화-문명(인) vs. 자연-야만(인) 등. 그 무렵 친구는 자기를 응당 '작가-카잔-스'와 동일시한 듯하고, 그 입장에서 조르바를 동경하는 식의 입장을 취한 것이다. 역시나 대학생다운(!), 그것도(괜하 자의식, 열등감일 수 있지만!) 이제 막 명문대에 입학한 지방 출신 여학생다운 생각이다. 그 친구는, 적어도 지금까지의 인생을 보면, 이제는 그 이분법의 허상을 모르진 않겠지만 어쨌든 실천에, 실행에 있어 '작가-카잔-스'도 '조르바'도 아니게 돼 버렸다.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다. 조르바라면 '자유'(자연)인지라 굳이 성취가 필요없지만(존재하면 된다!!!) 작가-카잔-스라면 반드시 성취가 있어야 한다.

 

 

세월이 흘러흘러, <알릴레오3>을 들으며 게스트로 나오신 분과 유시민의 독법을 비교하게 되었다. 전자의 독법도 나쁘지 않았으나, 확실히 유시민은 독해력(?!)에 있어 독보적인 데가 있음을, 굉장히 폭넓으면서도 동시에 깊은 시각을 가졌음을 알 수 있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들었다. 앤소니 퀸이 나온 영화는 나도 어릴 때 보았는데, 유시민 말마따나, 조르바가 맨날 춤추는 것도 아니고^^;  영화는 영화일 뿐, 책을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겠다. 제법 오래 전, 모 기관지(소식지)에 매달 연재하던 독서에세이란에 마지막으로 다룰 책이 이것이었다. 책을 구입했는데 바로 짤려서 ㅠㅠ 쓰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덧붙여 이런 '자연인'의 삶에 대한 동경은 어느 문화권에나, 어느 시대에나 있어서 도스-키나 톨-이도 예외가 아니다. 그 실천에 있어서도, 시간과 돈과 건강(!!!)이 있어야 하므로, 결국 톨-이가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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