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본다(1) - 한국인의 나무

 

 

 

 

 

 

화성에서 한국인의 밥상을 거룩하게 받아들고

융릉과 건릉 빽빽한 나무를 향해 묻는다 너희는

언제적 나무냐 사도세자 나무냐 혜경궁 홍씨 나무냐

 

나무를 보며 정조대왕을, 세종대왕을, 조선 왕조를 생각한다

도야지 국수를 보며 소수림왕을, 광개토대왕을 생각하던 백석을 생각한다

나무와 생각 속을 초록색 보라색 부전나비들이 사브작 헤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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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게 福

 

 

 




아이를 키우기 전에는 몰랐다
어린 나의 '경끼'가 뇌전증 발작이라는 것을 

도스토옙스키나 앓는 천재의 표식이 아니라

그저 안타까운 질환일 뿐이라는 것을


남동생이 뇌종양 수술을 받기 전에는 몰랐다

한 번 자른 두개골은 붙지 않는다는 것을

뇌종양에는 총 네 등급이 있고 종양을 떼낸 사람도

세상에, 술담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아빠가 대장암에 걸리기 전에는 몰랐다

독한 암 순한 암, 깊은 암 얕은 암, 큰 암 작은 암

어떻든 암은 다 죽을 고생, 생고생이라는 것을

사람 몸에 암 세포 안 생기는 데가 없다는 것을

 

그런데 말입니다

중증 질환 중 암이 최악은 아니며 예상 가능한 불행 중에서도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그밖에 어떤 것이 있을지 모른다는 것은 당신이 그만큼 삶에서 '좋고 만족할 만한 행운', 즉 '복'을 누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모른 게 약, 아니, 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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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품으로

 

 

 

 

 

 

어젯밤 꿈에 평생 읽은 적 없는 <자유론>이 나왔다 

이 비천한 몸이 심지어 그이의 품에 안겨 있었다

<자유>와 <론>의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 참 좋았다

생각의 자유, 취향의 자유, 그것을 말하지 않을 자유까지

 

그 직후 아우슈비츠에 들어갔다 

어두웠다 시큼했다 더러웠다

 

모스크바 외곽, 폐건물처럼 낡은 기숙사 

지하까지 수직으로 내려꽂힌 쓰레기 통로를 

가로로 깔아 둔 아우슈비츠를 겨우 통과하고

마침내 다시 자유의 품에 안긴 나는 

 

계몽된 민주 사회의 교양과 윤리를 갖춘 시민이 되어 있었다  

 

 

 

*

 

 

 

 

 

 

 

 

 

 

 

 

 

 

실제 꿈에서는 <알릴레오 3>과 유시민이 직접 나왔고, 정말 엉뚱하게도, 1년 내내 책 한 자 안 읽는 남편이 거기 출연자로 초대받았고 나는 배우자로 배석했다. 정말이지 개꿈 똥꿈이지만 넘나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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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의 가을

 

 

 

 

 

해바라기야

넌 머리가, 얼굴이 어쩜 그렇게 크니

머리에 든 것도, 얼굴에 박힌 것도 너무 많아

얘, 너 정말 무겁겠다, 이 가분수야

 

해바라기라고 언제나 머리를 쳐들고 있어야 하니

너의 여름은 충분히 위대했는데 말이야 

 

이제는 가을, 示의 시간

그만 고개를 숙여도 돼

속절없이 미련없이 시들려무나

다 널 위해 하는 말이거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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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적으로 아름답다

 

 

 

 

아이의 아침 등굣길

그림글자 落葉이 실현된다

단풍의 떨어짐이 절찬리  

또렷한 가을빛 꼭지점이

살랑살랑 연약한 듯 살벌하다 

초속 5센티미터보다는 빠를 테지

 

낙하 직전의 낙엽

착륙 직전의 낙엽

필사적으로 아름답다

 

 

 

*

 

 

 

 

 

 

 

 

 

 

 

 

 

 

 

 

떨어지기 직전의 나뭇잎은(?) 결사적으로 아름답다. 황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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